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국열차

2013.08.02 03:36

menaceT 조회 수:6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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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메가박스 신촌.

 

  내가 보기에 '설국열차'는 조금 부당할 정도로 악평을 듣고 있다.

 

  우선 일부 평자들이 언급한 바와 같이, 기존 봉준호 영화와 달리 '한국적인' 느낌이 덜하기에 '봉준호답지 않다'는 느낌을 받아 실망한 이들이 많은 듯하다. 실제로 봉준호의 기존 영화에는 한국적인 향취가 담뿍 배어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조차 그토록 한국적 향취가 넘치길 바랐다면, 그 사람들은 시작부터 잘못된 기대를 품고 온 셈이다. 이 영화는 400억을 들여,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존 허트, 에드 해리스 등의 할리우드 스타들을 기용하고, 와인스타인 컴퍼니에 미국 배급까지 맡긴 영화이다. 기획 단계서부터 세계 시장을 노리며 조금 더 보편적으로 다가설 목적이 분명한 영화인 것이다. 이런 영화가 '한국적 향취'로 가득한 모습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낭비요 잘못된 기획이다(기존의 '한국적 향취 가득한' 봉준호 영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영화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봉준호 색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보편적으로 먹힐 만한 재미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는 모양인데, 사실 봉준호 영화는 늘 보편적인 재미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괴물'의 클라이막스만 보아도 보편적인 재미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성공했을 타이밍에 봉준호는 오히려 어이없는 실수로 리듬을 엇나가게 만든다. 그리고 '마더'의 경우는 오히려 재미보단 불편함을 자아내는 데 열중하는 듯 보인다.

 

  그 외에 이야기 전개가 어딘가 이상하고 불균질적이라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서사는 분명 그러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부분이 이 영화가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일러)

 

  새로운 빙하기가 찾아오고 살아남은 마지막 인류를 실은 설국열차가 얼어붙은 지구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열차 안에서는 머리칸과 꼬리칸으로 계급이 나뉘어져 있다. 이 설정 아래서 '설국열차'는 피착취 계급의 혁명 드라마의 외피를 뒤집어 쓰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는 그 시작점부터 묘하게 이상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 화면을 채우기 전, 영화는 굳이 파란 하늘에 CW-7가 살포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살포된 CW-7가 오히려 빙하기를 초래해 인류의 멸망을 앞당긴다는 그 '아이러니'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렇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아이러니'를 품고 가는 영화이다.

 

  그 뒤 보여지는 꼬리칸에서의 장면, 그리고 혁명이 시작되는 과정도 어딘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 그들은 분명 꼬리칸 안에서 물리적으로 억압된 채 지내고 있다. 그러나 메이슨이 언급하듯 그들은 살기 위해 '무임승차'를 함으로써 꼬리칸 안으로 자진해 들어온 이들이다. 애초에 설국열차 자체가 정부들이나 자선사업가의 작품이 아닌 자본가가 모두의 비웃음을 사 가며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던가? 심지어 그들은 꼬리칸 안에서 어떠한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음식을 배급받아 먹으며 일상을 영위할 뿐이다. 비록 그들의 일상이 비루하고 더럽다 한들, 가끔 그들 중 일부가 착취당하기 위해 차출되어 나간다 한들 꼬리칸의 그들 모두가 진정 '피착취 계급', '노동 계급'이라 할 수 있는가?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꼬리칸 안에서 억압당하고 있다며, '꼬리칸에서 탈출함'으로써, '최대한 멀리 나아감으로써' 그들의 혁명을 이루고자 하지만, 정말로 착취당하기 위해 차출당한 자들이 이미 타의에 의해 '꼬리칸에서 탈출된' 상태라는 것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내나 앤드류에게 가해지는 폭력, 앤드류와 타냐의 아이들을 빼앗아가는 행위 등을 통해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는, 즉, 극중 인물들이 분노를 느끼고 혁명을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당성은 확보하고 있지만, 일부러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은 채 혹은 뒤틀어 놓은 채 4초 안에 몇 개의 문을 돌파해야 한다는 시간 제한까지 두어 가며 급하게 혁명의 질주를 시작해 버린다(이때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총에 총알이 없다'는 사실이다. 총이 총으로 기능할 수 없는, 총이 총이 '아닌' 상태에서 혁명은 출발한다. 이는 그들이 거짓을 알고 진실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임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혁명이 출발부터 그들이 진짜 바라는 그 무언가가 '아닌' 상태에서 출발함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그들의 혁명이 정말 혁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 '꼬리칸에서 나가 앞칸으로 간다는 것'이 진정 그들의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지, 커티스 말대로 엔진에 다다라 윌포드를 만나면 무언가 변하긴 하는 것인지, 이 모든 것에 대해 자연스레 불안감을 심어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꼬리칸을 나섬으로써 맞닥뜨리게 되는 진실은 그들이 이전에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아이러니.

