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화의 시작 늦은리뷰

2011.09.01 22:41

dlraud 조회 수:2897

 

진화의 시작의 초반부 형식은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입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이 만든 괴물에게 프랑켄슈타인이란 이름을 뺏겼듯이

진화의 시작도 제임스 윌가 연기한 과학자보다 ‘시저’라는 ‘실험물’이 주인공입니다. 유인원이라는 핸디캡이자 아이덴티티가 이번 실험대상의 특별한 점이죠.

이 침팬지는 외모를 제외하고는 거의 이상적인 인간으로 불러도 될 만큼 훌륭합니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도 사실 보통인간보다 지능이 높았고 (처음에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창조자보다 우월하고 경외심을 느끼게 하는 창조물은 이런 이야기에서 필수적인가 봅니다.

 

넓게 보자면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도 새로운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과학자와 실험대상이 같은 육체를 공유합니다. 하이드 씨는 지킬박사의 실험결과물이자 자기자신이죠.) 여기서도 역시 창조물은 창조자를 능가합니다. 재미있는 공통점은 ‘진화의 시작’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뮤지컬의 주인공인 과학자들에게 주어진 변명과 사명감은 둘 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에게서 나온단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빛나던 지성과 갈고 닦아졌던 인격이 훼손되는 걸 보면서 아들들은 끝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진화의 시작에서 윌는 실제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개발한 아직 임상실험도 거치지 않은 약물을 투여합니다. ALZ112의 효과는 뛰어나 윌의 가족은 몇 년 동안의 행복을 맛봅니다. 약물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그 동안 억제됐던 병의 진행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 심각한 상태에 놓이기 전까지는요. 이 때문에 윌에게는 더 센 약물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생깁니다.

 

이 영화에서의 진짜 프랑켄슈타인(-프랑켄슈타인박사의 창조물)은 어디까지나 시저이므로 아버지의 이야기는 더 복잡하게 진행되지 않고 죽을 때가 됬음을

안 아버지가 새로운 약물을 거부하고 얼마 되지 않아 평화롭게 잠드는 것으로 처리 합니다.

전체적으로도 아버지의 이야기는 상징적인 편이고 그의 죽음은 ‘자연의 순리’로써 어둡지 않게 처리됩니다.

이 영화의 진짜 프랑켄슈타인(-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은 어디까지나 시저이니까요. 주인공인 시저는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문제는 이 영화의 모든 인물은 침팬지가 주인공이 되려면 우리들은 복잡한 내면갈등을 지니면 안된다는 듯이 평면적이고 도구적입니다. 윌의 아버지가 가장 매력적이고 이야기가 많은 인물이지만 시저가 본격적으로 주인공으로서 활약할 때 극중에서 사라집니다. 초반부의 주인공인 윌이란 인물은 공감과 호감이 가는 인물이지만

비중과 역할, 주어진 갈등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공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는 시저에게 너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난 너의 아빠다 라고 힘있게 말하지만 인간에 가까운 지능과 마음을 지닌 시저가 느낄 욕망과 혼란까진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게다가 시저의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니 그전에 ‘브라이트 아이즈’가 자신의 실험용 동물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낄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언급 없이 넘어가더군요. 윌이 아버지를 잃고 난 뒤의 고통은 짐작이 가도록만 그려질 뿐 제대로 표현되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시저를 보내주는 장면에 비하면 감정이 넘치는 편입니다. 보호소에서 탈출한 시저와 그 무리를 따라 숲으로 겨우 들어온 윌이

시저를 포기하고 보내주는 장면은 이상할정도로 깊이가 없습니다. 여기서 윌은 종이인형 같았습니다.      

 

시저의 유인원으로써 정체성에 대해서도 그의 선택이 확실하게 이해가 간다고 말하기엔 약간 부족합니다.

 집으로 가고 싶다고 애원하는 시저와 굳은 결심으로 아빠에게서 등을 돌리는 시저는 매우 다른 침팬지입니다.

그 간격동안 일어난 일들이 그 정도의 영향을 줄 만했는지 모르겠달까요. 윌 뿐만 아니라 영화의 스토리 자체가 수동적입니다.

후반부서부터는 시저의 액션에 대한 리액션만으로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그나마 이러한 시저가 벌이는 행동들에 대한 세계의 반응은 단순하고 최소한의

것으로 시저 대 인간세상 외에는 별다른 갈등구조도, 중심스토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배경이야기도, 소소한 반전도 없습니다.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싱거운 느낌을 줍니다.

영화를 보고 있을 때는 꽉 찬 이야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만, 영화가 끝나서는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평범한 정도다’란 생각이 들었단 말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잔상이 남는, 마음에 걸리는 어떤 이미지를 건지지 못한게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을 (생각보다) 극단으로 밀고나가지 않습니다. 좋은 장면들은 많지만 극적인 장면이 약한 게 아닐까요.

 

커스틴 던스트가 나온 마리 앙투와네트처럼 커다란 이야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를 다루고 있어서 일지도 몰라요. 이 시리즈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스케일이 큰 영화를 기대하고 왔다가 앗 인트로에 불과할 소품이었어? 하게 되니까요. 영화가 끝나고 유인원들이 다스리는 지구는 어떨까 궁금해졌습니다. 마리 앙투와네트의 이야기는 잘 알고 있지만, 시저의 이야기는 모르는 시청자로선 다음 편을 기대하게 되네요.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몇몇 장면은 시저가 보호소에서 그렸던 창문을 절망적으로 지우는 모습입니다. 윌와 같이 살 때조차도 그가 정말 원하던 것은 창문 너머의 세상이었습니다. 그나마 사랑하던 사람들과 살던 집이 아니라 진짜 감옥에 갇힌 그는 그 감옥에서도 집에서와 같이 창문을 그립니다. 원래의 집도 사실 시저에겐 갇힌 곳이었단 깨달음과 그곳에서도 유리창 너머의 세상을 의지했는데 이제는 두꺼운 시멘트 벽에 가짜로 창문을 그려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의 처지가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가장 강렬한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시저에게 수화로 말을 건 오랑우탄이었던가요. 헬리콥터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이번 영화의 유인원을 주인공으로 한

멋진 액션 장면중에서도 단연 최고였어요.

 

p.s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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