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이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이여, 그대들에게 축배를!

((전반적으로 내용이 아주아주아주 상세합니다.))


 

      묘지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간 여자가 한 동상 앞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듯이, 영화가 시작하기 10분 전 급하게 영화표를 한 장 샀다. 이미 보았던 영화지만, 다시 보아야겠다는 필요성에서였다. 어떻게 딱 그렇게 시간이 났는지. 표를 사자마자 읽고 있던 종이꾸러미를 들고 황급히 내 자리에 앉았다. 시간은 오후 한시 삼십분, 모든 것이 적적한 십삼 시이다. 싸늘하게 추운 자리, 어두운 조명, 언젠가 보았던 파리의 지하묘지 같다. 공간에는 시간이 깃들고, 그 다음에는 내 기억이 번진다. 이 영화관은 수많은 영화들의 묘지, 홀로그램 육체가 전시된 영상의 박물관이다. 종이꾸러미 위에 놓인 철학자의 이름, 집중이 잘 안 되어서 독서는 접었다. 한시 사십분, 내 신체 안의 욕망이 두런두런 침묵을 잡아먹고 곳곳에 피어오를 때쯤, 영화가 시작된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내가 읽어야 할 새로운 이미지 꾸러미.

 

   1985년의 작가는 창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창작이란, 우리 주변의 인물들의 삶 속 이야기라고. 곧 이어질 영상들의 환상성과 가상의 공화국을 고려하면 궁금증이 떠오른다. 이 모든 가상적 이야기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그 뻔뻔한 시도는 쓸데없는 무위인가, 아니면 당연한 행위인가? 그 문제에 대해선 아직 충분히 고민할 여유가 없다. 이내 시청자는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소나기에 맞아 죽어갈 소녀처럼 흠뻑 젖게 되니까.

 

 1968년의 젊은 작가는 신경쇠약 때문에 다 쇠락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요양 중이다. 지식인들이 걸릴 법한 그 신경쇠약의 근원은 무엇인지? 그는 우연히 호텔의 주인인 제로 무스타파와 조우한다. 눈에 뜨일 우울함을 얼굴 주름들 사이에 깊이 새긴 무스타파의 이국적 풍모가 작가의 시선을 끈다. 그들은 곧 편하게 말을 섞고, 무스타파는 근사한 저녁을 대접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일이 자연스럽게 가능했던 이유는 젊은 작가가 무스타파에게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스타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신경쇠약과 같은 우울함을 앓고 있다.

 어찌 되었든, 이야기를 시작한다.


1부 무슈 구스타브

 

       1932년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미래의 쇠락한 시점과 같은 건축 특징을 공유하지만, 발산하고 있는 에너지는 상당히 다르다. 이때의 호텔은 아름답고, 깔끔하고, 우아하고, 인기가 많은 장소이다. 그리고 그 구심점에는 일류 호텔지배인 무슈 구스타브가 있다. 구스타브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일이 천직인 사람이다. 아마 그는 호텔지배인이 아닌 자신을 상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타고난 그는 세련된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미학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관리하고 주도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아마 아름답지 않으면 삶에 큰 의미를 두지 못하는 인간 유형일 것이다. 그의 미학에는 그의 개성을 반영하는 특정한 취향이 잠재되어 있고, 그는 자신의 속물근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나이 들고 돈 많고 권세 있는 귀부인 고객들에게는 카사노바 노릇도 한다. 그는 예술가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전형적이고 전문적인 예술가. 마치 그림을 그리듯 자신의 구도에 무엇 하나가 맞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사람클리셰, 진부한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연인이자 윗사람인 마담 D에게도 손톱 색깔에 대해 조언한다. 자기 영감이 떠오를 때면 시도 외우고. 미학자 나셨다. 이쯤 되면 무조건 예뻐야 한다고 총까지 직접 제작 주문한 금자씨 수준이다.

      이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을 보고 배우게 된 제자는 바로 제로이다. 전쟁난민인 이 소년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institution이라고 표현한다. 나야 뭐 영어에 대해 크게 지식 없는 사람이니 영어사전을 참고했는데, 소년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어떤 이상적인 배움터로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화자막을 번역한 사람도 그러한 의미로 옮겨놓았고. 자신의 미학을 존중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어린 학도를 만났는데 어찌 구스타브가 매정하게 내쫓을 수 있으랴. 전반적으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미학을 가르치는 대학이고, 구스타브는 미학과 교수님이며 제로는 도제관계로 배우는 제자 꼴이다. 어쨌든, 그 때부터 제로는 로비 보이가 되어 구스타브의 곁에서 호텔에 대한 모든 것,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호텔에 대한 구스타브의 '해석'을 배우게 된다.

