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BBC Sherlock 3, 7-7.

2014.02.05 21:57

lonegunman 조회 수:3770


7-7. 종곡 finale


'대체 그걸 어떻게 안 거야?'
'지금 엄청 당황했지? 순순히 인정해.'
'당연히 인정하지.'
'그럼 인정한다고 종이에 쓰고 싸인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왜냐면 자넨 5분도 지나지 않아 '뭐야, 그렇게 간단한 거였어?'하고 말할 테니까.'
'절대로 안 그럴 거거든?
...
뭐야, 한심스럽군! 그렇게 간단한 거였어?'
-왓슨과 홈즈의 대화 (춤추는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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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를 리뷰하며 말미에 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건 틀림없이 문제이긴 문제입니다. 에피소드가 끝난 뒤 주된 논점이 '어떻게'보다는 '왜'라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시즌3 1화가 시작되자마자 제작진은 제 불평을 일소하듯 존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했는지 따위는 관심없어. 내가 알고 싶은 건 왜 그랬느냐야.' ......그렇다는군요.
'어떻게'는 중요합니다. 어떻게가 어떻게 안 중요합니까. 명색이 추리물이고 수사물인데. 모리아티가 온 세상을 속여넘길만큼 촘촘히 짜놓은 덫은 마이크로프트도 진작 다 알고 있었다는 설정으로 손쉽게 해소되고, 저로서는 셜록의 부활보다도 더 큰 문제라 여겼던 셜록이 오명을 씻는 과정은 '경찰이 참 열심히 수사해서 모리아티의 거짓말을 밝혀냈다.'는 한 줄 기사로 퉁치듯 지나가버립니다. 지난 시즌 우려했듯 홈즈 형제는 모리아티에 한 발 앞서 사태를 이끌고 있었고, 그 당연한 귀결로 시즌2의 막강했던 모리아티 캐릭터는 김 샐만큼 약화됩니다. 모리아티가 자신이 마이크로프트의 떡밥을 물었다는 것도 몰랐다거나, 셜록이 모든 걸 대비해놨다는 걸 간파하지 못했다는 건 오케이, 그렇다 칩시다. 하지만 사실은 셜록이 마지막 순간 존,허드슨,레스트레이드를 노리는 세 명의 암살범보다도 앞서 있었지롱-에까지 이르면 시즌2 3화의 소동이 거의 멍청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시즌1의 클리프행어 엔딩을 해소(그 역시 해결이 아니었지요.)했던 시즌2 'stay alive' 벨소리는 뭐 귀엽기라도 했지.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그렇다는데. 포인트가 다르다면 다른 거겠지요. 지금 이 문단에서 불평했으니 됐네요(속이 다 시원하군요.), 최대한 빨리 극복하고 넘어갑시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리고 집중해보려 했더니, 이번엔 연출이 발목을 잡습니다. BBC 셜록은 원전에서 주인공과 스토리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 연출적인 아이디어를 깨알같이 가져오곤 했습니다. 런던의 뒷골목을 구석구석 알고 있다는 '주홍색 연구'의 묘사를 지도와 표지판의 몽타주로 스피디하게 그려낸 연출은 가히 충격적이었고, 시야각을 찾기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니던 홈즈의 머리가 이쪽 담장에서 튀어나왔다가 저쪽 담장에서 튀어나오는 '네 개의 서명' 속 장면을 코믹하게 패러디한 '블라인드 뱅커'의 파티션 씬은 유쾌하기 그지없었죠. 이번 시즌이라고 이런 수법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원전 속 '찰스 오거스터스 밀버튼'에서 홈즈가 밀버튼의 집에 잠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왓슨은 '숨이 턱 막히면서 소름이 돋았다. 밤중의 번개가 들판의 모든 풍경을 일순간 눈 앞에 펼쳐 보여주듯, 그 행동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결과가 한 눈에 보이는 듯했다. 발각당하고 체포되어, 명예로웠던 경력을 결코 만회할 수 없는 실패와 치욕으로 마감한 채, 가증스러운 밀버튼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 말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BBC판 주인공들이 마그누센 빌딩에 침투하는 장면에 그대로 쓰여지죠. 존은 셜록의 시도가 불러일으킬 끔찍한 결과들을 하나하나 눈 앞에 그리듯 상상해봅니다. 이 연출이 얼마나 구렸는지는 다들 보셨으니 일일이 지적하지 않기로 합시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휴지통 아이콘은 정말 너무했잖아요. 마인드팰리스에 들어갈 때마다 미간으로 빔이라도 쏠 듯 관자놀이를 눌러대는 탐정님을 볼 때마다 '아... 셜록형...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한탄한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연출이 품위를 잃으니 음악도 휘청입니다. 우린 지금 무척 재치를 부리고 있는 중이야, 우린 지금 아주 심각하고 있는 중이야, 지금 여기선 우리가 코미디를 할 거야- 널 뛰는 연출 위로 거의 얼굴에 대고 비벼대는 듯한 음악의 콜라보는 때때로 '비비씨 오케스트라 너마저'를 웅얼거리게 만듭니다. 다음 시즌부터는 누가 비비씨 지하에 폴 맥기건을 가둬놓고 셜록 찍을 때만 풀어주면 안 되겠습니까?

