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백, Confessions, 告白 (2010)

2012.06.13 16:29

violinne 조회 수:5301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업식을 앞둔 어느 중학교의 교실, 카메라는 안하무인격으로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는 반 아이들을 비춘다. 너 나 할것없이 큰 소리로 웃고, 소리치고, 장난치는 그들 위로 차분한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깔린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담임 선생 '유코'. 담임선생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학교에서 나눠준 우유팩들이 책상위를 날라다니고, 짖궂은 장난들이 끝도없이 이어진다. 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유코는 칠판에다가 "생명"이라고 적는다. 그리고는 반 아이들을 향해서 오늘 종업식을 마지막으로 학교를 그만두겠노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만세를 부르며 노골적이고도 과장되게 기뻐한다.

유코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녀는 오늘 중요한 고백을 할 작정이다.

 

유코는 핸드백에서 조그만 봉제 인형 가방을 꺼내들고 때때로 교실을 가로질러 가며 고백하기 시작한다. '마나미'의 죽음. 그녀의 딸 '마니미'가 죽었다. 학교 야외 수영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마나미의 사인은 사고사로 결론이 났지만 제 3자가 멋대로 내린 결론과는 상관없는 이유의 죽음도 많은 법이다. 유코는 범인이 누군지 안다. 범인A와 범인B가 그녀가 지목한 가해자들이다. 그 둘은 사고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봉제 인형 가방'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로서 둘 다 그녀의 반 학생들이고 이미 그녀에게 마나미의 죽음에 관해 추궁당한 적이 있는 아이들이다.

 

유코의 고백을 들으며 마나미의 죽음에 관한 대목 까지도 조롱조로 희화화 하던 학급 아이들은 범인이 자신들의 반 아이들 중 누군가라는 것을 듣고는 이내 당황하여 웅성대기 시작한다. 창문까지 꼭꼭 닫혀진 교실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범인A는 머리가 좋아 발명 대회에서 큰 상을 받은 아이다. 그는 대회에 나가기 전에 유코를 찾아와 자신의 발명품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지퍼를 열면 미리 조작된 전기충격이 가해지는 지갑이다. '자신의 소중한 용돈을 지키세요' 라는 중학생 다운 발상과 역시 천진함을 가장하여 작성한 발명 동기 이면의 거짓과 잔인성을 간파한 유코는 칭찬대신 차갑게 반응하였다. A는 문간에 서서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틱, 소중한 것이 사라지는 소리가 들릴거예요."

범인 B는 평소에 조용하고 겁이 많고 친구들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다. 언제나 쓸쓸하게 겉도는 B를 꾀어낸 것이 A다. 그는 B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말을 걸고 그를 한껏 추켜세워 주며 친구로 만들어 범죄를 공모했다. 그들은 잔인한 장난을 계획하였다. 담임 선생의 딸 '마나미'를 범죄대상으로 삼는 악랄한 장난을 말이다.

일전에 할인마트에서 캐릭터 봉제 인형 가방을 사달라고 떼를 쓰던 마나미의 모습을 지켜보았던 B는 그것을 이용하여 마나미를 유인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A는 자신이 상을 받았던 '전기 충격 지갑'의 기술을 그대로 사용하되 충격의 강도를 높이는 것으로 구체적인 준비를 하였다.

 

여기까지 들은 교실안의 아이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걘 누굴 죽일 용기도 없는 녀석 아냐?" "저녀석 미쳤어"