      호텔이라는 사치 공간을 예술로서 창조하고 유지하는 사람들 말고도 음식으로서 예술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혀 전반을 자극하는 달달한 버터크림, 코에 밀가루를 묻힌, 얼굴에 멕시코 모양 점이 있는 아가씨.

      아니, 그 아가씨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잠시의 망설임. 지금은, 말을 이을 수 없다.


2부 마담 D

 

      전쟁이 났다고 한다. 맙소사, 마담 D가 죽었다. 구스타브는 아끼는 술을 챙겨 기차를 타고 루츠 성을 향해 떠난다. 가는 길에도 고양이 오줌 맛 나는 술은 참을 수 없다. 우리의 로비보이 제로도 같이 있다. 그 둘은 바깥 풍경을 보며 기차를 타고 가는데 어느 수수한 곳에 다다르자 기차가 멈춘다. 한 무리의 군인들이 곧 객실로 들어와 그들의 정체를 검열한다. 구스타브는 문제가 없지만, 제로한테 문제가 있다. 개성을 검열하는 시커먼 파시스트 놈들 같으니유럽 놈들한테는 언제나 피부색깔이 문제다. 제로를 끌고 나가려는데 구스타브가 격렬히 저항한다. 그의 사치품에 대한 열망과 고상함에 대한 욕망과는 어울리지 않는 휴머니즘, 그것 역시 구스타브의 천성이다. 모를 일이지. 어쩌면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사람으로서 배척받는 외부인, 아웃사이더의 비통함을 참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사람은 결국 천성대로 살고, 반항하는 구스타브와 제로는 군인 남성들의 무장한 힘에 압도되기 직전이다. 그 때, 헨켈스가 들어온다.

      헨켈스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간 적이 있는 군인이다. 그리고 구스타브의 아름다운 돌봄에 감동을 받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은 사람에게 어떠한 신뢰를 보장한다. 이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일종의 신분증 같은 것이다. 헨켈스는 구스타브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구스타브를 도와준다. 글쎄, 어떤 이들은 이 구사일생의 상황을 아직까지는 낭만이 통용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후반의 무스타파가 하는 이야기지만, 구스타브가 꿈꾸는 세계는 이미 옛날에 죽은 지 오래이다. 어쩌면 구스타브가 세상에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 언제나 그렇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인간은 단 한 번도 자신이 꿈꾸는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원해 본적 없는 세상에 태어났다. 그렇기에 구스타브에게는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 자신의 희망이고, 그라는 존재가 추구한 가치의 따스함을 느낀 다른 존재가 그와 그의 동료의 목숨을 구했을 뿐이다.

      용케 목숨을 구하고 루츠 성에 입성한 그들은 그 집의 집사 서지 엑스, 그리고 죽은 마담 D를 만난다. 마담 D의 시체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배려를 다 한 구스타브는 이제 본격적인 갈등, 즉 이야기의 꽃에 접어들게 되는데 이때 들어가는 카메라 구도가 환상적이다.

      시체의 옆에 있던 문으로 카메라 시선이 움직여지고, 문이 차례로 열리며 카메라가 그 안으로 들어간다. 이 이야기가 영화라는, 창조라는, 인위적이라는 것을 알리는 예술가의 세심한 붓질이다. 케이크를 만들면서 장식을 놓치지 않는 제빵사의 손길이고, 리본을 꼭 묶어야 선물이라 믿는 자의 꼼꼼함이다. 게다가 이 구도는 단순히 기능적이지 않고, 분명히 위험한 인물들과 대면하며 본격적인 갈등으로 진입하는 주인공들의 운명을 알리는 종소리이기도 하다.

