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2013.01.07 03:39

menaceT 조회 수:3789




'라이프 오브 파이'(IMAX 3D),

1월 6일, CGV 왕십리.

 

  이안 감독의 작품 스펙트럼은 정말 대단하다(배 안에서 배식 받는 사람 중 한 명이 이안 감독을 닮았던데 까메오 출연이 맞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양한 색의 영화들을 연출하면서도 늘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낸다. 이번 영화도 기대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일단 시각적인 황홀함에 있어서 근래 봤던 어떤 영화들보다 강렬하다. 3D 효과도 매우 뛰어나다. 이야기 자체의 매력도 상당하거니와 이를 살려내는 연출도 훌륭하다.

 

  주인공 파이는 힌두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를 믿고 유대교에 대해 강의를 하며 불교를 접한 바 있는 동시에 이성을 결코 배제하지 않으며 신, 혹은 ‘절대자’에 대해 탐구하는 인물이다. 이 영화의 핵심이 되는 표류기는 파이의 믿음이 시험 당하고(파이는 수없이 신을 ‘의심’한다. 그러나 성인이 된 파이가 작가에게 말하듯 ‘의심’은 곧 ‘믿음’을 위한 핵심적 과정이다.) 공고해지는 과정을 응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를 이를 시각적으로 황홀하게 스크린 위에 구현해내는가 하면 그 구조를 통해 ‘절대적인 무언가의 존재’에 대해 파이와 함께 고민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 의심과 믿음의 과정에 동참케 한다.

 

(스포일러)

 

  영화의 초장에 나오는 파이의 이름 관련 에피소드는 파이의 절대자를 향한 탐구의 초석을 닦는 부분이다. 파이는 ‘마마지(본명이 아니라 별명 같은 개념인 듯.)’가 좋아하는 파리의 수영장의 이름을 따 ‘피신 몰리토’라고 이름 지어지나, 그 이름의 유래와는 무관하게 발음 때문에 학교에서 ‘오줌싸개(pissing)’라 놀림 당한다. 파이는 이 놀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주율 값을 줄줄 외워 ‘파이’를 새 이름을 얻는데, 그 이후로는 심지어 그의 가족들마저 그를 ‘파이’라 부른다.

 

  수많은 기호들의 연속, 이 중 절대적인 것은 없다. ’파이’라는 새 이름은 원주율 값을 표시하기 위해 ‘임의로 약속에 따라 붙여진 수학 기호’에서 ‘따 온’ 것이다. ‘오줌싸개’ 역시 단지 발음상의 유사성 때문에 남들이 그의 본명과 별개로 그에게 임의로 붙인 별명이자 또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면 그의 본명 ‘피신 몰리토’는 어떠한가? 그조차도 ‘마마지’가 좋아하는 ‘수영장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마마지’ 역시 그 사람의 본명이 아니며, 심지어 파이는 그를 ‘삼촌’이라 부르는데도 실제로는 단지 아버지의 친구와 불과함이 곧 드러난다. 수영장의 이름 ‘피신 몰리토’도, 마마지의 본명도 아마 이처럼 끝없는 기호의 연쇄로 이어질 것이다. 그 연쇄를 끝까지 무한히 올라갔을 때 과연 ‘절대적인 무언가’에 다다를 수 있을까?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호랑이의 이름 역시 이와 비슷한 경우에 해당한다. 호랑이는 임의적으로 ‘목마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가, 후에 서류상 오류로 사냥꾼의 이름인 ‘리처드 파커’로 불리게 된다. ‘목마름’과 ‘리처드 파커’ 역시 쉬이 대체될 수 있는 기호에 불과하며, 이 기호들 역시 또 다른 기호들로 무한정 이어질 것이다.

 