세계적인 짜증을 불러일으킨 앤더슨의 '빈 영구차' 클럽 망상에 대해선 한 마디 변호할 게 있습니다. 무엇이 진실이죠? 비록 셜록의 진술조차 앤더슨의 물음표로 끝을 맺지만 그래도 당연히, 셜록의 진술이 진실이죠. 자기 패를 감추는 건 홈즈의 방식이 아닙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 패를 감추는 건 홈즈의 방식이 맞는데, 끝까지 열어보이지 않는 건 홈즈의 방식이 아니죠. 
저는 뻔한 시청자라 그런지 거의 앤더슨과 똑같이 반응했어요, 어차피 시즌2가 던져준 힌트에는 뻗어나갈 수 있는 방향에 한계가 있으니 특별한 반전을 기대하진 않았고, 헨젤과 그레텔 사건 때의 용의자와 셜록이 바꿔치기 한 시체를 연결짓는 부분은 자못 신선했고, 전반적으로 셜록이 진술한 해법은 무난하다고 수긍할만 했습니다. 모리아티가 정말로 살아돌아온 게 아닌 이상, 셜록의 버전에 딱히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밌는 지점이 있습니다. 홈즈가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결말(부활)만 내밀어 상대방을 놀래킨 후, 나중에서야 자신의 트릭을 낱낱이 공개한 뒤, 별 거 아니었다고 실망하는 상대방(의뢰인, 경찰, 왓슨 가릴 것 없이 다들)의 반응을 시니컬하게 감수하는 일련의 과정은 원전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패턴이었습니다. 재밌는 건, 원전의 이 클리셰를 작품 안에서가 아니라, 부활의 트릭을 고대해온 작품 밖의 시청자에게까지 구조적으로 적용시키는 방식입니다. 트릭이 밝혀진 뒤, 마치 드라마 속 셜록이 우릴 향해 짜증스레 고개를 젓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죠.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배리 경은 젊은 시절 코난 도일 경과 절친이었는데, 한 번은 둘이 합심해서 '제인 애니'라는 코믹 오페라를 한 편 올렸다고 합니다. 처참히 실패했다는 이 작품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건 아닙니다. 이 실패로 인해 무려 제임스 배리가 직접 쓴 셜록 홈즈 파스티슈 작품 '두 공저자의 모험'이 탄생했으니까요. 여기서 셜록 홈즈는 자신들의 오페라가 실패한 원인 분석을 의뢰하는 두 공저자를 만나게 됩니다. 한 눈에 그들이 극작가라는 걸 알아본 홈즈는 (주머니가 비평지로 두둑하군. 순수 문학이라면 한 주에 한 건이나 받을까 말까야. 오직 범죄자와 극작가와 배우들만이 수 백 건의 비평을 받지.) 그들을 경멸하고 두 사람의 실패를 비웃습니다. 팽팽한 말싸움 끝에 홈즈는  실패 원인쯤이야 하숙집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도 알 수 있다며 두 사람에게 답합니다. '대중이 당신들 오페라를 찾지 않은 건... 그야 얼씬도 하기 싫었다는 뜻이지 뭐겠어.' 결국 홈즈는 두 공저자 중 몸집이 큰 쪽(누굴까요)의 칼부림에 고리 모양 담배 연기로 흩어지고, 두 공저자 중 잘생긴 쪽(누구겠습니까)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빈 영구차'가 셜록의 트릭을 대하는 방식을 두고 많은 분들이 시청자에 대한 우롱이라 여깁니다만, 저는 여기에 좀 더 -제임스 배리 식의- 자조적인 해학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전에 뭐라고 적혀있든 셜로키언들에게 그건 최종적인 게 아니죠, 셜록 홈즈가 뭐라고 하든 원전에 끝도없이 의혹을 던지는 것, 각주를, 댓글을 달아대는 것- 그게 세기가 바뀌도록 그들이 내내 해온 일이니까요. 작가들이 자기들의 셜록 홈즈로 하여금 이 거대한 게임을 향해 한숨을 내뱉게 만들 때, 장담컨대 제임스 배리가 홈즈로 하여금 자신들의 실패를 비웃게 만들면서 느꼈던 뒤틀린 쾌감과 비슷한 걸 느꼈을 거예요. 이건 우롱이라기보단 자조에 가깝죠. 시즌 내내 '그레잇 게임'을 하고 있던 건 작가들 자신이고, 셜록이 한심하다는 듯 고갤 저은 건 '그레잇 게임'을 하는 앤더슨의 작태를 향한 거였으니까. 둘 사이에는 명확한 유사성이 존재... 