      호텔 주인의 법적 대리인이자 죽은 마담 D의 유언집행인인 변호사 코박스는 곰 조각상 옆에 선다. 중후한 그의 앞에는 떡고물을 바라는 수많은 일가친척들이 시체를 노리는 독수리들처럼 허공을 앉은 채 맴돌고 있다. 그 중에는 죽은 이의 진정한 친구였던 구스타브와 그의 로비보이도 껴있기는 하다. 하지만 독수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살점을 물어뜯을 자격이 있는 맹수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렬한 남성성과 검은 코트, 콧수염, 머리, 까만 눈을 자랑하는 날선 코의 드미트리와 그의 충직한 금이빨의 사냥개가 조용히 앉아 있다. 강렬한 배우들이 불꽃 터지듯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그 긴장 넘치는 순간, 고인의 미술 작품 '사과를 든 소년'fruit인 구스타브의 손에 떨어지게 되고, 그와 동시에 드미트리의 컵도 바닥으로 떨어진다.

      성정체성을 공격하는 드미트리의 여러 욕들을 들으며 구스타브는 자신의 기분에 대해 전혀 생각조차 해주지 않는 못돼먹은 드미트리와 맞서게 된다. 전형적인 마초성의 눈에 호텔의 아름다움을 관리하는 구스타브는 확실히 이상한 놈처럼 보이긴 할 것이다. 쟤가 남자이긴 한가? 게다가 욕심 많은 아들은 모든 것을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마음에도 안 드는 이 이상한 놈에 의해 그 꿈이 좌절되었으니, 더 화나는 건 그 놈이 자신의 어머니와 섹스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시길. 저런 인간한테 게이 혹은 바이섹슈얼로 보이는 남자가 자기 어머니와 잤다는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믿기 힘든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관객의 상당히 중립적인 눈으로 보기에도 드미트리와 구스타브는 서로 생각과 수준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다른 취향에, 다른 세계를 사는 이 사람들의 조우란그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확실히 너무나도 다르다. 그러니 폭력적인 갈등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아니, 마초성과 폭력성을 지향하는 입장에선 이 비정상적인 '괴짜'는 탄압해야만 한다. 이제 그리고 신나는 주먹싸움 장면! 드미트리도 퍽! 로비보이도 퍽! 마지막으로 강펀치를 날리는 것은 조플링이다. 폭력으로는 이 프라다 가죽 재킷을 입은 남자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림을 보게 된 제로와 구스타브는 사과를 들고 있는 소년의 그림을 얼른 빼서 그 자리에 춘화를 대신 건다. 그림과 기밀서류를 주인 몰래 은근슬쩍 포장해준 서지의 떨떠름한 얼굴과 작별한 그들은 기차에 다시 몸을 싣는다. 가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구상하는 구스타브, 그의 과거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다. 한 번도 본인이 이야기를 해준 적 없으니까. 어쩌면 구스타브의 과거는 최악의 인간이었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엄청난 시련과 비극의 주인공이었을 수도. 아니, 아니. 어쩌면 그냥 평범했을 수도. 그러나 누구한테 그것이 중요할까? 그의 현재 삶은 호텔 예술인, 상속 받은 명화를 그 집에서 챙겨 도망가는 죽은 노파의 정부이니 말이다. 그의 창조적 오늘이 그의 어제를 죽인지 오래다. 그리고 이번에 그는 또 한 번 명화에 대한 가치와 자신의 생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명화를 팔고 도망갈 구상을 한다. 그를 마냥 비장하고 거창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는 중요한 요인은 바로 그의 그러한 소시민적인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이웃집의 조금은 유별난, 수채화 그리는 텔레비전 속 밥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러한 독특한 평범함 말이다. 어쨌든 이 김에 구스타브는 제로를 자신의 상속자로 위임하게 된다. 물론 내용을 살펴보면 상속자 겸 시종이긴 하지만. 그래도 1.5%는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긴, 이러한 박함도 일종의 소시민성이라 간주해줄 수는 있다. 여기서 20%를 떼어 준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호텔로 무사히 도착한 줄 알았더니, 이런, 경찰이 그를 찾는다. 헨켈스는 마담 D의 살해용의자로 구스타브를 연행한다. 튀려고 하지만 잡힌 그. 그리고 그는 더 깊게 영화 같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3부 체크포인트 19 교도소

 

