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국열차(Snowpiercer, 2013)

2013.08.0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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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포스터.
100칸의 열차 세계로 좁혀진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

 

 

 

설국열차(Snowpiercer, 2013)

 

* 감상이므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안 본 분들은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소설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 바랍니다.

 

 

 

 설국열차가 개봉하게 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봉준호 감독이 2005년 한 동네 만화방에서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를 우연히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침 기차 관련 영화를 하고 싶었던 봉준호 감독에게 [설국열차]는 매혹적인 소재로 보였을 것이다. 따라서, 원작이라기보다는 원안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설국열차]의 만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원작 1[탈주자]에서 주인공 역시 꼬리칸부터 맨 앞칸까지 간 유일한 사람이다. 영화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 커티스의 역할은 바로 엔진실을 이어받는 제안이다. 1부의 엔딩은 주인공이 엔진을 이어 받는 것으로 긴 질주의 종착역이 바로 영원임을 말하면서 끝난다. 이 기차라는 폐쇄된 세계가 영원히 이어지며 그것을 주인공이 유지시키는 역할이라는 것은 암울한 결말이다. 희망은 없고 변화도 없다. 개혁이나 혁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엔진은 영원할지라도 기계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기차가 멈출 것을 알면서도 인류를 보존하기 위해 주인공은 허무하고 무의미한 듯한 엔진 관리를 하며 기차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미 같이 출발했던 동반자 여성은 죽었고 꼬리칸은 떼어진 상태로 말이다. 이렇듯 원작 만화의 1부는 영화와 달리 어둡게 막을 내린다. 2부와 3부 역시 마찬가지로 암울하기 짝이 없다. 원작의 주된 정서는 삶의 무모함, 세계의 무자비한 냉혹성, 고독, 절망, 부조리 등이다. 원작이 인간의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참혹하기 짝이 없다. 끝없는 허무의 운명에 얽매인 나약한 인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만약,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시도를 했다면, 특히 결말을 닮았다면 대중적인 상업 영화로 성립되기는 극히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결말이 원작과 달라지는 것은 필수였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원작의 결말을 파괴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흥미로운 각색으로 느껴졌다.

 원작에서 앞칸에 있는 자들은 대마초, 비프쉬와 섹스를 탐닉하며 허무를 잊고 산다. 영화에서는 크로놀로 함축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크로놀은 이 환영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물리적인 탈출구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남궁 민수는 크로놀 중독자로 그려지지만, 후반부에 크로놀 중독이 목적이 아니라, 크로놀로 폭탄을 만들어서 탈출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남궁 민수는 문을 여는 자로, 이 폐쇄된 영화의 핵심 인물인데, 기차를 일직선으로 열 뿐만 아니라 기차의 옆문을 여는 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커티스의 비극적 이야기를 듣고도 엔진칸의 문을 여는 것을 거절하며 자기가 열고 싶은 문은, 열어야 하는 문은 바깥으로 향하는 문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방향성이 다른 것이다. 직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옆을 바라볼 수 있는 것. 다들 바깥을 이미 죽은 세계로 상정한 상황에서 남궁 민수만이 끊임없이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십 팔년 동안 바깥만을 그려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누이트가 탈출했을 때, 그 역시 그 꾀임에 넘어갈 뻔했을지도 모르며, 지켜보기로 결심한 뒤에도 이누이트처럼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유지한다. 7인의 반란자 중에 요나의 어머니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롭다. 남궁 민수는 당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까지 세세하게 말하는데,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요나는 어머니의 실패와 아버지의 재도전에 의해 드디어 바깥의 땅을 디디게 된다. 기차 안에서 흙이 뭔지도 모르는 부분은 SF의 클리셰 중 하나인데,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이전 문물을 모르는 것이나, 혹은 우주선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가 대지가 뭔지 흙이 뭔지 바다가 뭔지 모르는 그 특유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기차는 인류를 말하는 동시에 세대우주선을 떠올리게 한다.(마지막 담배 같은 경우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에서 이전 문명의 마지막 물건들을 떠올리게 하며, 말보로 라이트야! 라고 감탄하는 부분도 이런 유형의 재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오타가키 야스오의 롱 피스 太田垣康男ロング??http://waterlotus.egloos.com/3421987 가 떠올라서 재미있기도 했다.)

