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2014.01.25 12:38

menaceT 조회 수:3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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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cerclerouge/40204566597

 

The Wolf of Wall Street (2013)

 

1월 12일, CGV 신촌아트레온.

 

(스포일러)

 

  스콜세지의 신작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봤다. 사실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올라와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만 그 상태에 지나치게 도취되어 버리더니 결국 몰락하게 된다는 플롯 자체는 '분노의 주먹(성난 황소)'이나 '좋은 친구들' 등 스콜세지가 이미 만든 영화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스콜세지는 같은 이야기를 같은 방식으로 게으르게 반복하는 이가 아니다.

 

  주인공의 나레이션이 보이스오버로 깔린다는 점, 주인공이 정점에 다다른 시점에서 시작해 밑바닥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 뒤, 굉장히 빠르고 경쾌한 진행으로 주인공의 성공 과정을 따르는 방식으로 볼 때, 이 영화는 스콜세지의 영화 중 유독 '좋은 친구들'을 닮아 있다. 그러나 '좋은 친구들'이 범죄 드라마, 갱스터 무비의 자장 아래 있다면 '더 울프...'는 코미디 장르를 취했고, 이 장르 상의 차이에서 우리는 두 영화가 소재에 대해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좋은 친구들'은 그 장르적 특성 때문에 이야기의 기반 그 자체가 범죄이고, 때문에 그 안에서 범죄는 결코 외면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피, 폭력, 시체가 즉각적으로 화면 앞에 드러나 보이면, 관객은 자신들의 일상과 극중 인물들의 이야기 사이에 벽을 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더 울프...'는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을 이용해 이와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이중적인 자세를 취한다.

 