       멘들 빵집의 양과자를 챙겨 온 제로는 멍 자국이 얼굴에 잔뜩 난 구스타브와 만난다. 제로는 그에게 핵심 증인인 서지가 사라졌다는 말을 전한다. 물론 감옥 안에서도 구스타브는 삼류 소설책의 지침을 충실히 따르며 자신의 삶의 원칙을 여전히 쫓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삼류 소설책의 내용이 그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긴 한다는 것이다. 환상의 세계는 실제의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상과 실제의 경계가 모호하다. 자신이 믿고 인식하는 것이 우리의 세상을 이룬다. 우리의 형이상학이 우리의 현실에 침투한다. 참으로 구스타브답게 이 와중에도 그는 두고 온 호텔을 걱정한다. 자신이 만들어 낸 창조물을 걱정하는 것이 창조주의 의무라도 되는 듯이. 하지만 서지의 여동생을 찾아가 위협하는 무서운 조플링의 모습을 본 관객들에게 있어서는 그의 걱정이 참 절로 걱정스럽다.

      교도소 안에서도 열심히 옥수수 죽을 나르는 구스타브는 결국 여기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만들 기세이다. 우리의 영혼을 묶는 것이 목적인 이 교화소는 예술가를 비참하게 만들 수 있을지언정 예술을 지향하는 마음을 죽이지는 못한다. 사실 아름다움을 쫓는 마음은 어디서도 죽이지 못한다. 게다가 구스타브의 영혼은 누구보다도 자유롭다. 그는 칸막이 지워지고, 고정화 되고, 세분화된 공간들에서조차 그 사이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마치 호텔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런 그의 모습이 항상 어둠 속에 수용되어 있던 인상 나쁘고 덩치 좋은 사내에게는 뱃속을 든든하게 만들어줄지 모른다. 어떤 인간은 클리셰가 아닌 존재에 감탄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감각을 잃지 않기 때문에.

      들고 온 멘들 양과자를 4등분한 채 쪽쪽 손가락까지 빨아먹는 죄수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그들의 죄가 무엇이든, 그들의 평소 생활이 어떠했든, 아름다움, , 향은 우리 모두에게 즐거움을 준다. 교도소, 사회의 비정상적 인간들을 잡아두는 것이 목표인 이 인간성 말살의 공간에서 그들은 달콤한 양과자를 먹으며 탈옥을 꿈꾼다. 아직 그들의 영혼은 죽지 않았다. 죽일 수도 없다! 그들은 자신의 인간성을 수호하기 위해 탈옥계획을 짠 상태이고, 구스타브에게 그 계획을 제안한다.

      가끔 생존을 위해서는 놀랍게도 사치품이 필요하다. 물론 사치품 없어도 어떻게 살기야 하겠지. 동물들도 사치품 없이 잘 사니까. 그러나 꽉 막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끔 여유라는 것을 가지고 다른 방향으로 현 상황에 대해 질문해 볼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멘들 빵에 칼을 몰래 가져온다든지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교도소 안으로 칼을 빵 안에 숨겨 보내는 것이 가능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한 용기라는 자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우리 모두에게 용기라는 것이 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었겠지.

 

 무스타파는 눈물을 멈출 수 없다. 그의 깊은 의식을 과거에서 현재로 끌어올리는 유일한 주제는 그녀, 아가사, 즉 사랑이다. 사랑, 언제나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존재로서 나와 사사건건 대립하는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마냥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세상 모든 것들을 대상으로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예술행위 중에서, 가장 강렬한 감각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다. 가장 온전한, 순간의 보관소. 그렇기에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소년 제로가 아닌 할아버지 무스타파가 자신의 아가사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빵과 소시지는 벌컥벌컥 썰 수 있다. 빵과 소시지야 원래 썰어먹는 것이라 해도, 멘들 양과자는 한 번 썰면 모양이 붕괴한다. 멘들 양과자를 당신이라면 썰어낼 수 있는가? 아마 몰인정한 사람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아니라고 감히 내 앞에서 말해보시지. 단지 우리에게는 차이로서 아름다움이 존재할 따름이지, 아름답지 않은 걸 사랑할 순 없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친구들한테 물어보라. 그 사람이 아름답냐고 아름답지 않냐고. 우리는 다른 이들의 대답과 상관 없이 항상 그 대상을 사랑한다. 왜냐면 우리의 두 눈에선 그 사람이 아름답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우리의 눈을 통해 본 아름다움이든, 정말 그 대상 안에 잠재해 있든 간에.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마음 안의 깊숙한 본능, 열망을 일깨운다. 그 열망은 단순한 육체적 쾌락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데, 왜냐하면 그 열망이 우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즉, 종교적 차원이다우리에게 삶을 사는 근거를 주는 존재의 성질은 아름다움이다. 내가 왜 저 사람을, 내가 왜 이러한 선택을, 내가 왜 이러한 삶을 사는지, 그 근저에는 그 방향 안에서 어떻게 하면 추해지지 않고 나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안타까운 우리만의 발버둥이 있다. 다만, 그 선택이 이 세상의 수많은 것들처럼 클리셰인지 아니면 자신만의 것인지의 차이가 있겠지만. 

