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4.03.31 12:45

menaceT 조회 수: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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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3월 30일, CGV 명동.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늘 현실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근작들에 와서 그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에서는 말 그대로 해저 생활을 다루고, '다즐링 주식회사'에서는 인도로 떠났으며,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같은 경우는 아예 여우들을 주인공으로 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었고, '문라이즈 킹덤'에선 시공간적으로 현재로부터 거리를 둔 어느 섬에서 성숙한 아이들과 미성숙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늘 비슷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근작에 와서는 유명 배우들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며 그만의 '영화적 왕국'을 구현해 놓으려 하는 것 역시 그러한 현실로부터의 분리 욕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 속에서 웨스 앤더슨은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좌우 대칭 구도를 유지하는 것을 비롯해 미장센에 공을 들이는가 하면, 넋이 나가 보이는 인물들의  묘한 말장난 혹은 슬랩스틱을 일견 무심한 듯 보이나 꽉 짜여 있는 독특한 리듬 하에 툭툭 던져대곤 했다. 이러한 그의 영화의 특징에는 현실에 대한 회의감 같은 것이 묻어있는 듯 보였다. 진정 빛나는 무언가, 진정 가치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두터운 벽을 치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자신만의 미학적 공간 내에서만 획득할 수 있으리라는 결벽증과도 같은 태도가 엿보이곤 하는 것이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역시 이러한 그의 태도가 극단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영화이다.

 

  영화는 가상의 국가 '주브로스카 공화국'을 설정하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감싸는 가장 바깥의 껍데기, 특정 시공간을 설정하는 '영화'라는 껍데기. 이 껍데기를 벗겨내면, 한 소녀가 한 작가의 흉상을 보고는 그 옆 벤치에 앉아 책을 펼친다. 이 부분이 영화 속 첫 번째 액자라 할 수 있다. 그 책의 표지에 적힌 제목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는 오프닝 타이틀을 대체하고 있다. 그리고 소녀가 책의 뒷표지에 박힌 작가의 사진을 보면, 영화는 이제 그 책의 내용을 작가가 직접 내레이터로 등장해 독자에게 말을 거는 식으로 보여준다. 영화 속 두 번째 액자. 그 작가는 자신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된 사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영화는 그의 내레이션을 따라 그가 아직 젊던 시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방문한 시점으로 이동한다(이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맨 처음 책 속 삽화의 형태로 등장하고, 한 박자 늦게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낸다. 호텔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서도 한 번의 액자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그의 내레이션도 어느새 그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다른 배우 주드 로의 내레이션으로 변화한다. 영화 속 세 번째 액자. 젊은 작가가 늙은 제로 무스타파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영화는 비로소 본 이야기를 시작한다. 1930년대라는 현재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시점, 그리고 주브로스카 공화국이라는 가상의 국가 속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가상의 공간, 여기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도 영화는 이를 다시 세 개의 액자와 영화라는 껍데기로 둘둘 말고 나서야 이야기를 시작한다. 심지어 이마저도 다시 챕터 구분이 되어 있어 지속적으로 현실과 거리를 둔다. 또한 영화는 액자를 거칠 때마다 영화는 계속해서 1.78:1, 2.31:1 등으로 화면 비율을 바꿈으로써 이 액자의 존재를 분명히 해 두고 있기도 하다. 가장 내밀한 본 이야기의 경우 1.37:1 아카데미 비율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요즈음엔 거의 사용하지도 않는, 초기 영화들의 화면비이기에 그만큼 더욱 현실과 유리된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현실과 그만큼의 거리를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력한 의지가 이 영화에 서려 있다.

 

