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제 머릿속에서 〈드라큘라〉는 한없는 아쉬움과 비판의 대상으로만 남아있었습니다. 막 30년대 유니버셜 스튜디오 공포영화에 입문하고자 하던 참이었던 저는 첫 길잡이로 이 영화를 골랐다가 그 시청각적 뻣뻣함에 큰 실망과 불안을 느꼈습니다. 다행히 그 실망과 불안은 바로 다음에 본 훌륭한 유성 공포영화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1932) 덕분에 눈 녹듯 사라졌지만 그로 인해 〈드라큘라〉의 위상은 더 낮아졌지요. 30년대 유니버셜 공포영화의 스타일이 문제가 아니야! 그냥 〈드라큘라〉가 별로일 뿐!

 하지만 최근에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본 〈드라큘라〉는 제 기억 속의 그 영화만큼 투박하고 괴롭지만은 않았고, 깊은 인상을 남기는 점도 꽤 있었습니다. 아마도 실망스런 첫 만남 이후, 그리고 〈프랑켄슈타인〉과 한데 묶어 비교하면서, 이 작품의 단점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오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냥 별로인 한 편의 영화로서가 아니라 20년대 말에서 30년대 초, 무성에서 유성으로 넘어가던 과도기를 거치면서 잠시 둔탁해졌던 할리우드 영화의 경향을 대표하는 예로 각인되었던 게지요. 해서, 약간은 사과하는 기분으로 〈드라큘라〉와, 이번에 처음 본 〈드라큘라〉의 스페인어판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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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큘라〉가 지닌 무성→유성의 과도기적 징후 자체를 부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특성을 두고 하는 이야기인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드라큘라〉를 비롯한 30년대 초 할리우드 영화의 미숙함을 논하는 많은 사람들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퇴행 현상” 중 하나인 카메라의 정지를 지적합니다. 초기 음향 녹음 장비의 제약으로 인해 무성영화의 전성기에 공간을 자유로이 헤엄쳤던 카메라는 한 자리에 머물러야만 했으며, 따라서 쇼트가 따분해졌다는 주장입니다. 사실관계 자체는 맞습니다. 하지만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은 영화가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언어 중 하나이지, 보다 우수하고 영화다운 영화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필요조건은 아닙니다. 만약 카메라의 유동성이 영화의 우수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면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유아기적인 영화에 불과할 테고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는 영화 예술의 극점을 보여주는 영화일 텐데, 고정된 카메라를 단점으로 지적했던 이들이라고 해도 그런 과격한 예에 동의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드라큘라〉의 카메라는 그리 얌전하지만도 않습니다. 독일 망명객 촬영감독 칼 프로인트는 표현주의 시기의 독일 무성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으로, 화려한 촬영 솜씨를 뽐내며 유니버셜 공포영화의 기조를 형성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특히 드라큘라의 관으로 향하는 카메라 움직임이 유명합니다만, 난이도나 효과로 따지자면 드라큘라가 대화를 마치고 방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렌필드의 모습을 담는 장면이나 난파선의 바닥을 훑는 장면, 정신병원의 마당을 훑다가 벽을 타고 렌필드의 병실로 올라가는 장면 등도 그에 못지않거나 그 이상으로 근사합니다. 따라서 일단 카메라가 멈추어서 영화가 심심해졌다는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되풀이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고정된 카메라에 대한 비판이 정말 지적하고 싶어 하는 바는 과도기의 영화가 카메라를 한 자리에 고정시킴으로써 영화라기보다는 무대극을 촬영한 듯 밋밋한 화면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허나 그런 단조로운 화면은 카메라의 움직임 여부에만 좌우되지 않습니다. 화면의 크기와 구도, 인물의 동선, 그리고 그에 따른 편집까지를 염두에 두어야지요. 실제로 할리우드는 음향 장치의 문제를 극복하고 다시 카메라를 휘두를 수 있게 된 다음에도 카메라 움직임에 지나치게 몰입하지는 않았고, 많은 경우 고정된 쇼트 혹은 이동을 최소화한 쇼트를 사용하는 가운데 구도와 동선, 편집에 의존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컨대 존 포드 영화를 보고 영화적이지 않다거나 영화적으로 미숙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화면 구성의 단조로움이 문제일까요?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카메라는 대체로 눈높이에 고정되어 있고 심도는 얕으며 구도는 평면적입니다. 특히 말하는 인물을 잡는 쇼트의 시각적 인상이 따분한 편인데, 대화 장면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로서는 큰 단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두 사람, 세 사람이 화면 안에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무릎 위 정도부터 담아내는 크기의 쇼트들이 가장 아쉽습니다. 좀 더 훌륭한 영화라면 이런 쇼트를 꾸밀 때 화면 안의 어디에 각각의 인물을 배치하고 이들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대사를 내뱉게 하는가, 또 소품이 어디에 위치하는가 등을 가지고 시각적 긴장을 만들어 대화에 힘을 주지만 〈드라큘라〉에서 이런 쇼트들이 나올 때는 대체로 인물들이 같은 선상에 나란히 서서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각적 디자인이 무대극스러운 느낌이 든다면 이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이 표현이 연극에 대한 무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압니다만, 제가 어떤 느낌을 말하고 있는지는 짐작하시겠지요.)

