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르

2012.12.23 10:49

menaceT 조회 수:2835



'아무르',

12월 22일, 씨네큐브 광화문.

 

  과연 수많은 상을 휩쓸고 만장일치급의 극찬을 받을 만한 영화였다.

 

  영화는 갑자기 몸의 오른쪽 부분에 마비 증세가 찾아온 뒤 그 마비가 점차 몸 전체로 번져가는 아내와 그녀의 병수발을 드는 남편, 이 노부부의 이야기를 조용하게 따라간다. 장-루이 트랭티냥, 엠마뉘엘 리바가 보여주는 노부부의 모습과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그 자체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깊은 맛이 있다. 그토록 건조하면서도 영화는 가슴으로 깊게 파고든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말 대단한 것은, 그 형식에 있어 거의 완벽을 자랑한다는 점일 것이다. 최근 그 어떤 영화를 보면서도 그 형식이 지닌 견고한 완결성에 이토록 소름이 돋아 본 적이 없다.


(스포일러)

 

  영화의 시작. 난데없이 경찰들이 문을 부수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집 안에는 모든 방문이 닫혀져 있다. 경찰 한 명은 집을 둘러보다 마침내 침실에 이르고, 죽어있는 여성의  시체를 발견한다. 후에 알게 되지만 그녀의 이름은 안느이다. 안느의 시체 주변은 꽃잎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 침실의 창문은 열려 있다(경찰 한 명이 다른 경찰에게 '네가 창문을 열었냐'고 묻자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 여기까지가 롱테이크로 하나의 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영화의 끝으로 가 보자. 조르주와 안느 부부의 딸인 에바가 경찰들이 부순 그 문으로 들어온다. 이제 집 안에는 모든 방문이 열려 있다. 에바는 집을 둘러보다 거실에 이르고, 평소 자신이 주로 앉던 대신 아버지 조르주가 앉던 그 자리에 앉는다. 여기까지 롱테이크로 이어지던 장면은 갑자기 뚝 끊기고, 집의 침실로 향하는 복도 쪽에서 거실과 부엌으로 향하는 통로를 바라보는 시점의 장면으로 바뀐다. 왼편으론 거실, 오른편으로 부엌으로 향하는 통로가 보인다. 왼편의 거실은 주로 조르주가 머물던 자리이고, 오른편의 부엌은 아마 주로 안느가 머물던 자리였을 것이다. 이제는 거실에 앉아있는 에바가 보이고, 방은 가운데 벽을 기준으로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다.

 

  '대칭'. 영화의 첫 장면은 난데없이 부부의 공간에 들어온 경찰들의 등장에서 안느의 죽은 시체로 이어지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부부의 공간에 들어온 에바의 등장에서 죽음으로 인해 비어있는 조르주의 자리로 이어지더니 갑자기 완벽히 대칭을 이루는 집 안 구조를 비춘다. 첫 장면을 닮아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굳이 '대칭'을 강조하는 장면 하나를 더해놓은 것은 그만큼 이 영화에서 '대칭'이 중요한 키워드임을 드러내는 싸인일 것이다. 위에서 말한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부터가 대칭, 대조를 이루고 있다. 첫 장면에선 '완벽한 타인'인 경찰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방문이 모두 닫힌' 공간을 둘러보다 '죽어있는 안느'에 이른다. 마지막 장면에선 외부인이긴 하지만 완벽한 타인이라 하기는 힘든 '딸' 에바가 '문을 열고' 들어와 '방문이 모두 열린' 공간을 둘러보다 '비어있는 조르주의 자리'에 이른다.

 

  더불어 이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각각 가교와도 같은 장면과 함께 영화의 본편과 연결되어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경찰이 안느의 시체를 발견한 뒤 갑자기 컷과 함께 까만 화면에 '아무르'라는 제목이 뜨고, 그 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라는 크레딧이 뜨고 그 다음 장면이 이어진다. 한 편, 끝 부분에선 조르주의 죽음을 암시하는 사실상 본편의 마지막 장면이 끝난 뒤 집안의 곳곳을 조용히 비추는 샷들이 이어진 뒤, 위에서 말한 에바의 등장이 이어진다. 오프닝 크레딧과 집 안의 방들을 비추는 장면이 앞뒤로 다시 한 번 대칭을 이루는 셈이다.