아무튼 그렇습니다. 단점이 없다는 것도 아니고, 불평을 하자면야 끝도 없는데, 장점이 너무 많아서 단점을 얘기할 시간이 없었네요.(지금껏 그렇게 많은 말을 해놓고도!) 덕질은 골방에서 혼자 하는 게 널리 세상에 이롭다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고수하려 하였으나, 어떻게 보아도 '그레잇 게임'의 언급이 불가피한 시즌인지라 어떤 분들껜 전혀 관심없을 이야기들을 두고 허리캐인 조의 정신으로 하얗게 불태우고야 말았습니다. 존 왓슨과의 첫만남(S01E01)을 존 왓슨과의 재회(S03E01)로, 존 왓슨의 데이트 깽판(S01E02)을 존 왓슨의 결혼식 사수(S03E02)로, 존 왓슨을 악당의 손에 넘겼던 걸(S01E03) 존 왓슨을 악당의 손에서 구하는 것(S03E03)으로 -시즌 1의 매 회차와 명백한 대구를 이루며 두 주인공의 관계 변화를 그려내는 시즌3의 스토리 구조에 대해서 순수하게 BBC 셜록만을 두고 한참 떠들고도 싶었지만 보시다시피 그럴 짬조차 없었지 않습니까. 몰리를 찬양하기는 커녕, 셜록에게 화내다가도 막상 셜록이 비밀 지키겠냐고 윽박지르니 그 와중에 하느님께 맹세를 하질 않나, 메리에게 화내다가도 애 이름은 그냥 메리가 짓는 걸로 결론이 나는 존의 답없음에 대해서 칭송할 시간조차 없었어요. 쳇, 그레잇 게임 따위... 하지만 솔직히 말씀해보세요, BBC 셜록이고 나발이고, 셜록 홈즈의 팬이시라면 어쩔 수 없이 크레딧 롤에서 각 잡으시지 않습니까. 투명한 시약이 핏자국 위로 떨어지자, 헤모글로빈이 침전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오프닝 크레딧 말입니다. 우리 두 주인공의 첫만남을 그린 '주홍색 연구'에서, 헤모글로빈에만 반응하는 시약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다고 셜록 홈즈가 환호를 내뱉던 그 때로 정확히 우릴 데려다 놓는- 그놈의 크레딧은 각 잡느라 스킵도 못하겠습니다. 시즌3에서 셜록 홈즈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 관계에 치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이 '고기능 소시오패스'라고 외쳐댑니다. 3장에서 말씀드린 원전의 '쓰여있는 사실과 보여지는 사실 사이의 간극'을 그대로 재현하죠. 이러니, 어줍잖게 원작의 캐릭터를 따와 대사 몇 줄 가져다 읊어대는 게 아니라, 원전에서 캐릭터를 구성하는 구조적인 패턴까지 이용하는 이 섬세한 덕후들을 제가 어찌 옹호하지 않겠느냔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스크롤바가 아직 사망하지 않았다면, 하나만 더 집고 넘어가기로 합시다. 이번 시즌은 유독 악당이 약했다는 평을 많이 받았죠. 왜 그럴까요? 우선적으로는 두 시즌을 장악했던 모리아티가 퇴장한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좀 더 근원적인 이유는, 이번 시즌의 진짜 악당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즌의 진짜 악당을 지목하라면, 마그누센과 같이 사회 암적인 존재들을 심판할 의지가 없는(3화), 어린 청년들을 끔찍한 전쟁으로 내몰아 어이없이 생을 마감하게 만들고 그 유족들에겐 개인적인 복수 말고는 억울함을 풀 방법이 없게 한(2화), 그래놓고 고작 국민을 위해 한다는 일이 테러 방지를 위해 국민 개개인을 감시하고 사찰하는 법안을 상정하겠다는 개소리 뿐인(1화), 정부- '정부'라는 말이 너무 모호하다면 '그 자신이 영국 정부이기도 한(브루스파팅턴호 설계도)' 마이크로프트를 지목하겠습니다. 마이크로프트였습니다. 모런처럼 국민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끼쳐서, 스몰처럼 범죄를 저질러서, 마그누센처럼 사악해서가 아니라, 악을 방관하기에- 힘이 있으나 약자의 편에 서지 않기에 그는 시즌3의 메인 빌런입니다. 그리고 '우리 높으신 분들께는 크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편리한 이유로 수수방관하던 그는 결국 (4분 동안이나마) 유일하게 지키고 싶었던 동생을 잃는 것으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시즌3는 셜록과 존을 위시한 온갖 소동들을 한 가운데 놓고, 그 보이지 않는 한쪽에는 국민 개개인(그리고 종국에는 셜록까지도)에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선택지만을 던져주고 방관하는 정부(종국에는 마이크로프트로 이어지는)를, 다른 한쪽에는 겉보기엔 죽음까지도 수수방관하는 듯 보이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나마 틀림없이 존재했던 이 홈즈가 두 형제의 형제애를 배치합니다. 그렇게, 아주 신중한 눈으로 보면 보이는 마이크로프트의 불가피하면서도 절묘한 포지션이 어쩐지 약해보였던 시즌3가 가진 거대한 빙산의 아랫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셜록이 그것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싸우죠? 실체가 없는 정부와 무슨 수로 싸우죠? 마이크로프트가 정부의 실체니까, 형을 붙들고 떼라도 쓸까요. -셜록은 진짜 악당과 싸우는 대신, 모런 대령과, 조나단 스몰과, 찰스 오거스터스 마그누센과 싸우는데 그칩니다. 두 형제의 이러한 구도는 이번 시즌의 악당들이 약해보이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이 이율배반이야말로 시즌3 스토리텔링의 교묘한 핵심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홈즈가의 가족사부터 촘촘히 엮어 들어가는 시즌3의 '그레잇 게임'은 제작진이 셜로키언으로서 한 번 갖고 놀아보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스토리 전개상 불가피한 수순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셜로키언들의 게임으로 점철된 시즌3의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분들께도 제 설명이 납득할만 하다면 기쁘겠습니다. 