  이름에 관한 에피소드 뒤엔 파이가 절대자에 대한 탐구를 위해 수많은 종교를 섭렵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절대자는 존재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이라며 ‘비슈누’, ‘크리슈나’ 등의 힌두교 신들의 이름과 ‘예수’, ‘알라’ 등 수많은 기호들이 그를 스친다. 그러나 파이가 접하는 종교는 절대적인 진리로 그를 인도하는 대신 곧 또 다른 종교로 그를 이끌고, 이때마다 하나의 기호는 또 다른 기호로 이어진다. 아난디의 춤 역시 그 기호 중 하나이다. 그 춤은 신에게 닿길 바라는 염원을 표현하는 몸짓, 기호이며, 파이가 처음 아난디에게 말을 걸 때 그는 그 기호가 ‘어떤 방식으로 다른 기호로 이어지며’, ‘왜 그 기호로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곧, 안정적일 거라 여겼던 인도 폰디체리에서의 삶이 위기에 빠지고 그들은 캐나다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성인 파이가 몬트리올에 사는 것으로 보아 그들도 아마 몬트리올로 향할 목적이었으리라. 파이 가족을 비롯해 온갖 인종의 사람들과 폰디체리에서 옮겨 가는 동물들까지 한 데 실은 배의 이름은 ‘TSIMTSUM’이다. 검색해 보니 ‘침춤’은 유대교 카발리스트인 루리아가 주장한 창조 개념으로, 무한자가 스스로를 ‘제한’, ‘수축’시킨 뒤 가장자리로 이동해 진공의 공간 안에 세계를 창조한다는 이론이란다. 우리는 그 ‘침춤’ 이론을 조금 변형해 여러 인종의 인물과 동물들이 공존하는 그 ‘침첨 호’를 신이 창조한 세계의 ‘축소’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 곳에서 또 한 번의 ‘침춤’, ‘제한’을 통한 또 한 번의 창조가 일어난다.

 

  사고로 인해 배가 침몰함으로써 기존의 세계는 광활한 태평양 한가운데의 구조 보트라는 훨씬 작은 버전으로 ‘축소’되어 ‘재창조’된다. 이와 더불어 결말에서 그 윤곽이 명확히 드러나는 두 가지 이야기가 갈라지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파이, 리처드 파커,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이 탄 구조 보트가 나오는 이야기, 그리고 파이, 요리사, 파이의 어머니 지타, 다리를 다친 행복한 불교신자 선원이 탄 구조 보트가 나오는 또 하나의 이야기. 이제 ‘침춤’의 재창조 과정을 통해 이야기는 두 개로 갈라지고, 각각의 이야기를 각각의 세계로 볼 때 이는 곧 두 가지 다른 차원의 세계의 창조가 이루어진 셈이다.

 

  두 번째 세계의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기로 하고, 첫 번째 세계에 주목해 보자. ‘침춤’을 통해 새로이 창조된 세계, 이 구조 보트를 파이는 처음에 ‘파이의 방주’라 표현한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신이 물로 기존의 세계를 멸하고 ‘노아의 방주’에 탄 생명들만 새 세계로 옮긴 것처럼, 이 경우에도 기존의 세계인 ‘침춤 호’는 물로 멸하고 ‘파이의 방주’만이 남는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의 경우와는 달리, ‘파이의 방주’에는 곧 처절한 먹이사슬이 자리잡는다. 하이에나가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하이에나를 죽이고, 그 뒤엔 파이와 리처드 파커 간의 묘한 공존 상태가 유지된다. 리처드 파커를 제거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차마 그러지 못하고 그를 살려둔 파이는, 이제 그 보트 위에서 리처드 파커와 함께 수많은 좌절과 위기의 상황들을 겪게 된다. 유대교의 창조 신화, 크리스트교의 창세기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뒤섞여 생겨난 이 기묘한 공간에서, 파이는 고기를 잡아 그것이 비슈누 신의 현신이라 생각하는가 하면 ‘생존 가이드’라는 ‘이성’의 산물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유대교, 크리스트교, 힌두교, 이성 등, 그 어떤 영역의 ‘기호’로 그것을 가리키든 간에 파이는 그 모든 ‘기호’들이 결국엔 하나의 ‘신’이란 이름의 ‘절대적’인 그 무엇으로 수렴할 것이라 믿는 듯하다. 제각기 자신만이 ‘진리’이며 ‘절대적’이라 말하는 그 ‘절대자’에 대한 다양한 ‘기호’들을 파이는 상보적인 관계로 받아들여 그때그때 다른 색으로 찾아오는 ‘절대자’의 섭리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위기를 겪어나가면서 회의와 의심에 부딪치곤 하는 그 믿음은 이를 견디어낼 때마다 점점 더 굳세게 단련된다. 대표적인 예로, 구약의 신과 신약의 예수에서 그 차이가 드러나듯, 신은 온화한 동시에 광포하고 선물을 내리는가 하면 벌을 내리기도 한다. 마치 욥기 속 욥처럼 끝없이 시험 당하면서도 파이는 그러한 신의 양가적인 속성을 상기하며 믿음으로 버텨낸다.