웅성대는 소리가 점점 소근거림으로 바뀌고, 교실안의 무거운 분위기가 더욱 위압적으로 변하여진다. 유코의 고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학교 수영장과 펜스 하나를 두고 지어진 '교원 주택' 같은 곳에서 유코와 단 둘이 살던 마나미는 그날도 수영장 근처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A와 B는 봉제 인형 가방을 마나미에게 들이밀며 유코가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뻐하며 지퍼를 열던 그 순간, 강렬한 전기 충격을 받은 마나미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마나미는 죽은 것일까? 전혀 움직임이 없는 마나미를 두고 A는 자리를 떠나며 B에게 "내가 그랬다고 말해도 돼"라고 말했다. A가 자리를 뜬 후, 두려움에 새파랗게 질린채로 서서 사태를 파악하던 B는 마나미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안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마나미를 수영장의 파란 물 속으로 던져넣었다.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유코는 덧붙인다. 마나미는 전기 충격으로 죽은것이 아닙니다. 그저 잠깐 의식을 잃었을 뿐이죠. 마나미는 수영장풀에서 익사한 것 입니다. 그것이 치명타였죠. 나는 범인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진실을 경찰에게 말 해 보았자 15세 미만 범죄자들은 '청소년 보호법'으로 인해 온갖 잔혹한 범죄를 태연하게 저지르고도 반성문 한 장으로 쉽게 용서되는데 내 고백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래서 나는 다른 것을 계획했습니다. 여러분, 아까 학교에서 나눠준 우유는 잘 마셨겠지요? 네, 모두가 신나게 마시더군요. 저는 A와 B의 우유에 주사기로 사람의 피를 주입했습니다. 입원 중인 남편의 피를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남편은 에이즈 환자 입니다. 그러니까 잠복기간은 5년에서 10년이에요. 그때까지 잘 지내면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보세요. 그럼 모두들 봄방학을 잘 보내기를 바랍니다.

 

 

과연 그것이 사건의 전말일까?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 그녀의 고백으로 모든것이 종결될 만큼 아이들의 세계는 간단하지 않다.

능란한 교차편집과 스타일리시한 미장센을 오가면서도 영화가 끝까지 붙들고 있는 질문은 세 가지다. 1. "아이들은 선한가?"(이 물음은 이미 '아니다'라는 대답에 방점을 찍고 제기하는 질문이다) , 2."청소년 보호법은 정당한가?" 3."인간은 받은 만큼 되돌려 주어도 되는가?" 지나치게 교훈적인 질문들이 아닌가, 라고 얘기 할 수 있을 테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영화 자체가 결국은 커다란 교훈극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교실 자체가 진짜를 닮은 '무대'이다. 초반에 교실에서 유코와 아이들의 대화와 행동은 아이들 쪽에서 매우 건방지게 나오기는 해도 '합'이 딱딱 들어맞는다. 폐쇄된 교실과 교실을 가득 채운 얼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폐소공포를 유발하며 유코는 거의 독백에 가까운 태도로 고백을 한다. 교훈극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형식은 역시 '연극'일 것이다. 이 영화를 볼 때 관객은 주인공의 심리에 빠져들어 대리체험을 한다기 보단, 무대위의 '비극의 소용돌이'에 근접해 있으면서도 한 걸음 물러서서 관조하게 된다. 이것은 특별할 것은 없는 연출이지만 이것에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플래시 백'과 이 영화가 장기로 내세우는 '과장된 미장센'이 연극을 보는 무대아래 관객의 감정을 극대화 시킨다. 즉, 영화로 찍은 연극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선하지 않다. 영화는 어른들이 가진 고정관념을 비웃는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천진하고 순진한, 선하고 사랑스러운 천사 따위의 발상은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페티시라고 불러도 좋다. 아이들은 선한 것이 아니라 경험이 부족한 것 뿐이며 착한 것이 아니라 지각이 덜 발달된 것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은 작은 어른이다. 다 커버린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성격과 환경의 차이에 따라 조금 덜 영악하고 조금 더 잔인할 뿐, 어른들이 멋대로 만든 고정관념과는 상관이 없다. 아이들이 자라서 사춘기가 되면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진다. 영화에서 유코는 중학생들에 대해 내레이션으로 말한다. "자의식이 과잉되어 자신들은 아이돌과 결혼이라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춘기가 되어 이처럼 근거없은 자의식이 발동하기 시작하면 '타인의 눈'과 '관심'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눈으로 하여금 자신을 어느정도로 평가해야 하는지 확인하고 '자아상'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고가 넓어지면서 어느정도 포기해가는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달리 현실과 괴리가 상당한, 이상에 가까운 '자아상'을 쫓아가고자 발버둥 치는 아이들은 자신이 남보다 강해야 하고, 머리도 똑똑해야 하며, 한없이 쿨해서 설령 누군가에게 참담한 고통을 주더라도 눈깜짝 하거나, 약하게 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범인A가 특히 그렇고, 범인B도 결국은 그러했다. 아이들의 고백이 이어진다.