      변호사 코박스가 자신의 신념을 지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죽은 이의 수수료, 그런 게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그냥 이 못돼먹고 무서운 불한당들에게 고개 한 번 조금 숙여주면 고양이가 떨어져 죽을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놀랍게도 무시무시한 생존본능보다도 다른 것을 선택할 때가 있다. 산다는 것 자체보다도, 어떻게 사는지의 방향을 더 중요시하면서 정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다리가 후들후들한 데도 해야 할 말을 하게 되는, 그러한 이상하고 불길한 순간. 가진 모든 것을 날려버리게 될지 몰라도.

      그러나 불한당들이 그러한 선택의 아름다움을 알 정도로 생명을 사랑한다면, 불한당들이라고 불리울지 아니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키운, 당신이 시간을 들인 것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당신의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멀리 하라. 천성이 잔인한 사람이니. 이 영화에서 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하이라이트 중 한 부분은 모순적이게도 코박스가 살해되는 장면이다.

      코박스는 고양이의 시체를 쓰레기통에 넣고 쿤스트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자신을 뒤쫓는 살인마를 피해 15분이 남은 박물관을 선택한다. 이 어찌나 괴상한 선택인지. 하긴 그는 자신의 인생이 15분 남았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부분의 장면들은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다른 수많은 주요 장면들처럼 인위적이고 가상적이며, 환상적이다. 모든 것이 진실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시치미 뗄 때는 언제고, 갑자기 내가 바로 영화라는 티를 팍팍 낸다고 해야 할까나폐관 직전의 아슬아슬함과 사람 없는 조용함 속에서 살인마와 변호사의 그림자가 서로를 의식한다. 박물관 안의 반복적인 전시품들과 바닥의 타일 무늬는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낳게 한다. 강박적이고, 편집증적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이 추격전이 언제 끝날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본다. 보이지 않는 살인마의 구두 소리만이 끔찍하게 크게 들린다. 코박스가 출구를 찾기만을 간절히, 수동적으로, 그 세상의 건너에서 지켜보는 우리는 살인마가 신발을 벗는 순간을 목격한다. 하나의 아름다움이 지는 것을 막을 수 없겠구나, 탄식하는 순간 손가락 네 개가 똑 떨어진다. 여성 관객의 비명이 들린다. (두 번 다 영화관에서 봤는데, 두 번 다 그랬다.) 손가락들을 수거해 가는 조플링의 뒷모습이 시선에 잡힌다. 삶에의 의지 하나가 세상에서 거세당했다.

      한편, 감옥에서 탈옥이 시도된다. 이 탈옥 장면은 꽤나 우습고, 어찌 보면 복고적인 느낌을 준다. 하나하나의 과정이 끝날 때마다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아이들의 여행처럼 일사천리이다. 가끔 장애물들이 나타나지만 무리 없이 장애물들이 제거된다. 구스타브 덕분에 배가 불렀던 덩치 큰 죄수가 그들의 탈옥을 돕는다. 구스타브는 빠짐없이 감사를 표시한다. 당한 거나 갚은 거나 잊지 않는 구스타브의 꼼꼼한 성격은 역시 큰 자산이다.

      하나의 권력 체계, 거대한 힘으로부터 탈출하는 네 마리 생쥐 중 한 마리 생쥐가 순직을 하고 만다. 필수불가결한 희생에 구스타브와 나머지들은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 우리가 그렇게 큰일을 하고 있는 거야. 그들은 앞으로 달려 나갈 뿐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정신인 것인지, 아니면 영화라서 그렇게 묘사가 되는 건지. 아마 후자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무용담은 오히려 이렇게 배수관 구멍 뚫듯이 막힘이 없어야 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141로 싸웠다는 전설적인 이야기처럼. 어쨌든, 그들은 쓱싹쓱싹 탈출하고,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온다. 우리는 그저 영화 보듯 보면 된다.