 

  오프닝 크레딧 뒤 비로소 조르주와 안느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 장면에서 카메라는 음악회의 관객석을 비추고 있다. 수많은 관객 사이에 조르주와 안느가 있지만 배우 장-루이 트랭티냥과 엠마뉘엘 리바의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그 수많은 관객 사이에서 조르주와 안느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곧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아마도 연주자가 등장했을 것이다.) 음악이 흘러나온다. 슈베르트의 곡이다. 여기서 컷. 여기까지가 또 하나의 롱테이크씬이다. 그 뒤엔 조르주와 안느가 연주자 알렉산드르와 만나 인사하는 장면, 집에 오는 길에서의 장면이 이어지며 그들이 음악회에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조르주와 안느가 집에 들어와 조르주가 안느의 외투를 벗겨주자 안느가 부엌 쪽으로 들어가 버리며 카메라의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고 조르주만 홀로 카메라 안에 남아 외투를 벗은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까지를 한 컷으로 보여준다. 음악회에서 '나란히 앉아 함께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던' 조르주와 안느가 '집으로 돌아와' '조르주가 안느의 외투를 벗겨주고' '그 뒤 조르주가 홀로 외투를 입은 뒤' '각자 부엌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감으로써' '분리'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련의 장면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뒷부분에서 가교 장면 앞에 오는 일련의 장면은 어떠한가? '각각 자기 방과 부엌에 따로따로 있던' 조르주와 안느가 '한 장소에 모인다'. 조르주는 분명 죽은 안느가 멀쩡히 살아있음을 보고 놀란다. 그 뒤 '안느는 조르주의 도움을 받아 외투를 입고' 멍하니 따라오려는 조르주에게 외투 안 입냐고 묻는다. 그러자 '조르주가 홀로 외투를 입고' 둘은 함께 '집을 나선다'. '각자자신의 방과 부엌에 따로 있던' 조르주와 안느가 '한 장소에 모여' '조르주가 안느의 외투를 입혀주고' '그 뒤 조르주가 홀로 외투를 입은 뒤' '함께 집을 나서는' 과정. 위에서 말한 일련의 장면들과 완벽히 대칭을 이루고 있다.

 

  영화의 앞 부분에서는 그 뒤 '조르주가 잠을 자다, 옆에 깨어 있는 안느의 인기척을 느끼고 잠을 깨는 장면'이 이어지고, 영화의 뒷부분에서는 그 앞에 '조르주가 잠을 자다, 부엌에서의 안느의 인기척을 느끼고 잠을 깨는 장면'이 나온다. 이 역시 대칭을 이룬다.

 

  다시 처음 부분을 보면, 그 뒤에 조르주와 안느가 아침 식사를 하다 안느의 병의 징조를 보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조르주는 안느에게 말을 걸고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보지만 안느는 미동도 않는다. 영화의 뒷부분에서는 그 앞 부분에 조르주가 고생 끝에 집 안에 두 번째로 들어선 비둘기를 잡는 장면이 등장한다. 비둘기는 안느가 점점 자신의 본 모습을 잃기 시작한 뒤로 등장하기 시작하는 매개물이다. 조르주는 비둘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비둘기를 집 밖으로 쫓아내지만, 조르주가 안느를 죽인 뒤 비둘기가 다시 집 안에 들어오자 이번엔 고생 끝에 비둘기를 잡아 껴안고 쓰다듬고는, 그 뒤 편지에서 언급되듯 그 비둘기를 풀어준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죽은 안느가 누워있는 침실의 창문이 열려 있었다는 점이나, 조르주가 처음 안느의 병의 징조와 맞닥뜨린 장면과 안느가 제 정신을 잃기 시작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비둘기를 조르주가 비로소 잡고 쓰다듬더니 다시 놓아주는 장면이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 하에서 대칭을 이루는 위치에 놓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비둘기는 안느가 정신을 놓기 시작한 시점부터 안느의 화신으로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처음 부분에선 그 뒤 조르주와 에바의 대화 장면이 이어진다. 둘은 에바의 전 남편 조프의 이야기를 비롯해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 안느의 이야기에 이른다. 안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며 곧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영화의 뒷부분에선 비둘기 장면에 앞서, 안느를 죽인 조르주가 꽃들을 잔뜩 사 와 안느의 시체를 장식할 준비를 하는 동시에 집 안 방문마다 테이프를 붙이는 장면이 나온다. 두 장면 모두 안느가 부재한 장면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전자가 집으로 돌아올 안느를 기다리며 그녀를 걱정하는 장면이라면 후자는 영영 떠나버린 안느를 추모할 준비를 하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대조된다.