 먹이가 없어서 인류끼리 서로 죽이고 먹은 꼬리칸의 이야기는, SF에서 노아의 방주 같은 거대한 우주선을 만들어 몇 세대가 지나도록 우주 안의 생태계에서 살아가면서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세대우주선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배명훈의 장편 SF 신의 궤도에서도 우주선의 고장으로 인류가 우주선 안에서 서로를 죽이며 지옥을 만들어내고 거의 전멸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때는 냉동장치 이상으로 깨어난 인류가 제한된 식량과 공기를 가지고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을 깨닫고 참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세대우주선에서는 세월이 지나 흔히 자신들이 우주선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정도가 되기도 한다. 이런 세대우주선에는 과학 기술이 어느새 잊히고 우주선 자체는 종교가 되어 신앙으로 자리 잡는데, 이 영화에서 기차는 역시 지구를 계속 움직이는 세대우주선과 유사하다. 실제 원작에서도 이것은 기차가 아니라 우주선 안이며 자신들은 우주를 떠돌고 있다고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세대우주선을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당연한 것이다. 원작에서도 성스러운 기계로 불리는 핵심 소재는 영화에서도 엔진은 계속 강조되며, 엔진을 조정하는 기차의 주인 윌포드를 신처럼 떠받든다. 그러나 막상 커티스가 윌포드를 만났을 때는, 말로 이 시스템을 유지시키라고 현혹하는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며, 개성이나 자아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모든 게 시스템 속 안에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유독 튀는 것은 남궁 민수와 남궁 요나인데, 이 둘은 한국 배우가 맡아서만이 아니라, 한국어를 해서만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기차에서 태어나 자란 남궁 요나는 영어를 하면서도 기차 내부 환경에 녹아들지 못하고 신비한 소녀라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기차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 소녀가 결국에는 영화 마지막에 처음 발을 디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 남궁 민수와 함께 다른 사람들이 오직 기차만을 생각할 때, 기차가 세계 전체라고 생각하는 동안 바깥을 보고, 바깥만 궁금해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남궁 민수와 남궁 요나는 영화 속에서 이질적인 존재들이며 결코 화합할 수가 없다. 결국은 기차를 전복할 운명의 존재들이며, 이를 실행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자체를 날려버리는데, 이는 한 시대의 마감이며,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또한, 세대우주선을 다룬 작품들에서 엄청난 확률을 뚫고 인류가 살 행성을 발견해 거의 맨 몸으로 착륙하는 전통적인 클리셰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에 있다. 원작과 결말이 차이가 나는 부분, 균열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이 부녀이며, 원작과 같은 세계관에 갑자기 다른 평행우주의 존재들이 침입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예정된 결말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만화에서는 꼬리칸을 떼어버리는 작업을 하는데, 영화에서는 인구수를 조절하는 것으로 바뀐다. 이는 폐쇄되고 순환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만화에서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으로 설국열차의 한계를 암시하고, 꼬리칸을 떼어버림으로써 시간을 더 얻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아이들이 부품을 대신하면서 설국열차의 한계를 보여준다.

