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는 마치 엘로이나 챈들러처럼 시작됩니다. 거대한 저택, 부유한 성형외과 의사, 그 안에 갇힌 아름답고 반항적인 여자.

그러나 멋진 탐정, 우직한 경찰과 같은 존재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난데없이 한 남자가 납치된 이야기가 사이 사이에 삽입되고, 다쳐서 잠수타는 은행강도의 이야기가 병행됩니다. 독자들은 의문에 빠져듭니다.

각자의 속도로 진행되던 세 가지 이야기는 결국 과거의 한 점에 모이게 되고, 이야기는 빠르게 결말로 치닫습니다. 하지만 그 결말은 독자의 예상과는 조금 다릅니다.

지나치게 결말을 서두른 게 아닌가, 매력적인 전개에 비해 너무 서투르게 진행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 들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내용이며, 알모도바르가 이를 어떻게 영화로 구현할 지 벌써부터 기대하게 됩니다.

(이하 스포)

 

  

 

 

제게는 알모도바르가 이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스포였습니다. ㅠ 뱅상이 납치된 시점에 이 사람이 이브가 되겠군... 하고 생각했거든요. 성전환, 복수, 사육, 마약, 중독...너무 알모도바르적이잖아요 ㅠㅠ 모르고 봤으면 '어맛 깜짝이야ㅡ'하는 시점이 중간에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종케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요? 힌트는 비비안의 의사가 했던 말에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그러죠. 당신은 성형외과 의사라서 뭐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그런 식으로 고칠 수 없다고요.("정신과는 성형외과와 다릅니다. 겉을 바꿀 수 없어요. 선생님 같은 성형외과 선생님들이 쓰는 수술도구가 저희에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갈(리샤르)은 이브(뱅상)의 육체(외양)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그의 정신(마음)마저 달라지게 했습니다. 이는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요?

스톡홀름 신드롬, 피그말리온 효과 등이 떠오르지만, 결국 종케는 사람의 마음과 육체를 칼로 긋듯 명확히 분리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누구보다 가혹한 복수를 꾀했던 미갈이 결국 이브에게 애착을 느끼게 되고, 그토록 탈출을 염원하던 이브가 다시 독거미(미갈)를 살려주고 제 발로 돌아가는 결말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억지스러운 느낌은 주지 않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끈끈하게 이어지던 감정의 선을 끈기있게 따라잡은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대단한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인간의 감정은 단선적이지 않고, 그 스펙트럼은 복잡하고도 오묘한 빛깔로 채워져있음을... 종케는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짧지만 힘있는 이야기입니다. 한여름의 읽을거리로 손색이 없다고 여겨지네요. 본문에도 썼지만 너무나 알모도바르적인 내용으로 가득차 있어서 영화에 대단히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이런 이야기인가, 하고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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