 

 

A는 유코의 고백 후에도 학교에 매일같이 출석한다. 반 전체에게 왕따 당하는 건 물론이다. 책상에는 '살인자'라고 휘갈겨진 쓰레기가 한가득, 신발장 안에도 저주가 적힌 종이무더기가 한가득이고 점심시간에는 집단 구타를 당한다. 그런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 주는 친구는 '미츠키'다. A가 당하는 폭력이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의 귀에 들어가자 평소 늘 겉돌아 아이들의 눈엣가시였던 '미츠키'가 고자질쟁이로 지목이 되고 그녀역시 A와 같은 신세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A와 미츠키를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만든다. 둘은 항상 함께하며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대화하고 서로의 진심을 알아간다(고 미츠키는 느낀다). 

A는 사실 매우 불우한 아이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과학적, 수학적 사고만을 강요하였고, '부모와의 유대감'을 박탈했다. 결혼 전 전도 유망한 과학자였던 어머니는 결혼후 학자로서의 길을 포기해야만 했기에 자신을 닮아 두뇌가 명석한 아들을 이용해 대리만족 하고 싶어했다. 집착만을 아이에게 투사하던 어머니는 이혼 후 다시 연구의 세계로 떠날 수 있게되자 애초에 별로 애착이 없었다는 듯 쉽게 A를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B는 (그의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다정한 아이였다. 그 다정했던 아이가 광인처럼 변하게 된 것은 아들과  단 둘이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집에 종업식이 얼마 남지 않은 날, 담임선생 '유코'가 기분나쁜 이야기를 할 셈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유코는 아들을 추궁했고 아들은 자신이 마나미를 물에 빠뜨렸다고 순순히 자백했다. 사실이 아닐거라고 믿었던 어머니는 충격을 받긴 하지만 그게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거다. 나쁜 친구의 꾐에 빠져서 순진한 아들이 이용당한 거다. 그녀는 죽은 마나미가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연민하며 "불쌍하다"고 한다. 마나미에게 용서를 구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런 일에 말려든 자신의 아이가 불쌍해 견딜 수 없다.

 

유코의 고백 이후 B는 학교에 전혀 출석하지 않았다.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 철썩같이 믿는 B는 방안에서 히키코모리가 되어간다. 어머니까지 혹여 자신이 손댄 물건 때문에 에이즈에 감염될까봐,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미친듯이 닦고 또 닦지만 정작 자신은 세수조차 하지 않는다. 그의 정신은 분열되고 광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더구나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의 방문이 그를 더욱 미치게 한다. 새 담임선생은 의욕에 넘치는 젊은 남자로, 툭하면 그의 집을 찾아와 힘 내라는 둥의 말을 하고, 친구들이 B를 그리워 한다는 둥, 속편한 소리를 해대기 때문에 그가 다녀간 날이면 B의 상태는 더욱 악화된다. 그의 어머니는 새 담임이 집안에 발도 들이지 못하도록 내쫓아 버리지만 그는 방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반면 A는 학교에 빠짐없이 나오는 것 뿐 아니라 에이즈 검사까지 받았다. 검사 결과 HIV'음성'을 판정받았다. 즉, 그가 나중에라도 우유때문에 에이즈에 걸릴 확률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실망하고 있다. '에이즈 발병'은 그를 다시 어린아이의 위치에 두고 그의 어머니를 소환할 수 있는 '묘수'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어머니가 자신을 바라봐주고 관심가져 주기를 기도했던 그는 다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미츠키는 살해 당한다. 하필이면 그의 최대 약점이었던 "어머니"에 대해서 미츠키가 심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미츠키는 그의 어머니는 그를 버린거라고 했다. 그래서 A는 그녀를 죽이고 시체를 냉장고 속에 방치한다. 그리고 '마지막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그의 '마지막 계획' 이란 것은 거창하고 유치한 계획이다. 그는 폭탄을 만들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죽일 셈이다. 자신이 일전에 '전기 충격 지갑'을 만들어 발명대회에 출전했을때, 최고상을 받았는데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학교에서 강당에 아이들을 잔뜩 불러다 놓고 그에게 연설을 할 기회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기회를 잘 살리기로 한다. 적군속에 뛰어들어 함께 공멸하는 '가미가제' 처럼 강당 단상에 미리 폭탄을 설치하고 연설을 끝낸다음 핸드폰 버튼을 눌러서 자신도 죽고 모두를 다 죽여버릴 것이다.