 

  영화의 앞 부분에서 조르주와 에바의 대화 장면에 이어지는 장면은, 안느의 퇴원 준비를 마친 집에 안느가 휠체어를 타고 돌아와서는 거실에서 조르주에게 '자신을 다시는 입원시키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영화의 뒷부분에서 추모 준비 장면에 앞서 등장하는 장면은 조르주가 침실에서 안느를 죽이는 장면이다. 전자에서는 '안느가 돌아오고', 후자에서는 '안느가 죽음으로써 떠난다'. 전자의 무대는 '거실'이고 후자의 무대는 '침실'인데, 거실은 집의 현관문을 들어섰을 때를 기준으로 오른편에 있는 공간, 침실은 왼편에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대칭을 이루는 공간들이다. 한 편, 전자에서 조르주가 안느에게 하는 약속과, 후자에서 조르주의 살해 역시 대칭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안느의 부양에 크나큰 부담을 느끼고 있고 이전의 안느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 역시 '지나치게 긴' 자신의 고통으로 가득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와의 약속 때문에 그녀를 차마 요양병원에 보낼 수는 없었다. 결국 벼랑 끝에 다다라 그가 선택한 방법이 살인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시작과 뒷 부분을 마치 접어둔 것처럼 대칭을 이루게 하고 있다. 영화는 이 밖에도 수많은 대칭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조르주가 안느의 병을 처음 깨닫게 된 아침 식사 장면에서 자신의 옛 이야기를 해 준 것처럼, 안느의 병을 끝내는 살해 장면에서도 그는 안느에게 자신의 옛 이야기를 해 준다. 집 안의 피아노가 연주되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이 장면들도 대칭을 이루고 있다. 첫 장면은 안느를 찾아온 제자 알렉산드르가 안느의 부탁에 따라 베토벤의 바가텔을 연주하는 장면이며, 두 번째 장면은 조르주의 기억 혹은 환상 속에서 안느가 슈베르트의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다. 베토벤을 존경하던 슈베르트가 처음 베토벤을 만나러 갔을 때 병환이 깊은 그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인사도 없이 뛰쳐나왔다는 일화가 있다. 안느를 찾아온 제자 알렉산드르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안느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는데, 이는 최근에 슈베르트에 빠져 있다는 알렉산드르에게 안느가 베토벤의 바가텔을 연주해줄 것을 요청하는 장면과 함께 안느와 알렉산드르의 관계를 마치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관계처럼 느껴지게 한다. 따라서 두 번의 피아노 연주 장면이 각각 슈베르트랄 수 있는 알렉산드르가 베토벤의 곡을 연주하는 장면과 베토벤이랄 수 있는 안느가 슈베르트의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대칭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한 편, 후에 알렉산드르가 안느의 건강을 염려하는 편지와 함께 보내온 자신의 슈베르트 연주 CD를 듣던 중 안느가 '꺼 버리라' 말하는 장면과 안느의 슈베르트 연주 환상을 보며 슈베르트의 곡을 듣던 조르주가 곧 음악을 '꺼 버리는' 장면 역시 대칭을 이룬다. 에바가 안느를 두 번 찾아오는 장면도 대칭을 이룬다. 에바는 두 번의 경우 모두에서 펑펑 울며 손수건으로 코를 푼다. 첫 방문에서는 전 남편 조프와 함께이지만 두 번째 방문에서는 혼자이다. 첫 방문은 약속된 방문이나 두 번째 방문은 갑작스런 방문이다. 첫 번째 방문에서는 침실 문이 열려 있지만 두 번째 방문에서는 침실 문이 잠겨 있다. 아마 이 외에도 영화 내에 대칭을 이루는 장면들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많은 대칭점으로 영화는 과연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

 

