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잔인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

2010.08.12 02:26

taijae 조회 수:7028



끔찍하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예상보다 더 잔인하고 메스꺼웠다. 그 ‘잔인함’은 단순히 고어영화 팬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것을 뛰어넘는다. 그 ‘메스꺼움’은이 영화가 어떠한 장르적 보호막도 포기한 채 지독한 ‘리얼리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약혼녀를 연쇄살인마 경철(최민식)에게 처참하게 잃어버린 국정원 요원 수현(이병헌)은 지독한 복수를 감행한다. 그러나 당연히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경철의 악마성을 자신에게서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곤 한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도대체 악마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그 악마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 영화는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해보려 한다. 하지만 영화 속 대사처럼 영화는 “짐승을 상대하다가 짐승”이 되는 함정에 빠진다. 장르에 미친 한 감독이 장르의 양식을 포기하고 장르의 쾌감만을 취하고자 했을 때 빠질 수 있는 가장 악질적인 결과가 여기 있다.

 

특히 여성관객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영화는 그냥 끔찍한 경험이다. 작품 속 경철이 보여주는 수차례의 강간장면들과 섹스신은 포르노와 별 다를 바 없이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게끔 구성되어있다. 어쩌면 이 영화 자체가 한 편의 포르노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사디즘과 마조히즘으로 가득찬. 작품이 진행될수록 영화는 최소한의 윤리적 긴장감마저 내팽개친다.

 

단순히 모방범죄를 우려하는 훈계나 도덕적 설교가 아니다. 최고의 배우들과 최고의 스탭들이 묘사한 영화 속 세계는 끊임없는 폭력과 자극으로 가득차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이 영화는 장르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리얼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냐는 데에는 분명 윤리적 긴장감이 존재해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폭력에 다름 아니다. 혹은 보고 싶다는 욕망을 기어이 채우고야 말겠다는 집념은 악마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예를 들면, 고 김선일씨의 비디오를 보고 싶다는 지극히 사디즘적인 욕망까지 충족되어야 하는가?

 

물론 이 세상에 죽어도 되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기어코 내적으로 ‘절대 죽어서는 안될 사람들’까지도 죽여버린다. 아니 어쩌면 그들을 죽이기 위해 차곡차곡 섬세한 복선을 깔았는지도 모른다. 장르적 쾌감, 혹은 시덥잖은 두 남자 주인공의 얄팍한 대결구도를 위해서.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마가 되버린 남자’ 이야기는 굳이 스크린에 재현된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이미지 없이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다. 그 자체가 그렇게 깊이 있는 고민을 담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영화는 장르적 쾌감이 앞장서고 주제의식이 뒤따라가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영화는 길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포르노가 지루하지 않은 것처럼. 액션은 평범하지만 고어 장면들은 굉장히 섬세하고 실감나게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몇몇 장면들은 일반적인 관객 입장에서 봤을 때 굉장히 끔찍하고 불쾌하다.

 

김지운 감독은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영화는 현실을 모방할 뿐이며 현실은 영화보다 더 잔혹하다고 말했다. 그가 한가지 간과한게 있다면 그토록 잔혹한 현실은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그보다 덜 잔혹한 그의 영화는 눈앞에서 우리를 유혹한다는 것이다. 악마를 보고싶은 호기심에 가득찬 ‘구경꾼’의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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