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바그너 (1813 – 1883)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서곡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 

[트리스탄과 이졸데] 사랑의 죽음 

[발퀴레] 1막 


하이디 멜튼, 소프라노 (이졸데, 지글린데) 

브랜든 조바노비치, 테너 (지크문트) 

에릭 오웬스, 베이스-바리톤 (훈딩) 


볼티모어 심퍼니 오케스트라 

지휘: 마린 앨솝 


2013년 2월 16일, 스트랫모어 홀, 노스 베데스다 



아시다시피 올해 5월 22일로 리하르트 바그너는 탄생 200주년을 맞이합니다. [니벨룽의 반지]를 비롯해서 전세계의 오페라 하우스와 콘서트 홀에서 수 많은 작품들의 연주와 공연이 기획되어 있는데, 볼티모어 심퍼니 오케스트라도 예외는 아니라 하겠습니다. 


얼마 전까지 보스턴에서 살던 저로서는 BSO 라 하면 당연히 보스턴 심퍼니 오케스트라입니다만, 여기서는 볼티모어 심퍼니 오케스트라를 지칭합니다. 2007년에 마린 앨솝을 상임을 맞이했으니 벌써 6년째가 되어 가는데, 그 동안 오케스트라로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음이 분명합니다. 낙소스 레이블을 중심으로 녹음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죠. 


저에게는 이번 시즌 첫 번째 티켓이었는데, 스트랫모어 홀에 가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2005년에 완공된 이 홀에서 볼티모어 심퍼니 오케스트라가 정기 공연을 갖는데, 미국 오케스트라 중에서는 두 메트로폴리탄의 홀에서 정기 공연을 갖는 유일한 오케스트라라고 합니다.



카네기 홀과 보스턴 심퍼니 홀을 비롯해서 미국 내 꽤 많은 오케스트라 공연장을 다녀봤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 스트랫모어 홀은 그 중에서도 꽤 신선한 충격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2000여석 정도에 아주 크거나 작지 않은 적당한 크기에, 어느 좌석에 앉아도 음향과 시야가 모두 잘 확보되고,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내장을 단풍나무와 자작나무로 마무리해서 어쿠스틱이 엄청나게 뛰어난 그런 홀이었습니다. 총주의 큰 음향이 너무 뭉치거나 퍼지지 않고, 솔로들의 피아노 혹은 피아니시모 연주들의 전달력도 훌륭하고, 잔향 역시 적절하면서 끝 마무리가 단정한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은 설계입니다. 비너 필하모니커 같은 오케스트라가 와서 연주하면 환상적인 경험이 되지 싶습니다.


 

 

볼티모어 심퍼니 오케스트라는 제가 그다지 친한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는 없겠는데, 그래서 마린 앨솝이 상임으로 오기 전에 어떤 소리를 내던 오케스트라였는지 잘 모릅니다만, 이 상임 지휘자의 능력으로 이 정도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라면 마린 앨솝의 지휘자로서의 능력이 탁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오케스트라로서는 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닌데, 마치 바그너 전문 오페라 하우스의 오케스트라인 것처럼 스코어 전체를 속속들이 숙지하고 친밀하게 연주한다는 것이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서곡에서부터 뚜렷하게 들립니다. 


무엇보다 칭찬해야 할 것은 금관 파트라고 하겠는데, 왠만한 수준의 오케스트라에서도 자주 삑사리가 나는 복잡한 부분들을 능수능란하게 연주할 뿐 아니라 (특히 [발퀴레] 1막에서 수도 없이 나오는 ‘노퉁’의 라이트모티프에서 트럼펫이 꼭 한 번쯤은 - 실황이라면 - 실수하지 않습니까? 이 부분들을 실수 없이 연주했다는 것 만으로도 트럼펫 주자는 큰 칭찬을 받을 만합니다) 미국 오케스트라들의 공통된 문제점이기도 한, 바그너를 연주할 때면 마치 군악 밴드 처럼 들리게 되는 그런 현상이 없었습니다. 둥글고 부드러우면서 현악기군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소리가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을 연상시킬 정도였습니다. 


목관악기 군은 다소 소박한 편이었지만 제 역할을 다 해 줬고, 현악기 군은 매우매우 훌륭했습니다. 깊이 있으면서도 합주력이 잘 단련되어 있고, 맑고 뚜렷하지만 가늘지 않은 소리가 상당히 고급스러웠습니다. 바그너, 특히 [발퀴레] 1막이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주하는데는 이러한 현 파트의 실력이 결정적인데, 볼티모어 심퍼니는 ‘그 정도 문제 없다니까’ 뭐 이런 자신감이 느껴지는 연주였다고 하겠습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베를리너 필하모니커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현악 파트였습니다. 