홈즈가 형제의 형제애가 중요해지는 지점은 또 있습니다. 페이크 엔딩 직후 티비 화면에 합성된 모리아티 이미지가 떴을 때만해도 '모리아티를 재등장시키지 않고 이걸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라고 안심하고 있던 저는 엔딩 크레딧 후 나타난 실제 모리아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의 모습을 보고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이쯤되면, 원전 속 모리아티의 본명 '제임스'를 노출시키지 않고 드라마가 끝까지 고수한 '짐' 모리아티라는 이름이 진짜로 찝찝해지기 시작하는 거죠.
시즌1의 클리프행어가 어이없이 해소되었듯, 시즌2의 트릭이 게임의 일부로 격하되었듯, 시즌3 이후의 향방을 두고 왈가왈부해봐야 부질없는 일. 이번 시즌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는 '그레잇 게임'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게임으로 돌아갑시다. 게임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를 바꿔 계속될 뿐이죠.
원전의 '마지막 문제'에서 모리아티는 간단히 '모리아티 교수'라고 칭해집니다. 이 단편의 도입부에서 왓슨은 모리아티 교수의 동생인 '제임스 모리아티 대령'이 모리아티 교수를 변호하는 글을 써서 공표하는 바람에, 대중에게 홈즈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리고자 펜을 든다고 밝혔죠. -일단 여기서 우리는 홈즈의 숙적 모리아티 교수에겐 '제임스 모리아티'라는 동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이후, 부활해서 돌아온 셜록 홈즈가  자신의 숙적을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 (빈 집)'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형제의 이름이 똑같다는 건 너무 우스꽝스런 일이니 그 가능성은 일단 치워두고, 그렇다면 왓슨이 셜록 홈즈의 모험을 기록하며 모리아티 형제의 이름을 혼동한 까닭이 뭐였을까요? -여기서 모리아티의 쌍둥이 형제설이 등장합니다. 두 모리아티의 얼굴이 같아서 이름을 헷갈렸다는 거죠. 발표는 나중에 됐지만 두 모험보다 앞선 이야기를 다룬 '공포의 계곡'에선 홈즈가 이렇게 말합니다. "(모리아티 교수가) 대단한 부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부를 축적했을까요? 그는 미혼이고 그의 동생은 서부 잉글랜드의 한 역장에 지나지 않는데요." -여기서 우리는 역장으로 일하는 또다른 동생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셜록 홈즈의 숙적은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혹은 왓슨이 착각하여 잘못 기록한, 우리는 모르는 다른 이름, 이름테면 짐 모리아티?)이고, 그에겐 '제임스 모리아티 대령'이라는 (예측컨대) 쌍둥이 형제가 있으며, 그 둘에게는 서부 잉글랜드에서 역장으로 일하는 동생이 있다는 겁니다. -세 명의 모리아티. 연구자들은 이것을 기본 밑그림으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는데, 그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예는 뭐니뭐니 해도 킴 뉴먼의 경우입니다. 스템포드를 통해 서로를 만나게 된 모리아티 교수와 모런 대령의 우정과 모험을 그린 파스티슈 작품 '더버빌가의 개'에서 킴 뉴먼은, 모런 대령이 모리아티 교수의 동거인 겸 조수로 살인을 기록해 나가기 시작하는 첫 작품 '주홍빛 책'과, '모리아티 교수에게 있어서 그녀는 언제나 'that bitch'였다.'라는 기막힌 문장으로 시작되는 '벨그라비아 대소동' 등 모리아티-모런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셜록 홈즈 원전을 깨알같이 패러디해 나갑니다. 원전의 전통에 따라 '그리스인 통역사'를 패러디한 '그리스 무척추동물' 편에서 모런 대령은 드디어 모리아티 교수의 형제를 처음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킴 뉴먼은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와 제임스 모리아티 대령과 제임스 모리아티 역장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제임스라 부르는 엄청난 코미디를 실현시켜버리죠. 대강 도입부를 옮겨드리면 이렇습니다.