 다만, 두세 사람의 대화를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잡아낼 때는 따분해지지만, 등장인물들이 들어선 공간 전체를 조망하고 그 안에 사람들을 배치하는 데에는 나름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드라큘라가 처음 시워드 박사의 집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반 헬싱 박사가 내민 거울을 깨고 달아나는 장면은 좋은 예입니다. 격렬한 움직임 없이 대화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장면이지만 드라큘라를 미나 옆에 배치해서 함께 잡고, 반 헬싱과 미나의 약혼자 존을 마주보는 자리에 두어 시각적으로 대립하게 만들고, 시워드 박사는 처음에는 드라큘라 쪽에 서 있다가 존 옆으로 옮겨가는 등, 전체 방 안에서 인물이 어디에 위치하고 어느 쪽을 바라보느냐 하는 문제가 인물 간의 긴장을 암시합니다. (오히려 기술적으로 우월하다고 알려진 스페인어판 〈드라큘라〉가 이 부분에 있어서 약점을 보이곤 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뒤에 언급하기로 하지요.)


 〈드라큘라〉가 지닌 과도기적 특성의 진짜 문제는 시각적인 부분보다도 청각적인 부분에 있습니다. 초기 유성영화로서는 당연한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대사를 다루는 법이 서툽니다. 하나의 대사를 내뱉는 방식은 나쁘지 않으나 대사와 대사 사이의 휴지기를 조절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아서 종종 지나치게 긴 여백이 생깁니다. 그 결과 대화의 리듬이 형성되지 않고, 대화가 대화라기보다는 개별 대사의 묶음처럼 다가옵니다. 이 영화의 대화들이 따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대사 자체의 내용이 진부함보다는 여기에서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그리고 이는 배우들의 연기양식이 아직 유성 영화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출 자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러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 대사와 대사 사이를 끊고 이어주는 편집의 리듬을 좀 달리했더라면 더 나아졌을 겁니다. 하지만 초기 무성영화가 한동안 클로즈업을 두려워했듯이 (‘사람 얼굴만 저렇게 크게 띄우면 흉측하잖아! 그리고 돈 주고 배우를 보여줄 요량이면 전신을 보여주는 게 더 수지가 맞지!’라는 심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로요.) 초기 유성영화는 말이 빠르게 오고가는 상황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감독인 토드 브라우닝은 좋은 무성영화 감독이었지만 소리를 다루는 데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지요. (그런데 이건 여담이지만 극중 존 하커 역을 맡은 데이빗 매너스의 증언에 따르면 브라우닝은 이 영화의 연출에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오히려 촬영감독인 프로인트가 연출까지 도맡아하느라 바빴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 시기 할리우드에서 편집은 연출자의 권한 밖에 놓인 작업이었으니…….)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는 〈드라큘라〉가 대화를 다루는 방식보다도 음향 효과를 다루는 방식, 또는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이 더 힘들게 느껴질 듯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영화는 너무 조용합니다. 배경음악은 단 한 번 나오는데, 그나마 그게 오프닝 크레딧에서 사용되는 “백조의 호수”입니다. 이 역시 초기 유성영화 제작자들의 관객에 대한 염려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당시 소리라는 요소가 가져온 “사실성”에 대한 중압감은 너무 커서, 제작자들은 실제 장면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만한 동기가 없는데 배경음악이 들린다면 관객들이 이상하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 장면에서만 다른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가 흘러나오는 대목의 연출이 훌륭하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드라큘라가 인간에게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운명이 기다린다고 말하면서 조명이 어두워지고 연주가 시작되면서 화면이 페이드아웃 되는 이 장면은 〈드라큘라〉의 명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배경음악의 과잉에 불평하는 경우가 훨씬 많고, 초기 유성영화의 ‘침묵’에 대해서도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드라큘라〉에서 배경음악의 부재를 단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이 영화가 그런 배경음악의 부재를 대체할 만한 음향 효과 상의 긴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음악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소리가 없습니다. 