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어둠이라고 불리우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암흑같은 존재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빠져드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 하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깊숙하게 자리한 그 두려운 존재가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도록 힘겹게 억누르고 있지만, 때때로 어둠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너무나 갑작스럽게 뛰쳐나와 자신의 의지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감당할 수 없는 어둠 속에 영원히 갇혀 버리고 마는 안타까운 결과가 더러 일어난다.

 

미치오 슈스케의 [술래의 발소리]는 바로 그러한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어둠에 잠식당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게 담아낸 연작 단편집이다. 제141회 나오키상 후보에도 올랐던 이 작품에서 작가 미치오 슈스케가 그려내는 어둠은 굉장히 음울하면서도 불쾌하리만큼 섬뜩하다. 마치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마냥 두려운 무언가가 등 뒤에서 스멀 스멀 올라오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확 하고 나를 덮쳐버릴것 같은 오싹함을 품고있는 짙은 어둠이 작품에 실려있는 여섯 편의 단편들을 지배하고 있다.

 

초반부터 엄습해 오는 불쾌함과 작가의 교묘한 서술이 돋보이는 <방울벌레>를 시작으로 전형적인 스토리로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드러나는 매우 강렬한 반전으로 충격을 안겨주는 <짐승>,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몽환적인 전개는 괜찮지만 다소 개운하지 못한 결말이 조금은 아쉬운 <요이기츠네>,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도 잔혹한 존재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통에 담긴 글자>, 가장 독특한 구성으로 전개되는 굉장히 인상적인 단편으로 어둠 속으로 가라 앉아 버린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는 <겨울의 술래>, 마지막 <악의의 얼굴>에서는 괴롭힘 당하는 소년의 심리 묘사를 통해서 인간의 연약한 내면과 양면성을 심도있게 그려내고 있다.

 

미치오 슈스케의 [술래의 발소리]는 비교적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는 단편들로 이루어진 작품이지만, 각 단편들이 지니고 있는 전체적인 완성도와 흡인력은 다른 어떤 장편 소설과 비교해 봐도 절대로 부족함이 없는 매우 흡족스런 만족감을 선사하기 때문에 더욱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단편이라는 형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가 탄탄하게 구성한 완벽한 이야기 구조와 흐름, 특히 괴담을 바탕으로 그 속에서 치밀하게 엮어낸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솜씨가 실로 탁월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독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 준다.

 

작품에 실려있는 여섯 편의 단편에는 모두 S라는 이름을 지닌 캐릭터가 등장하고,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예전부터 불길한 존재로 인식되왔던 까마귀가 나온다. 더욱이 S는 주인공들이 어둠에 굴복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기에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존재인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어둠과 공존해야만 하는 우리들은 그 어둠 속에 깊이 잠재되어 있는 욕망의 그늘에서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미치오 슈스케가 [술래의 발소리]에서 보여준 헤어나올 수 없는 심연 속의 어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덧없는 욕망으로 가득한 누군가의 마음 속에서 기분 나쁜 미소를 띄운 채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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