      나오자마자 구스타브는 제로에게 성질을 부린다. 나머지 죄수들은 버스를 갈취하고 총총 퇴장한 상태이다. 제로는 그의 이기적인 횡포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가끔 사람들은 투정을 부리기 마련이고, 구스타브도 그러한 때이다. 이를테면 자기가 당한 거대 권력의 횡포로부터 비참했기 때문에 밖에 나와서 자기의 작은 도제 소년한테 종로에서 맞은 뺨을 한강에서 푸는 격이다. 그러나 그들의 작은 실랑이도 얼마 되지 않아 끝난다. 구스타브는 그렇게 못되고 이기적인 놈이 아니다. 그는 남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아마 그러한 이유는 구스타브 자신이 자신의 감정을 그만큼 중요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순간들이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임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다. 어쨌든 싸움을 마무리한 그들은 시를 공유하며 어긋날 위기였던 감정을 매듭짓는다. 이러한 순간에도 시를 꼭 암송해야 해? 물론 그렇다. 이러한 순간이니까. 그렇지만 일단 도망친 다음에 더 듣자고.

      그러나 공권력이 그렇게 만만한 존재들은 아니다. 탈옥한 장소를 꼼꼼히 살피는 헨켈스의 고개는 여러 방향에 머물러 있다. 그의 시야는 전체에 머물러 있다. 그것이 바로 공권력이다. 하지만 그 공권력 밖에는 가끔 공권력보다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사적 권력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어느새 현장에 들어와 있는 조플링을 헨켈스가 내쫓는데, 조플링을 애초에 이곳에 들어올 수 있게 했던 것은 그의 뒤에 있는 한 가문의 가세 때문이다. 어쨌든, 사냥개 노릇을 잘 하고 있는 조플링은 멘들의 양과자 맛을 이미 맛본 상태이다. 너무 몸집이 크고 시야가 광범위해서 우둔해 보이기도 하는 공권력과는 다르게, 훨씬 더 날쌔게 개인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사적 권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권력과 사적 권력의 압박이 강해지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구스타브는 어떻게 다시 한 번 구사일생의 기회를 잡아야 할까? 일전에도 말했지만, 구스타브를 구할 수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구스타브 자신이다. 그가 이때껏 해왔던 것처럼, 그는 그 자신답게 이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한다. 그것만이 길이기 때문에.

 

4부 십자열쇠협회

 

      십자열쇠협회는 일종의 예술가 서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무려 다섯 명의 호텔 지배인들에게 연락이 간다. 그 호텔은 모두 아름답고, 각자만의 개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역시 로비보이들이 있다. 아름다움은 그 고유의 씨를 뿌리고 전파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기꺼이 구스타브를 도와준다. 이들의 권력은 상당히 미시적이라서 소믈리에와도 인맥이 닿는다. 그들이 공권력처럼 대단한 수의 경찰,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움의 영역에선 확실히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들도 어떻게 보면 막강하진 않을지 몰라도 하나의 사적 권력이다. 구스타브에게 무려 향수도 챙겨주는 걸. 비록 조금 소량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들은 분명 그걸 돈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구스타브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애초에 갖고 있던 구스타브에 대한 존경심이 구스타브를 살렸다.

