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들(2007)

2010.07.20 23:10

아.도.나이 조회 수:4023

 

2007년 개봉한 장진의 [아들]을 이제서야 봤습니다. 저는 '장진'식 유머에 크게 동조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의 영화들을 배척하는 유형도 아닙니다. [아는 여자]나 [박수칠 때 떠나라]는 장진 필모중에 재밌게 보았던 작품들이었죠. [킬러들의 수다]는 평범했고, [기막힌 사내들], [거룩한 계보]는 지루하게 관람했군요. 그런데 [아들]은 좀 미묘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제가 장진의 영화를 좋아하는 유형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앞서 [아는 여자]와 [박수칠 때 떠나라]를 재밌게 보았다고 언급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는 여자]는 이나영의 캐릭터가 탐났던 작품이었지요. 이나영이라는 배우뿐만 아니라 그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이 탐났었습니다. 그런 캐릭터를 만들어낸 공력이 부러웠달까요. 하지만, [아는 여자]라는 작품에 간지러운 에피소드들은 달가워한 적이 없지요. [박수칠 때 떠나라]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이 작품에 캐릭터들은 제가 질투심을 느낄만한 인물들은 아니지요. 하지만, 저는 이런 식의 제한된 장소안에 벌어지는 신명나는 마당놀이를 꽤나 흡족해 합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의 재미는 곧 장르적 취향에서 기인한 것이죠.

 

두 영화의 공통점은, 물론 감독인 장진으로 귀결되겠지만 제가 재미를 느끼는 요소들은 사실 공통점이 크게 없습니다. 한 편은 캐릭터 때문에, 한 편은 장르적으로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죠. [아들]은 어떨까요. 이 영화가 반전강박증에 걸려 욕을 무지하게 먹었음은 이미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반전이 무엇인지 알고 영화를 접한 것은 아니지만, 대충 결말을 예상하고는 있었어요. 하긴, 이런 영화에 '반전'이 있다는 자체가 스포일러일테니 어쩌면 저는 이 영화를 온전히 감상한 것은 아닐겁니다.  

 

어찌되었든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미묘하다고 느낀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장진이라는 감독의 선입관이 이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죠. 사실 이건 개인적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영화가 드라이한 극적 긴장감을 조성할 때마다 썰렁한 농담이 터지지 않을까를 기대하며 지켜봤죠. 무기징역 아버지가 15년만에 아들과 대면한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가볍게 느껴져서는 안될텐데 말이예요. 정작 영화에서도 직접적인 나래이션이 이 영화의 진정성을 강요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두번째는 이 영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담을 실천하고, 심지어 반전으로 그 모든 것을 비튼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진지하다고 구구절절 설명하면서도 이 영화는 전혀 동조하지 못할 농담들을 하나씩 살포합니다. 사실, 이 농담들은 두 세번 곱씹을만한 것들도 아니고 영리한 것들도 아니죠. 그저 뭔가 있어보일만한 것들일 뿐이예요. 차라리 무시하면 영화의 진정성이라도 이어갈텐데. 결말에 이르러 자비없이 뿌려댄 반전은 어안이벙벙하게 만듭니다. '난 이 정도 영화야.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지금껏 자기가 쌓아왔던 진정성의 벽을 스스로 배신합니다. 정말 영화는 이것 하나를 위해 달려온 것일 뿐이라는 허탈감이 밀려올 정도고 그것은 일정부분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가 재밌었습니다. 장진이 살포하는 농담에는 모두 시크하게 반응하고야 말았지만. 어쩌면 장진이 의도하지 않았던 코드에서 재미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재밌게 봤던 장진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아들]의 반전 시나리오는 사실 불쾌합니다. 영화가 이런 식으로 자신이 쌓아놓은 장치들을 배신하며 관객의 뒷통수를 후려칠 때, 스스로는 무엇을 얻었습니까? 덕분에 이 영화는 장진의 영화들 중 가장 기성품 같으면서도 가장 얄팍한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제가 재미를 찾은 요소가 반전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저는 학창시절의 유대관계에 대한 판타지가 있습니다. 그 판타지가 매끄럽고 유연하면 유연할수록 관대해지는 성향이 있죠. 반전의 배경으로 삼은 장진의 시나리오는 이것을 건듭니다. 굉장히 피상적일지도 모르지만. 저에게는 딱 이 정도의 거리두기 표현이 좀 먹혔던 것 같습니다. 친구를 위해 벌이는 무모한 연극이 제법 강요스럽고 아슬했던 부성애를 뛰어넘어 인정될 수 있던 것은 그들의 동기가 전적으로 학창시절 유대관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죠.

 

이건 정말 이 영화가 쌓아온 작품의 코드와는 전혀 무관한 감상법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도달한 결론이 바로, 저는 장진 영화를 좋아하는 유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몇몇 작품들의 재미는 굉장히 개인적인 코드에 맞춰져 있을 뿐, 장진이 의도한 것들과는 무관하게 비껴 나가죠. 심지어 저는 '장진'식 시나리오의 대사들을 미리 예상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은 예상적중의 대사들을 남발합니다. 그러니 김이 샐 수 밖에요. [웰컴투 동막골]과 [바르게 살자]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이 두 작품은 썩 재밌게 봤습니다만 이 역시 '장진'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제가 앞으로 장진 영화를 안볼 것인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분명 장진의 주류 영화들을 좋아하는 유형은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맞아떨어진 몇몇 영화들은 분명 있지만요. 결과적으로 '장진'유머는 재미가 덜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있어보이고픈 농담들은 선호합니다. 약발이 너무 약할 뿐인거죠. 하지만, 언젠가는 코드가 맞아 터질날이 오겠죠. 아니면, 역시 의도하지 않은 다른 코드에서 재미를 찾게 되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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