어떻게 기차가 전세계를 달리고 유지되는가, 원리나 설정에 관한 물음은 이미 원작 만화에 제시되어야 하고 끝난 문제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에서 원작에서 설명 할 수 없는, 기본 바탕을 영화에서 해결해주기를 바란다면 잘못된 것이다. 영화는 원작의 설정들을 설명해주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미 제시된 설정을 가지고 만든 영화에다가 치밀한 과학적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환상적인 색채, 영화적 과잉을 택함으로써 원작 만화부터 제시되어 있던 핍진성 문제를 돌파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의도를 무시하고 연출과 상관없이 여전히 현실적인 렌즈로 들여다볼 때 기괴한 세계이며, 성립될 수 없는 설정들로 몰입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생략과 과잉으로 일부러 다른 필터로 보게 하려고 한 관점 역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인물이 정형화 되어 있다는 점 역시 기차 시스템을 구현하는 필요 조건이었다는 것을 배제한 채 내리는 판단인데 영화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게임 스테이지처럼 전형적 인물을 배치하고 도구적 기능으로 사용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단점이 아니라 작품 구조 내의 필수 요소이자 시스템 그 자체이며 오히려 도구적이기 때문에 인상적인 것이다.(한편으로 이 세계가 임장감을 주지 못 하고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주목할 지점이다. 각 칸이 일종의 게임 스테이지처럼 느껴지며 전체적으로 게임적이기도 한데 이는 현실이라기 보다는 가상현실처럼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실재감이 떨어진다. 이들이 리얼월드가 아니라 버츄얼월드에 스스로를 감금하고 있으며 거기에 속박되어버렸음을 뜻한다. 이 영화의 서사가 전반적으로 매트릭스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것도 그 점을 상기시킨다.)

 거대로봇 영화에서 아무리 여러 설정을 덧붙인다고 해도 사족에 불과할 뿐, 거대로봇을 합리화할 수 없듯이, 빙하기에 끝없이 질주하는 기차는 거대로봇과 마찬가지로 합리화할 수 없는 설정이다. 설정에 대해 하나씩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며, 스스로 피로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SF 작품에서는 정밀한 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하드SF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하나의 개념을 제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간다. [설국 열차] 역시 세대우주선과 유사한 빙하기의 기차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때 빙하기에 절대 멈추지 않고 달리는 기차라는 것은 처음에 제시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엔진의 원리나 작동 방식, 재질 등이 구체적인 핵심이 아닌 것이다. 처음에 제시되는 개념을 바탕으로, 그 개념 위에서 어떤 인간의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인가가 주안점이다. 테드 창의 단편 지옥은 신의 부재에서 세계에 천사들이 직접 자연재해처럼 출몰하는 세상을 처음의 개념으로 제시했듯이, 혹은 SF에서 타임 머신이나 평행 우주의 개념이 처음부터 제시되듯이 말이다.

 그런 면에서 SF의 정수는 단편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디어나 개념이 SF의 핵심이라면, [설국열차]의 기본 발상 역시 단편에 걸맞는 이야기 그릇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설원을 끊임없이 질주하는 기차의 이미지. 혼자서 얼어붙은 죽어버린 행성에서 단 한 대의 기차만이 영원히 달린다는 이미지는 매혹적이다. 기차는 곧 지구이기도 하다. 인류가 사는 이 지구 바깥은 우주복이 없으면 바로 얼어붙는 차디찬 공간이며, 깜깜하고 다 죽어 있다. 인류는 지구에 갇혀 살 수밖에 없으며 그 안에서 동족상잔을 벌인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움직이는 감옥 안에 갇혀 끊임없이 어디론가로 간다. 그런데 그 가는 것은 기차가 지구를 반복해서 돌듯이, 지구가 우주를 도는 것 역시 순환적이며 영원하다. 지구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이런 인식이 우주적 공포감까지 갖게 한다. 이런 인식 하에서 윌포드의 제안은 너무나 현실적으로 들리게 된다. 시스템에 갇힐 수밖에 없다면 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한계이지 않은가. 그것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면. 장편으로 확장시키기에는 무대나 원리가 대중에게 납득시키기 어려운 요소가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원작과 달리 등장인물을 확대하고,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을 바꿈으로써 장편으로 확장하고 영상화에 성공했다.