 


한편 유코선생은 미츠키가 죽기 전에 그녀와 단 둘이 만남을 가진다. 미츠키는 A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그를 변호하고자 하지만, 그것으로 유코의 마음을 돌릴 수 는 없다. 유코는 미츠키에게 그간의 일들을 다시 고백한다. 사실 그녀의 고백 후 일어난 일련의 일들은 그녀의 시나리오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우유에 피를 넣지 않았다. 설령 넣었다고 해도 에이즈 환자의 피를 마신다고 해서 에이즈에 걸릴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후임 담임선생에게 바람을 넣어 끈질기게 B의 집을 찾아가고 쫓겨나더라도 굴하지 말고 '훌륭한 선생'의 본분을 지켜 포기하지 말고 방문하라고 설득했다.

그녀는 단지 계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계기'에 대한 연쇄 반응으로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난다.

 

B는 어머니를 살해하였다. 자해 증상이 심해지자 참지 못한 어머니가 칼을 들고 그의 방으로 올라갔고, 그는 칼을 빼앗아들고 그의 어머니를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한편, A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어머니가 남긴 메시지를 보게 된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를 보러 그녀가 근무하는 연구소로 간다. 그러나 계단을 뛰어 올라가다가 열린 문 사이로 의자에 앉은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이자 마음을 고쳐먹고 말았다. 자고로 진정한 천재에게는 '쿨 함'이 필요한 것 이니까. 그는 먼저 세상을 파괴하고 전설로 남을 것이다. 감정의 사치는 부리지 않겠다, 이런 내용들을 술회하는 동영상을 하나 만들어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에 업데이트하고 '결전의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다가온 그 날, 강당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모여있다. 호명되어 연단에 선 A는 환한 얼굴로 연설을 끝낸 뒤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폭탄이 터지지 않는다. 단상위 교탁에 설치한 폭탄은 이미 제거되어 있다. 그리고 유코가 강당을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유코는 그의 거짓말부터 까발린다. 그가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그대로 되돌아 왔다고 말한것은 거짓이다. A는 사실은 어머니를 보지도 못했다. 어머니의 연구실에 찾아갔지만 어머니는 재혼한 남자와 신혼여행 중 이었다. 어머니의 동료에게 그것을 전해듣고 힘없이 되돌아서는 A의 뒷모습을 유코는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터벅 터벅 집에 돌아온 그가 비장한 각오로 '감정의 사치'가 어쩌고 하며 며칠 뒤 있을 자신의 거사를 구술하여 올린 동영상을 보고 그의 계획을 알아차린 유코는 즉시 강당의 폭발물을 제거했다. 그리고 폭발물을 서류가방에 담아서 다시 그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A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해준 후, 그녀의 책상 밑에 몰래 서류가방을 두고 왔던 것이다.

 

"설마 누를거라곤 생각 안했지. 그 폭탄을 만든건 너고, 핸드폰 버튼을 누른것도 너야."

 

A는 오열하기 시작한다. 눈물이 폭포처럼 뿜어져 나오고, 꺽꺽대며 쉰소리를 지르고 정신을 잃기 일보직전 인 것 같다.

A를 지켜보던 유코는 말한다.

 

 

 

"장난이야."

 

 

 

 

 

 

 

 

이 영화 자체가 치밀한 만듦새의 장난이다. 아무리 앞에서 꽹과리를 치고 장구를 쳐대도 마지막 귀결이 '장난'이라면 그것은 '장난'인 것이다.

주인공이 한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느냐고? 나는 믿는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아이들의 장난'으로 시작되어 '어른의 장난'으로 끝나는 영화니까.

다만 아주 공을 들인 장난이며 의도적인 허무라는 것을 말해둘 필요가 있겠다.   

영화는 이 거대한 장난에 교훈을 담았다.

 

 

<20세기 소년>을 생각해 보자. <고백>의 A는 <20세기 소년>의 '친구'와 많이 닮았다. A와 '친구'를 바꿔치기 해서 각자 상대방의 영화에 데려다 놓아도 위화감이 없을 지경이다. 친구와 A모두 누군가로부터의 인정을 너무나도 바라고 그것을 위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A의 경우에는 그것이 '어머니'를 향해 있고, 친구의 경우에는 '켄지'를 향해있다는 것이 다를뿐이다. 지구를 멸망 시키는 것과 학교 강단을 날려버리는 것은 스케일의 차이일 뿐, 사고의 근본적인 뿌리가 같다.