 

  그 뒤 혁명의 진행 역시 관객들이 기대하는 평범한 형태와는 많이 다르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관객들이 기대하는 리듬을 깨뜨려 가며, 지연시켜 가며, 스시를 먹는 장면이나 학교칸 장면이나 클럽 장면처럼 전혀 이질적인 분위기의 장면들까지 등장시켜 가며, 이야기가 시작부터 내포하고 있던 그 아이러니를 점차 증폭시켜 간다.

 

  그 일례로, 혁명 시도의 시작은 분명 '질주'였는데 4초 간의 돌파가 끝난 뒤로 그들은 좀처럼 '질주'하지 않는다. '못한다'가 아니다. 비록 중간중간 군대에 맞닥뜨리며 혈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런 순간들을 넘긴 뒤, 그들이 질주할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도 그들은 그리 열성적으로 질주하지 않는다(이는 '꼬리칸에서 머리칸으로 질주' 운운하며 호쾌한 액션이 가득한 영화가 될 거라 했던 봉준호 본인의 말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봉준호는 '괴물' 홍보 때도 '한강에서 괴물을 본 적이 있다'는 허풍을 곁들여 가며 괴수 블록버스터+가슴 따땃한 가족 드라마처럼 이야기한 바 있다. 원래 페이크 잘 먹이는 양반이다.). 그들은 오히려 온실칸, 수족관칸, 학교칸, 사우나칸, 클럽칸 등 열차의 곳곳을 '관광'하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서 영화 초반, 그들이 꼬리칸 탈출을 계획하는 부분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때 그들은 맨 처음의 질주를 위해 원통들을 모은 바 있는데, 그 원통은 누군가가 '아이를 재우기도' 했던 공간이다. 이들은 그런 원통을 타고 처음으로 꼬리칸을 나선다. 즉, 영화는 일부러 '관광'하는 듯 열차 내 풍경을 전시하는 장면들을 추가함으로써 이야기 안에 감돌고 있는 아이러니를 증폭시키는 동시에, 그들 자체가 세상에 처음 나선, 혹은 잠들었다 깨어난 '아이'와도 같은 상태임을 보여준다. 후에 커티스가 남궁민수에게 고백하듯 그들은 한때 짐승과도 같은 꼴로 전락한 바 있다. 그랬던 그들이 아이로 다시 태어나 꼬리칸을 나서는, 다시 말해, 열차라는 작은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에겐 열차의 칸칸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고 영화는 이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려 한다. 그들은 이제 불, 그 불에 의해 가공된 식량, 물, 교육, 문화 등 인류 문명의 흐름을 상징하는 듯한 열차칸들을 거슬러 오르며 진실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물 공급기 칸에 이르기 전, 마치 정예부대처럼 꼬리칸 사람들과 대치하는 이들은 눈과 귀를 막고 입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싸움의 진행 상황을 잘 파악하는 것은 물론 나중에는 눈을 가린 위에 적외선 감지기를 착용하기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눈과 귀를 가린 모습'은 차라리 은유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꼬리칸 사람들이 열차의 모든 것들을 새로이 '수용'하는 반면, 그들을 막는 이들은 시각적, 청각적 정보를 수용하는 눈과 귀를 닫고, '말을 내뱉는' 입과 '행동하는' 사지는 자유로이 두어 진실을 가린 채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임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 뿐 아니라 꼬리칸 사람들의 전진을 막는 이들은 대부분 그런 맹목성을 보이고 있다. 이를 드러내듯 엔진과 윌포드의 방에 가장 가까운 클럽 칸의 이들은 음악과 춤, 섹스와 마약이 주는 향락에 잔뜩 젖어 있으며, 학교칸의학생들 혹은 그 선생의 임신한 배, 꼬리칸 사람들을 막을 총을 숨긴 달걀들이 상징하듯 그들은 대를 물려 가며 맹목적으로 열차의 질서를 숭상하며 그 밖의 진실에는 눈을 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리칸 사람들은 진실을 향해 희생을 감내해 가면서까지 계속 나아간다. 