'제임스' -교수가 말했다
'제임스' -교수의 동생이 대답했다.
'모런 대령, 이쪽은 모리아티 대령이네.' -교수가 말했다
'대령' -대령이 인사했다.
'대령' -내가 답했다.
나는 그동안 모리아티의 가족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는데, 읽다보면 왜인지 저절로 알게 될 거다. 모리아티의 부모님은 '제임스'란 이름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자식들에게 모조리 그 이름을 붙여버린 것이다.
'이쪽은 제임스네, 제임스.'
그렇다, 모리아티에겐 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여동생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BBC판에선 우리의 '짐' 모리아티가 깨끗이 자살해 준 덕분에(과연?), 드라마를 보면서 '제임스'로 게슈탈트 붕괴될 일은 없겠습니다만, 시즌4에서 그릴 모리아티 부활의 기본적인 밑그림은 '그레잇 게임'을 통해 구축된 이와 같은 형태에서 출발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알고보니 왓슨이 모리아티였다거나, 모리아티는 셜록 홈즈의 망상이었다는 이론에 비한다면야, 쌍둥이 모리아티나 제2의 모리아티 쯤은 굉장히 온건한 노선이기도 하고요. 만일 전자의 방향으로 간다면 시즌3가 신중히 쌓아올린 홈즈가의 extra-ordinary한 형제애는 또다른 방향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합니다. 모리아티로 인해 동생을 잃을 뻔한 형 마이크로프트, 셜록으로 인해 형을 잃은 동생 모리아티. 선악을 떠나서 양쪽 다에게 강한 명분을 쥐어주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모런 대령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원전을 장악하던 '죽은 모리아티'와 '살아있는 모런 대령'의 한 축이 무너지는데, 모런은 이대로 낭비되고 마는 걸까요.

어찌됐든 밑지는 장사는 아닙니다, 시즌4를 기다리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유하니까요. '그레잇 게임'의 시즌이 도래했고, 이야기는 어디로든 갈 수 있으며, 우리에겐 몰리가 있고, 허드슨 부인이 있고, 레스트레이드가 있고, 앤더슨도 이제 우리편이고, 빌리가 등장했고, 메리는 암살자고, 아이린이 어디선가 살아 숨쉬는데, 심지어 모리아티까지 돌아왔는 걸요. 솔직히, '공포의 계곡'이 남아 있는데 모리아티가 없으면 그게 무슨 낭패란 말입니까. 
그러니 부디, BBC가 다음 시즌엔 좀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이야기를 들고 찾아오기를. 이번 시즌에 해봤더니, 저는 그냥 팔짱 끼고 앉아서 트집이나 툭툭 잡는 게 좀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변호하려니 말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지니 덕후 냄새나 나고, 안 좋은 것 같아요. 
낡은 매트 위에 배를 깔고 누워 책장을 넘기던 어린 아이에게까지 소급되는 이 먼지 쌓인 셜록 홈즈의 기억은 온전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 켜켜한 먼지를 털고 순서를 정하여 필요한 기억을 꺼내 재배열하기까지의 이 짧지 않은 시간, 기다려주시고 같이 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기억의 다락방이 여러분에게도 아늑한 공간이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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