 영화는 시종일관 시스템과 공존, 균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균형은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폐쇄된 수족관에서 물고기들의 숫자도 균형을 이루어야 버틸 수 있고, 인류의 숫자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 균형 안에서 꼬리칸의 존재 이유가 성립된다. 균형을 강조하기 때문에 원작에서 떼어버리고 엔진의 부하를 죽이는 역할로 사라지는 꼬리칸은 영화에서는 연주가나 요리사 등으로 인원을 차출해가며, 무엇보다도 엔진의 살아있는 부품 조달처로 쓰인다. 기차가 계속 달리기 위해서는 꼬리칸의 생태계가 필수적이다.(아니면 다른 칸에서 희생을 해야 하나, 그들은 18년간 현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 했으며, 앞으로도 그러하다.) 심지어는 부품뿐만 아니라 엔진을 관리하는 사람마저 꼬리칸에서 영입하기 위해서 커티스에게 제안한다. 이 균형의 문제 제기. SF 단편 중에는 멸망을 앞두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매 시간 투표로 한 명씩을 죽이는 단편도 있고, SF 명예의 전당1권에 실린 유명한 차가운 방정식은 우주선에 몰래 탑승한 어린 소녀가 아무런 죄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미리 딱 맞게 설정된 모든 상황에 의해 변수인 소녀는 차가운 우주 바깥으로 버려져 죽어야만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설국열차]는 균형에 관해서는 이 [차가운 방정식]을 장편으로 확대한 것으로 읽히기도 하는데,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꼬리칸에 있는 사람들을 정확하게 숫자로만 판단하고 죽이는 설정 등에서 그러하다. 차가운 방정식의 논리로 무장한 윌포드는 타당해 보이며, 커티스 역시 반박을 전혀 하지 못한다.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선과 악의 문제도 아니다. 생존에 관한 방정식을 내자, 살기 위해 아기까지 먹은 적이 있는 커티스는 할 말을 잃고 만다. 그는 자기 팔을 내어본 적도 없는 자다. 지도자가 되기를 계속 거부한 것은 그러한 탓이다. 자신에게는 윌리엄과 같은 놀라운 선의와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부품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그것도 자신이 잘 아는 티미라는 것은 중요하다. 사실상 티미를 구하기 위해서 타냐가 목숨을 잃은 것을 목격했던 커티스는 균형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균형이 깨지는 순간 기차는 끝으로 치닫는다. 균형은 조금만 깨져도 파국을 초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요나가 크로놀로 문을 날려버리는 순간, 세계가 붕괴한다. 세계는 알처럼 깨어지고, 나오는 것은 오직 기차에서 태어난 아이들뿐이다. 어른들은 싸우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아이들을 껴안고 보호하며 희생한다. 주인공은 예전에는 잘라내지 못했던 팔을 티미를 구하기 위해 잃는다. 그로써 주인공은 완결된다. 그 뒤에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이미 자기를 스스로 구원했다. 이런 과정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어른의 희생이자, 다른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할 의례이기도 하다.

 모든 인류가 얼어서 죽고, 우연히 기차에 탄 사람들만이 살아남았다는 설정은 마치 그들의 삶이 진짜가 아니라 사후세계처럼 보이게도 한다. 이들은 죽어버린 지구에 남아버린 유일한 인류이며, 생존자들이고, 그러면서도 기차가 멈추면 죽는 시한부 인생이며, 혹은 이미 죽어버린 유령들이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던 일까지 벌어졌던 지옥 같은 꼬리칸에서 탈출해서 칸을 넘어갈수록 그들은 마치 꿈과 같던, 이전과 유사한 세상을 살면서 허무함에 빠져 약에 취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러면 도리어 묻게 된다. 과연 꼬리칸 사람들이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을까? 아니면 앞 칸에 사는 사람들이었을까? 앞칸으로 갈수록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꿈결처럼 연출한 장면들은 모든 게 진짜가 아니라 허구처럼 보이게 만들며, 이들의 삶이 살아있으면서도 살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 한다. 마침내 미쳐서 엔진칸 앞으로 돌진하는 앞칸 사람들의 모습은 좀비를 연상케 한다. 꼬리칸 사람들의 투쟁이나 혁명이 공감이 가고 응원하게 만들었던 건 그들이 삶이 있고, 살아있기 때문에, 동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반대로 앞칸 사람들이 약에 취하고 춤을 추며 놀다가 미쳐서 엔진칸까지 가는 모습은 어떤 공감대도 들지 않고 살아있는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는데, 마치 움직이는 마네킹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엔진칸의 경계에서 크로놀이 터진 것은, 이 가짜 세계, 거짓된 세계가 폭발하고 진짜 세계로 나아가는 진정한 돌파처럼 보인다. 그만큼 앞칸은 마치 놀이시설 속처럼 과장되게 꾸며진 환상적 공간들이었다. 운 좋게 이 호화 기차에 탄 사람들은 그 삶을 18년 동안 동결시켰다. 세계가 얼어붙은 시점에서 그들의 삶도 같이 얼어버렸다. 이미 대부분의 인류가 죽어서 없는데도, 그들은 운 좋게 삶을 이어가도, 남궁 민수를 제외하고 아무도 바깥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윌포드도 바깥의 가능성은 단 한마디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바깥이 영원하리라 믿는다. 기차가 영원하리라 믿는 것처럼. 기차가 가는 동력은 그런 인간의 거짓된 믿음인지도 모른다. 이 삶이 영원하리라는 믿음.