그들을 막는 자들은 생선의 배를 갈라 그 피를 자신들의 도끼에 묻혀가면서 그들을 위협하지만, 그들은 '배가 갈린 채 피를 흘리는 생선들'이 되는 대신 자신들을 막는 자들을 물리치고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메이슨의 안내에 따라 오히려 스시를 먹는, '그 생선들을 먹는' 입장에 서며 나아가는 것이다(이때 스시바 장면에서 영화는 '스시'를 요리하는 '흑인', '열차란 체제 내에 묶인' 사람들이 '수족관에 갇혀 있던' 물고기들을 먹으며 창 너머 '고기들이 한 때 헤엄쳤을, 그러나 지금은 갈 수 없는' 얼어붙은 바다를 보는 모습 등으로 또다시 아이러니를 첨가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실은 초장에는 '끌려간 뒤 맛이 간 폴', '바퀴벌레로 만드는 단백질블록'처럼 자신들의 목적 의식을 오히려 강화하는 형태로 드러나지만, 후에는 '물이 머리칸에서 꼬리칸으로, 일방향으로만 공급된다는 사실', '끌려간 뒤 오히려 신수가 훤해진 바이올리니스트의 모습'처럼 조금씩 기대를 배반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영화는 아이러니와 불안을 안고 출발하더니 꼬리칸 사람들의 혁명 진행 과정을 아이러니와 불안이 증폭되어 가는 과정과 맞물리게 함으로써 그들이 '불편한 진실'에 도달해 간다는 사실을 구조 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윌포드를 만나게 된 커티스는 완전히 자신의 예상으로부터 벗어난 충격적인 진실을 듣게 된다. 열차 안의 모든 것들이, 심지어 혁명조차도 마치 인간의 몸의 요소들이 그러하듯 열차의 질서 아래 기능하고 있음을, 그가 존경하던 길리엄까지 윌포드와 함께 이를 위해 혁명을 조작해 왔음을 알게 된 것이다(윌포드는 지속적으로 빨간 메시지를 보내고 길리엄은 이를 바탕으로 혁명을 보다 직접적으로 조장해 왔다.). 애초에 길리엄이 자신의 몸 일부를 내어준 것조차 꼬리칸 내부의 질서를 위해 의도된 행위였다. 꼬리칸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열차, 그 중에서도 내의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길리엄은 자신의 몸의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했고(자신의 살을 떼어냄), 이로 인해 열차는 질서를 회복하고 길리엄은 자신의 살의 빈 자리에 열차를 구성하는 바로 그것, 고철을 붙여두어 몸의 질서를 되찾았다. 열차를 위한 지독한 자리바꾸기. 바로 이 점에서 길리엄은 윌포드와 접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어쩌면 둘의 협력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길리엄이 죽고 윌포드 자신도 늙어버린 상태에서, 윌포드는 열차의 질서를 구성하기 위한 총괄자 자리에 열차의 모든 곳을 지나쳐 온 커티스를 대신 앉히려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점을 품게 된다. 이 진실이 드러나는 부분은 그야말로 영화의 클라이막스랄 수 있는 부분인데, 영화는 왜 이 부분을 굳이 늘어뜨리는가? 영화가 이 부분의 리듬을 처지게 하는 것은 '실수'라기보다는 차라리 '의도적'으로 보인다. 클라이막스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윌포드의 문 앞에서, 커티스는 돌연 과거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몰아쳐야 할 부분에 갑자기 제동이 걸린다. 영화는 심지어 커티스가 줄줄이 과거사를 말하는 과정을 플래시백 등으로 '보여주는' 대신 그냥 '들려주기'만 하며 더욱더 리듬을 늘어뜨린다. 커티스가 윌포드를 만나서 진실을 듣게 되는 부분은 어떠한가? 이때도 영화는 윌포드의 일장연설을 단지 윌포드의 말로 '들려준다'. 영화의 이 '들려주는' 선택이 더욱 의도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두 번의 '들려주기' 사이에 끼어드는 한 번의 '보여주기'의 존재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보여주기'의 주인공은 바로 남궁민수이다.