 

  이 과정에서 영화가 시각적으로 그 ‘절대자의 섭리’를 그려내는 방식이 굉장히 아름답다. 일례로 이 영화는 해수면을 화면 가득 담아냄으로써 그 수면 밑 세계를 혹은 해수면에 비친 하늘을 함께 담아내는 장면을 종종 연출하곤 한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크리슈나의 신화에서 ‘모래를 삼켰다’며 꾸지람을 듣던 크리슈나가 입을 벌렸을 때 그 안에는 ‘우주’가 있었다. 즉, ‘모래’가 크리슈나의 입 안에서 ‘우주’가 된 것이다. 이처럼 모든 만물은 우주를 가리키고 나아가 절대자의 섭리를 남아낸다는 것이 아마 크리슈나의 신화가 말하려던 바이리라. 영화 속에서 그렇게 그 아래의 세상과 위의 세상을 한 번에 담아내는 그릇으로 그려지는 해수면은 그 자체로 크리슈나의 신화가 말하려는 바를 오롯이 시각화해 내고 있다. 그 해수면에 담긴 우주를 함께 바라봄으로써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교감하게 되는 장면(리처드 파커의 얼굴과 그가 바라보는 바닷속 우주를 통과해 파이의 바닷속 우주를 지나 파이의 얼굴로 이어지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한참을 태평양 위에서 표류하던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마침내 육지에 이르게 된다. 그곳은 미어캣으로 가득한, 지도상에도 표시되지 않는 섬이다. 이 섬을 그려내는 방식에 우리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곳의 미어캣들이 파이와 리처드 파커를 대하는 태도는 마치 신, 절대자를 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미어캣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다른데, 파이가 미어캣들에게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친절한 반면 리처드 파커는 가차없이 그들을 집어삼킨다. 밤이 되고 섬이 산성의 물로 가득해지는 순간에도 파이는 미어캣들과 함께 자는 반면 리처드 파커는 보트로 향한다. 즉,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각각 미어캣들에게 있어 온화한 신과 광포한 신이라는 신의 양가적 속성을 나누어 보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섬 자체가 낮에는 각각 파이와 리처드 파커에게 식물과 미어캣이라는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하다 밤에는 산성으로 변해 이들을 위협한다는 사실은, 미어캣들에게 신이나 다름없는 파이와 리처드 파커보다 상위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이 때 아난디가 춤으로 절대자에 대한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한 ‘기호’인 ‘숲 속의 연꽃’이 등장하고 그 속에서 사람 이가 나온다. 파이는 이것이 신이 보내는 메시지라 여겨 섬을 나가리라 마음먹게 된다.). 그리고 곧 카메라엔 비슈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섬의 전경이 드러난다(성인 파이가 작가에게 ‘바다에 드러누워 있는 비슈누’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 때 그는 ‘우리 모두는 비슈누의 꿈의 조각’이라 말한다.).

 

  ‘미어캣- 파이와 리처드 파커 -비슈누 섬’의 관계에서 우리는 피조물과 창조자(혹은 그와 유사한 관계)의 연쇄를 유추해 낼 수 있다. 미어캣들에게 있어서는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곧 ‘비슈누’, ‘크리슈나’요, ‘예수’ 혹은 ‘알라’이지만 그들이 과연 ‘절대자’인가? 그렇다면 파이가 찾는 절대자 역시 어쩌면 ‘비슈누’, 크리슈나’, ‘예수’, ‘알라’라는 기호들이 가리키는 바로 그것들로부터 또 무한히 ‘피조물-창조자 연쇄’를 타고 올라가야만 닿을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피조물-창조자 연쇄’를 다룬다는 점에서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그러나 파이에게는 이미 굳건한 믿음이 존재하며, 비슈누 섬을 통해 또 한 번 드러난 상위의 존재의 현현 역시 그 연쇄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에는 ‘절대자’에 닿으리라는 믿음을 굳히는 증거가 되었으리라(‘프로메테우스’의 쇼 역시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를 확인하고자 엔딩 부분에서 다시 떠난 바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사실상 여기서 끝난다. 비슈누 섬을 나오고 얼마 안 있어 그들은 멕시코에 상륙하고 리처드 파커는 파이를 떠난다. 아난디와의 이별이, 가족들과의 이별이 그랬듯 리처드 파커와의 이별에도 작별 인사는 없다.

