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영화를 보러 간 모처럼의 금요일 오후, 시간이 맞는 영화관이 드물어서 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내에 위치한 KU시네마테크라는 곳에 갔습니다. 대학내에 위치한 상영관이라 그런지 관객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10명 정도밖에는 안되더군요.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접근성이 떨어져서 그러려니 싶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영화를 보기전에 미리 예습한 음악들이 흘러 나오기 시작합니다. 화면이 상당히 깔끔하네요. 다큐멘터리라 전문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데도 화면에 나타난 사람들은 배우 뺨치도록 말을 잘합니다. 대본이 있는게 아니라 진지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 이야기 자체가 상당히 흥미롭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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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우리나라의 그때 당시 가수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아저씨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Sixto Rodriguez. 통칭 슈가맨입니다. 유명 음반프로듀서들에게 인정받고 첫번째 앨범 콜드 팩트를 발표하죠. 리얼하면서도 상징적인 가사와 마음을 사로잡는 멜로디가 담겨있는 좋은 음반이었는데도 당시에는 전혀 흥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설마 꼴랑 여섯장이야 팔렸겠습니까만.. 당시 소속사 사장은 자신과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산사람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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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미있는 건 본토인 미국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한 이 음반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유입이 되고 거기에서는 엄청난 메가 히트를 기록한다는 것입니다.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인종 차별에 회의적이었던 젊은 세대는 자유로운 가사와 저항적인 멜로디를 담은 이 음반에 매료되고 맙니다. 말 그대로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즈급의 슈퍼스타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도 자유로운 전화나 우편도 없던 독재의 시대에 정작 가수인 로드리게즈는 신비한 인물로 남아 그의 행방은 아무도 알수 없는 전설이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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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관계자들의 입을 빌리면 밥 딜런과 맞짱떠도 좋을만한 재능의 소유자였던 로드리게즈가 전혀 팔리지 않는 가수가 된 사연은 백인이 아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주류에서 벗어난 외로운 사람들, 하루 하루 노동에 시달리는 고달픈 사람들의 대변자였습니다.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는 대신 일상의 고단함과 탈출하고픈 소망, 비참하고 차가운 현실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노래한 시인이었죠. 안그래도 혼란한 하루 하루, 힘든 일상을 마치고 돌아와 들을만한 노래는 아니었을 겁니다. 지식인들도 대학생들도 외면하고 그와 같은 노동 계급과 유색 인종의 청자들은 그의 존재 자체도 몰랐을 겁니다. 아마 알았다 하더라도 경쾌한 컨트리를 즐겨 들었겠지요. 그는 지나치게 뛰어난 음악을 너무 앞서 들려 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남아공에서는 마치 우리가 경험했던 것과 같은 독재정권이 길게 이어지며 국민들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음반 검열은 기본이고 저항 가요라고 분류되면 폐기하고 음반을 긁어서 전파조차 타지 못하게 했죠. 그런 상황에서 시스토 로드리게즈, 슈가맨으로 불리우던 한 가수는 전설이 되어버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죠. 시대의 불협 화음이 그를 저항의 아이콘으로 만들고 소재조차 파악이 안되는 상태에서 그는 끔찍하게 자살을 한 천재 예술가가 됩니다. 수백만장의 앨범을 팔아 치운 플래티넘 레코드의 기록을 남기고 말이죠.

 

영화의 내용을 모르고 보시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내용을 알고 보셔도 감동이 반감되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는 반전의 스토리보다는 거기에 담긴 한 인간의 이야기. 평범한 노동자 계급에 속해 있으면서 일평생 거기를 떠나지 않고 자기만의 예술을 구축했던 천재의 음악, 생각지도 않았던 엄청난 인기와 반전의 인생사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살아낸 위대한 철인(哲人)의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고 되풀이해서 볼만한 이유가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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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수시로 방향을 알수없이 변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코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우리를 내동댕이 치고 밀어 올리고 흥분과 좌절, 공포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기꺼이 돈을 내고 롤러코스터에 오르는 것은 그 방향 전환과 상승, 낙하에 공포보다 큰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 즐거움의 양과 질은 각자가  감당할 준비만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시스토 로드리게즈, 슈가맨은 그런 인생의 비밀을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깊이 깨달은 현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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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감독인 마이크 벤젤룰은 스웨덴 사람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벌어졌던 이야기를 굳이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을 한 이유는 이 이야기를 케이프타운의 한 음반상으로부터 듣는 순간 지금까지 자기가 알던 어떤 이야기보다 흥미를 느껴서 영화로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어찌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 에 등장할법한 한꼭지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멋진 영상과 음악으로 담아낸 그의 공이 누구보다 크다고 느낍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에 담긴 슈가맨의 음악을 다시 한번 복습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이주 앞둔 어느날 나는 직업을 잃었네.."로 시작하는 Cause의 가사가 둔중하게 마음을 울리네요.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감동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딱 두장을 내고 접은 슈가맨의 음악입니다. 그건 벌써 40년도 전에 완결되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 철폐를 이끌어 내었으며 지금 이 영화를 보고 그의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비밀과 현자의 지혜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끔 하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아직 이 영화를 혹은 슈가맨의 음악을 접하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물론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렇습니다만..) 꼭 한번 보시라고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건 일종의 가스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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