  이 영화에서 조던 벨포트는 주가 조작 등으로 불법적으로 돈을 긁어모은 범죄자이다. 그러나 영화는 부러 그 범죄의 흔적들을 희석시켜 버린다. 주가 조작이 이루어진 구체적 내용이나 그와 관련 경제적 용어들은 '사실 이런 건 중요치 않고'라며 휙 넘겨 버리기 일쑤이고, 범죄의 피해자들은 철저히 전화기 너머에 머무르기에 범죄가 부른 피해가 어떠한 파장을 일으켰는지는 확인할 수도 없다. 대신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빠른 편집을 통해 연달아 이어지는 사치스러운 파티, 마약, 섹스의 향연이다. 게다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장르적 기반 자체가 코미디이다 보니,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밝다. 누군가가 죽더라도 그조차도 금방 우스갯거리가 되곤 한다. 심지어 몰락의 순간에조차 영화는 코미디로서의 색채를 좀처럼 누그러 뜨리지 않으며(장 자크 소렐에 대한 언급이나 베니하나에 대한 분노 등을 보자.), 그는 온전히 몰락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극중 벨포트는 자신의 목표가 늘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중인 이 영화의 관객들 중 많은 수가 아마 '부자'라는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지점에 이름만 각기 달리 붙인 채 목표를 설정해 두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있어, 범죄로 구축된 세계임에도 범죄의 흔적은 사라지고 몰락의 순간에도 좀처럼 어둠이 끼어들지 못하는, 지나칠 정도로 안전해 보이는 영화 속 조던 벨포트의 세계는 일견 완벽한 동경의 대상처럼 보인다. 여기까지만 고려할 때, 일견 이 영화는 조던 벨포트를 미화하며 완벽한 우상으로 승격시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가 코미디 장르로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영화는 벨포트가 진지하게 연설을 할 때 은근히 그 광경을 우스꽝스럽게 연출하며 마치 사이비 교주와 그의 아둔하기 짝이 없는 신도들처럼 조명한다. 더불어 극중 등장하는 온갖 에피소드 속에서 벨포트와 그의 동료들은 사정없이 망가지며 광대나 다름없는 꼴을 보여주는데, 레먼 복용 시퀀스는 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조던 벨포트를 우상화하는 동시에 그를 껍데기만 남은 허상처럼 그리며 희화화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영화는 그 사이의 경계조차도 분명히 보여주지 않는다. 때문에 영화가 세 시간 내내 쉴 새 없이 내달리는 동안, 관객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이 동경하는 대상을 비웃고, 동시에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여기는 대상을 동경하게 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관객의 입장을 묘하게 반영하고 있는 극중 인물이 바로 FBI 요원 덴햄이다. 그는 조던 벨포트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벨포트와 요트에서 대화를 나눌 때의 태도를 보면 벨포트를 우습게 여기는 듯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포트를 검거하고 죗값을 치르게 한 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그의 표정은 영 밝지가 않다. 그 지하철 장면은 벨포트와 덴햄의 요트에서의 대화 장면과 맞물려 있는데, 거기서 벨포트는 덴햄에게 '지하철이나 타고 못생긴 아내에게 가라'고 조롱하며, 더불어 덴햄이 브로커 자격증을 공부하다 끝내 실패했다는 점이 언급되기도 한다. 그 대화 장면을 상기한 뒤 지하철 장면을 다시 보면, 우리는 덴햄 역시 마음 한 켠으로 벨포트를 동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시선에 지하철에 앉아 있는 소시민들의 모습이 담길 때, 우리는 그러한 동경, 욕망을 덴햄만이 아니라 그 소시민들, 나아가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도 공유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영화가 조던 벨포트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분명 그가 실존하는 인물에 기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캐릭터처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세 시간 내내 거의 쉴 틈 없이 떠들어 대는 나레이터이지만, 실상 영화 안에서 그라는 인간 자체에 대해서 알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의 고향 친구들이 회사 창립 멤버로 등장하고 그의 아버지가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나오는데도 벨포트의 과거는 거의 언급되지 않으며, 그의 성공 스토리는 경쾌한 리듬으로 맞붙어 있는 일련의 씬들을 통해 휙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 뒤로는 성공한 뒤의 벨포트가 본인의 성공을 만끽하는 모습만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제 벨포트는 자신을 비난하려는 기자가 사용한 단어 '월스트리트의 늑대'를 자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써 먹는가 하면, 월스트리트 초짜 시절 만났던 해나(그 역시 실제 인간이라기보단 차라리 하나의 캐리커처처럼 과장된 모습으로 묘사된다.)의 허밍을 구호처럼 사용한다. 그를 이루고 있는 것 중에 그 자신의 모습이라 할 만한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마약과 섹스를 끝도 없이 즐기는 조던 벨포트는 하나의 인간이 아닌 껍데기 뿐인 존재처럼 보인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제 사건들을 다루면서도 그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는 그런 사건들과는 무관한 파티, 마약, 섹스 관련 에피소드들만을 연달아 그려낸 것과도 맞닿아 있다. 이것들이 연달아 등장할 때 관객이 느끼는 피로는 지극히 정상이다. 아무리 그것들을 보더라도 우리는 그 기반이 되어야 할 '실제'의 무언가에 다가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존 인물들, 실제 사건들을 차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스콜세지는 그 '실제'의 것들에서 껍데기들만을 남겨두곤 이를 철저히 코미디라는 장르 하에 과장을 잔뜩 섞어 굴려댄다. 그 결과, 영화는 전기 영화라기보단 온전히 장르의 관습에 맞게 쓰여진 극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 장르의 영향 이래서 '실제'와 '허상' 사이의 간극은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영화의 방식은 다른 요소들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 보인다. 조던 벨포트의 나레이션을 생각해 보자. 그의 나레이션은 단순히 '보이스오버'로서 서사 밖에 머무르는 대신,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벨포트가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을 이어받아 카메라를 바라보며 직접 대사를 읊고 관객에게 말을 걸어오기까지 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실제'가 아니라 '허상'임을 인지케 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어 영화 안의 세계와 영화 밖의 세계를 연결함으로써 영화 밖 현실의 영역 곳곳에 도사리는 '허상'에 대해 일깨우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한 편, 이 영화는 영화 속 또다른 영상들을 자주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부터 조던 벨포트가 창립한 스트래튼 오크몬트의 광고 영상(이 영화 자체가 독립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인지라 영화 제작사 로고가 뜨지 않다 보니 순간적으로 스트래튼 오크몬트 로고 자체를 제작사 로고처럼 착각하도록 배치되어 있다.)이며, 나오미와의 결혼식도 별개의 클립으로 삽입되어 있고, 벨포트가 체포되는 순간조차도 그가 촬영하던 광고 영상에 그대로 이어붙는 식으로 제시된다. 영화 본편의 화면비가  2.35:1인 반면, 위의 씬들은 모두 1.85:1로 화면비 자체가 아예 다르며 화면의 질감도 전혀 다르다. 이러한 장치 역시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이 보는 것이 '영화'라는, 연출과 연기와 편집 등을 통해 가공되었으며 지금 그 시점에 실재하지도 않는 '허상'임을 인지하게 한다. 나아가 '현실-2.35:1 비율의 스크린에 맺힌 허상-다시 그 속 1.85:1 비율로 재생되는 허상'의 관계는, 위에서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는 극중 인물의 존재와 유사하게, 실재하는 것들과 허상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그 연쇄가 비단 우리가 보는 영화 속 공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2.35:1 비율 너머 비율이 정해져 있지 않는 세상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영화는 실제의 것들을 허상으로 바꾸고 그 경계를 어그러뜨리되, 나레이션과 클립 등의 이질적인 장치를 통해 관객이 무의식 중에 그 허상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즉, 이 영화는 코미디라는 장르를 차용해 한 인물을 우상화하는 동시에 희화화함으로써 관객에게 게임을 걸어오면서도, 미리 그 인물과 관련 사건들을 부러 그 껍데기만 남겨놓고 허상의 존재를 인식하도록 하는 장치들을 심어둠으로써 사실상 그 답을 미리 정해놓고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극중 벨포트는 과장과 거짓을 섞어가며 페니 주식을 팔아치우는 방식으로 성공의 첫 발판을 마련하고 그 뒤로도 주가 조작 등을 통해 남을 속이고 제 주머니를 불리는 방식으로 성공가도를 달린다. 그는 '남들이 자신처럼 살기를 바라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를 동경하는 이들이 곧 그의 성공의 자양분이요 희생양이다. 애초에 그를 동경하는 것 자체가 성공의 길과는 거리가 멂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벨포트가 마련한 이미지들, 허상에 쉽게 속고 만다. 영화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고스란히 영화적 언어로 이식해 낸다. 범죄로 이룩한 향락의 그늘들을 일부러 지우거나 희석시켜 일견 완벽해 보이도록 함정을 파 두어 무의식 중에 그러한 것들을 욕망케 하면서, 동시에 그 동경의 대상들을 광대처럼 희화화시키거나 껍데기 뿐인 존재로 그려냄으로써 의식적으로는 그것들을 비웃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 때문에 영화를 보는 이들은 시종일관 웃으면서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코미디라는 장르를 취함으로써 영화가 관객에게 걸어오는 교묘한 게임이다. 나레이션과 클립 등 '허상'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장치들은 그들에게 내려온 밧줄과도 같다. 3시간,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안에 재빨리 그것들을 쥐고 이 허상이 잔뜩 드리워진 게임의 법칙을 읽어내지 않으면 마지막 그 치욕스런 엔딩에 고스란히 제 몸을 내맡겨야 한다.