      잘 생기긴 했지만 예술에 관심 없는 드미트리가 그림이 바뀐 것을 아는 것도 드디어 이맘때쯤이다. 도대체 여자 성기가 다 보이는 동성애 춘화랑 얌전한 소년이 사과를 든 그림이랑 바뀐 걸 이때껏 알아채지 못한 건 대체 뭐란 말인지. 그만큼 드미트리가 '예술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드미트리 본인한테서는 수컷냄새가 풀풀 난다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들의 폭력성 자체가 또 다른 종류의 매력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 중 아름답지 않은 존재는 없다. 위험한 악당도 어떤 의미로는 아름답긴 하다. 모든 생명이 갖는 의지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다만 각자의 취향 차이와 윤리적 문제가 걸릴 뿐이지. 애초에 조플링이 모는 오토바이부터 장난이 아닌 걸.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하이라이트는 역시 이 산꼭대기 정상에서의 활극일 것이다. 서지의 메모를 바탕으로 모든 인물들이 모여드는데, 물론 우리의 구스타브는 향수를 꼭꼭 뿌려주시기 때문에 그 냄새를 만인이 알아챈다. 그리고 서지를 찾아 제로와 구스타브는 산꼭대기 위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 부분의 아름다움을 문자로 설명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우선 음악부터 그들의 활극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수도사를 처음 만나는 부분은 케이블카의 중간에서이다. 케이블카가 멈추어서 끼익-거리는 소리가 음악과 조화를 이룬다. 그들은 수도사들의 도움을 받아 계속 올라가게 되고, 수도사 옷을 차려입게 되며, 심지어는 그들의 음악까지 참여하게 된다. 대충 그렇게 수도사 4명을 거쳐 그들은 고해성사를 하러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서지와 만나게 된다. 그들의 급박한 만남에서 그들은 서지가 사본을 챙겼다는 중요한 비밀을 접하게 되지만, 그 순간에 서지는 살해되고 만다. 조플링 역시 수도사 복장을 차려입고 어느새 들어와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스키, 썰매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이 부분 역시 놀라운 영화적 기교를 자랑하는데, 이 장면을 미니어처로 만들었다고 하니 그 작업이 매우 번거롭고 수고로웠을 것 같다. 그러나 고생한 값어치를 한다. 상승에는 수많은 버퍼링과 반복이 걸렸지만, 내려갈 때는 씽씽 무지막지한 속도감을 자랑한다. 산에서의 활극은 감옥에서의 탈출처럼 순조로우면서 동시에 여러 과정을 거치는데, 확실히 현실감을 주는 요소는 아니다. 맨 처음에 작가가 분명 우리는 놀랍게도 현실에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받는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영화적 처리는 그 진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바로 핵심이다. 우리의 기억, 우리가 갖는 현실이란 것을 생각해보자. 어차피 우리의 관점이라는 하나의 예술이 모든 현실적 순간들을 윤색하고 왜곡한다. 그 의미부여는 한때 사실이었던 것을 환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예술은 우리의 인생이 바로 그러한 것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은유이다. 우리는 항상 예술적 삶을 살고, 그렇기에 환상과 세계는 구분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스키를 타고 내린 조플링과, 절벽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구스타브가 마지막 위협 앞에서 시를 읊조리는 장면은 기가 막히다. 구스타브는 자신의 인생을 수없이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인간 유형이다. 그는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해내며 자신의 삶을 클리셰가 아닌 살아있는 창조물로 만들어낸다. 그가 갖는 소시민성을 그의 그러한 예술성이 압도한다. 그리고 그의 예술성은 그 자신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순간에도 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의 미적 자식이자 형제인 제로가 선방을 날려 조플링을 제거해버리는 것은 통쾌한 한 방이다. 그들의 예술성이 드디어 그들의 의지를 위협하는 하나의 의지를 제거하였다.

      공권력이 때마침 등장하여 굴복을 권유하지만, 그러한 권유에 제로와 구스타브가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서지를 위한 묵념을 잊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대단원도 하강세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5부 두 번째 유언의 사본

 

      마지막 전쟁의 시작이다. 팔에 완장이 걸쳐진 군인들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점령한지 오래이다. 자신의 근거지가 그 꼴이 난 것을 보고 통재를 금치 못하는 구스타브. 그의 미학이 사라지고 다른 인간들의, 다른 시대의 물살이 넘실거린다. 이 와중에 최종 보스인 드미트리가 호텔에 들이닥치고, 그는 그림을 빼내는 데 성공한 아가사와 그림을 알아본다. 호텔 6층까지 따라간 드미트리는 아가사와 추격을 시작하는데, 곧 뒤따라온 구스타브와 제로와 맞닥뜨리게 된다. 분노한 드미트리는 총을 꺼내어 발사를 한다. 그리고 곧 한편에서 시작된 총성에 놀란 다른 편의 군사들도 총을 꺼내어 제각기 발사를 하기 시작한다. 전쟁에 대한 훌륭한 은유가 시각적으로 구현되었다.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총질을 시작하고,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에 다 같이 총질을 시작한다. 이 의미 없는 폭력전 아래서 사랑에 집중한 제로는 아가사와 함께 멘들 빵 위로 떨어짐으로써 목숨을 구하고, 그들은 그림 뒤에 숨겨져 있던 두 번째 유언의 사본을 발견한다.

