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무 이른 농담, [방가? 방가!]

2010.09.19 17:22

taijae 조회 수:4184


영화 [방가? 방가!]를 보면서 미국 시트콤 ‘디 오피스(The Office)'가 떠올랐다. 시트콤의 주축인 마이클 지점장(스티브 카렐)은 늘 남에게 상처가 될 만한 인종/성/외모 차별적 농담을 아끼지 않는 캐릭터다. 그런 그도 아랍계 사람들에 대한 농담에 대해서는 이런 말을 했다.


“(그들에 대해 농담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습니다.(I just thought too soon.)"


어떤 주제에 대한 농담을 정말 농담으로 받아들이려면 그 사회는 이미 그것을 농담으로 받아 들일만큼 충분히 성숙한 사회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그냥 특정인들에 대한 조롱과 경멸 이상이 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이클 지점장의 농담에 반응하는 사무실 직원들의 황당한 표정 속에는, 미국 사회가 수많은 토론과 쟁점화를 통해 구축한 표면적인 윤리적 기준들이 발견된다.  


다시 [방가? 방가!]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이 영화는 마이클의 말처럼 너무 이른 농담이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무겁지 않게 코미디로 풀어보고자 했다는 감독의 말은 허탈하게 다가올 뿐이다. 이 영화는 정말 단순히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영화인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너무 무례하거나 무감각 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동남아시아 계열 사람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방태식(김인권)은 바로 그 외모 때문에 취직이 안된다. 혹은, 취직이 됐으나 외모 때문에 불리함을 겪는다. 결국 그 인물이 찾아낸 해결책은 정말 부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인척 하면서 공장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모든 코미디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들이대며 분위기를 깰 생각은 아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와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에는 그것이 필요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도 조금씩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은 심각할 정도로 침해되고 있는 상황이고, 반면 그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 상황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부분만 지적해 보자. 먼저 이 영화의 골조를 이루는 몇 가지 줄기 중 하나인 방태식과 베트남에서 온 여성 장미(신현빈)의 이야기다. 장미는 처음엔 방태식에게 경멸감을 표시한다. 방태식의 실수로 장미의 바지가 벗겨지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리는 방식도 불쾌하다.) 


방태식이 미리 자신의 친구와 짜고 단속반에게서 장미를 구해내며 둘의 관계는 반전을 맞는다. 장미는 방태식의 마음은 고맙게 생각하지만 자신은 한국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며 방태식에게도 한국여자를 찾으라고 말한다. 이 후 방태식은 몇 번이나 장미에게 사실 자신은 한국 사람이었다고 말하려 하지만 몇 번의 우연이 겹치면서 결국 고백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방태식이 사실은 한국 사람이었고, 한국 사람인걸 밝히기만 하면 둘의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이 이야기 구도가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이 기묘한 역설은 오히려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의 계급적 질서만 공고히 할 뿐이다. 도대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만으로 ‘백마탄 왕자님’이 되어 버리는 이 역겨운 우월의식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감독이 의도한 웃음의 원천인가? 


더 황당한 건 이 영화의 결말이다. 방태식과 그의 친구 용철(김정태)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여권과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주겠다며 500만원을 가져오라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관리자의 강요에 의해 야근까지 하며 몇 년 동안 모은 돈을 이들에게 가져다 주지만, 이들은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도망간다. 


심지어 용철이 외국인들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방태식이 ‘동냥은 못줘도 쪽박은 깨는거 아니라고 했다’며 다시 돌아간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깨진 쪽박을 너무나도 안일하고 진부한 방식으로 다시 붙인다. 외국인 노래자랑을 위해 다같이 연습했던 한국 트로트 가요 ‘찬찬찬’을 외국인들이 철창 안에서 부르는 순간, 모든 갈등은 갑자기 해결 국면으로 전진한다. 


이건 그냥 가해자의 화해 판타지다. 정말 그 상황에서 방태식과 용철을 용서 할 수 있는가? 자신들의 돈을 사기쳐서 도망간 것도 모자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까지 한 사람들을 그렇게 쉽게 용서 할 수 있는가? 피해자는 생각도 않고 있는데 가해자가 만들어낸 이런 판타지를 보며 감동적이라고 느낀다면,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무례하거나 무감각 한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일본 사람들이 일제시대 영화를 찍으면서 조선 사람들이 아무 맥락없이 성급하게, 가해자인 일본사람들에게 화해와 포용의 제스쳐를 취하는 결말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숨긴 일본인 남자가 조선인 여자에게 선택 받기 위해 자신이 사실은 일본인이였다는 말을 하려다 실패하는 코미디를 본다면?


그밖에도 수없이 많다. 단순하고 피상적으로 표현된 단속반과 이주노동자들의 관계. 도대체 왜 외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삑-삑-” 호르라기가 불리고 체포 되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중간 과정이 생략된 거라면 그것을 생략한 이유는 무엇인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적석용)은 이주노동자 라자의 익숙치 않은 긴 이름을 듣고 왜 놀라는가? 그는 그런 이름들을 직업적으로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사람 아닌가? 심지어 이 영화는 이주노동자의 시위까지도 맥락없이 희화화 시킨다. 또, 현실의 이주노동자 임금 착취라는 구조적 문제는 영화 속에선 특정 관리자의 부패문제로 단순화 된다. 


정치적 소수자에 대한 코미디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다만 좀 더 엄격한 정치적 올바름과 진지한 접근이 필요할 뿐이다. 이 영화는 착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내적인 논리는 현실의 폭력적인 구조를 답습하거나 철저히 외면한다. 그냥 웃기엔 그 무례와 무감각이 너무 불편하다.


2007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 화재가 나 10명의 이주노동자가 죽고 17명이 중상을 입었다. 불이 난 철창 안에 갇힌 이주노동자들은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결국 철창은 열리지 않았다. (사)'이주민과함께'(옛 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는 이 사건을 ‘여수 참사’라고 규정하고 그것은 “학살”이었다고 말했다. 그들이 이 영화를 보며 웃고 있는 우리들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정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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