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모르게 애처로움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을 한 여인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창문을 통해서 슬픔과 원망이 담겨 있는것 같은 눈빛으로 무언가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이 여인이 왜 그렇게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아직은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아름다운 얼굴의 여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품게 만든 여인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표지에는, 차가운 빗방울에서 느껴지는 서늘함과 애처로운 눈빛을 지니고 있는 여인의 얼굴에서 풍겨나는 묘한 분위기가 서로 어우러져 있어서 상당히 깊은 인상을 안겨준다.

 

상당히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면서 제목 또한 범상치 않은 느낌을 전해주는 이 인상적인 표지의 주인공은 바로 비채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번째 작품으로 출간된, 일본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서 국내에서도 꽤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기리노 나쓰오의 데뷔작인 [얼굴에 흩날리는 비]다. 참고로 이 작품은 지난 1994년에 이미 국내에서 한 차례 번역되어 나왔다가 안타깝게도 절판되는 바람에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애타게 했던 과거를 지니고 있다. 무려 16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번에 다시 출간된 것이다.

 

여탐정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1993년에 일본에서 처음 발표된 이 소설은 기리노 여사의 본격적인 데뷔작으로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일본 하드보일드 장르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으며, 일본 여성 하드보일드의 위대한 시작점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제39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비열함으로 얼룩진 사회의 어둡고 메마른 현실들을 그리는 하드보일드 장르에서 그리 흔치가 않은 여성 작가로 독보적 위치에 있으면서 그 재능을 인정 받은 기리노 여사와의 첫 만남에 가슴 설레이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무라노 미로는 남편과 사별하고 은퇴한 탐정인 아버지가 쓰던 사무실에서 혼자 살고 있다. 어느 날, 미로는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왠지 불길하여 무시하지만 그로 인해서 그녀의 무료한 일상에 예상치 못한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다. 논픽션 작가인 친구 우사가와 요코가 애인인 나루세 도키오가 맡긴 1억 엔과 함께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 거금의 출처가 무려 야쿠자였던 것이다. 야쿠자들은 요코의 친구인 미로를 의심하며 일주일 내에 요코의 행방과 1억 엔을 찾아오라는 협박을 하고, 이렇게 여탐정 무라노 미로의 본격적인 활약이 펼쳐진다.

 

기리노 나쓰오라는 걸출한 작가와의 첫 만남은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 황홀한 만족감을 선사해 주었다. 여성 작가의 펜끝에서 탄생한 여성 탐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얼굴에 흩날리는 비]는 그 자체만으로 아주 흥미롭고 독특한 배경을 지니고 있는데, 거기에 욕망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묘사한 기리노 여사의 야성적인 매력과 섬세한 정서가 동시에 느껴지는 강렬한 문장과 탐정으로서 성장해가는 무라노 미로의 활약이 돋보이는, 빠른 호흡으로 긴장감 넘치게 전개가 되고 매우 치밀하게 구성 되어 있는 이야기는 실로 감탄을 자아낸다.

 

현재까지 일본에서 기리노 여사의 미로 시리즈는 총 5권까지 나왔다고 한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비채에서 미로 시리즈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반갑게도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국내 독자들에게 시리즈를 소개할 계획이라고 해서 많은 기대가 된다. 만약에 발표된 순서대로 시리즈가 출간이 된다면 다음 작품은 AV 여배우의 실종 사건을 의뢰받은 미로의 이야기를 그린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이다. 미로 시리즈는 갈수록 어둠의 깊이가 더욱 짙어진다고 하기에 기리노 나쓰오와의 두 번째 만남이 벌써부터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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