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능력자](감독 김민석)는 두 가지 면에서 흥미를 끈다. 강동원과 고수라는 당대 최고의 ‘꽃미남’ 캐스팅이 첫 번째라면,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시놉시스가 두 번째다. 눈빛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조정할 수 있는 초인(강동원)과 유일하게 그의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임규남(고수)의 대결. 충분히 색다른 영화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요소는 고스란히 이 영화의 장점이 됐다. 강동원의 초인 이미지는 그 자체로도 묘한 매력을 풍기며 캐릭터의 설득력을 높이고, 고수의 깨끗하고 바른 이미지도 작품 속 규남과 잘 어울린다. 그 두 사람의 아이러니한 대결구도 역시 영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보게 만드는 강력한 미끼로 기능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는 그 이상 나가지 못한다.
 
영화는 스케일에 대한 강박을 버린 채 두 사람의 대결구도에만 온전히 집중한다. 헐리웃 히어로 장르의 변주 혹은 한국 사회에 대한 우화로 읽히길 바랬던 것일까. 그러나 둘 다 함량미달이다. 장르 영화의 변주라기보단 장르적 성취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며, 동시대의 우화로 읽기엔 느슨하고 과시적이다. 
 
최대의 단점은 영화가 유일한 두 축으로 삼는 초인과 임규남 두 캐릭터다. 둘 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유머감각이 없고 자의식 과잉이다. 강동원은 시종일관 눈을 부라리고 고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지만 어느 시점을 지나면 두 사람의 충돌이 전혀 서스펜스를 창출하지 못한다. 사실 보고 있기가 괴로울 지경이다.
 
특히 초인 캐릭터는 많은 의문점을 품게 만든다. 그는 왜 하필 장애인이여만 했던 것일까. 그는 왜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라나야만 했던 것일까. 이런 설정은 캐릭터 해석의 여지를 스스로 제한한다. 게다가 그의 능력은 편의적으로 과장되는 측면이 있는데, 초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인물(방 안에 형사)을 조정한다든지, 아무런 설명 없이 규남의 위치를 찾아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결정적으로 그는 사람을 너무 쉽게 죽인다.
 
한편, 몇몇 장면에서 영화는 촬영감독(홍경표)의 이름을 확인하게 만들만큼 섬뜩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건져 올린다. 옥상에서의 대결과 낙하의 이미지, 그리고 철저히 통제되는 군중의 이미지는 기억될만하다.규남의 외국인 친구 버바(아부다드)와 알(에네스카야)은 완숙한 한국어 구사능력으로 작품에 간간히 유머를 불어 넣는다. 그러나 잊을만하면 터져나오는 고막을 찢을듯한 시끄러운 음악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
 
김지운,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을 거친 김민석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충무로 입성에 성공했다. 그가 찍은 단편영화 ‘올드보이의 추억’은 박찬욱 감독에게 만듦새를 인정받아 영화 ‘올드보이’ DVD에 실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추억보다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2006년 최고의 신인감독은 누가 뭐래도 이해영, 이해준 두 감독이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여성이 되고싶은 씨름 소년 오동구(류덕환)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성장-코미디였다. 이해준 감독은 2009년 ‘김씨표류기’를 찍으며 조금 결이 다른 작품을 내보였지만 이해영 감독은 이번에도 섹스와 코미디를 들고 돌아왔다. 영화 [페스티발](감독 이해영) 역시 전작처럼 너무나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섹스-코미디다.
 
작품 속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겉모습은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지만 그들 모두 남과는 조금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 한복집을 운영하는 순심(심혜진)과 철물점 주인 기봉(성동일)은 피학과 가학을 즐기는 SM 플레이에 빠지고, 순심의 딸 자혜(백진희)는 고등학생임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상두(류승범)에게 섹스를 제안한다. 그러나 상두는 사람이 아닌 인형과의 관계에만 관심이 있다.
 
한편, 자혜의 담임 선생님인 광록(오달수)은 평범한 가정의 가장처럼 보이지만 아내와 아들이 집을 나갈 때면 여성들의 속옷을 입고 싶어 미치는(?) 특별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나마 가장 평범한 이성애자 커플로 보이는 장배(신하균)와 지수(엄지원)의 관계도 장배의 성기 크기에 대한 집착 때문에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다.
 
