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작 "타이거 맨"은 주윤발이 형사로 나오는 홍콩 느와르 영화 풍이 물씬 풍기는 영화 입니다. 충분히 어둡지 않은데다가
주인공들 중에 범죄자나 범죄자와 직접 관련된 인물이 적다는 면에서, 줄거리는 본격적인 홍콩 느와르 영화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편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를 볼 때 그런 걸 따지는 것은 핵심을 좀 잘못 넘겨 짚은 것입니다. 이 영화에는 바로 종초홍이
나오는 것입니다. 영화 내용은 뛰어난 형사인 주윤발이 고생고생하며 홍콩 범죄계를 추적한다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시골 아가씨
종초홍을 만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줄거리와는 좀 거리가 있는 포스터 입니다만, 분위기 자체는 아주 다르지는 않습니다: 포스터에 주윤발이 범죄자처럼 나옵니다만, 영화에서는 매우 의로운 형사입니다.)
이 영화는 보다보면 영화를 둘로 나누어서 보게 되는 영화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윤발 중심의 전반부와 종초홍 중심의 후반부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우
선 전반부는 80년대 호황기의 흥청망청한 향취가 은근히 풍기는 홍콩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유능한 천재 경찰 주윤발이 무기밀매
범죄자를 추적하는 이야기 입니다. 드높은 빌딩들과 네온 사인과 전등으로 가득한 밤풍경을 담아낸 영화 화면과, 이 밤풍경을
배경으로 주윤발이 수사하며 뛰어 다니는 내용이 펼쳐 집니다. 이 영화 전반부에서 전기 조명을 화면에 따스하게 번지게하며 담아내는
그 수법은 매우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수법으로 멋진 장면을 만들어낸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을 맡았던 몇몇 영화들의
좋은 촬영과 비교해 보아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심하게 끝없이 꼬리를 문 차들이 지나가고, 푸르게 비치는
네온사인의 반사광 아래에 새벽 몇 시로나 깊어 가는지 알길이 없는 그 나른한 밤시간을, 마치 밤을 낮처럼 사는 사람들이 거대한
도시의 어느 구석에서인가 쫓고 쫓기는 그 심상. 이 영화는 그 심상을 꽤 멋지게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산꼭대기까지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가득가득 덮고 있는 정경이 어마어마한 인구밀도를 느끼게 하는 홍콩 특유의 갑갑하고 매정하지만 또한 끈끈하면서
왁자하기도한 분위기도 간접적으로 꽤 잘 묻어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길거리를 다니는 자동차들의
모습과 자동차를 담아내는 수법, 자동차 추격전을 담아내는 솜씨가 빼어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추격전을 벌일 때, 자동차에
타고 내리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차 바깥에서 보이는 모습, 차가 움직이는 도로의 정경을 알아보기 좋게 차례로 잘
편집한 모양은 탄탄한 위치에 올라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가 후반부로 넘어갈 때 즈음하여, 주윤발은 무기밀매에
연루된 한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이 죽는 바람에 추적을 위해 그 사람의 가족들을 조사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
중에 바로 죽은 무기 밀매범의 동생으로 시골아가씨 종초홍이 있기 때문에, 영화는 종초홍 중심의 후반부로 돌입합니다.
이 영화는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영화의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루며 딱지치기 할 때 패배의 순간과도 같은 느낌으로 아주 제대로 뒤집어져 바뀝니다.
(일본판 포스터. 제목은 "타이거 맨"도 아니고, "Wild Search"도 아니고, "반아틈천애"도 아니고 또 다릅니다.)
