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녀 감성, [김종욱 찾기]

2010.12.01 18:26

taijae 조회 수:5161

 

대학로에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 뮤지컬, [김종욱 찾기]가 충무로를 찾았다. 뮤지컬의 대본을 직접 쓴 장유정 연출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을 잡아 관심이 증폭됐다. 임수정과 공유가 남녀 주인공으로 캐스팅 됐다는 소식은 영화의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서지우(임수정)와 첫사랑을 찾아 주는 한기준(공유)이 김종욱을 찾는다. 김종욱은 서지우가 인도 여행에서 만난 첫사랑. 물론 이름 하나만으로 김종욱을 찾는 길은 험난하고 두 남녀는 티격태격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 사이에 은밀한 감정이 싹튼다. 한편, 뮤지컬 무대 감독인 서지우는 자신의 일에 빠져 사는 워커홀릭이지만 뜻밖의 사고로 위기에 빠진다.
 
영화는 두 축을 따라 진행된다. 김종욱을 찾기 위한, 혹은 김종욱을 찾는 것을 배경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라가는 서지우-한기준의 이야기가 하나. 가수의 꿈을 잊은 채 무대감독으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서지우의 성장담이 나머지 하나다. 두 이야기는 관객의 환상을 자극하며 영화는 이에 충실히 응답한다. 문제는 그 소통이 철저히 사춘기 소녀의 일기장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첫사랑’ ‘운명’을 읊어대며 첫사랑의 아련함과 운명적 사랑의 필연성을 강조한다. 문제는 이 동어반복이 굉장히 지루하다는 것이다. 작품의 주제가 나쁜게 아니라 주제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어보인다. 인도에서 김종욱과 서지우가 첫날 밤을 보내는 숙박소의 상호가 ‘DESTINY' 였다는 것 이상의 뭔가가 없다.
 
오히려 무대감독 서지우 쪽의 이야기가 조금 더 흥미롭다. 장유정 연출 혹은 감독의 경험과 주관이 녹아 있는 듯하다. 가창력도 없으면서 스타파워 하나 만으로 뮤지컬을 시작한 아이돌 여배우와 이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그녀를 뒷받침 해야하는 베테랑 뮤지컬 배우의 이야기는 풍부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도식적인 비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오로지 판타지만을 위해 무대감독을 뮤지컬 무대에 올리는 무리수만 기억에 남는다.
 
중간중간 공유와 임수정의 슬랩스틱, 스크루볼 코미디가 소소한 웃음을 이끌어 내긴 하지만 대부분 민망한 수준이다. 경찰서 동문회 장면의 호흡이 무대 언어를 떠올리게 하지만 단발성으로 그친다. 이쯤 되면, 이 작품이 왜 영화로 만들어져야 했는지가 궁금해진다.
 
뮤지컬에서 춤과 노래를 빼면 뭐가 남을까? 뮤지컬을 뮤지컬 영화로 옮기지 않고 일반 극영화로 옮길 때는, 그 이야기가 풍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영화[김종욱 찾기]는 차 떼고 포 떼고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일반 극영화’가 돼버렸다. 임수정과 공유 두 배우의 매력으로도 그 헛헛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장유정 감독은 뮤지컬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사이’ 등 성공 뮤지컬의 작사, 대본, 연출을 맡으며, 흥행과 비평을 거머 쥔 능력있는 무대예술가다. 그녀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6개월간 과외 받듯이 영화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만약 거꾸로 잘 나가는 영화감독이 “6개월간 과외 받듯이 무대 연출을 공부했다”고 말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영화와 뮤지컬이 얼마나 다른 장르인지는 장유정 연출가의 [김종욱 찾기]가 여실히 증명해 준다. 작품 속 장유정 감독이 직접 연출한 뮤지컬 장면은 전혀 흥겹지가 않다. 무대 연출이 잘 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그것을 전하는 영상 언어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작품을 다른 장르로 이식하는 건 언제나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 장르에서의 성공이 무조건적인 장르 전환의 필연성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창조와 해석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같은 사람에 의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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