 진짜 삶은, 거짓된 안위 속에 머무르고, 계속 안주하려는 것이 아니라, 설사 희생이 있더라도, 그것을 감내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 역사의 순환은 계속 이러한 인식 속에서 변화하고 인류가 이어져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차는 폭발과 함께 드디어 정해진 궤도에서 탈선한다. 일직선의 세상과 일직선의 궤도, 일직선의 삶, 일직선의 계급, 모든 게 끝난다. 설원처럼 새하얀 백지 상태로 세계가 리셋된다. 혹은 벽을 부수고 초월한다. 기차로 이루어진 세계는 직선 밖에 가능하지 않은 2차원의 세계다. 그러나 기차가 전복되는 순간은 세계가 전복되는 순간이며, 이제 인류는 면으로 이루어져 어디로든 퍼져 나갈 수 있는 3차원의 세계에 다수의 희생을 겪고 도달한다. 2차원의 세계에서는 계급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고, 각자 도구적 기능밖에 할 수 없었던 인류가 다시 3차원의 세계에 복귀한 것이다. 한편, 요나와 티미는 2차원의 세계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로, 한 번도 3차원 세계를 겪어본 적이 없으며 신인류로써 세계의 전이를 겪는데, 이 간극이 충격과 경이감을 이들에게 심어준다. 처음 땅을 딛는 순간은, 우리가 땅을 밟는 것과도 예전에 땅에서 살았던 인류가 밟는 것과도 전혀 다른 것이다. 이들은 그야말로 처음 우주로 나간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계에 온 몸이 부딪치는 것이다.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차원이 전이하고, 이로써 인식의 확장에 이르는 요나의 머릿속을 상상해보면, 아득해진다. 이는 SF 장르가 추구하는 사고의 확장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영화는 독립적인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여 보여준다. 실제로 새로운 빙하기가 당도해 우연히 기차가 세계가 되어버린 인류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인류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며,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삶을 우화로 받아들이면 절반 혹은 삼 분의 일만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다양한 해석 놀이와 함께 독립적인 허구의 세계를 대하는 자세 역시 필요하다. 이것은 또 다른 세계의 우리와 비슷한 인간들의 참혹한 투쟁기며, 그들의 결말이고 해답이다. 원치 않았으나 움직이는 기차에 갇혀버린 세계의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영화를 감상해야 한다. 기차가 세계라면, 기차를 부술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아무도 하지 못하지만, 바깥을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바깥에 갈 수 있었던 요나만이 문을 부술 수 있었다.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면 커티스는 결국 요나와 민수를 다시 감옥에 가두고 이전의 시스템을 가동할지도 모른다. 바깥이 안전하다는 것이 기적으로 생각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세계의 상식이 아니라 그쪽 세상에서는 바깥은 죽음 그 자체이다. 기차를 멈추고 옆문을 여는 행위는 미친 행위이다. 핵폭탄의 버튼을 누르는 것과도 같다. 미약한 희망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혹은 자기가 아닌 후세에게 다른 삶을 물려주기 위해서. 