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那些年, 我們一起追的女孩” (그 시절,우리가 다 같이 좋아했던 여자아이)의 원작은 대만의 유명 작가 九把刀 (구바도) 의 동명 자전 소설입니다. 구바도는 1978년 생으로 2000년 초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 10여 년 동안 60편 넘는 소설을 썼다고 중국어 위키에 나와있네요. 거의 두 세 달에 한편 꼴로 다작을 한 셈인데 대만 서점에 가 보면 이 사람의 전집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주르륵 꽂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원작 소설밖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다른 책들의 표지들만 쓱 봐도 판타지, SF, 로맨스 등 여러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걸 눈치 챌 수 있더군요.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데뷔하여 어느 정도의 판매고를 달성한 작가들이 (작품성과는 별개로) 대부분 한 장르에 특화된 작품들을 써내는 것과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 작품성에 대해서는, 인터넷으로 데뷔한 작가인데다 다작에,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는 점등이 왠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겠습니다만 여러 모로 재주 있는 사람 같습니다. 왜냐면 이 영화의 감독이 바로 원작 소설 작가 자신이거든요. 영화는 작년 여름에 개봉해서 지난 십 몇 년간 썰렁했던 대만 영화계에서 “海角七號”(해각 7호)와 더불어 오랜만에 히트친 자국 영화로 화제가 된데다 당연히 중국어권 나라들- 중국, 싱가폴, 홍콩, 말레이시아 등등- 에도 차례차례 소개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남자주연을 맡은 柯震東 (가진동) 은 2012년 금마장 신인상을 받았고 주제곡인 那些年 (그 시절)을 부른 대륙 중국 출신의 가수 湖夏 (호하)까지 덩달아 인기가 높아졌고요.



(영화 주제곡 "那些年" 공식 뮤비는 아니라 좀 소란스럽지만 이쪽이 영화의 진짜 분위기에 가까운 듯 ...)


 영화의 내용은 제목과 포스터에서 연상되는 것 그대로 입니다. 십대 시절의 추억 돌아보기. 남녀공학 고등학교의 말썽꾸러기 남자 고등학생들이 모범생 여자아이 한 명을 좋아하는데, 주인공 격인 남자 고등학생- 柯景騰 (가경등)- 은 수업시간에 말썽을 부리다가 같은 반 모범생 – 沈佳宜(심가의)-앞으로 자리가 옮겨지게 됩니다. 이게 꽤 효과를 보아서 (좁은 교실에서도 자리 재배치 한번에 반의 분위기가 물갈이 되기도 하죠. 물론 오래 가진 못하지만) 가경등은 공부도 그럭저럭 열심히 하게 되고 심가의랑 친해지면서 사귀기 직전까지 가는 듯싶다가 각각 다른 대학에 가게 되고 데이트 비슷한 걸 하다 사소한 일로 싸우고 결국 끝까지 좋은 친구로 남는다, 는 뻔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주제는 당연히 “ 그 시절” 에 대한 돌아보기인데요, 이것은 배경인 대만의 고등학교 교실과 대학교 기숙사, 그리고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이어지는 시대 배경이 구형 핸드폰이나 당시 유행가 등으로 꼼꼼하고 “예쁘게” 재현되어 있어서 그 시절 중고등학교를 다닌 동아시아권 관객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만 합니다. (이제 갓 스무살 남짓한 배우들과 같은 세대라면 핸드폰이 드물던 “그 시절” 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조금 어색할 것 같습니다만) 



         재미있는 건 이 영화에서 너무나도 밝고 예쁘게 묘사된 “그 시절”의 추억들과 더불어 한창 나이의 남자 고등학생/대학생들이 몇 명씩 등장하는 영화다운 성적 망상과 여기서 비롯한 코믹한 장면들이 툭툭 나온는 것입니다 . 저는 이게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의 성적인 유머들은 너무 예쁘기만 한 영화의 흐름에 경쾌함을 불어넣어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요소입니다만, 한편으로는 천진하고 순수했던 “그 시절” 의 이야기와 잘 섞이지 못하고 따로 논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수업 시간에 몰래 단체로 자위를 하다 걸리는 (…)  남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주인공과 밤 늦게까지 교실에 단 둘이 남아서 정말로 공부만 한다거나 (;;) 둘 다 대학생이 되어서 데이트를 해도 키스 한 번 하지 않는 건 좀 비현실적인것 아닙니까?  한국 관객이라면 어쩌면 아니, 얘네들은 무슨 대학생이 중고등학생처럼 노나 할 수도 있을 텐데 (사실 여기에 대해선 술집이 줄줄이 늘어선 한국 대학가와 밥집과 차와 주스 파는 가게들만 가득한 대만 대학가의 차이부터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데이트 부분은 하품이 나도록 지루하다가도 바로 그 다음 남주인공의 대학교 기숙사를 배경으로 꽤 수위가 높은 성적 농담과 망상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악명 높은 비누 줍기 입니다 (…) 전 이 영화를 이코노미 좌석에 붙어있는 조그만 개인용 스크린으로 보았는데도 민망했는데 영화관에서 봤으면 기겁했을지도 몰라요...


영화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게 정돈되지 못한 느낌은  인터넷 소설가 출신인 작가의 한계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영화화 과정에서 소설의 설정과 줄거리가 조금씩 바뀌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원작 소설은 수없이 많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창 시절 회고담과 크게 다를 바 없거든요. 딱 봐도 인터넷 소설이란걸 알 수 있는 짤막짤막한 문장들과 표현들 때문에 손발이 오그라드는게 한두번이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로 된 책을 몇 년만에 읽어보는데다 새로 쓰기에 모르는 한자가 한 페이지에 몇 개씩 튀어나와도 그럭저럭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미있게 쓰여진 책이기도 합니다. 方文山 (방문산, 대만의 유명한 작사가이자 시인 ) 이  이 책의 추천사에다 감히 영화 감독 이안의 와호장룡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를 칭찬했는데 택도 없는 과찬만은 아닌 듯 해요. 마찬가지로 영화는 완성도에서 좀 아쉬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비슷한 느낌의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 처럼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웃기다가 결말에 이르러선 살짝 가슴 짠한 느낌이 들면서 마무리 됩니다. 


    (여주인공 대신 벌서기)


(투명의자와 줄인 교복 치마) 


● 남주인공인 가경등은 작가 구바도의 본명입니다. 당연히 소설의 무대인 고등학교 – 대만 장화현에 있는 精誠中學 (징청중학) 인데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은 건물에 붙어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는 작가의 모교이며 영화의 촬영도 이 학교로 가서 했다고 하고요.


● 남주인공을 맡은 배우 가진동은 대만 문화대 학생인데 체육대 소속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대만 배우치고는 큰 키에 몸매가 탄탄한 편입니다.웃을 때 보면 이정재를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던데 (…) 이 영화로 데뷔해서 금마장 신인상 받고 중화권 연예인이 밟는 수순대로 바로 음반도 냈네요. 노래 실력은 솔직히 그냥 그렇지만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아주 괜찮아서 미래가 기대됩니다.


  


● 배경이 대학교로 전환되는 부분에서 2000년 초반 당시를 휩쓴 유행가로 주걸륜의 노래 雙截棍 (쌍절곤)이 나옵니다. 뭐랄까, 이젠 2000년대도 추억의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것에 살짝 만감이 들더군요. 한창 중화권 최강싱어송라이터슈퍼아이돌스타(...) 로 날리던 주걸륜의 예전같이는 못한 모습이 떠올라 씁쓸함이..으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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