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은이) | 이지연 (옮긴이)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3-09-05 | 원제 The Warrior's Apprentice (1986년)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의 진정한 시작! 이제는 전설이 된 스페이스 오페라의 서막. 보르코시건 시리즈 3권 [전사 견습]은 1권과 2권이 이 시리즈의 주인공 부모의 이야기였다면, 드디어 프리퀄이 끝나고 본편 마일즈의 이야기를 다룬다. 앞서 1권과 2권을 읽으면서 프리퀄의 주인공이라고 할 마일즈의 어머니, 코델리아 네이스미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흡인력과 재미와 감동에 감탄하면서 예전에 읽어서 기억이 흐릿해진 [전사 견습]이 과연 이 정도로 재미있었나, 잠시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금 펼쳐 본 [전사 견습]의 이야기는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스페이스 오페라라니! [명예의 조각들]도 충분히 매력적인 SF 로맨스였고, [바라야 내전]도 숨가쁘게 진행되는 치열한 내전과 그 속에서 코델리아의 활약과 바라야 행성을 조명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지만, 순수한 재미로만 따지면 [전사 견습]을 따라오기가 힘들었다. [전사 견습]은 과연 국내에 [마일즈의 전쟁]으로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소개될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모든 게 가능한 것은 1권과 2권 덕분에 세계관 설명이 줄어들고 모험과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마일즈라는 인물의 매력 때문이다. 아랄 보르코시건과 코델리아도 물론 매력적이었고, 특히 코델리아의 판단력과 실행력은 감탄이 나오며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지만, 마일즈의 매력은 이와는 또 다르다. 부모들이 마치 단점도 거의 느껴지지 않고 강인하며 정신력도 강하고 신체도 건강하고 직접 몸으로 활약하는 영웅형이어서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졌다면, 마일즈는 장애를 가진 난장이다. 청소년 나이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 나이에 걸맞는 고민과 열패감 때문에 몸부림치고 자해를 하기도 하고, 놀라운 지략으로 위기를 돌파해 가면서도 혼자 걱정과 고민에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이토록 인간적이기 때문에 동질감을 느끼며 진짜 어딘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절로 응원을 하고 마일즈의 앞날을 축복하게 되며, 이후 시리즈가 읽고 싶어지는 이유도 마일즈의 뒷 이야기들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가 계속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인간적인 마일즈 때문인 것이다. 마일즈를 더 알고 싶기 때문에, 마일즈의 활약을 더 보고 싶어서, 마일즈가 장애를 가진 신체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두뇌와 용기로 활약하며 드넓은 우주를 휘어잡을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을 알리기에 [전사 견습]은 충분하고도 넘친다.


 이야기는 플롯이 정교하지 않으면 매력적이지 않다. 이야기의 핵심은 비록 인물이 개성 없더라도 플롯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매력적인 마일즈라는 인물을 놀랍게 선보일 뿐만 아니라 플롯도 잘 짜여 있다. 이 책의 모험은 하나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엘레나의 어머니가 누구일까에 대한 호기심. 엘레나가 자신의 근원에 대해 시작한 여정은 베타 개척지를 넘어 우주 공간까지 나아가며 다른 행성의 전쟁에까지 미친다. 그리고 결국 하나의 종착점에 도달한다. 그 과정이 우연적이면서도 충격적으로 독자에게 다가오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근원과 마주한 엘레나는 통과 의례를 지나 하나의 주체적 존재로 각성한다. 이 소설은 그야말로 마일즈와 엘레나의 성장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동갑인 두 아이는 청소년 시절에 우주를 무대로 한 성장통을 겪고 자기 자신의 근원은 물론이고 자신과 마주한다. 그 과정이 처음에는 유쾌한 모험에서 시작되어서 부풀어 오르더니 고통을 수반한 과정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성장한 사람들이 남는다. 한 편의 스페이스 오페라 성장소설인 셈이다.
 한편, 몇 년 전 처음 읽었을 때와 [명예의 조각들]과 [바라야 내전]을 읽고 난 뒤에 감상이 완전 달라졌다. 몇 년 전에 읽었을 때는 신나게 재미있는 '무책임 함장 테일러'를 연상케 하는 우연의 연속으로 벌어지는 좌충우돌 모험담이라고만 여겼는데,(물론 다르다. 훨씬 어리고 유쾌하면서도 두뇌를 쓰고 행동에는 이유가 있으며 매우 인간적이다.) [명예의 조각들]과 [바라야 내전]을 통해 황제의 음모로 탄생하는 비극적 전쟁과 그 피해자인 보타리 중사에 대해 세밀하게 알게 됨으로써 [전사 견습]에서 등장한 보타리 중사를 전혀 다르게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묵직한 경호원처럼 여겨졌던 보타리 중사가 [명예의 조각들]과 [바라야 내전]을 통해 바라야라는 행성과 전쟁에 직접적인 피해자이며 또한 전쟁 가해자가 되면서 그 업보를 짊어지고 [전사 견습]에 등장한 모습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보타리 중사 연대기로 보자면 이 3권이 하나의 삶과 비극을 그려낸다. 예전에는 단순히 충격 효과밖에 안 되던 사건이 [명예의 조각들]과 [바라야 내전]을 읽고 난 뒤에는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비극의 연쇄 과정. 피해받은 사람들, 보상 받을 길이 없는 사람들. 그런 것이 전쟁이고 삶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인간 관계들. 즉, 필자는 몇 년 전에는 마일즈와 엘레나의 시점에서 [전사 견습]을 읽은 셈이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보타리 중사에 대해서는 보이는 모습밖에 모르고, 그 내면과 지나온 생을 짐작조차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타리 중사의 과거 삶을 일부 체험하고 보자, 전혀 다른 소설이 되어버렸다. 이 간극이 흥미로우면서도 가슴을 아리게 할 정도로 인상깊게 다가왔다.