 

  영화 속에서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의 존재는 매우 이질적이다. 그들의 첫 등장을 보자. 그들은 '꼬리칸도 머리칸도 아닌' 감옥칸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손잡이를 잡고 당기면 등장하는 새로운 공간 안에 '잠들어 있는' 상태이다.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서 나타난 듯한 등장. 그들의 과거나 출신 등이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다(요나가 열차 안에서 태어났다면 남궁민수의 아내이자 요나의 어머니인 존재 역시 같이 열차 안에 들어와 있을 텐데, 그녀는 심지어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열차를 나선 7인 중 이들을 가장 앞에서 이끌던 이가 이누이트족 여성이었음이 남궁민수에 의해 언급된다. 만약 그녀가 요나의 어머니라면 그녀 역시 '문을 여는' 존재, 그러나 실패한 존재였음이 드러나는 셈이다. 영화는 이에 대한 명확한 언급을 생략함으로써 남궁민수와 요나를 더욱더 '존재가 확실치 않은' 이질적인 존재로 만드는 동시에, 그들을 '실패'로부터 떨어뜨려 놓기도 한다. 한 편, 그들이 감옥칸에 오기 이전에 머리칸에 속해 있었는지 꼬리칸에 속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영화는 명확한 설명을 피한다. 사실 보안 설계까지 한 사람이 머리칸에 타지 않을 리도 없고, 요나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이누이트 여성도 머리칸에서 일하던 여성이라는 남궁민수의 언급이나 부녀가 매년 창밖의 풍경을 보아왔다는 점으로 보아 남궁민수 부녀는 머리칸 쪽에 있었다고 보는 게 이치에 맞을 것이다. 그러나 둘의 행색부터가 머리칸 출신이라는 걸 도저히 떠올리기 힘든 행색인데다, 꼬리칸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보고도 전혀 동요가 없다는 점, 또한 자신들이 옷에 걸치고 있는 것들, 크로놀, 말보로라이트와 성냥 외엔 소유물이 아무 것도 없는 양 행동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보자. 감옥칸으로 옮겨지면서 그 외의 모든 소유물과 객실도 압수당했다는 설명이 가능할 테지만, 어찌 되었든 영화는 그들을 감옥칸에서 출발케 함으로써 이 모든 뿌리들을 희석시켜 버렸고, 그로 인해 더욱 이들의 외부자로서의 위치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남궁민수는 극중에서 유일하게 통역 기기를 사용하는 인물이며, 그의 딸 요나는 열차 안에서 태어난 아이인데도 (그의 아버지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반면)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한다. 그레이, 챈 등 영어를 쓰지 못하는 인물들이 아예 입을 다물고 있는 것과도 상반되는 태도이다. 이 모든 것들이 그 두 인물을 다른 인물들과 구별시킨다. 그렇다면 이들은 영화 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 둘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그 힌트라고 할 수 있다.

 