말
씀드렸다시피, 이제 영화는 남자 주인공 주윤발 중심이 아니라, 여자 주인공 종초홍 중심으로 바뀝니다. 배경도 끝없는 빌딩 숲의
홍콩 시내 중심에서 논밭이 널려 있는 시골 마을로 바뀝니다. 홍콩 시민들과 도시 범죄자들의 날카로운 이야기였던 것이, 중국
본토에서 넘어 온 사람들과 섞여 있는 시골 사람들과 이장 영감님, 마을 어르신들이 나오는 이야기로 흘러 갑니다. 자동차 추격전과
기관총 난사로 흘러가던 이야기가, 죽은 언니의 어린 딸과 주윤발의 정이 매개가 되어 종초홍과 연애하며 아이 발레학원 데려다 주는
이야기로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나마 장점이라면 장점인 것은, 그래도 영화가 몇몇 트래쉬 무비들의 편집 실패와는
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전반부와 후반부가 붙어 있는 모양은, 2000년대초에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감동도 있는
코미디 영화" 따위류 처럼 이상하게 두 가지 영화가 잡탕으로 꼬여들어 있는 형국과도 분명히 다릅니다. 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기밀매범을 추적하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꾸준히 이어지고, 주윤발의 이야기는 갑자기 잘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비중이
바뀌면서 어색함이 없이 서서히 변화해 가는 모양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해괴하거나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후반부의 재미거리는 종초홍 중심의 연애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 부분은 확실히 기대를 실망시키는
부분입니다. 앞부분에 크게 떠벌렸던 수수께끼 같은 범죄극, 어마어마한 싸움에 대한 느낌과는 점점 상관 없는 이야기로 흘러흘러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최후의 결전이라는 것 조차 시골 헛간에서 칼부림하는 정도의 이야기일 지경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초반의 기대와는 무척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아쉬운 대목은 바로 이 후반부의 이야기가 심심하고
썰렁하다는 것입니다. 초반부의 빼어난 촬영이나 홍콩 특유의 심상에 주윤발의 단련된 폼잡기가 연결된 특색있던 이야기에 비해서,
후반부 이야기는 그냥 도시남과 시골녀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후반부가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의 독특한 소재나 심상도 별달리 써먹는 바는 없습니다.
진지한 분위기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여자 주인공에게 멜로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사실은 과거가 있었다" 같은 이야기가 터져 나오고, 옛 남자와
삼각관계로 얽히고, 남자 주인공은 물러 섰다가 다가 갔다가 하는데, 여자 주인공의 고지식한 아버지가 이 관계에 변수로 등장하고,
뭐 이런, 주말에 틀면 TV주말극이고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틀면 수목드라마고 허구헌날 틀면 일일연속극이 되는 그런 이야기로
그저그렇게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80년대 종초홍이라면 이런 분위기)
그
나마 이 영화가 망가지지 않는 것은 이 역할을 맡은 종초홍의 연기가 상당히 안정감 있고, 충실히 "시골녀"로 분장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전성기의 화려무쌍한 미모는 여전히 빛을 발하는 묵직한 저력을 보여준다는 점이지 않나 싶습니다. 묘한 유머 감각이
있는 특이한 형사로 나왔던 주윤발은 후반부에 접어들면, 아무 개성이 없이 모든 모습에 "멜로물적인 이유"가 있는 대량생산형
주인공으로 머뭅니다. 그저그런 우울한 멋을 과시해서 영화 속 괴로워 하는 모습으로 폼잡기 위해 샤워하며 성질 내는 장면 보여주면
여성 팬들이 좋아할 거라고 제작진들이 밀어 붙인 결과로 등장하곤 하는 그 재미 없는 인물 말 입니다.
이 영화
속에서 영화 속 주윤발은 지나치게 과격하게 범죄자들을 추적해서 상부의 압력을 받습니다. 이런 것은 주윤발 형사의 "단점"으로
지적하려면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단점이 있으면 인물을 개성을 갖고 재미를 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굳이 "주윤발은 원래 착한데 사랑하던 아내를 범죄자에게 잃어서 그 원한으로 이러는 거다"라고 이유를 달고, 면죄부를 주고,
단점을 없애고, 멜로 드라마의 자아도취스러운 떡칠 화장을 칠해 놓으려고 합니다. 그런 거 해봤자 재미 없습니다. 그냥
"더티해리"나 "강철중"처럼, "그 애가 큰 게 나"라서 원래 성격이 과격한 인간적인 단점으로 나오는 게 더 재밌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묘한 경쟁심이나 출세욕 때문에 집착한다는 정도의 진짜 단점다운 이유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국내 홍콩 영화 유행의 절정기에 나왔던 홍보용 종초홍 한복 사진)
왜 "타이거 맨"이라고 불리우는 영화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어 제목은 "Wild Search"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윤발 종초홍 콤비는 가을날의동화에서 거의 전설이죠 코믹과 맬로를 넘나드는 이분 연기는
80년대 홍콩영화를 상징하는 그무엇이지요 이런 사람을 다시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