발소리, 문 열리고 닫히는 소리, 옷자락 스치는 소리 등등. 드라큘라가 길거리를 걸을 때 들리는 행인들 소리와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반가울 지경입니다. 어떤 팬들은 이런 침묵이 으스스한 분위기를 더해준다고 주장합니다. 드라큘라가 등장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는 현실에서 벗어난 괴물이고, 관이 열릴 때 관 뚜껑 소리조차 나지 않는 그 기이한 침묵이 그런 초현실성을 강화해줍니다. 하지만 그걸 위한 연출이라고 보기에는 이 영화는 모든 장면에서 지나치게 조용하며, 이 조용함은 긴장 대신 지루함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모든 과도기적 단점보다도 〈드라큘라〉를 더욱 아쉬운 작품으로 만드는 요인은 이야기의 구조,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방식에 있습니다. 드라큘라가 런던에 도착하고 루시가 죽음을 맞이한 뒤 영화는 시워드 박사의 집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이 등장과 퇴장을 거듭하는 실내극으로 변모합니다. 브람 스토커의 소설이 아니라 소설을 연극으로 만든 판본을 바탕으로 하여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실내극에서는 인물의 등장과 퇴장이 지니는 동기, 공간 간의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 이야기의 논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드라큘라〉에서는 인물의 등장과 퇴장이 임의적이고, 시간의 흐름과 공간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후반부에서 드라큘라가 반 헬싱 박사와 대면하고 미나가 존을 유혹하는 장면은 논리적으로 따져 보면 같은 시간대에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만 각 장면의 느긋한 리듬은 관객이 시간의 흐름을 놓치게 만들고, 편집은 이에 관해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드라큘라가 최후를 맞이하는 날의 편집은 더 나쁜데, 드라큘라-미나, 렌필드, 반 헬싱 박사-존, 이 세 집단이 등장하는 장소와 시간이 뒤죽박죽이고 때로는 동기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염없이 관대한 관객이라면 온갖 이유를 다 갖다 붙여서 이 어색한 시간 순서와 공간의 전환을 설명해주겠지만, 그건 애초에 관객의 아량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영화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느슨함이 극구조의 흐름을 막고 긴장을 없애면서 〈드라큘라〉를 나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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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하면 〈드라큘라〉의 단점과, 그 사이에 알알이 박힌 장점에 대한 논의로는 충분한 듯싶지만─ 함께 다루어야 할 영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드라큘라〉에는 스페인어판이 따로 있는데, 이것은 영어판 위에 스페인어 더빙을 입힌 판본이 아니라 다른 제작자가 다른 감독과 다른 스탭, 다른 배우들을 데리고 같은 각본과 같은 세트에서 촬영한 다른 영화입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영화에 소리가 도래하자 관객들은 자기네 언어로 말하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빙은 속임수처럼 여겨졌는데, 처음 유성영화가 등장했을 때 소리가 주는 “사실성”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왜,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1952)에서도 유성영화 홍보필름에서 “입모양과 소리가 일치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세요.”라고 하면서 홍보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 까닭에 유니버셜에서는 스페인어권 시장을 겨냥하여 〈드라큘라〉의 스페인어판을 따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영어판의 미나 역에 해당하는 에바 역을 맡았던 배우 루피타 토바르의 증언에 따르면 영어판 스탭들이 아침 8시에 와서 저녁까지 촬영을 마치면 스페인어판 스탭들이 같은 장면을 밤중에 촬영하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스페인어판의 제작 여건은 영어판에 비해 좋았습니다. 