  남궁민수는 열차의 보안 설계자로서 열차 내의 모든 문을 여는 능력을 지녔으며, 요나는 트레인 베이비로서 청각이 극도로 발달해 소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녀 열차의 각 칸을 막고 있는 문마다 그 너머의 상황을 간파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열차의 구조, 다시 말해 현 체제의 구조 자체를 꿰뚫어 보는 존재들이다. 이렇게 현 체제를 꿰뚫어 보는 그들은 크로놀 중독자 행세를 하며 크로놀을 모아, 열차 밖으로 통하는 문을 폭파시키려 한다. 또한 다른 이들이 모두 창밖 풍경에 눈이 부셔 고개를 돌리거나 혹은 그 풍경에서 '눈', '얼음', '죽음'만을 보는 반면, 그들만은 그 속에서 '눈과 얼음이 녹아가는' 것을, 생명의 희망을 본다. 심지어 예카테리나 다리를 건넌 뒤 터널에 들어가 열차가 어둠에 잠기고 꼬리칸 사람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챈이 불을 피운 성냥도 원래 남궁민수의 것이었다. 문 너머를 보고, 문을 열며, 희망을 보고, 불을 켜는 존재들. 그렇다. 그들은 마치 유대인들을 출애굽시킨 모세와도 같은 선각자인 것이다(남궁민수는 커티스에게 눈이 녹고 있다는 증거를 이야기하던 중 '이건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이야기를 도중에 마친다. 그가 보는 것은 그처럼 커티스와 같은 범인은 보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것이다. 이는 그의 이름이 성이 '남궁'인 '남궁민수'인데도 처음에는 커티스를 비롯 모든 인물들이 그를 '냄'으로 부르다가 남궁민수 자신이 손수 언급하는데도 결국 '남'이라고만 고칠 뿐 끝까지 '남궁'이 성임을 알지 못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범인이 감히 파악할 수 없는 것을 보는, 불가사의한 존재.). 표면적으로는 크로놀 중독 때문이지만, 사실 이들은 (근거 희박한 희망에 따라 길을 나선 7인과 달리) 현 체제를 꿰뚫어본 뒤 생명의 희망과 빛을 따라 열차 밖으로 문을 열 선각자들이기에 열차 안 세상에 대해 맹목적인 이들에 의해 감금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그 선각자로서 남궁민수가 '왜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야 하는지'를 커티스에게 설명하려 할 때, 비로소 '보여주기'가 등장한다.

 

  자, 그러면 아까 언급한 두 번의 '들려주기' 이야기로 돌아가자. 첫 들려주기 장면에서는 커티스가 과거 꼬리칸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두 번째 들려주기 장면에서는 윌포드가 열차 내의 질서에 대한 일장연설을 한다. 즉, 두 번의 들려주기 장면은 각각 '과거의 체재 내의 무질서'와 '현재의 체재 내의 질서'를 가리키고 있다. 전자의 경우, 후자에 의해 대체되었으므로 죽어버린 과거이다. 따라서 이것이 '보여주기'가 아닌 '들려주기'로만 전달되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간다.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어떤 것이 시각적으로 '보여진다'면 적어도 그 보여지는 순간만큼은 그것이 '살아있게' 된다. 때문에 죽어버린 시간은 보여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윌포드가 '현재의 체제 내의 질서'를 말하는 부분은 왜 '들려주기'로 전달되는 것인가? '현재의 체제 내의 질서' 역시 거짓이라는 것일까? 윌포드는 엔진이 영원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엔진은 슬슬 그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결함은 꼬리칸의 아이들을 통해 간신히 대체되고 있다. 만약 그 크기에 맞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면 엔진은 작동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이번에는 뒤늦게 총이 배급되었지만 후에 총알이 정말 동이 난다면, 그리고 꼬리칸 아이들의 차출 및 착취가 더욱 심해진다면, 이어질 혁명 시도들은 어쩌면 더 과격해질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 '엔진'은 버텨낼 수 있는가? 

 

  그와 별개로 현 체제의 질서가 위기에 빠졌음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존재가 바로 커티스이다. 그는 커티스가 윌포드와 길리엄 사이에서 약속된 바와 달리 물 공급칸에서 멈추지 않는다. 커티스가 물 공급칸에서 승리를 거둔 이후, 길리엄은 약속된 바를 지키려 커티스에게 더 나아가지 말라고 설득하지만 커티스는 이를 거부한다. 그러자 길리엄은 태도를 바꾸어, 엔진까지 다다르면 윌포드의 혀를 뽑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말을 듣지 말라 말한다. 이는 질서 유지의 한 축이었던 길리엄이 커티스의 존재로 인해 현 체제의 질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질서 유지자였으나 이제 그 질서를 의심하기 시작한 길리엄은 곧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 자체로 무질서가 되어버린 존재에게 처단당한다. 또한, 커티스가 물 공급칸을 넘는 순간에, 즉,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 그 시점에, 윌포드의 입이나 다름없던 존재 메이슨 역시 자신의 틀니를 빼며 현 체제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자신의 역할을 포기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커티스가 물 공급칸을 지나 윌포드가 있는 엔진까지 다다랐다는 점 자체가 이미 그 무엇보다 현 체제의 질서 유지가 불가능함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윌포드는 더더욱 커티스를 자신의 후임자로 삼아 질서 내로 포섭시키려 한 것이다.