더불어 두 사람이 똑같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놀랄만큼 시큰둥하다는 점도 닮았다. 

또한 의외로 잔인한 '닥터 야마네'와 분열적인 '사다키요'를 합쳐 놓으면 B와 비슷해진다.

또하나 있다. 친구와 A모두 필사적으로 지키고 싶은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친구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자 과학실에서 비밀을 목격해버린 동키를 살해한다.

A는 자신 조차 차마 인정하지 못하는 비밀을 미츠키에게 들켜버린 후 그녀를 살해해서 영원히 입을 다물게 만든다. 

 

 

 다른 점도 있다. 만화 <20세기 소년>의 아이들은 최소한 면죄부를 받았다. '켄지 일당'은 악에 비폭력으로 대항한다. 더구나 '켄지'는 영웅의 화신같은 인물이다. 설사 켄지가 과학실을 떠도는 유령, 진짜 친구인 '가츠마타'를 그 지경으로 몰고간 원인을 제공했다 해도 그것은 악의가 아닌 둔감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 <고백>에서 아이들은 어른들(관객들)의 비난의 눈초리를 받는다. 유코의 고백 이후 반 아이들은 '그 사건'을 잊기 위해 요란스럽고도 과장되게 후임 선생을 대한다. 사실은 그를 갖고 노는 것이란걸 선생만 모르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편한 머리에 그 같은 끔찍한 사건을 각인시킨 주범, A를 집단 따돌림하고, 등교하지 않는 B에게는 '살인자'라고 교묘하게 써서는 마치 그가 힘내기를 응원하는 편지를 쓴 척 하며 선생에게 주고 B에게 전달되도록 한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죄의식으로 부터 달아날 수 있는 면죄부를 얻고자 한다. 자신은 악한이 아니라는 증명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생각따윈 없다.

 

하지만 아이들만 잘못인가? 유코의 행동은 과연 정당했는가?

아이들의 머리 꼭대기에 서서 자신의 생각대로 조종하고, 엄청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것을 잘 알고서 의도적인 고백을 했다.

'마나미의 죽음'이 그녀에게 면죄부가 되 주었지만, A에게 미츠키가 살해당하고, B에게 그의 친모가 살해당했음에 그녀의 고백이 일조를 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리고 영화에서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이같은 비극을 불러 일으킬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결국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뻔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악했다가도 선해지고 선했다가도 악해지며, 사실 어른이나 아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선하기만 하다고 오해하는 것도, 아이들이야 말로 '작은 악마들'라고 단정하는 것도 불필요하다. '선과 악'은 고정불변의 이데아적인 어떤것이 아니라 부단한 상승과 하강의 과정에서 새로이 정의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큰 틀은 있다. 남의 고통을 '즐길거리'로 대한다면 그는 분명 '악한'이다. 그리고 이것에는 어른도 아이도 피할 수 없다.

어른이 악한만큼 중학생도 악하고 고등학생도 악하며 초등학생도 악하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되며 둘 사이에 놓여진 무수히 많은 중간들도 존재 가능하다.

 

<고백>이 하고자 하는 말은 진부한 편이다. 하지만 진부한 것이 나쁜것은 아니다. <고백>은 진부한 메시지를 새롭게 포장하여 시장에 내놓았고 거대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청순하고 담담하고 점잖은 영화에 길들여진 일본 관객들이 이 '센' 영화를 보러 구름떼같이 몰려들어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렸고, 제작비 대비 10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금자씨'나 '추격자'같은 영화에 길들여진 한국에서라면 그만한 평가를 받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것은 한국영화가 아니라 일본 영화라는 것이다.

첫사랑의 환영과 순수함에 대한 강박적인 열망이 넘쳐나는 일본 영화계에 이 작품이 던져준 충격은 컸다. 

 

점잖은 일본인들이 이 영화를 본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예쁘고 말끔한 것만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는 구태여

그 이면의 추함을 코앞에 들이밀어주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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