  우리는 수많은 장면에서 안느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는 단서들을 얻을 수 있다. 처음 병의 징조를 보게 된 순간에도 그녀는 자존심 때문에 애써 병을 부정하며 의사를 찾지 않으려 하는가 하면, 퇴원 뒤에는 다시는 입원시키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낸다. 그녀는 늘 자신의 마비 증상을 창피해 하며, 병환이 심화됨에 따라 점차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게 된다. 위에서 말했듯, 그녀는 알렉산드르와도 자신의 병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으며, 후에 알렉산드르가 보내온 CD를 들으며 자신을 걱정하는 그의 편지를 읽던 중엔 잔뜩 화가 나 CD를 꺼 버리라 하기까지 한다. 이외에도 외투를 벗겨주는 것을 비롯해 일상의 여러 가지 사소한 것들에 있어 조르주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성격이었다는 것도 쉬이 알 수 있다. 이처럼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애가 강한 그녀였기에, 아마도 그녀는 병환이 찾아오기 전에도 늘 늙어가는 자신에 대해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한 때는 음악에 몸 담고 있던 그녀이지만 이제 늙은 그녀는 연주하는 모습조차 쉬이 찾아볼 수 없다. 조르주의 기억 속에선 슈베르트를 능숙하게 연주하던 그녀이지만, 이제는 제자가 슈베르트를 연주하는 것을 보는 베토벤의 입장이 되어버린 그녀이다. 영화 초반부에 알렉산드르의 연주를 듣고 돌아와서 그의 연주를 칭찬하는 그녀에게 조르주는 '자랑스럽냐'고 묻지만, 우리는 그 대답을 들을 수 없다.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너머의 죽음에 대한 공포, 삶의 구석 어딘가에서 늘 불안하게 꿈틀거리던 것들이 구체적인 병환의 형태로 나타나면서 이제 병으로 인해 점차 추해질 것이라는 공포까지 더해지면서 불안과 공포가 그녀를 점점 집어삼키게 된다. 그녀는 이제 병환에 시달리며 제자에게 베토벤의 바가텔 연주를 부탁하는 병든 베토벤이며, 더 이상 제자가 연주하는 슈베르트 연주를 기쁜 마음으로 들어줄 수도 없다.

 

  한 편, 그녀를 바라보는 조르주에게 있어서 그녀의 병환은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간병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부담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안느와 '분리'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는 위에서 발한 바 있는, 알렉산드르의 연주회에서 돌아온 뒤 각자 다른 공간으로 들어감으로써 '분리'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그 불안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등장하더니, 아침 식사 장면에서도 절대 두 인물의 얼굴을 한 프레임 안에 함께 담지 않음으로써 그 불안을 연장시키기도 하고, 후에는 물이 흥건한 통로를 걷던 중 손이 덮쳐 오는 환상 장면(이는 간병에 대한 부담과 더불어, 죽음이 안느를 먼저 덮쳐버린 뒤 곧 자신마저 덮쳐오리라는 공포의 형상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으로 나타나기에 이른다.

 

  이처럼 병환으로 인해 추해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심, 노화와 죽음에 대한 공포, 간병의 부담, 분리의 공포 등은 안느의 병환이 심해질수록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며 부부를 짓누른다. 부부는 점점 바깥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며 수치와 불안과 공포, 소멸의 기운에 잠식되어가는 공간 안에 잠겨 간다(영화 처음 부분에 음악회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제외하면 영화는 단 한 번도 집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 초장에 바깥에서 집이라는 공간으로 들어온 뒤 점차 집이란 공간 안에 퍼져가는 소멸의 기운을 담아낸다는 점에서는 올해 상반기에 보았던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과 겹치는 면이 있다.). 안느가 제 정신을 잃고, 마침 그 타이밍에 맞추어 비둘기가 등장할 즈음, 첫 시작 부분에서 처음 '분리'의 물꼬를 트고 불안을 키워나가기 시작하며 끝없이 파고들던 영화는 그 불안의 밑바닥을 본 듯하다. 영화는 이제 슬슬 몸을 틀기 시작한다.