  그 안에서 웨스 앤더슨이 펼쳐내는 이야기는 그의 관객이라면 익숙할 만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물들은 어딘가 나사가 풀려 있으며, 깔깔 웃기도 안 웃기도 애매한 말장난과 슬랩스틱 코미디가 수시로, 그러나 불현듯 튀어 나오고, 수많은 스타들이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툭툭 등장하는가 하면, 다양한 장르들의 웨스 앤더슨 식으로 변주되어 영화 안에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인위적이지만 화사하고 따뜻한 색감과 극도로 치밀하게 짜여진 좌우 대칭을 비롯한 강박적 미장센 역시 여전하다. 특히 이번 작품의 경우는, 각 챕터마다 핵심이 되는 공간(예를 들어 1장 '무슈 구스타브'의 경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그 공간이며, 2장 '마담 ~~~'는 마담 D의 저택, 그 이후로는 교도소나 박물관 등 핵심이 되는 공간들이 꼭 하나씩은 등장한다.)이 존재하기에 지속적으로 인물들을 방과 복도 등 구획이 딱딱 나뉜 공간 안에 배치하는 경우가 잦다(그 공간 사이를 오가는 과정에서도 인물들은 기차의 객실, 건물들 사이로 난 거리, 창문 틀 등으로 인해 종종 사각의 공간 안에 갇히곤 한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아카데미 비율, 다시 그 안의 사각의 공간 안에서 웨스 앤더슨은 그 어느 때보다 그의 대칭의 미장센을 유감없이 펼쳐내고 있다. 온갖 영화적 장치를 동원해 조성된, 인위적이지만 아름답기 짝이 없는 웨스 앤더슨만의 미적 왕국의 풍광이 이 영화에서 그 정점을 찍는 듯하다.

 

(스포일러)

 

  이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극중 드라마의 핵심은 마담 D의 의문의 죽음과 반 호이틀의 '사과를 든 소년'을 둘러싼 구스타브(&제로)와 드미트리(&조플링) 간의 갈등이다. 사실 제로의 눈으로 보기에 구스타브 역시 (내면에 정의감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 가볍고 속물적이기로는 마담 D의 친척들 못지 않다. 그러나 영화는 드미트리를 비롯한 마담 D의 친척들과 구스타브를 구별하고 극중엣 구스타브를 선인, 드미트리를 악인 포지션에 위치시키고자 하는데, 그 가장 분명한 기준은 바로 '미적인 것을 알아보는 심미안'이다. 구스타브로 하여금 사건에 말려들게 하고 계속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도 바로 아름다운 그림을 오로지 돈으로만 보려는 문외한들의 손에 넘길 수 없어서가 아닌가? 거의 대놓고 구스타브와 동질감을 형성하려 드는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태도도 구스타브의 그러한 태도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선 구스타브가 강박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모습부터가 영화가 미장센을 꾸려 가는 방식과 닮아 있다. 멘들의 케잌, 그 케잌을 함께 맛본 수감자들 사이의 연대, 구스타브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호텔 관리인들의 연대로 이루어진 십자 열쇠 연맹이 극중 갈등 해결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역시 눈에 띈다.

 

  이처럼 구스타브와 함께 연대하며 선역을 맡고 있는 이들이 '미적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 반대편에 선 이들을 대표하는 것은 '폭력'이다. 조플링이라는 캐릭터가 이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실 조플링은 하나의 캐릭터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분위기 자체를 대변하고 있는 인물이나 다름 없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부터가 전쟁을 코앞에 둔 시점이며, 이를 대변하듯 국경은 폐쇄되고 군대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영화 후반에 이르면 그들은 심지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마저 점거해 들어온다. 조플링은 그 시대의 분위기를 타고 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어떤 추상적 존재처럼 모호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코미디에 가깝고 화사하기 이를 데 없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폭력이 벌어지는 순간만큼은 그 폭력의 흔적을 과장스러울 정도로 카메라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바닥에 떨어져 터지다시피 한 고양이의 시체, 잘린 손가락, 잘린 머리 등 그 폭력의 흔적은 주로 조플링의 동선을 따라 등장한다. 폭력은 그렇게 시대를 따라 번져 나가며 심미안을 지닌 선인들을 위협한다.

 

  사실 폭력이 철저히 악인들의 손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도소 탈출 부분에 이르면, 구스타브를 돕던 수감자들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들 역시 여지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폭력은 구스타브를 철저히 폭력의 주체에서 배제시키기 위한 시도에 가깝다. 자신들에게 케잌으로 심미안을 일깨워준 이가 피를 묻히게 하는 대신 이미 범죄를 저질러 본 자신들의 손에만 피를 묻힌 뒤 그들은 차를 타고 영화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제로 역시 두 번의 폭력을 사용한다. 마담 D 저택에서 그는 드미트리를 때려눕히고, 후에 구스타브를 죽이려는 조플링을 발로 차 추락시킨다. 그러나 이 두 번의 폭력 역시 철저히 (제로 자신에게 심미안을 일깨워준) 구스타브를 보호하려는 의도의 폭력이며, 그 결과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 구스타브만은 끝까지 단 한 번도 폭력의 주체의 위치에 서지 않는다.