 

  한 편, 커티스의 정반대 위치에 서서 마찬가지로 열차 내 질서의 불완전성을 드러내 보이는 인물이 있다. 영화 내에서는 그 이름이 제대로 언급되지 않는, 크레딧이나 IMDb를 통해 간신히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형 프랑코(Franco Elder)'이다(영화 내에서 칼이나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자가 바로 그이다.). 커티스의 동생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에드가'가 죽는 그 공간에서 그의 동생인 '동생 프랑코(Franco The Younger)'가 죽었다는 점에서 그가 커티스와 연결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커티스는 꼬리칸에서 온 자인 반면, 그는 윌포드의 명령을 받고 머리칸에서 내려온 자라는 점에서, 커티스는 열차 내 체제를 전복시키려 하고 그는 열차 내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는 커티스의 반대 편에 선 인물이다. 열차가 커브를 도는 순간, 커티스와 형 프랑코가 마주보는 창을 향해 총을 쏘며 대립하는 장면에서 이 점이 극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동생 프랑코'와 함께 등장해 꼬리칸 사람들에 맞설 때만 해도 그는 단지 그 수많은 군인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동생 프랑코'가 죽임을 당함으로써, 영화 내에선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크레딧에도 단지 '형 프랑코'로서 동생과 관계된 존재로 언급되는 그의 존재 자체는 '명확한 실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존재'로 뒤바뀌어 버린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동생의 죽음 이후로, 칼을 맞아도, 목이 졸려도, 총을 맞아도 죽지 않으며, 꼬리칸에서 온 사람들을 죽여대는 동시에 윌포드의 명령에 따르는 다른 군인들을 죽이기도 하는, 꼬리칸과 머리칸 그 어느 쪽에 속해 있다고도 말하기 힘든 존재로 묘사된다. 즉, 그는 윌포드의 명령을 받고 열차 내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움직이지만, 동시에 꼬리칸과 머리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 그들 모두를 죽이고 다니고 어떤 방법으로 좀체 죽지 않아 삶과 죽음의 질서 자체도 흔들어 놓는 무질서, 그것도 이 열차로 인해 발생한 무질서 그 자체인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커티스와 형 프랑코가 각각 꼬리칸과 머리칸이라는 정반대 위치에서 출발해 모두 열차 내 질서의 불완전성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현재의 체재 내의 질서'도 결국 필연적으로 그 종말을 내포하고 있음이 드러난다(이는 길리엄과 윌포드가 각각 꼬리칸과 머리칸이라는 정반대 위치에 머물며 열차 내 질서를 유지해 왔다는 것과 대칭을 이룬다. 머리칸에서 내려온, 윌포드의 명령을 따르는 듯하나 실상 그의 통제에서 벗어난 무질서인 형 프랑코가 꼬리칸의 질서 유지자인 길리엄을 처단하고, 꼬리칸에서 올라온, 길리엄의 영향으로 혁명을 시작했으나 그의 통제를 벗어나 엔진까지 거슬러 올라온 무질서의 증거인 커티스가 머리칸의 질서 유지자인 윌포드와 맞선다.). 즉, 커티스가 말하는 '과거의 체제 내의 무질서'와 마찬가지로 윌포드가 말하는 '현재의 체제 내의 질서'도 결국 죽어있는 시간의 이야기가 되므로 '들려주기'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죽어있는 '과거'와 '현재', 그 두 번의 '들려주기' 사이에 영화는 남궁민수가 열차 밖에서 희망을 본 순간들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윌포드, 길리엄, 형 프랑코, 커티스를 비롯한 머리칸, 꼬리칸의 모두가 그릇된 믿음과 예상, 거짓 아래서 체제의 유지 혹은 체제 내에서의 변혁만을 꿈꾸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모두 '죽은 시간'만을 바라보았다. 이때, 그 중간 지점인 감옥칸에서 마치 외부인처럼 등장한 남궁민수와 그 딸 요나만이 열차라는 현 체제 그 자체를 꿰뚫어보았고, 그 체제가 외면적 질서 아래 무질서, 나아가 붕괴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에 따라 남궁민수와 요나는 열차 안의 모든 문을 엶으로써 열차 내 모든 존재들이 그 계급과 무관하게 뒤섞이게 하는 동시에 현 체제의 모순이 그대로 밖으로 드러나게 하였고, 이제 열차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엶으로써 그들을 구원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모두 '들려주기' 안에서 박제된 형태로 제시되는 와중에 열차 밖의 '미래'야말로 비로소 '살아있는' 시간이며 그들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임을, 영화는 굳이 클라이막스를 늘어뜨림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인지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남궁민수와 요나는 한 편에서는 형 프랑코와 물리적으로 맞서고, 다른 한 편에서는 커티스로 하여금 열차의 결함을 감추려 부품으로 희생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함으로써 윌포드의 말에 반발하도록 한다. 즉, 그들은 각각 정반대에서 현실을 가리키고 있던 형 프랑코, 커티스 모두를 상대함으로써 '현재'에 맞서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크로놀 덩어리를 폭탄으로 만들어 열차 밖으로 향하는 문을 폭파시키려 하는데, 이때 클럽에서 크로놀에 취해있던 사람들 역시 그들을 제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크로놀이 '현실에 대한 맹목'이면서 동시에 '현실에서 미래로의 탈출'이기도 하다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이때 커티스가 비로소 요나 덕에 열차 밖을,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된다. 그는 요나에게 성냥을 건네고, 자신의 팔을 희생함으로써 타냐의 아들 티미를 구해낸다. 길리엄은 열차의 질서에 봉사하는 자였기에 자신의 신체의 일부인 팔을 잃고 대신 열차의 일부랄 수 있는 고철을 팔에 박았으나, 커티스는 자신의 잘린 팔을 그대로 긍정한다. 이제 미래를 바라보는 두 어른이 두 아이를 감싼다. 그리고 폭발과 함께 열차는 탈선하고 현 체제는 그대로 소멸해 버린다.