일단 스탭들은 영어판 스탭들이 그날 찍은 촬영분을 볼 수 있었고, 그것보다 더 잘 찍으려고 덤벼들었습니다. 게다가 스페인어판의 제작비는 영어판의 두 배에 달했습니다. 스페인어판이 촬영에 사용한 질산염 필름은 가연성이 높고 부식되기도 쉽다는 단점이 있지만 영어판에 비해 훨씬 풍부한 명암을 제공하여 화면에 격조를 더해주었고요. 더불어, 이것은 제가 스페인어를 영어만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확언할 수는 없으나, 스페인어판 배우들은 말을 다룸에 있어 훨씬 더 유성영화적인 자연스러움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과는 영어판보다 여러 면에서 더 훌륭합니다. 스페인어판은 일부 장면에서는 칼 프로인트가 찍어놓은 명장면을 사용했지만 그 외에 자신들만의 훌륭한 카메라 움직임도 덧붙였습니다. 드라큘라가 처음 나타나는 대목에서 계단 위를 날아오르는 카메라 움직임이 대표적입니다. 음향이나 특수(?) 효과도 더 적극적입니다. 스페인어판 드라큘라의 성에서 문들은 자동으로 삐걱이며 열렸다 닫히면서 렌필드를 겁에 질리게 하고 드라큘라는 관이 열리면 자욱한 연기와 함께 음산한 조명을 받으며 서서히 일어납니다. 심지어 인형으로 만든 박쥐의 움직임도 스페인판이 더 유려합니다. 미국판의 박쥐들은 줄에 매달린 채 허공에 둥둥 떠 있지만 스페인판의 박쥐들은 빠르게 화면을 가로지르면서 활강합니다. 배경음악은 적극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으나 드라큘라가 관에서 일어날 때마다 한 번씩 분위기를 조성해주었고 결말부까지 조용하기만 했던 영어판과는 달리 마지막 장면에서 ‘그리하여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아’하는 식의 음악도 깔아줍니다. 양쪽 모두 효과적입니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모든 배역의 배우들이 영어판의 ‘라이벌’들과 대등하거나 더 나은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드라큘라 역의 카를로스 비야리아스만이 영어판의 벨라 루고시가 보여준 위압감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대세이지만 이미 영어판 〈드라큘라〉가 문화적 아이콘으로서의 드라큘라를 확립한 뒤에, 그 영향력 하에서 나온 사후해석에 가까울 수밖에 없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비야리아스와 루고시의 차이는 단순히 그 존재감의 크기 여부만을 두고 논하기 보다는 영어판과 스페인어판의 인물 해석, 작품 해석, 기조의 차이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는 편이 더 적절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언급하기로 하죠.


 이런 여러 가지 장점들 중에서도 영어판에 비해 스페인어판이 가장 나아진 점이 있다면 역시 각본입니다. 75분짜리 영어판에 비해 30여분이 더 긴 106분의 상영시간을 자랑하는 스페인어판은 영어판에 부족했던 개연성을 강화하고 전개를 더 매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영어판 후반부의 난삽한 시공간 배치나 빠진 장면들이 스페인어판에서는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더라도 많이 개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 말미에 반 헬싱 박사가 뒤에 남는 이유가 첨가되는 등 작은 디테일도 추가되어 이해를 돕습니다. 시비 거리가 적어지고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편해지자 30분이나 더 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쪽이 체감 상 더 시간이 빠르게 갑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처럼 영어판의 단점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개선한 듯한 스페인어판을 보고 있노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새삼 영어판의 장점, 혹은 스페인어판이 대신하지 못한 요소들을 발견하거나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먼저 스페인어판은 새로운 공간을 소개하고 그 안에 인물을 배치할 때 피사체를 가로로 길게 늘어놓는 구도를 다소 과하게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 공간 안에서 인물들이 움직이거나 대화할 때도 대체로 그렇게 처음 설정된 가로선 위에서 좌우로 오가게 하고, 또 카메라는 그런 모습을 큰 각도 변화 없이 여전히 전과 동일한 구도에서 잡곤 합니다. 이집트 벽화의 느낌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이런 구도를 특히 〈드라큘라〉처럼 화면비가 4:3,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영화에서 너무 빈번히 사용하다 보면 정말로 동선이 단조로운 무대극 같아집니다. 