 

  마담 D의 두 번째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 다음, 영화는 돌연 그간의 화사한 색감을 모조리 죽여버리곤 흑백의 공간 안에서 구스타브의 마지막을 보여준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라도 한 줄기 희망은 있다지만, 그 희망을 대변하던 구스타브 본인이 전쟁이 들이민 총구 앞에 맥없이 쓰러지고 만다. 이미 폭력이 시대의 분위기로 드리워 있던 그 순간부터 구스타브의 몰락은 예정되어 있는지 모른다. 늙은 제로 본인이 작가에게 말하듯, 구스타브의 시대는 이미 예전에 지났지만 그는 단지 환상의 공간을 조성해 놓고 이를 외면해 왔을 뿐이다. 폭력과 전쟁은 미 그 자체를 파괴해 버렸고, 이를 상징하듯 폭력의 주체로부터 철저히 보호되던 미의 마지막 희망, 구스타브라는 존재마저도 그가 머물던 환상의 영역이 아닌 흑백의 영역에서 폭력에 허망하게 희생당한다. 그의 것들은 모두 제로에게 상속되었으나, 결국 제로 역시도 의도야 어찌되었든 이미 그 전에 폭력의 주체에 섬으로써 시대의 분위기에 전염된 존재이다. 그가 바라보던 '미', 아가사마저도 시대를 지배하던 병에 목숨을 잃었고, 제로에게서 그 과거의 기억을 상속받을 자식조차 그녀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사 들인 제로는 여전히 로비 보이 시절 머물던 방에 머물며 구스타브의 자리를 비워두고 있지만, 그 역시 그 자리가 다시 채워지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다. 그토록 지켜내려 했던 반 호이틀의 그림은, 이제 마담 D의 친척들만큼이나 미적으로 무지해 보이는 듯 보이는 무슈 쟝의 뒤에 그저 단순한 오브제처럼 걸려 있을 뿐이다.  

 

  구스타브와 그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그랬듯, 웨스 앤더슨과 그의 영화도 그 끝을 인지하고 있다. 웨스 앤더슨은 본인이 진정 찾고자 하는 가치, '미' 그 자체는 현실로부터 끌어낼 수 없는 것이라 여겨 지속적으로 본인의 영화를 현실과 유리시켜 가며 자신만의 미적 왕국을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구스타브에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그러했듯이, 웨스 앤더슨에게 있어서 그의 영화도 그저 스스로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했으며, 웨스 앤더슨 스스로도 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영화라는 껍데기, 세 개의 액자, 극도로 조율된 미장센과 챕터 구분과 화면 비율의 전환으로 친친 동여맨 미적 왕국마저도 결국 서서히 번져가는 시대의 폭력을 철저히 막아내진 못한다고 전쟁과 폭력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아무리 미장센을 화려하게 꾸민다 한들 폭력이 드리우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은 흑과 백으로 무화되고 만다. 결국 그는 스스로가 빚어낸 미적 왕국을 스스로 무너뜨리고자 한다. 겹겹이 쌓아두었던 벽이 하나씩 하나씩 바스라지고 영화는 가장 내밀한 미적 왕국으로부터 서서히 현실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가장 내적인 이야기에서 바깥 액자로 벗어나면 구스타브는 죽은 뒤이고, 다시 그 바깥 액자로 벗어나면 자신의 로비 보이 시절 방으로 허망히 돌아간 늙은 제로 역시 자손 없이 세상을 떠난 뒤일 것이며, 다시 그 바깥 액자로 나가면 그 작가마저도 늙어 죽고 하나의 흉상이 된 뒤이다. 그 흉상 옆 소녀마저도 이제 곧 책을 덮으리라.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나면, 웨스 앤더슨의 미적 왕국마저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남는 것은 폭력의 역사가 빚어낸 지금의 현실 뿐이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을 회상하는 그 쓸쓸한 비감이 어린 기록은 그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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