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MTV 액션의 한계, [해결사]

2010.09.01 23:07

taijae 조회 수:3626



올 추석을 겨냥한 수많은 ‘오락’ 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해결사]가 제일 먼저 도전장을 던졌다. 해결사가 제시하는 오락의 핵심은 공들인 ‘액션’이다. 그리고 그 ‘액션’의 핵심은 ‘속도감’이다. 문제는 이 영화가 제시하는 ‘속도감’의 정체다.

 

‘심부름 센터’를 운영하는 해결사 태식(설경구)은 어느 날 고객의 요청으로 찾아간 모텔 방에서 시체를 발견한다. 그때부터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 쫒기기 시작한 태식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 할 자료를 가지고 있는 필호(이정진)의 명령에 따라 윤대희(이성민)를 납치한다. 윤대희는 정치권의 비자금 스캔들과 연루되어 있는 중요한 증인이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일단 짧은 시간을 꽉꽉 채운 휘몰아치는 쇼트들에 눈을 뺏긴다. 타이틀이 뜨고 나서 잠시 숨을 고르는 듯 하지만, 태식이 모텔 고층에서 뛰어 내리는 순간부터 ‘해결사’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멈출 줄을 모른다.

 

문제는 영화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99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달리기만 하는 이 영화는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간다. 모든 것을 잠시 스쳐지나가지만 동시에 어떤 것도 정확하게 보지 않는다. 헐거워진 내러티브의 짜임새, 피상적으로 표현되는 캐릭터나 순진해 보이는 현실정치 풍자보다 더 아쉬운 건 정작 이 영화가 가장 공들인 것처럼 보이는 ‘액션’이다.

 

[해결사]가 추구하는 액션의 핵심은 간단하다. 얕은 심도로 찍힌 과장된 클로즈업 쇼트들. 짧은 지속시간. 과시적인 줌인 줌아웃.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카메라의 움직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이 쇼트와 저 쇼트가 왜 붙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예를 들어 태식이 주차를 하면 이유 없이 차 뒷범퍼를 클로즈업으로 짧게 삽입하는 식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MTV 스타일의 액션이다.

 

5분 정도의 뮤직비디오라면 모를까, 장편 영화에서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MTV 스타일의 액션이 펼쳐진다면 어떻게 될까? ‘움직임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채 쏟아지기만 하는 액션 쇼트의 양적 공세는 현기증만 유발할 뿐이다. 경신(문정희)과 필호의 통화 같이 두 배우의 감정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지점에서, 카메라가 아무리 움직여도 정작 보는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조연급 연기자 중 액션 장면을 위해 캐스팅 된 것처럼 보이는 최지호와 이영훈은 영화의 강박적 속도감 속에서 낭비된 느낌마저 준다. 오달수-송새벽 형사 콤비는 이 쉼 없이 달리는 영화 속에서 여러모로 한 템포 늦게 움직이는데, 오히려 이 콤비가 비교적 성공적인 캐릭터들로 여겨진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작품을 통해 데뷔한 권혁재 감독은 감각적인 액션 단편영화를 연출해 여러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았던 신인감독이다. 다른 신인감독들과 달리 데뷔작에는 그의 인장들이 깊숙이 박혀있지만, 단편과 장편 사이에서 성공적인 스타일의 재구축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권 감독의 차기작에서는 직하강 하기 직전 롤러코스터의 느린 속도감(?)이 주는 스릴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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