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HX 1138, 1971

2012.08.12 20:18

hermit 조회 수:3782

 

THX 1138... 1971년작이니 무려 40년이 된 영화다. 게다가 무려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연출한 최고의 흥행감독 조지 루카스(!!)의 데뷔작(!!!)이며, 또다른 거장 프란시스 코폴라와 함께 메이저의 간섭 없이 우리끼리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어보자며 창립했던 조에트로프 스튜디오의 창립작품이기도 하다.

 

조지 루카스라고 하면 흔히 가벼운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던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데뷔작인 이 영화는 놀랍게도 조지 오웰의 1984에 비견될만한 암울한 미래에 대한 묵시록이다. 이 작품이 그려내는, 모든 인간성이 말살되고 오직 생산과 소비, 효율성과 비용이란 가치에 매몰된 미래 사회의 끔찍한 모습은 지금 봐도 여전히 서늘할 정도다. 매시간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통해 투약을 확인받고 온갖 진정제로 감정을 억누른 채 모든 즐거움은 그저 TV 시청으로, 성욕조차 기계의 도움을 받은 자위로 해결하면서도 불만조차 갖지 않는 초반 THX 1138의 모습은 비틀린 시스템에 종속되어 저항할 의지조차 갖지 못한 채 무기력한 노동자 계층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그런 THX 1138이 일하는 곳이 항상 그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안드로이드 경관을 만드는 공장이란 사실은 비틀린 사회시스템에 억눌린 가장 큰 피해자지만 오히려 그 시스템이 유지되는데 가장 크게 일조하는 서민층의 아이러니를 떠올리게 한다. 약물 등 갖은 통제에도 THX는 방 동료인 LUH 6241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 혼란스러운 감정을 해결하고자 올리는 그의 절실한 기도 앞에서조차, 녹음된 목소리가 "생산할 거리가 있음에 감사하고 더욱 더 많이 소비하게. 그리고 사고를 조심하게"라고 기계적인 대답을 내놓을 뿐인 장면은 거의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결국 THX 1138은 LUH 6241과의 관계가 발각되어 감금되지만, 거기에서 마지막으로 그녀와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그가 환하게 웃는 유일한 장면이다) 역시 매우 인상적이며,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고 그저 모니터에 잠시 스치는 장면이 전부지만 LUH 6241이 "폐기" 및 "재활용"되었음을 알리는 장면("폐기"된 인간은 분해되어 새로운 태아에게 영양소로 주입되는 것으로 암시된다. 이후 매트릭스에서도 이런 설정이 나온다.)에선 망연자실함을 준다. 마지막에 거의 코앞까지 THX를 추격하는데 성공하지만, 그의 체포에 배정된 예산이 초과하는 순간 순순히 그가 탈출하도록 내버려두는 장면은 차라리 냉소적이다. 마침내 도시 밖으로 탈출하여 이글거리는 붉은 석양과 마주한 채 당당하게 선 THX 1138의 모습이 주는 강렬함은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조지 루카스는 항상 새로운 촬영기술과 특수효과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모험가이자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했는데, 이는 데뷔작이었던 이 작품에서부터 드러난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의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미장센과 영상미를 보여준다.) 75만 달러라는 결코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졌음에도 이 영화의 시퀀스는 시종일관 놀랍다. 도입부분 정교한 작업으로 안드로이드 경관이 만들어지는 장면(공각기동대의 오프닝 시퀀스는 분명 이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다.), 구금된 THX의 신경을 조작해 괴상한 포즈들을 위하도록 하며 장난감처럼 다루는 장면(이건 순전히 THX 1138을 연기한 로버트 듀발의 뛰어난 연기력에 기인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젊은 날의 로버트 듀발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꽤 가치있다!), 박진감 넘치는 차량 추격전 등은 이 영화가 40년 전 별다른 특수효과의 도움 없이 만들어진 작품이란 것을 완전히 잊게 만든다. 특히 흰색으로 뒤덮인 도시의 모습은 청결함을 넘어 질식할 듯한 분위기에 거의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듯한 느낌마저 주며, 유일하게 검은색 옷을 입은 안드로이드 경관을 더욱 위압적으로 보이도록 만든다.(이런 무채색 분위기는 아일랜드나 이퀄리브리움과도 상당히 닮았다.) 곳곳에 CCTV로 인물을 지켜보는 구도를 사용해 관객들조차 감시의 일원이 된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화면 구성 역시 지금 봐도 놀랍다.  

 

오래된 작품이고, 흥행에 실패한 탓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이 영화는 감히 위대하다고 칭할 만 하다. 특히 지금 봐도 인상적인 이 영화의 대담한 화면구성과 독창적인 시퀀스들은 이후의 수많은 SF 영화에 영향을 주었고 오마주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 영화는 조지루카스의 이후 작품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는데 독창적인 세계관, 선명한 주제의식, 뛰어난 영상과 배우들의 호연 등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참담했던 영화의 흥행성적은 젊은 조지 루카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그가 "다시는 돈 안 되는 영화 따위 하지 않겠다"라는 결심에서 본격적인 상업영화로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음울하기 짝이 없는 작가주의 SF영화가 이후 헐리웃 최고의 흥행감독을 만든 계기라니 그 또한 참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후 조지 루카스가 루카스 필름을 설립하고 그동안의 노하우를 총집결해 특허를 낸 음향시스템을 THX라 명명한 걸 보면, 조지 루카스 역시 자신의 데뷔작이었던 이 영화를 꽤나 사랑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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