만약 화면이 가로로 더 길쭉하다면 피사체를 가로로 길게 배치하고 좌우 운동을 하게 함으로써 화면 구석구석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4:3 화면비는 그 형태상 가로만큼이나 세로(혹은 화면의 깊이)도 중요하게 여겨지기 마련이고, 이런 화면 안에서 좌우로 길게 뻗은 구도나 운동만 강조되면 오히려 화면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어판은 이런 점에서 더 나았습니다. 가령 A와 B가 대립하고 있다면 카메라를 한 번은 A쪽에서 B를 바라보게 두고 다음에는 B쪽에서 A를 바라보게 하는 식으로 두어 편집을 통해 시각적인 대립을 꾀하곤 했습니다. 스페인어판도 이런 연출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A와 B가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는 모습을 그냥 옆에서 지켜보며 한 화면 안에 담는 경우도 많고, 이럴 때마다 시각적 긴장이 줄어듭니다. 충분히 ‘영화적’이지가 않아요. 그리하여 스페인어판은 보다 유성영화스러운 대화에 익숙한 배우들이 좋은 연기로 벌어놓은 점수를 화면 구도로 까먹곤 합니다.






上 : 영어판 / 下 스페인어판




 하지만 제가 정말 흥미롭게 여겼던 사실은, 스페인어판이 많은 부분에서 영어판보다 더 낫고, 저 자신이 그 사실에 대해서 찬탄을 했으면서도 어느 순간 영어판을 볼 때의 기분을 더듬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스페인어판에는 영어판의 음습함, 무어라고 말하기 힘든 낯섦과 불길함, 그리고 암시적 주제 ─ 성적 위협이나 외부인의 유입에 대한 거부감과 같은 ─ 가 약화되어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는 스페인어판이 영어판보다 더 유려한 유성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두 명의 드라큘라에서 출발해 보지요. 비야리아스가 루고시보다 존재감이 덜하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을 했는데요, 하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면 오히려 비야리아스의 연기 쪽에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구석이 많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초반부 렌필드와의 만남입니다. 루고시의 드라큘라는 첫 등장 때부터 언어 구사에서 몸짓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마구 행동합니다. (이 점이 종종 후대의 관객들로 하여금 루고시의 드라큘라를 코믹하게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반면 비야리아스의 드라큘라는 상당히 ‘인간적’입니다. 물론 그도 루고시처럼 “들어 보시오. 밤의 아이들을. 저들의 노랫소리란!”이라고 거창한 말을 내뱉고, 렌필드는 계속해서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비야리아스는 그런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자제할 줄 압니다. 렌필드가 손가락을 베이는 바람에 피가 흐르고, 드라큘라가 렌필드를 덮치려다 십자가 목걸이 앞에 물러나는 저 유명한 장면을 보시길. 루고시는 모든 면에서 흡혈귀의 본능대로 행동합니다. 피를 본 순간 눈을 부릅뜨며 렌필드에게 들키는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앞에서 다가가다가 십자가를 보는 순간 망토를 홱 올리며 온몸을 뒤틉니다. 반면 비야리아스는 렌필드의 뒤에서 좀 더 은밀하게 다가서다가 십자가를 보고는 주춤한 뒤 눈에 힘을 풀면서 망설이다가 손을 내립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홀로 좌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렌필드가 자신을 바라보며 말을 걸자 짐짓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입니다. 이처럼 비야리아스는 상대를 의식하고 그에 맞춰서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연기를 하고, 따라서 그의 드라큘라는 훨씬 더 ‘현세적’이며 우리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上 : 영어판 / 下 : 스페인어판


 그리고 이 차이는 드라큘라라는 캐릭터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화의 톤과 스타일에까지 반영됩니다. 개연성의 강화, 조금 더 자연스럽고 풍부한 연기, 인과 관계가 분명한 장면 배치 등 스페인어판의 장점은 비야리아스의 드라큘라와 마찬가지로 영화 전체를 관객에게 보다 가깝고 편하며 친숙한 것으로 만듭니다. 거꾸로 보자면, 영어판의 느린 속도, 약간씩 타이밍이 맞지 않는 대화, 종종 개연성을 놓친 채로 제멋대로 행동하는 인물들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마치 루고시 드라큘라의 이질감이 영화 전체로 확장된 듯합니다. 혹은 영화가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에 루고시 드라큘라의 이질적인 특성이 더 눈에 들어오거나요.

