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이 이야기(존 스칼지, SF)

2012.09.1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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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이야기l 샘터 외국소설선 8
존 스칼지 (지은이) | 이원경 (옮긴이) | 샘터사 | 2012-08-31 | 원제 Zoe's Tale (2008년)

 2009년 1월,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이 그 유명한 첫 문장과 함께 국내에 출간되었다. "75세 생일에 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아내의 무덤에 들렀고, 군대에 입대했다.(8쪽)" 75세 노인이 군대에 입대하다니. 흥미로운 도입부만큼이나 즐거운 오락소설이었고 SF로는 흔치않게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쇄를 소화하기도 힘든 SF 소설이 증쇄를 거듭했다. 입소문을 타고 높은 판매량을 기록할 만큼 이 소설이 가진 재미는 대단했다. 새로운 우주와 모험을 경험하게 만들면서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인기에 힘입어 별다른 사고없이 2부 [유령 여단]과 3부 [마지막 행성]까지 출간되었고 마찬가지로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3부작 전체로 보자면 2부 [유령 여단]은 다른 주인공을 내세워서 이질적이면서도 완성도나 재미는 가장 나은 느낌이었다. 주인공이 달라짐에 따라 분위기가 한층 무거웠고 진중했지만, 그만큼 새로운 관점에서 [노인의 전쟁] 시리즈의 우주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3부작 중 [마지막 행성]은 가장 아쉬웠다. 장대한 전쟁이 나오지 않고 한 행성으로 이야기를 제한한 것도 그랬지만, 토착 종족인 '늑대 인간'에 대한 이야기나, 마지막 결말이 너무 쉽고 빠르게 처리된 느낌 때문이었다. 아쉬웠지만, 어쩌겠는가. 이야기는 이미 3부작으로 끝나버렸는데.
 그런데 2012년 외전 [조이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물론, 외전인 조이의 시점으로 동시간대를 바라본 [조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출판될 수 있을지는 미심쩍었고, 이 외전이 [마지막 행성]의 아쉬운 지점들을 채워주리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조이 이야기]를 읽게 되자, 외전이 아니라 [마지막 행성]에 이어지는 4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은 [마지막 행성], [조이 이야기]가 마치 상, 하권처럼 결코 뗄 수 없이 긴밀하게 이어진 느낌이었다. 그만큼 보너스 같은 외전격 이야기가 아니라 본편의 이야기와 중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쉬운 부분들을 채워주면서 본편의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노인의 전쟁] 시리즈의 세계관을 좀더 세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따라서 [마지막 행성]까지 존 스칼지의 입담에 반하며 이야기를 읽어온 독자라면 [조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조이 이야기]와 [마지막 행성]은 동면의 양면 같은 관계다. 둘 중 하나만 읽어서는 전체 이야기를 파악할 수 없고, 진짜 끝이라는 느낌도 받을 수 없다. 독자는 두 권의 책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 지점에서 파생되는 재미가 있으며, 진정한 엔딩을 보는 느낌을 받게 된다.([마지막 행성]에서 빠졌던 부분들은 의아해서 읽고 나서도 내내 기억에 남았다. 작가 역시 완결하고 나서 독자들에게 무수한 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모든 것을 다 알지만 독자는 알 수 없기에 생긴 괴리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조이 이야기]를 읽게 되자, 빠져서는 안 되는 에피소드들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작가가 [조이 이야기]를 집필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2권부터 등장한 '조이'는 3권까지 많은 일을 겪은 소녀지만 2, 3부를 읽으면서 '조이'의 관점에서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사건을 진전시키는 도구적인 캐릭터로 읽혔던 것이다. 온 우주를 전쟁 속으로 이끌어 인류에게 복수하려고 한 부탱의 딸. 오빈 종족 전체에게 경배를 받는 여신 같은 존재. 인류와 오빈의 협정 조건. 그런데 [조이 이야기]에서 조이의 관점으로 보자, 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새롭게 와닿게 되며, 작품 속 세계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쳐진다. 이미 2부 [유령 여단]에서 다른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같은 우주이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데 성공했었다. 이번에는 열일곱 살 소녀의 시선으로 그렸는데, 어색하리란 예상과 달리 자연스러웠다. 조이는 정말 열일곱살 소녀처럼 재기발랄하게 생각하고 말했으며,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조이의 위트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존 페리보다 더 영악스런 소녀가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소녀인지! 담대하며 매사에 위트가 있고 올바르고 똑똑하다. 그런 조이의 시선으로 인해 [마지막 행성]의 우주개척 연대기는 새롭게 다가왔다. 동시간대의 이야기를 읽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했으며, 오히려 [마지막 행성]에서 빠졌던 큰 두 개의 에피소드를 상세하게 다룸으로써 긴박감까지 느껴졌다.
 작가는 후기에서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전개해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말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잘 만들어진 이야기였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모험을 겪는 느낌이었으니까.(이런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며 읽는 재미도 있다.) 주인공인 조이 뿐만 아니라 세 명의 친구들도 각자 개성을 가져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했다. 스토리를 진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고 주요한 갈등을 만들어냈다. 아이들 다운 대화와 행동을 하면서도 이야기와 동떨어지지 않고 잘 연계시켰다. 돌발 행동으로 늑대 인간에게 붙잡힌 두 남자아이. 조이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행성의 토착 종족인 늑대인간들과 마주하면서 겁먹지 않고 당당히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뿐만 아니라, 혼자(오빈 종족인 디코리와 히코리는 있지만) 행성을 지키기 위해서 떠났을 때는 오빈 종족에게 당당히 요구를 하고, 타셈가우 장군 암살 음모를 격파했을 뿐만 아니라 초과학을 지닌 콘수와 내기까지 하게 된다. 그야말로 존 페리 이상의 유머 감각과 전략가의 면모를 가진 소녀였다. 유전적으로 연관이 없더라도 그 아빠의 그 딸이라는 느낌. 한 가족이 정말 우주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육체적 능력이나, 초능력이 아니라 재치 넘치는 지략과 용기로 이뤄낸다.
 장대한 우주 전쟁이 펼쳐지거나 엄청난 액션이 가득찬 소설은 아니다. 또한, 우리는 이미 [마지막 행성]을 통해 이 이야기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결말을 맞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재미있다. 처음과 끝을 알고 있으면서도 재미있다는 사실은, 소설이 단지 요약된 줄거리로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사람도 태어나서 살다 죽는다. 중요한 것은 현장감을 느끼며 이야기 속에 몰입되면서 체험하는 것들이다. 조이가 어떤 일을 겪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그 서사를 따라가면서 무슨 이야기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했는지 행동을 지켜보고 재미를 느낀다.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듯이. 조이의 눈으로 바라본 로아노크 행성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존 페리와 조이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다른 걸 보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행동을 했다. 그러면서 오빈의 놀라운 변화를 지켜볼 수 있고, 그들의 신화를 들으며, 그 신화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조이 이야기]는 곧 우주에서 쓰여지는 중인 신화이다.
 [노인의 전쟁]부터 시작해서 [조이 이야기]까지 이제야 하나의 즐거운 모험이 일단락 된 느낌이다. 다시 이 세계를 기웃거리지 않아도 될 만큼 만족스럽다. [노인의 전쟁]을 읽은 독자라면 당연히 [조이 이야기]까지 구입해서 읽을 것이다. 한편, 아직 [노인의 전쟁]을 읽지 않은 행운을 소유했다면 이제 [노인의 전쟁]부터 [유령 여단], [마지막 행성] 그리고 [조이 이야기]까지 장대하면서 유쾌하고 스릴 넘치는 우주 모험을 즐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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