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게이샤의 삶 偽れる盛装 1951

2012.02.17 10:38

Le Rhig 조회 수:2015

 기미쵸


게이샤였던 어머니 키쿠, 동생 타에코와 함께 게이샤인 기미쵸는 교토에서 삽니다. 기미쵸는 기온 최고의 게이샤지만 키쿠와 타에코 때문에 몸과 마음이 성할 날이 없습니다. 키쿠가 안 좋은 형편에도 보은을 하겠다며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때문이고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길 바랐던 타에코가 결혼 약속을 어긴 남자친구 때문에 도쿄에 가려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무엇이 어찌되었든 기미쵸는 언제나와 같이 모든 일을 수습하려 자신의 일을 합니다. 영화는 기미쵸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봉건사회에서 민주사회로의 과도기에 걸쳐진 일본에서의 혼란스러운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신도 가네토의 각본은 고전적인 멜로드라마입니다. 일전에 본 신도 가네토 영화인 올빼미에서의 활기가 없어요. 영화가 만들어진 시절은 전쟁을 겪은 지 오래지 않은 시절이었고, 그 시절에 영화의 주제인 ‘봉건사회에서 민주주의로의 과도기에 걸쳐진 일본’은 현재진행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올빼미에서는 수십 년 전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었으니 당연히 다른 방식의 접근이 가능했던 것이고 게이샤의 삶에서는 그렇지 않아 그게 가능하지 않았던 거지요. 올빼미를 먼저 보았기 때문에 각본이 비교적 전형적으로 보였습니다. 영화의 내러티브도 전형적인 내러티브에요. 다만, 이 멜로드라마가 그리는 소재가 인물이 아니라 게이샤라는 신분이라는 게, 이를 통해 시대상을 그린다는 게 덜 전형적일 뿐이지요.

영화의 내러티브는 게이샤 사이의 연대와 질투, 봉건사회에 대한 혐오, 민주사회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키쿠의 이야기와 죽어가는 후쿠야의 이야기는 게이샤 사이의 연대를, 기둥서방을 사이에 둔 기미쵸와 이세하마와의 싸움은 게이샤 사이의 질투를, 동생 타에코의 이야기는 봉건사회에 대한 혐오와 민주사회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모든 게 너무 많고 통일되기 어려워 자칫 잘못하면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내러티브인데, 신도 가네토의 각본은 이것을 교묘하게 피해갑니다. 공간과 생활상의 묘사를 통해 사실성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플롯으로 내러티브를 조각조각 잘라내어 이어 붙이는 것으로 사실성을 완성하였습니다. 인물에서 인물으로 시점을 옮겨가며 그 인물과 그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게끔 한 것인데, 그 결과 이야기의 작위보다 인물과 드라마가 보이게 되었지요. 사실성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물과 드라마를 하나로 묶어내는 기미쵸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기미쵸와 그녀의 드라마는 걸작입니다. 기미쵸는 게이샤이기에 비록 그 몸이 봉건사회에 속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 마음은 민주사회에 속합니다. 게이샤라는 자신의 봉건사회 신분을 직업으로 여긴 그녀는 언제어디에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든 철저한 직업의식과 직업윤리를 유지하며 자신이 놓인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절대 좌우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계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봉건사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그녀는 억척스럽게 자신이 하려던 일을 모두 해냅니다.

인물과 그 드라마가 중요한 영화인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한 영화입니다. 타에코 역의 후지타 야스코처럼 배우의 이미지만을 남기는 경우도 있지만, 코지 역의 코바야시 케이쥬나 이세하마 역의 신도 에이타로, 야마시타역의 스가이 이치로와 같은 베테랑 배우들은 노련한 연기로 그들이 맡은 바 역할을 모두 잘 소화해냅니다. 그리고 노련한 배우들 사이에 기미쵸 역의 쿄 마치코가 있습니다. 그녀는 영화의 스타로, 기미쵸라는 인물이 그러하듯이 영화의 구심점 역할을 해냅니다. 스타로서의 그녀의 아우라는 기미쵸라는 인물과 맞물려 굉장한 시너지를 만들어냅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미칠 듯한 존재감 없이 기미쵸라는 인물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야심이 큰 영화입니다. 보여주려는 게 많아요. 결과물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시도에만 그치는 것도 있고 완벽하게 보여준 것도 있습니다. 때로는 균형을 놓쳐 휘청거리기도 합니다만, 전체적인 그림을 놓고 보았을 때엔 모든 것이 정확한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잘 만든 영화에요. 구경할 거리도 있고, 생각할 거리도 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게 하느냐? 시대와 사람들이지요. 과거는 우리가 선 현실의 토대라는 것과 현실의 토대를 만든 것은 과거의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가치 있는 이야기에요.


2012.2.17
르 뤼그


가지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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