 

  현 체제가 소멸한 자리에서 이제 요나와 티미만이 열차 밖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부모 세대가 모두 사라진 자리에서 두 '남녀' 아이만 남았다는 점에서, 또한 머리칸에서도 꼬리칸에서도 지도자 역할을 하던 백인들(꼬리칸의 정신적 지주였던 길리엄이나 혁명을 가장 선봉에서 이끌던 커티스, 에드가도 모두 백인이었고, 머리칸의 리더인 윌포드나 그의 바로 아래에서 질서를 유지하려 한 메이슨, 형 프랑코, 분홍옷 여자 등도 모두 백인이었다.)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서 황인 소녀와 흑인 소년만 남았다는 점에서 이는 기존 체제가 완전히 소멸되고 새로운 미래가 열렸음을 온전히 증명하고 있다. 백인이 사라진 대신 그곳엔 순백의 설원이 펼쳐져 있으며, 순백의 북극곰이 남궁민수와 요나가 보았던 생명의 희망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미래'만큼은 결코 죽어버린 시간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더 넓은 세상에서 이제 그들은 새로운 사회를 열게 되리라.

 

  봉준호는 영화의 시작부터 아이러니와 불안감을 내포하고 시작해,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묘한 리듬감으로 영화를 진행시킴으로써 이를 증폭시키더니, 결국 클라이막스에서 이를 응집시켜 터뜨리며 그 결말에 이른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봉준호는 꼬리칸, 머리칸 모두 거짓과 맹목 아래 각자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해 왔음을, 열차라는 현 체제는 필연적으로 한계에 이를 것임을 서사와 형식의 온전한 일치 아래 드러내 보이고는, 이처럼 기존의 체제와 세계관이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이른 경우 체제 자체의,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계관 자체의 소멸과 새로운 출발이라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결말로 '너무나 당연하게' 향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이를 봉준호의 실수 혹은 부진이라고 보겠지만, 나는 이 의도된 듯한 균열을 봉준호의 다음을 위한 도약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영화가 봉준호의 최고작이라고 말하기까지는 조금 머뭇거리게 되는 감이 있지만, 적어도 봉준호가 뒤로 한 발 물러서지는 않았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이제 여기서 더 나아갈 그의 다음 영화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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