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범(2009)

2010.07.22 11:19

아.도.나이 조회 수:3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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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람을 원하시는 분은 SKIP.

 

2009년 PIFF에서 공개된 작품입니다. 관람 전 알고있던 정보는 주인공이 '곽부성'이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접하기 쉬운 포스터는 반감을 살만큼 별로였죠. 곽부성의 눈을 강조한 RED 버전은 [케이프피어] 짝퉁같고, 세로형 버전은 중화권 영화 특유의 반감이 드는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어요. (네, 이건 개인적일 수 있죠. 전 해당버전의 포스터에 나오는 인물이 곽부성인지도 몰라봤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전기드릴을 이용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중심에 '링'이라는 주인공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 사람은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습니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모든 범죄가 '링'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주인공은 결국 기억에도 없는 살인의 실체를 찾아 접근하게 됩니다. 이런 영화에 반전은 필수요소.

 

[살인범]은 어떻게든 주인공을 범인으로 몰고 가고 싶은 영화입니다. 의도가 너무 정직해서 원하는대로 따라가주고 싶어도 심심해서 그러질 못하겠는 영화죠. 사건은 사실 몇번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이 영화는 무지막지한 고어씬을 집어넣고 관객들이 범죄의 참상을 여과없이 즐기길(?) 원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사용한 고어장면들에 상당한 불쾌감이 들더군요. 이 영화는 소위 '누명쓴 남자의 고군분투기'입니다. 미스테리와 추리극이 교묘히 결합되어야 할 장르란 말이죠. 그런데 그 앞에서 너무도 단촐한 살인사건들을 나열해놓고, 그 동기에 대해서도 얄팍하게 처리한 시나리오에. 그것을 커버하겠다고 고어씬만 잔뜩 부풀려 놓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살인의 대상은 우리가 알수도 없거니와 알 필요도 없는 인물들이 대부분입니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그런 장면들을 매끄럽고 자신있게 보여주려 용을 씁니다. "봐! 우리가 이 정도로 사실적인 고어장면을 만들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닝에서 시작된 기분 나쁜 긴장감(고어장면으로 인한)은 중후반에 이르러 자멸하고 맙니다. 중화권 특유의 오버연기와 시나리오의 핵심키워드였을 반전이 결합하자 오합지졸의 비극이 연출됩니다. 반전으로 사용된 키워드는 사실 너무 무리수가 커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죠. 적어도 이 영화를 만든 당사자들은 이게 꽤나 먹힐 것이라고 생각했나봅니다. 그 반전이란게 뭐냐고요?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링'의 양아들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주인공보다 나이가 많은 외소증에 걸린 '링'의 이복형제였고요(!!)] 이 설정이 기가 막히게 작용할 요소 따위 영화 전반에 걸쳐 보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시나리오 속에 그것을 노출할 생각을 안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영화 말미에 썩소를 드러내며 "아빠, 나는 사실 40도 넘었어."라고 야부리는 범인의 말이 우스울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너무 허황되다 싶었는지 아들은 그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자신이 왜 사건의 배후인지를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장장 10분에 걸쳐 대사와 플래시백이 쏟아져 나옵니다. 미치겠습니다. 곽부성은 여전히 오버연기로 일관합니다.

 

고어장면 이후 저는 또 한 번 이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 깊은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이들이 차용한 희귀병의 대상들이 너무 피상적이예요. 우쭐대기 위한 고어처럼, 반전의 도구로 사용한 범인들의 실체마저도 얄팍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도 이걸 '한 방' 효과라고 생각하고 결론으로 깔았다는 것이 한심합니다. 많은 이들이 [오펀 : 천사의 비밀]의 아류같다고 언급하는데 저는 그 비교자체도 버겁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이들은 [오펀]을 따라가기보다 [세븐]을 대놓고 모방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물론 이들에게 [세븐]의 입체적인 텍스트 따위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요. 주현양 감독의 데뷔작 [살인범]은 여러모로 실망스런 작품입니다. 소재주의와 고어의 강도가 영화를 살린다고 착각한 것 같아요. 그럴거면 막 나가는 고어 스플래터 영화를 찍었어야죠. 그들이 기준잡은 영화가 [세븐]이었다면 이런 식의 접근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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