 

  엔딩에 이르면, 형을 선고받아 몰락한 듯 보였던 벨포트가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는 영화 내내 조던 벨포트가 나레이션 등을 통해 직접 관객에게 말을 걸어오던 것의 연장선 상에 있다. 즉, 영화 전체가 어떻게 보면 조던 벨포트가 관객을 상대로 하는 강연의 형식 하에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이 엔딩 씬의 내포된 의미야말로 영화가 담고자 한 메시지의 핵심이리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벨포트는 예전 브래드와의 대화에서 차용해 온 펜의 문제를 내걸고(이번에도 그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을 내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허상이다.) 강연 참석자들을 시험하기 시작한다. 참석자의 시선으로 벨포트를 바라보던 카메라가 이제 위치를 바꾸어 벨포트의 위치에서 참석자들을 바라본다. 범죄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곤 믿을 수 없는 그 동경 어린 눈빛들, 어쩌면 극장에 앉아 영화를 바라보던 관객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일지 모를 그 얼굴들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진작 밧줄을 붙잡고 이 게임을 파악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이들이라면, 아마 엔딩에서 그 부끄러움은 배가 될 것이다.

 

  혹자는 이 영화를 두고 스콜세지가 동어반복을 한다며, 예전 같지 못하다며, 단순히 자극적일 뿐이라며, 향락을 쫓느라 조명해야 할 것들을 충분히 조명하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 좀처럼 동의할 수 없다. 이전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면서도, 다른 장르, 다른 장치들로 전혀 새롭게 게임의 판을 짠 스콜세지는, 칠순을 넘긴 노감독이라곤 믿을 수 없는 감각과 넘치는 에너지로 세 시간을 몰아치며 호기롭게 모든 관객을 상대로 게임을 걸어온다. 이에 대해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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