 [전사 견습]의 재미는 인물 뿐만 아니라 마일즈가 처한 상황이 이스트처럼 부풀어올라서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지점에 있다. 독자들은 처음에 단순한 모험이 갑자기 행성 내전과 용병 사이에 끼이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주인공에 감정 이입해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상황은 한 청소년이 벌이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대형 사건으로 커지고 거짓말로 속였던 일이 진짜처럼 여겨지는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김용 최고의 작품이라는 [녹정기]에서 주인공이 무력이 없이 활약을 펼치는 면이나, 윤현승의 대표작 [하얀 늑대들]에서 주인공이 역시 무력이 없이 입담만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면을 연상케 한다. 무협과 판타지에서 녹정기와 하얀 늑대들이 있다면 SF에는 [전사 견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위기 상황을 조악한 거짓말로 지어내기만 해서 쉽게, 또 운 좋게 상황을 넘기기만 했다면 이토록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력 충돌 같은 위기 상황보다 더 큰 위기는 바로 마일즈가 용병단을 착실히 불려나가면서 발생한다는 의외성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바로 사실성이 부여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몇 명의 동료와 세치 혀로 용병단을 접수한 마일즈 앞에 놓인 것은 전략적 위기나 무기가 아니다. 바로 용병들에게 주어야 할 보험, 급여, 생명 수당 같은 것들이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보폭절도할 수밖에 없다. 아, 이렇게 현실적이라니. 승리했지만, 승리한 게 아닌 것 같은 마일즈의 이어지는 고뇌들은 재미있다. 슬기롭게 위기를 넘기고 어떤 상황을 만들었지만 그 상황을 유지하는 것은 진짜 현실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예산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주인공을 둘러싼 가장 큰 위기가 이런 웃음을 주는 예산 시스템만은 아니다. 용병단을 유지하는 자금 문제는 계속 주인공과 독자를 함께 압박하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력이 되지만, 작가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사건의 연속은 끊임이 없다. 어느 정도 자금 위기가 끊길 때쯤,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었던 가장 큰 물리적 위기가 덮쳐 오고 주인공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후의 행동을 나선다. 이 외에도 주인공의 첫사랑이라는 서브 플롯도 훌륭하게 작용하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 과정도 과장되거나 혹은 낭만적으로 그려지지 않고 현실적으로 그려지면서 마일즈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내면을 묘사해서 글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 이렇듯 여러 겹의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마일즈라는 인간을 이 한 권의 책으로 완벽한게 구성한다. 그로 인해 앞서 말했듯, 후속권들을 따라 읽으며 계속 마일즈를 만나고 싶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에 걸맞게 행성간 여행과 다른 규칙으로 움직이는 행성들이 등장하고, SF 소도구와 무엇보다도 우주선이 등장한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전쟁과 주인공인 마일즈의 재치있는 두뇌 플레이가 돋보이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마무리도 깔끔하다. 앞서 1, 2권을 읽었다면 그 이야기 속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이 조금씩만 등장해도 반갑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새 인물들이 처음에는 다들 오즈의 마법사의 캐릭터들처럼 하나씩 빈구석을 갖추고 있었다가 모험이 끝날 때쯤에는 나란히 성장해서 새로운 인물이 되는 지점들이나, 앞으로 또 많은 모험들이 기대되는 끝맺음 역시 근사하다.


 이야기의 재미가 이 책에 담겨 있다. 한 번 잡으면 마지막까지 읽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그런 재미 말이다. 매력적인 SF의 스토리텔링. 우주를 배경으로 우주선을 타고 행성들 사이를 오가며, 워프를 하고, 신경파괴총을 쏘고, 전략을 짜는 그 재미. 스페이스 오페라의 황홀함. 가끔 책은 무조건 지식이나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왜 아무런 얻을 것도 없는 책을 읽는지 이해 못한다는 사람도 본 적 있다. 리플로 독서는 영화나, 자전거 타기나, 음악 감상과 아무런 차이도 없는 휴식과 즐거움을 얻기 위한 여가 활동이라고 말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한 번도 책이 정말 재미있는 오락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책은 게임과 같다. 재미있기 때문에 읽는 것이다. 영화를 한 편 본 것처럼, 게임을 한 판 한 것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친 듯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활자로 접할 수 있다. 머릿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상상하기 때문에 어떤 매체보다도 더 실감나고 뚜렷한 상상을 맛볼 수 있는 게 책이다. [전사 견습]은 바로 그런 책의 오락성을 체험할 수 있는 책이다. 책은 재미있다. [전사 견습]은 그 재미를 보장한다. 진짜 책의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읽기를 추천한다.



P.S


[리뷰] 바라야 내전 - 보르코시건 시리즈 02(SF) 

[리뷰] 명예의 조각들 - 보르코시건 시리즈 01(SF) 


[참조] 보르코시건 1권 『명예의 조각들』 메트로 연재 만화(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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