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수사학으로 세 가지를 제안한 바 있다. 에토스-로고스-파토스는 각각 메시지의 신뢰성, 메시지의 논리성, 메시지의 정서적 호소력을 나타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 [심야의 FM]은 파토스를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하지만 로고스가 보이지 않는 작품이다. 물론 둘 다 존재 하지 않는 영화들도 많다. 혹은 둘 다 존재하는 영화들도 간혹 있다.
 
딸의 건강을 위해 유학을 결심하고, 마지막 라디오 생방송을 앞둔 선영(수애)에게 한동수(유지태)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선영의 집에 침입해 딸과 동생을 인질로 잡고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하기 시작한다. 특정한 날짜에 방송된 특정한 곡을 찾아서 방송에 틀라는 것이다. 방송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에 격분한 담당PD(정만식)가 음악을 중단시키자 동수는 선영의 동생을 죽인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급격하게 파토스의 영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관객은 선영의 패닉상태에 공감할 수 있고 동수의 싸이코같은 행동에 분노하게 된다. 카메라는 선영의 심리적 변화를 추적해 가고,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위치에서 장르적 긴장감을 한껏 드높인다. 작품의 결말 역시 좀 더 현실적인 선택항보다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극대화 하는 쪽으로 짜여져 있다. 쉽게 말해서, 끝까지 지루할 틈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만족할 관객도 많겠지만, 이 영화가 스릴러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상 또 다른 관객들은 엄격한 로고스를 요구할 것이다. 사실 이 기준으로 보자면 이 작품은 몇 가지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음 세 가지다.
 
먼저, 시간계산의 오류다. 작품은 새벽 2시부터 4시 사이의 라디오 생방송 시간에 맞춰 진행된다. 그러나 주인공 선영의 행동반경은 이 2시간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공간감을 가지고 있다. 물리적으로만 넓은게 아니다. 선영이 중간에 한 번 기절했다 깨어나는 장면은 심리적으로도 분명 시간적 단절을 만들어내지만, 작품은 이를 무시한다. 심지어 꽉 막힌 교통사정을 강조해 단기적 긴박감을 강조하느라 전체적인 설정을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또, 사건의 전개가 너무 빈번하게 우연에 의지한다. 특히 선영의 광적인 팬 덕태(마동석)는 사건의 향방이 갈리는 순간에 늘 결정적 도움을 준다. 팬과 스토커는 결국 동전의 양면일 뿐이라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해도 그 쓰임이 너무 빈번하면 역효과를 불러오게 마련이다. 작품의 결말 역시 순간적 우연에 의지하고 있다. 어쩌면 미디어의 효과가 지닌 폭력성을 이끌어 낼 수도 있던 이 유괴사건의 함의는 허무한 장르적 결말 앞에 맥없이 사라진다.
 
결정적으로, 범인의 목적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다. 범인이 최종적으로 원했던 목표는 선영이 결국 자신이 말했던 것을 실행에 옮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정작 이것을 실행할 수 있는 장소(자신의 아지트)에서 벗어나 선영의 집에서 방송시작과 함께 인질극을 벌인다. 생방송 시간이 2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건 시간낭비다. 그리고 동수가 결국 선영을 끔찍한 딜레마에 빠뜨리는 의자에 앉히기까지는 수많은 우연을 예측할 수 있는 예언자의 능력이 필요하다. 동수는 싸이코이지 싸이킥(무당)은 아니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 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스릴러 장르가 유의미해지려면 자신이 설정한 규칙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영화적 허용을 남발하는 스릴러는 진정한 설득에 실패한 수사일 수 밖에 없다. 2010년 한국은, 로고스 없는 파토스가 얼마나 허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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