 

  곧 두 번째 세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얼룩말 대신 불교 신자 선원이, 오랑우탄 대신 파이의 어머니가, 하이에나 대신 요리사가 등장하고, 파이와 리처드 파커 둘 대신 파이 하나만이 남는 이야기. 이 이야기대로라면 살아남은 파이에게조차 절망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신에 대한 회의와 의심만이 이어질 뿐, 신의 존재를 재확인하며 믿음을 다시 굳건히 할 수 있는 순간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제시되는 방식이 재미있다. 침춤 호를 만든 일본 회사의 직원들이 파이를 찾아와 파이의 첫 번째 이야기를 듣고는, 바나나는 물에 뜰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그 이야기가 말이 되지 않는다 여기는가 하면, 배의 침몰 원인을 알 수 없으므로 쓸모 없는 이야기로 치부한다. 그 뒤 그들은 ‘믿을 만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한다. 그 때 파이가 두 번째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여전히 배의 침몰 원인은 알 수 없고, 이번에는 오랑우탄 대신 파이의 어머니가 바나나 더미를 타고 온다. 여전히 직원들이 제시한 핵심적 문제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첫 번째 이야기는 비록 어른 파이라는 내레이터가 시작과 끝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플래시백을 통해 '직접 보여지는' 반면, 두 번째 이야기는 전적으로 플래시백 속의 청소년 파이의 입을 통해 '들려지기만 한다'는 점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직접 보이는' 이야기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이야기, 이야기의 내용과 더불어 이 전달 방식의 차이로 인해 두 번째 이야기가 더 그럴 듯함에도 불구하고 이 두 번째 이야기 역시 기꺼이 받아들이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두 번째 이야기가 첫 번째 이야기보다 ‘믿을 만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제 성인 파이는 작가에게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맘에 드냐’고 묻는다. 작가는 첫 번째 이야기를 택하겠다고 말한다. 파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이제 이야기는 오로지 작가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뉘앙스의 말을 던진다. 그리고 곧 파이의 아내와 아들딸이 집에 도착하고, 작가는 일본 조선 회사 직원들의 보고서에서 ‘벵골 호랑이’의 언급을 확인한다. 그 직원들 역시 첫 번째 이야기를 선택한 것이다. 작가와 그 직원들은 모두 ‘침춤’의 재창조를 통해 갈라져 나온 두 가지 세계 중 첫 번째 세계를 택했고, 이를 통해 ‘절대자’를 ‘믿기로’ 한 셈이다.

 