마린 앨솝의 비팅은 정확성을 요구하는 곳에서는 매우 표준적이지만 때로는 표현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넘어갈 때도 있는데, 모범생 같은 그런 지휘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이스터징어]와 [트리스탄]의 템포나 다이내믹 등도 표준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요. [발퀴레]의 경우는 좀 신기했는데, 처음 도입 부분에서는 거의 불레즈나 야노프스키를 연상케 하는 빠른 템포로 시작했다가, 두 주인공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부터는 카라얀을 생각나게 하는 서정적인 분위기로 전환하더군요. 아마도 다른 지휘자들의 해석을 많이 공부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가수들에 대해서 잠깐 언급해 보겠습니다.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과 지글린데를 부른 하이디 멜튼은 마치 체중을 줄이기 전 전성기 때의 데보라 보이트를 연상케 하는 그런 목소리였습니다. 지글린데의 저역 파트에서는 약간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고음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성량이 상당한데다, 발성도 안정되어 있고 독일어 발음도 좋은 편입니다. 다이내믹의 조절이 중요한 바그너의 작품에서 그녀의 테크닉이 특히 돋보이는 부분은 ‘리베스토트’ 중간 쯤에서 현악기와 하프와 미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부분이었는데, 특히 브륀힐데 같은 역으로 목소리가 무거워진 소프라노들은 여기서 망가지는 경우가 태반이라, 절묘하게 넘어가는 것을 듣고만 있어도 황홀하더군요.



지크문트 역을 부른 브랜든 조바노비치는 요즘 북미에서 가장 주목받는 테너중의 한 명이라 할 수 있겠는데, 실제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과연 그럴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단 전성기의 제임스 킹을 닮은 낭랑하면서도 힘찬 목소리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지크문트 역이 워낙 저음역대의 패시지가 많아서 테너들로서는 소화하기 힘든 난역인데 – 특히 이번에 연주한 1막에서 더욱 그렇지요 – 저음에서도 깊고 뚜렷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대신 고음역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부분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좀 힘들어하는게 느껴지긴 하더군요. 한 번은 정말 크게 삑사리가 날 뻔 했습니다만 아슬아슬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이런게 또 실황의 묘미라면 묘미겠죠. 그 예의 ‘밸제! 밸제!’ 부분은 매우 훌륭히 처리했습니다만. 게다가 요즘 남자 가수들은 왜 이렇게 다들 잘생긴데다 체형 관리에 완벽하단 말입니까. 흠.



에릭 오웬스는 메트로폴리탄에 단골 출연 가수로 저에게는 익숙합니다. 로베르 르파지의 [반지]에서 알베리히를 부르기도 했죠. 다고 거친 듯 하면서도 고귀한 목소리가 바렌보임 [반지]에서 훈딩을 부른 마티아스 횔레를 생각나게 하기도 하는데, 이 날은 그다지 컨디션이 좋은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목이 좀 잠기는 듯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또 칭찬하고 싶은 것은 관객들의 태도였습니다. 일단 뉴욕이나 보스턴과는 달리 젊은 관객들의 비중이 꽤 됩니다. 저는 시즌 티켓으로 끊었습니다만, 공연 세 개를 선택하면 티켓당 33달러에 구입할 수 있는 패키지도 있고 그래서 아마도 젊은 관객들이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긴 카네기 홀이나 보스턴 심퍼니는 이런 프로그램 없이도 관객석을 문제 없이 채울 수 있으니 결국 돈 많고 시간 많은 노년층들이 자리를 채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관객들의 관람 태도가 정말 훌륭했습니다. 카네기 홀의 고질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기침 발작 같은 게 전혀 없었는데, [트리스탄] 전주곡을 한참 듣다가 ‘이거 뭔가 이상한데?’ 하고 생각해 보니 관객들의 집중도가 너무 좋아서 주위가 전혀 산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스트랫모어 홀에서는 볼티모어 심퍼니의 바그너 콘서트 시리즈가 이어집니다만, 그 전에 저로서는 일단 메트로폴리탄의 [파르지팔] 신연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훌륭한 홀과 오케스트라가 집에서 불과 15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은 보스턴에서 베데스다로 이사 온 후에 발견한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게다가 넓은 주차 공간에 주차가 공짜! 그 동안 보스턴 심퍼니 홀이나 카네기 홀에서 주차에 쓴 돈과 에너지와 시간을 생각하면 콘서트 고어로서는 이게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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