팔을 자르는 데 바깥을 이용할 정도로 그들은 이미 바깥을 도구로 사용할 뿐, 연구할 대상으로 보지도 않는다. 남궁 민수만이 꿈을 쫓는다. 기차 안에서 요나를 제외하고 누구도 믿지 않을 꿈이다. 기차가 세계에 처박히는 순간은, 새로운 세계의 탄생이자, 그들이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세계의 베일이 벗겨진다. SF 작가 김보영의 [땅 밑에]에서 땅 밑으로 계속 내려가는 주인공이 죽음의 위기를 넘어 마침내 세계의 진상을 마주하고 독자에게 경이감을 전달한다. SF 작가 테드 창의 바빌론의 탑에서 바벨탑을 쌓던 인부들은 하늘을 막고 있는 천장을 깨트리고, 거대한 물살에 휩쓸린다. 죽음의 위기, 물살처럼 영화는 폭발과 함께 설원 속에 즉 맨몸으로 부딪치게 된다. 그러자 드러난 세계의 비밀. 이 비밀이 이들에게 얼마나 인식의 전환이 될 충격일 것인가. 앞으로 세계는 어떻게 되는가. 기차의 유산은 어떻게 이용될 것이며, 인류의 삶은 북극 같은 지구에서 이누이트와 같은 삶을 시작할 것인가. 과연 기차의 삶을 부수고 뛰쳐나간 인류 혹은 아이들은 이제 성장할 시간과 마주한다. 진짜 삶에 맨몸을 부딪친다. 더 이상 보호해주는 기차의 유리창은 없다. 영화 속에서 총으로 서로의 유리창을 겨누듯, 금이 가던 유리창은 마침내 산산조각 나고 의미를 잃는다. 유리창 너머에 보여지는 세계는 그들 스스로 교육해 왔던 죽음만이 아니다. 마지막을 장식한 곰은 진짜 삶을 보여준다. 먹이를 잡고 추위를 견디며 땅을 디디는 삶이 존재함을 말해 준다. 이 장면에서 세계의 구조가 드러나면서 관객은 설국열차는 결국 환상 속에 갇혀 있는 열차였음을 깨닫는다. 설국열차는 욕망이 무한히 지연되는 공간이었다. 욕망은 끊임없이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순환하며 결핍을 재생산했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SF 조나단 호그의 불쾌한 직업 The Un-pleasant Profession of Jonathan Hoag에서 내부와 외부 사이의 연속성을 상실시키는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물질화된 자동차의 창유리였다면, 설국열차에서는 기차의 몸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기차 안의 현실과 외부의 단절. 기차 안의 현실에서 느껴지는 안락감은 외부의 현실을 비실재적인 곳으로 속여버리지만, 실상은 반전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의 교육은 오래된 것이었고, 바꾸지 않은 채 그 삶을 지키려고만 했다. 하지만 성장통처럼 기차가 부서지고 드러난 세계의 속살은 북극곰이 돌아다닐 정도의 생태계이다. 윌포드가 추구하는 균형으로 유지되던 세계는 균열을 만들어내는 변수(남궁 민수와 요나)로 전복되고, 세계가 개혁된다, 지젝의 불균형은 경계를 파괴하고 외부로 하여금 내부를 삼키도록 할 때에만 폐기될 수 있다.”는 말처럼 설국열차는 균형을 가장한 불균형이었으며, 이는 외부 세계(설원)가 눈사태로 내부(기차)를 집어 삼키자 폐기될 수 있었다.

 이제 인간은 다시 원초적 삶을 선택했다. 인간의 의지는 닫혀 있는 환상 속 기차 속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차가 없더라도 삶은 계속 된다. 그것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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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영화] 스타 트렉 다크니스 Star Trek: Into Darkness [3] [380] Q 2013.06.12 9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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