  영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뒤이어 리처드 파커가 밀림으로 떠나는 것을 파이가 마치 작별인사라도 하듯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야기 속에서는 파이가 정신을 잃어 리처드 파커가 떠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성인 파이는 이에 대해 리처드 파커가 작별인사도 없이 떠났다며, 그는 그 역경을 자신과 함께 지나오면서도 자신을 친구라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며 눈물 흘린 바 있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장면의 정체는 무엇인가?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폰디체리의 동물원 곳곳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파이의 가족은 배를 타는 시점에 이미 폰디체리에서 동물원 사업을 접은 뒤이므로 영화의 맨 첫 장면은 적어도 성인 파이의 영역에 속하는 이야기는 아니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오프닝 크레딧이 이 장면들과 함께 흘러나오고, 그 뒤 성인 파이의 대사가 보이스오버로 깔리더니 장면이 바뀌어, 현재 몬트리올에 있는 파이의 집에서 작가와 파이가 대화하는 장면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파이는 여기서 ‘마마지’로부터 이어져 오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영화의 마지막으로 돌아가 파이와 리처드 파커의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바로 직전을 보자. 보고서에서 막 벵골 호랑이의 언급을 읽은 작가에게 파이가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는 모습이 어렴풋하게 나온다. 이때 파이가 자식들의 이름을 말해준다.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아들의 이름은 파이의 형 이름을 ‘따 온’ ‘라비’이고, 딸의 이름은 파이의 어머니 이름을 ‘따 온’ ‘지타’이다. 영화의 두 번째 장면으로부터 이어지는 파이의 이름 에피소드와 대구를 이루는 장면인 것이다. 영화의 맨 첫 장면도 맨 마지막 장면도 명백히 ‘성인 파이의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 장면임을 확인한 바 있으니, 우리는 두 번째 장면과 마지막에서의 두 번째 장면(자식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부분)이 각각 ‘성인 파이 영역’에서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청소년 파이’의 영역을 찾아볼 차례이다. 영화의 주된 내레이터는 ‘성인 파이’이지만 갑자기 그의 내레이션이 자취를 감추는 순간들이 있다. ‘침춤 호’에 오른 뒤 한 동안은 계속 성인 파이의 내레이션이 등장하지만, 침춤 호가 침몰하게 되는 그 사고의 시점부터 갑자기 성인 파이의 내레이션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동안 영화는 내레이션이 없이 진행되다가 파이가 구조보트에서 생존 가이드를 읽는 순간, 갑작스레 ‘청소년 파이’의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이후로는 한 동안 모든 내레이션이 ‘청소년 파이’의 목소리로 진행되다가, 미어캣 섬에 밤이 찾아오는 순간, 그러니까 첫 번째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다시 ‘성인 파이’의 목소리가 등장하고, 몬트리올의 파이 집에서의 대화 장면들이 다시 삽입되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 이야기가 끝을 맺는다. 그러나 그 뒤 병원에서 파이가 일본인들에게 두 번째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간에는 다시 성인 파이가 잠시 자취를 감추고 오롯이 ‘청소년 파이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 즉, ‘침춤’의 재창조 과정을 통해 태어난 두 이야기, 세계가 두 개로 갈라져 있는 그 시점의 부분들은 ‘청소년 파이’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청소년 파이의 영역에서 청소년 파이의 목소리를 통해 두 가지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성인 파이의 영역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맺을 ‘이름’이라는 ‘기호’의 이슈를 던지는 한 편 극중 인물인 일본인들과 작가의 선택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 바깥에서 영화를 감싸는 첫 장면과 끝 장면은 어떤 영역에 속하는가? 첫 장면은 몰라도, 적어도 끝 장면은 청소년 파이의 영역에 존재했던 파이의 이야기 속에서는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파이의 이야기가 완전히 개정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말미에 파이가 ‘작가의 손’에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넘겼던 것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이 첫 장면과 끝 장면은 그 작가의 손에서 재창조된 파이의 이야기, 즉, ‘작가의 영역’을 암시하는 장면은 아닐까? 작가는 단순히 자신의 선택을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 파이가 아쉬워했던 부분을 위로하듯 그 결말부를 수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영화는 총체적으로 청소년 파이, 성인 파이, 작가라는 세 명의 내레이터, 아니, 이 영화의 진정한 내레이터라고 할 수 있는 이안 감독까지 고려해 총 네 명의 내레이터들이 각각의 영역으로 이야기를 층층이 감싸게 하고, 이야기가 그 층들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선택지로 제시되고, 선택되고, 수정되는 과정을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면 수정의 가능성까지 보여준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네 명의 내레이터를 거치는 동안에 이야기가 변질되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가장 내적인 영역에서 제시된 이야기들도 어쩌면 ‘파이가 겪었던 그 경험 그 자체’와는 전혀 다른 것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 중에 ‘정확한’ 것, ‘절대적인’ 것이 무엇인지, 아니, 과연 있기는 한 건지 영화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모든 이야기들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힌트만 던질 뿐.

 

  영화 속 이야기를 통해서는 절대적인 것을 찾아가는 파이의 여정을 그려내다 그 끝에서 파이가 얻게 된 ‘믿음’을 보여주더니, 영화는 이제 그 끝에 이르러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구조 자체를 총체적으로 되짚음으로써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에 직면케 해, 마치 ‘절대적인’ 그 무언가가 이 구조 상에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회의감을 선사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놀라운 수준의 3D 기술은 영화의 대부분이 CG로 구성된 화면이라는 사실과 함께, ‘내 눈 앞에 생생하게 3차원처럼 펼쳐져 보이는 이 영상들이 실상 보트 하나 달랑 놓인 데서 배우 혼자 연기하며 찍은 영상에 CG를 덧입힌 뒤 스크린에 투영한 2차원 이미지에 불과함’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있어 이야기의 구조가 주는 회의감을 훨씬 배가시킨다(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화면비율조차도 일정하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날치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이 장면 중 마치 날치가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면서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3D 효과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영화가 순간적으로 화면 높이를 줄여 화면비율에 변화를 줌으로써 낸 효과였다. 그 장면 전후로 화면 비율의 변화가 꽤 노골적으로 보이는 편이다.). 파이가 지나온 그 회의와 믿음의 과정을 그대로 따르길 영화는 바라고 있는 것일까? 영화는 대답하는 대신 조심스레 질문한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맘에 드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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