[영화] 인셉션

2010.08.03 06:50

milk & Honey 조회 수:5505

 

 

 

 

인셉션은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영화입니다. 신화를 차용한 등장인물 이름의 상징성, 심리학, 철학, 시공의 상대성, 건축, 에른스트 피셔나 르네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 겹의 겹을 둔 액자식 서사, 호접지몽 같은 고사성어, 몽자류 고전소설들, 심지어 해몽(?) 등등. 제가 배경지식이 조금 더 넓다면 더 많은 분야와 관련을 지으며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제게는 메멘토, 인섬니아에 이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세 번째 영화였습니다. 두 편의 전작 역시 복층의 서사를 보이며 관객들을 영화 속 게임에 참여하게 합니다. 이번 작품은 결말의 모호함으로 그 문을 더 넓게 열어놓았지요. 감독은 필요한 이야기만 딱딱 던져줍니다. 그것은 마치 간결하게 정리된, 게임의 매뉴얼을 보는 느낌이예요. 림보, 킥, 토템, 도둑, 약쟁이, 설계자 등은 게임의 파티 구성원 그리고 스킬이나 아이템들의 역할과 유사하지요. 또한 관객을 적극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 혹은 모티프의 영화들, 이를테면 매트릭스, 다크시티, 엑시스텐즈, 너바나, 더 셀 등과 차별을 보입니다.

 

영화는 이렇게 건조한 분위기를 상쇄하려는 듯 윤기나는 비주얼과 장중한 음악을 끼고 갑니다. 덕분에 한 편의 설명문 같기도 하고 퍼즐책의 한 페이지 같기도 한 장면장면들에 인물들의 감정이 풍부하게 묻어날 수 있었습니다. 장르의 특징을 알고 그것을 십분 발휘한다는 점에서 놀란 감독은 치밀하고 영악한 감독입니다. 그리고 할 말만 툭툭 던져 호기심을 잔뜩 유발하는 구조가 처음에는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감독은 사람으로 따지면 츤데레적인 면이 있습니다. 한 예로 꿈과 꿈속 꿈 사이의 시간차를 알려주기 위해 병렬식으로 교차편집한 장면 등은 사실 이 감독이 상냥하고 친절하다는 걸 말해주지요.

 

그리고 제작팀이 설계한 꿈의 세계엔 원초적 상징과 현대인의 불안이 함께 뒤섞여 있습니다. 반듯하고 높아 보기엔 시원해보여도 도시의 비정한 욕망에 불과한 마천루, 생명의 근원이자 죽음의 세계인 물, 중력을 잃고 부유하는 인물들. 꿈 속에 설계된 미로는 평면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몽, 몽중몽 몽중몽중몽(?)의 순환을 통해 다차원적으로 존재합니다. 꿈 속에 빠진 인물들은 그것이 마음 속 세계임을 자각하기에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할 뿐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합니다. 이런 점은 주인공 코브가 트라우마로 인해 좌충우돌하는 감정적인 인간임을 돋보이게 하는 스포트라이트 역할을 합니다.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나요. 영화를 보신 ‘당신’이 생각하는 그게 맞을 겁니다. 저는 제가 생각한 대로 이야기가 풀려나갔구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이 어떤 결말을 만들어내었는지 그 무수한 가능성들의 하나로 영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입니다. 단, 그러한 의도를 갖고 표현 역시 계획된 생각에 따라 잘 만들어진 영화에 한해서지만요. 그리고... 우리의 가련한 주인공 코브가 결국 살아갈 세계가 어디이든 구원받은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 똑똑한 여자아이 나오는 영화는 언제나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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