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문. 던칸 존스. 2009.

2012.08.08 16:21

obhys 조회 수:2387

더 문  Moon

- 프롤레타리아가 달로 간 까닭은?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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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벨은 수년 동안 홀로 달의 기지에서 일해 온 노동자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외로운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낙이란 본인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의 모형을 깎아 만드는 것과, 지구에서 그를 기다릴 아름다운 아내가 가끔 보내는 영상 편지를 보는 일 뿐입니다. 후임자와 업무를 교대하고 지구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샘 벨은 기계장치 조작 중에 마주친 환영(환각) 때문에 큰 사고를 당합니다. 하지만 눈을 떠보니 샘 벨은 어느새 기지 안의 편안한 침대 위에 상처 하나 없이 누워 있습니다. 어리둥절해 있는 샘 벨에게 기지 전체를 관리하는 컴퓨터인 ‘거티’는 사건의 경위를 설명해줍니다. 하지만 샘 벨은 뭔가 석연찮음을 느끼고,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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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문>은 인간의 존재 자체가 포획당하는 노동문제의 미래형 판본을 제시합니다. 감독이 그려내는 비전은 가혹합니다. 기계실의 숨막히는 열기 속에서 화로 속으로 석탄을 퍼 넣는 것이 산업혁명으로 등장했던 ‘태초의 노동자’의 모습이라면, 미래의 노동자는 기계를 계속 돌리기 위해 자신의 몸 자체를 연료로 집어넣어야 합니다. 발전된 유전공학이 가능케 한 ‘클론 기술’ 덕분에 “피와 살을 착취한다”라는 비유는 현실이 되고 맙니다. 게다가 다른 인간들에게는 속편하게도, 그 노동자는 지구가 아닌 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상품들의 벽 너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그 바깥에서 혜택을 누리는 다른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이 SF적인 상상력에 힘입어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로까지 벌어집니다.

 

다소 뜬금없기는 하지만, 감독은 미래의 노동자에게 요구될 이러한 희생의 정도를 종교적 것으로, 더 정확하게는 ‘기독교적’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맥락을 따르자면 이렇습니다.

 

" 4복음서(마테, 마가, 누가, 요한)의 이름을 딴 하베스터를 돌리면서 블루칼라인 미래의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자신의 육체를 버리십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월면(月面) 기지 안에서 밤낮으로 일하며 말입니다. 그리고 장사한지 몇일만에 클론으로 부활하사, 죄많은 인간들을 위해 계속계속 몸을 버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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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론을 다루는 SF영화들은 <아일랜드>에서처럼 보통 진본과 짝퉁의 정체성 투쟁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하게 마련입니다. <더 문>이 변별점이 있다면 사실은 두 샘 벨 모두가 짝퉁이며 누가 진짜인지를 가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일 겁니다. 처음으로 두 샘 벨이 조우하는 장면에는 신기할 정도로 ‘멘붕’의 느낌이 없습니다. 둘은 애써 상대방을 무시하려고 하는데, 이때의 행동들은 적대적이라기보다는 서로 성가셔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더욱 신기하게도 둘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는데도 점점 교감하며 가까워집니다.

 

또한 메인 컴퓨터 ‘거티’의 존재도 색다릅니다. 처음에는 회사측에 서서 샘 웰을 이용해먹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결국 샘 웰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고 기지를 탈출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기존에 인공지능 컴퓨터가 주는 공포감에만 익숙해져 있던 관객에게 소소한 반전의 재미를 선사하지요.

 

‘거티’를 영화사에서 이 방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과 비교해보면 시대적 인식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짐작이지만, 현재와 비교하면 큐브릭의 시대에는 아직 고성능 컴퓨터가 일상 속으로 깊게 들어와 있기 전이라 고삐풀린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대한 공포가 한층 더 막연하고 컸으리라고 봅니다. 이에 대한 감독의 2012년식 테크놀로지관이 ‘거티’에서 엿보입니다. 즉 우주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큰 문제가 과연 테크놀로지의 문제이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더 문>이 그려내는 세계관에서는 결국 샘 웰과 같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인간이 거티의 뒤에 서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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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전개가 어딘지 모르게 매끄럽지 않다는 기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컨셉 아트가 참 아쉬웠습니다. 건조하고 폐쇄적인 기지 안의 모습이나 월면을 주행하는 하베스터들이 인공적인 냄새가 강해서 장난감 같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더군요. 비슷한 느낌을 <미션 투 마스>에서도 받았었는데, 거기서는 인위적인 냄새가 영화 전체(의 내용)와 어우러져 있는 느낌이 든다면 <더 문>은 미숙한 느낌만 주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SF장르의) TV 영화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삭막함과 어색함이, 새롭다면 새로웠습니다. <다다미 SF>라는 장르가 생긴다면 이런 기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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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거티의 목소리는 케빈 스페이시가 맡았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크레딧을 보니 그렇더군요. 소리를 약간 만진 느낌이 나긴 하지만 꽤 잘 어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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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하기에는 너무 크고도 분명하게 한글이 많이 나옵니다. 의견들이 분분한데, 한 네티즌에 따르면 감독이 한국인 여자친구를 사귀었었고, 장거리 연애 끝에 헤어졌는데, 그 때 느꼈던 감정을 지구에 아내를 두고 달에 온 샘 벨의 처지에 많이 담아내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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