 〈드라큘라〉의 도입부에서, 마차를 타고 온 렌필드가 여관에서 하룻밤 묵지 않고 바로 드라큘라 성으로 향하겠다고 하자 주민들이 놀라고 여관 주인이 만류합니다. 스페인어판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놀라고 말리는 모습이 한 화면 안에 한꺼번에 담겨 짧게 표현된 다음 곧장 렌필드가 떠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한 여인이 십자가 목걸이를 내밀면 렌필드는 씀씀이가 고맙다는 듯 웃으며 목걸이를 합니다. 렌필드가 떠난 뒤 한 사람이 여관 주인에게 묻습니다. “정말로 무덤에서 나와 피를 찾는 흡혈귀가 있다고 믿으세요?” 실제로 피해자가 있다고 답하는 여관 주인 앞에서 다른 사람이 말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영어판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놀라는 모습의 클로즈업을 몇 개씩 따로 붙이고 여관 주인도 훨씬 큰 무성영화적 연기를 펼치며 여러 번 만류하고, 다음 장면에서 렌필드가 떠날 때도 여인이 주는 십자가 목걸이의 클로즈업이나 걱정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끼어듭니다. 물론 흡혈귀의 존재에 대해 회의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전자가 후자보다 깔끔하고 매끄럽습니다. 하지만 다소 지지부진하고 반복적인 듯한 후자에는 마치 드라큘라가 부재하는 순간에조차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한 강박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스페인어판의 모양새를 즐기는 와중에도 종종 그 (어처구니없는) 강박을 그리워했고, 돌이켜 보니 그쪽이 보다 공포스러웠습니다.

 〈드라큘라〉는 대다수의 영화가 그렇듯 영향력을 행사하려 드는 서로 다른 힘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무성영화, 유성영화, 대작에 대한 야심, 촬영술에 대한 자신감, 적은 예산, 원작 소설, 원작 소설의 연극판, 연출에 관심을 잃은 감독, 배역을 따내기 위해 악착같이 로비를 벌여야 했던 비영미권 출신 배우, 별다른 애착을 보이지 않은 미국 출신 배우, 그들을 능가하고자 한 스페인어권의 영화인들 등등. 통상적으로 훌륭한 영화는 이런 다양한 힘을 통솔하여 되도록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가다듬어 낼 때 나옵니다. 〈드라큘라〉는 (영어판이든 스페인어판이든) 그런 조율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한 부조화가 이 영화가 지닌 생명의 원천을 제공하는 듯합니다. 인간으로부터 출발했고, 인간이 되고 싶어 하거나 인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늑대 인간, 투명 인간, 오페라의 유령, 미라와 달리, 그 기원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인간과 섞이려고 하되 인간은 아니며 인간이려 하지도 않는 이 드라큘라라는 존재는, 사실은 그 이질성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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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큘라〉의 영어판과 스페인어판은 우리나라에도 유니버셜을 통해 정식 DVD가 출시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스페인어판은 독립된 타이틀로는 구할 수 없었고 The Legacy Collection이라는 이름하에 나온 판본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큘라〉의 영어판과 스페인어판, 그리고 〈드라큘라의 딸〉(Dracula's Daughter, 1936), 〈드라큘라의 아들〉(Son of Dracula, 1943), 〈드라큘라의 집〉(House of Dracula, 1945)을 모두 담고 있는 디스크 세 장 짜리 타이틀입니다. 그런데 또 이 타이틀만을 따로 구할 수는 없었고 프랑켄슈타인 시리즈, 늑대인간 시리즈, 그리고 기타 등등 유니버셜 공포영화를 수록하고 있는 비슷한 구성의 타이틀 세 개와 한데 묶은 다음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의 스태츄까지 포함하여 만든 “클래식 몬스터 콜렉션 스페셜 기프트 세트”라는 거창한 이름의 대형 박스로만 구입할 수 있었지요. 유니버셜 고전 공포영화 열일곱 편을 한데 묶고 스태츄를 세 개 동봉한 박스 같은 게 우리나라에서 출시된 적이 있다니, 지금 다시 봐도 놀랍습니다. (2004년의 일입니다.) 물론 이 대형 박스는 지금은 절판되었고 가끔 영어판 〈드라큘라〉를 담은 단품 타이틀만 할인행사품으로 풀리곤 합니다.