시놉시스로만으로는 굉장히 자극적이고 위험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듯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소재와 인물을 착취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소재와 인물에 가지고 있는 태도는 조금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고 올바르다. 어쩌면 영화는 섹스 코미디라기 보다 작정하고 만든 ‘교육 영화’같은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여고생 자혜의 팬티 속에 들어있는 곰인형이나 거대한 바이브레이터에 올라타 있는 지수의 이미지같은 것들이 신기할 정도로 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남들이 변태라고 쉽게 규정하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사실은 ‘귀엽거나, 귀엽지 않거나’ 즉, 취향의 문제임을 이해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스크린은 소재에 비해 오히려 밝고 예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고, 편집 역시 통통 튀듯 경쾌하다. 각 배우들의 캐릭터에 대한 접근방식 역시 진지하며 앙상블 역시 좋다. 영화는 작심한듯 마초적인 남성 이성애자 장배를 웃음거리로 만드는데, 이 역시 결말의 교육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소재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더 자유롭게 풀어놓지 못한 점이다. 충분히 더 신랄하고 솔직하면서도 지금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특히 장배 캐릭터는 그 시작과 끝이 너무 짜 맞춰져 있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말에 엄정화의 히트송인 ‘페스티발’이 흘러나오고 캐릭터들은 흥겨워 보이지만 정작 관객들은 노래 이상의 흥겨움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천하장사 마돈나’처럼 긍정적 에너지를 낙관하고 싶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인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맞춤형 관람층은 청소년들인 것같다. 단언컨대, 충무에서로 나오는 영화들 중 이보다 더 교육적인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달콤, 살벌한 연인’(2006)의 손재곤 감독이 돌아왔다. 그의 데뷔작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차기작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손 감독은 4년동안 침묵을 지켰다. 영화 [이층의 악당](감독 손재곤)은 4년의 기다림에 보상이라도 하듯이 기대치를 웃도는 성취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충무로의 기념비적인 코미디 영화로 기록될 것이다.
 
함기수(박원상 분)는 20억짜리 찻잔을 집에 숨겨놓았다는 사실만 남기고 경찰에게 쫒기다 추락사한다. 이 사건은 창인(한석규)과 연주(김혜수)가 한 집에 살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를 제공한다. 찻잔을 찾기 위해 함기수 집 2층에 세들려 하는 창인과 남편(함기수) 사망 후 경제난 때문에 낯선 남자를 들일 수밖에 없는 연주는 불안한 동거를 시작한다.
 
영화는 초반에 웃음기를 제거한 채 굉장히 공들여 캐릭터를 설명하고 세세한 상황들을 설정한다. 특히 히스테리컬한 연주와 성아(지우 분) 모녀는 드라마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며 눈길을 끈다. 재벌2세 하대표(엄기준)와 조과장(박혁권), 송실장(오재균)의 삼각관계도 흥미롭다. 이렇게 구축된 캐릭터와 상황들은 전설로 남을 ‘지하실 시퀀스’ 이후 쉴 새 없이 웃음 포인트를 이끌어 낸다.
 
작품은 ‘달콤, 살벌한 연인’처럼 스릴러가 될 ‘뻔’했던 손재곤의 또 다른 코미디 영화다. 중요한 건 이러한 이종장르의 교접이 생각보다 더 그럴싸하고, 아직 할 이야기가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충무로에선 온전히 손재곤 감독만의 재능이기도 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단 한번도 스릴러의 톤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무시무시한 균형감각이 그의 코미디를 매우 특별하게 만든다.
 
코미디 영화로서 최고지만, 다른 잣대를 들이대도 영화는 평균 이상의 성취를 보여준다. 가족드라마, 로맨스, 범죄물 심지어 학원물까지. 이렇게 수많은 장르를 기품을 잃지 않고 넘나들 수 있는 건 영화 속 캐릭터들의 힘이다. 캐릭터들은 모두 자신에게 던져진 고민 앞에 진지하며, 그 고민들은 또한 절실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수긍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재벌 2세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분노하는 하대표를 보라.
 
또, 손감독은 아주 조그만 캐릭터에게도 존경심을 보여주며 흥미로운 서브플롯을 이끌어 낸다. 특히 외모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성아는 다른 영화에선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든 강한 설득력을 지닌 여중생 캐릭터다. 성아에게 준비된 엔딩에선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인간사의 부조리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각본을 완성시키는 멋진 연기들이 즐비하다. 한석규는 자신을 따라하는 코미디언들의 성대모사 톤으로 연기하는데, 그가 얼마나 여유롭고 능청스러운 연기자인지를 확인시켜준다. 김혜수는 우울증에 걸린 신경질적인 여성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연기해보인다. 두 사람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15년만에 스크린으로 다시 보는 것은 영화팬들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다.
 
코미디는 충무로가 꾸준히 사랑해온 장르다. 그러나 누구도 손재곤 감독과 같은 방식으로 웃기진 못했다.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버린 이 ‘달콤, 살벌한’ 감독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가 지금 이 순간 어느 외딴 단독 주택의 ‘이층’에 기거하며 시나리오를 쓰는 상상을 해본다. 그의 새로운 영화를 기다리기에 4년은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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