      그 사본은 결국 공권력, 사법부에 의해 인정받게 되고 모든 것은 구스타브의 몫이 되며, 드미트리는 사라진다. 그러나 결말이 해피엔딩인가?

      제로는 후계자가 되었고, 아가사와 결혼하여 몇 년을 살았지만 아가사와 아이는 프로이센 독감이라는 병으로 죽었다. 역시, 현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아무리 아름답고 용감한 존재라도. 그리고 전쟁이라는 커다란 물살로 인해 공화국은 사라졌다.

      구스타브는 언젠가 벌판 앞에 선 기차에서와 똑같이, 똑같은 선택, 똑같은 행동을 한다. 참 변함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순간에서는 그의 아름다움조차 그를 구해주지 못한다. 어쩌면 그렇기에 그 때가 그의 마지막인 것이겠지. 시대가 변한 것일까? 글쎄. 그렇지 않다. 어쩌면 영화는 이 부분에서야말로 흑백화면을 통해 이것이 현실이고, 진실임을 말해준 것일지 모르겠다. 운이 좋았던 어느 날의 그 기분 좋았던 때가 아닌, 우리를 먹어 삼켜버린 잿빛 하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우울한 사실. 아무리 우리가 아름다움을 쫓아도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 생존을 언제나 보장받을 수 없는 때가 존재한다는 비참한 진실. 그의 죽음이 나오지 않은 것도, 그의 죽음을 영화처럼 다루지 않은 것도 감독의 그러한 슬픔에서 기인할지도 모른다. 감독은 예술인의 입장에서 구스타브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건, 여전히 호텔에는 그림이 매달려 있다. 적자를 감수하고서도 지키고 있는 이 호텔에서 무스타파의 뒷모습은 살짝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그는 구스타브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 아가사와의 추억을 위해 이곳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스타브와의 기억은 그에게 아마 이젠 방법론적인 문제, 그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 자신에게 녹아든 무엇일 것이다. 구스타브의 세상을 살아가고자 한 미적인 노력이 무스타파의 몸에 베인지는 오래였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무스타파에게 몸에 베인 것과 다른 문제인 것이 사랑이다. 그것은 기억이다. 한 사람과의 우정과 의리를 통해 배운 것들이 몸에 남은 것과는 다른 문제로, 이젠 가버린 영원한 순간을 영원하지 못한 것으로 잡아두려는 애탄 노력. 그렇기에 호텔은 낡아가고 있고, 마찬가지로 무스타파 역시 늙어가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그가 우울해 보였던 이유일 것이다.

 

   노작가의 집은 새로 페인팅 중이다. 과거를 다 말한 그의 곁에는 손자가 있다. 새로운 희망이 이어지고 있다. 창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새로운 것을 쓰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변에서 창작의 방법을 찾아나간다. 작은 순간순간에 있어, 항상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는 우리의 방법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예술이다.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채워나가는지, 어떻게 그려나가는지가 문제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창작의 요소를 현실에서 채워나간다. 그 방법은 영화감독으로라도 좋고, 가정주부라도 좋고, 호텔 지배인으로도 좋고, 빵 굽는 사람으로도 좋고, 한 사람의 애인으로서도 가능하고, 한 사람의 친구로서도 가능하다. 그것 역시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 우리는 어차피 언제나 우리만의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간다. 말했듯이, 클리셰로 남든 클리셰를 벗든 그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모든 사람이 알아봐 줄 필요 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아봐줄 지기를 찾는다면 될 문제이다.


      묘지 안의 여자가 책을 다 읽고 덮듯이, 스크린에 배우들의 이름이 하나씩 올라간다. 두 번 본 것을 다시 볼 필요는 없겠지. 나 역시 영화를 다 읽었으니 이제 나가야 할 차례이다. 새로운 순간이 이젠 기억으로 다시 전환되고, 이제 다시 이곳에 나의 기억 조각 하나를 남기고 떠나련다. 길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새로운 나를 찾아, 새로운 순간을 창작하기 위해 간다. 안녕,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 존재들을 위해 축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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