 

  조르주가 새 고용인을 들였다가 그녀의 행동에 불만을 품고 그녀를 다시 해고하는 시점이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 영화 시작 이후로 지금껏 쭉 대칭의 한 축만을 보여오던 영화가 처음으로 대칭의 다른 축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처음으로 안느의 간호 과정에서 외부인에게 모욕을 당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부양의 부담과 죽음과 분리의 불안이 극에 달한 조르주는 물을 뱉어내는 안느에게 무의식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에 이른다. 그는 단지 그녀를 살리기 위해 억지로라도 물을 먹이려 했을 뿐인데, 자신에 도리어 물을 뱉는 이 어린아이와 같은 여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의 뺨을 올린 이 남자는, 이 괴물은 과연 자신이 맞는가? 영화 초반 아침 식사 장면에서 안느는 옛 이야기를 하는 조르주에게 '이미지가 변할까 겁난다'고 말하고, 조르주가 자신의 이미지가 어떠냐고 되묻자 '고약하지만(monstrueux) 너무 착하다'고 대답한다. 그런 그의 이미지, '고약하지만 너무 착한' 그의 이미지가 어느새 '너무 착하지만 고약한', 혹은 'monstrueux'라는 단어 그대로 괴물같은 이미지로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조르주는 이제 자기 자신마저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그 즈음 대칭의 다른 축을 보여주는 또다른 장면이 등장하는데 바로 에바의 재방문 장면이다. 이때 안느의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한 조르주는 안느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급히 침실 문을 잠그지만, 곧 에바의 추궁에 문을 열어주고 만다. 안느의 모습을 본 에바는 병에 걸린 안느를 처음 보러 온 날처럼(영화 초반에 조르주와 대화를 나눈 그 장면이 아니다.) 엉엉 울며 코를 푼다. 그러고서는 이대로 가만히 둘 수 없다며 무슨 일이라도 해 보라며 아버지를 닦달한다. 조르주는 모든 시도를 다 해 보았지만 다 소용이 없었다며, 요양 병원에 보내는 일은 약속 때문에 할 수 없다며 오히려 에바에게 '어떻게 해야겠냐'고 되묻는다. 우리는 에바의 대답을 듣지 못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 다음, 대칭의 반대 축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은 슈베르트 연주를 떠올리는 환상 혹은 기억 장면이다. 늙고 병든 베토벤이 아닌 슈베르트 같던 시절의 그녀. 지금의 그녀는 마치 그 시절의 자신을, 자신의 영혼을 비둘기의 형상처럼 뱉어버린 육체와 같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 기억 속에 한참을 잠겨 있던 그는 마치 어떤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CD를 꺼 버린다(이 역시 대칭의 반대 축에 해당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아마 이 장면에서 조르주가 듣고 있던 CD는 알렉산드르가 준 그 CD일 것이다. 의도적으로 건강한 시절의 안느와 알렉산드르를 동일시하는 장면인 듯하다.). 그리고 이제 조르주는 안느에게 자신의 옛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들려주더니 안느를 죽인다. 병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면서도, 조르주 자신과 안느를 모두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제 'monstrueux'하기만 한, 괴물과도 같은 상태로 전락할 뻔했던 조르주는 자신의 옛 이야기를 안느에게 처음 해 주었던 그 아침 식사 때처럼 'monstrueux하지만 너무 착한' 조르주로 돌아간다.

 

  대칭의 한 축에서 '분리'의 과정을 쭈욱 따라가며 불안의 심화를 그렸던 영화는 이제 대칭의 반대 축에서 '합일'의 과정을 그리기 시작한 셈이다. 더 이상 안느가 안느 같지 않게 되어 버리고 자신도 예전의 자신을 일허버린 '분리'의 끄트머리, 그 절망의 정점에서 '합일'의 해결책을 구하다, 결국 안느를 죽임으로써 어떤 의미에서 '합일'의 물꼬를 트게 된 조르주는 이제 나름의 방식으로 안느를 추모하고 그 공간을 완전히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킨 뒤 다시 돌아온 비둘기를 마치 안느인 양 담요로 잡고서 꼭 끌어안아 쓰다듬고는 다시 풀어준다. 마치 의식과도 같은 행위이다. 편지로 이 이야기를 남기고 잠든 조르주는 이제 '분리'의 첫 시작과 꼭 닮았지만 정반대인 일련의 식순을 밟고 안느와의 영원한 '합일'의 길로 떠난다. 극중 거실과 부엌이, 다시 거실과 침실이 대칭을 이루듯 그 자체로 대칭 관계를 그리고 있던 조르주와 안느가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일'에 이르는 순간. 영화는 여기서 한 번 끝난다. 영화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형식미로, 죽음과 소멸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 '분리'의 불안 그 한복판에 놓였던 노부부가 외려 죽음을 통해 다시 '합일'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셈이다.