 북미 시장에서는 아직도 Dracula - The Legacy Collection만을 따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 자막은 없지만 영어 자막은 제공하는데, 유니버셜이 곧잘 그러하듯 본편뿐만 아니라 부가영상에도 모두 영어 자막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출시된 판본의 경우 부가영상에 모두 영어 자막을 제공합니다. 심지어 본편 음성해설에도 따로 영어 자막을 제공합니다.) 한편 몇 년 전에 75주년 기념판으로 〈드라큘라〉의 영어판과 스페인어판만 넣은 DVD가 따로 나오기도 했는데 음성해설이 하나 더 들어갔고 벨라 루고시 다큐가 추가되었으며 화질이 더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DVD의 부록으로는 일단 데이빗 J. 스칼의 음성해설이 있습니다. 미리 대본을 준비해서 타이밍도 다 재고 읽으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75분 동안 쉴 새 없이 정보를 늘어놓는데, 그렇다고 단조로운 책 읽기 톤은 아니어서 꽤 재미있습니다. 영화사학자라서 그런지 비평적 분석이나 해석보다는 제작 자체에 얽힌 여러 과정을 들려주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DVD에는 또 아주 흥미로운 시도가 들어있습니다. 필립 글래스는 1998년에 〈드라큘라〉의 영어판을 위한 현악 4중주를 작곡했는데, 이 음악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글래스는 이 기획의 의도를 설명하면서 “19세기 세계의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음악이 필요할 듯했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글래스의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합니다. 글래스 특유의 반복적인 구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이 현악 4중주는 〈드라큘라〉의 은밀한 불길함에 비하면 너무 대놓고 신경질적이어서 클로즈업과 지속적인 카메라 운동, 잦은 편집이 가미된 현대 영화에 더 어울릴 듯합니다. 아마 글래스의 작품이라 그랬겠지만, 〈스캔들 노트〉(Notes on a Scandal, 2006)가 떠오르더군요. 또한 글래스의 음악은 〈드라큘라〉를 무성영화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계속 음악이 나와요. 심지어 배우들이 대사를 칠 때도 계속해서. 이 또한 너무 과잉이라서 영화의 느낌과 음악이 충돌합니다. 차라리 모든 대사가 무성영화처럼 자막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상상했을 때 더 어울릴 정도예요. 무성영화 음악 전문 작곡가가 맡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부가영상으로 “The Road to Dracula”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수록돼 있습니다. 북미의 고전영화 DVD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관계자라든지 관계자의 후손들 및 해당 영화의 팬이자 비평가들이 나와서 제작 과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는 식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냥 영화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고 아예 브램 스토커의 원작에서부터 출발해서 그걸 배경으로 한 연극은 어땠고 영화사에서는 왜 연극을 원작으로 삼았고 하는 식으로 거의 원점부터 훑고 갑니다. 이 〈드라큘라〉에 영어판과 스페인어판 뿐만 아니라 아직 유성영화 상영 시설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 극장들을 위해 제작한 무성영화 판본도 있다든지, 원래 영어판 말미에 반 헬싱 박사가 관객을 향해서 연설을 하는 대목이 있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음성해설과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반 헬싱 박사가 관객에게 마지막 말을 건네는 장면은 처음 개봉 당시에는 있었지만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다는 종교인들의 반발에 의해 검열 삭제되었습니다. 반 헬싱 박사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자리를 뜨시기 전에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저희는 이 〈드라큘라〉의 기억이 악몽을 안겨 드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당부 말씀 하나 드리렵니다. 오늘밤 집에 돌아가신 다음 불을 끄셨을 때, 커튼 뒤를 보기가, 창문 밖의 얼굴을 보기가 두려우실 때, 부디 마음을 다잡으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시길. 어쨌거나─ 그런 존재들은 정말로 존재한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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