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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종케의 <독거미>를 읽었습니다. 어느 분이 지적하신대로, <독거미>의 등장인물은 매우 단출합니다. 셋, 아니면 넷? 이들의 관계는 일견 삼각관계처럼 보이기도 하고, 공범자들과 피해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 됐건 이 관계에는 분명 섹슈얼한 부분이 있습니다.

 

강렬한 성적 묘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작품을 두고 하드보일드 소설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하드보일드 소설하면 떠올리면 어떤 것들이 <독거미>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총과 음울한 남자, 섹스, 거친 악당, 미모의 여인, 음모, 의외의 결말, 건조한 문체 등등. 그러나 제가 <독거미>를 두 번 이상 반복해 읽으면서 생각했던 건 성적인 면에서의 권력 문제와, 인물 각각이 무얼 원하고 있을까, 이었어요. 특히 중심인물인 리샤르와 이브는 거의 주종관계나 다름이 없습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쓰기는 어렵지만, 리샤르는 이브를 지배하는 인물이고 지배하는 방식 중 하나는 이브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브는 그 학대에 분명히 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닙니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리샤르의 행동은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등장인물인 알렉스 역시 마찬가지예요. 이브는 마치 이 둘 사이에 낀 그저 그런 여자 주인공 같아 보이지요. 어떻게 보면 이브는 두 남자인 리샤르와 알렉스에 비해 욕망하지 않는 자이기 때문에 끌려 다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지루하고 그저 그런 작품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독거미>는 결말 부분에서 이런 생각을 뒤집어 버립니다. 오히려 이브야말로 최후의 권력관계에서 가장 특별한 위치에 오르지요. 리샤르와 알렉스는 이브에 비하면 형편없는 꼴이 되어요. 작품 내내 유지되던 힘의 관계가 단숨에 역전되는 이 부분은 소설이 절정에 이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건조하고 간결하게 사건을 훑는 듯한 작품이지만, 결말을 보고 나서 다시 새겨 읽어 보면 꼼꼼하게 뿌려진 복선들이 많습니다. 예민한 분들이라면 아마 처음 읽으실 때부터 좀 느낄 지도 모르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장을 덮고 나서 어쩐지 모를 공백을 느꼈습니다. 좋게 표현하면 현실에서도 계속 생각해 볼 여지를 남겼다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심심하다 정도로 얘기할 수 있겠지요.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알모도바르 같은 경우는 이걸 또 다른 창작욕으로 이은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데, 아마도 영화를 보고 나면 좀 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무엇보다도 쓸데없는 감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물론 몇 장면 나오기도 하고 그 장면들이 실제로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 흠결이 될 만큼은 아니예요) 마음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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