 

  이제 이 이야기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감싼다. 시간 순서상으로는 그 뒤에 이어질 경찰들의 진입 장면이 프롤로그에, 그 다음에 텀을 두고 따라왔을 에바의 방문 장면은 빈 집 안의 곳곳을 담은 장면들을 지나 에필로그에 위치해 있다. 경찰들의 진입 장면, 에바의 방문 장면 모두 집 안에 위치해 있는 카메라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본 내용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르주와 안느가 합일을 이루어 나갔던' 그 곳으로 '외부인들이 들어온다'. 경찰들은 안느의 시신을 보는데 그 주변은 조르주가 뿌려둔 꽃잎들로 장식되어 있고, 에바는 조르주의 자리에 앉는데 그 장면이 한 번의 컷 뒤에 안느가 누워 있던 침실 쪽에서 에바가 있는 거실 쪽을 바라보는, 마치 안느가 조르주를 바라보는 시선과도 같은 시점으로 그려진다. 이미 조르주와 안느는 그 곳을 나갔으나 외부인들은 그곳에 들어와 조르주와 안느의 흔적들을 마주한다. 카메라가 집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조르주와 안느의 흔적들은 혹시 그들이 떠난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외부인과의 조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닐까? 마치 그 공간 안에 철저히 갇혀 있었던 그들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바깥과 소통시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삶과 죽음조차도 일종의 대칭 관계로 본다면, '죽음의 공간'으로 변해가던 그 집에서 최종적으로 조르주와 안느가 합일을 이루고 그 공간을 '나서는' 대신 그 바깥 '삶의 공간'에서 외부인들이 들어와 그들의 흔적과 조우함으로써 그들의 이야기에 다시 '생명'을 부여하는 이 시도 역시 이 영화의 전체적인 대칭 구조의 연장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초반에 나왔던 음악회 장면에서도 이와 유사한 점을 지적해 볼 수 있다. 조르주와 안느는 음악회 관객들 사이에 섞여 있어서 좀처럼 그들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영화는 여기서도 은근슬쩍 이 부부의 이야기를 단순히 그 둘의 이야기로 가두지 않고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로 일반화시키려는 열망을 드러낸 듯하다. 또한 조르주와 안느는 음악회의 연주자인 알렉산드르를 향해 박수를 치고 그의 슈베르트 연주를 듣지만, 카메라엔 무대의 모습이 담기지 않은 채 오히려 카메라를 마주한 관객석만이 담겨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조르주와 안느는 어쩌면 알렉산드르가 아닌 카메라를, 그리고 그 카메라 너머의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이 박수를 친 대상은 누구인가? 슈베르트를 연주한 것은 누구인가? 어쩌면 그 슈베르트 연주는 우리의 몫이 아닌가? 곧 늙고 병든 베토벤이 되어 스러져갈 이들이라면 그 연주는 알렉산드르의 연주가 그랬듯 현재의 슈베르트 연주가 될 것이고, 혹은 이미 늙고 병든 베토벤이 되어버린 이들이라면 그 연주는 조르주의 환상 속 안느의 연주가 그랬듯 과거의 슈베르트 연주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르주와 안느가 보내는 박수는 우리를 향한 것이리라. 이제 현재의 시점에서 슈베르트를 연주하려는 자들에게는 미래의 너희가 될지도 모를 이들의 이야기이니 귀담아 들으라는 환영의 박수일 테고, 과거의 시점에서 슈베르트를 연주한 자들에게는 어쩌면 응원과 위로의 박수일 것이다. 나는 이제 그들에게, 그리고 이 황홀한 영화 한 편을 선물한 하네케에게 그 박수를 돌려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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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영화] 스카이폴 Skyfall (스포일러는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배치했음) [1] [24] Q 2012.11.13 7305
402 [영화] 늑대소년,그리고 여성의 욕망 [3] [1] ML 2012.11.08 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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