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사와 아키라 센세이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Q 님과 제가 쿠로사와의 작품에 관한 감상문을 연재해 볼까 합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특별전 일정보다 좀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좀 더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네요. 그래도 아직 2주가량 남은 데다 이후 시네마테크 부산으로 프로그램이 옮겨가기도 하고, 원래 영화 감상문이라는 게 아직 영화를 안 본 사람들을 극장으로 가게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또한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극장에서의 체험을 되새기면서 다시금 영화를 돌아보게 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니까요.

 쿠로사와의 데뷔작부터 시대 순으로 작품을 일별해 볼까 생각도 했으나 뭐 이걸로 논문 쓸 것도 아니고, 그때그때 Q 님과 제가 좋아하는 작품 내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작품들을 위주로 하나씩 필모그래피를 훑으려 합니다. 중간중간 쿠로사와가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각본을 썼다든지, 연출까지 맡기로 했다가 제작 준비 과정에서 빠져나갔다든지, 아니면 쿠로사와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여 만든 리메이크 작품도 다뤄볼까 하는데, 워낙에 좋은 시절인지라 영화를 구해다 보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지마는 쓰는 사람의 지구력이 받쳐줄까 (적어도 제 경우에는) 의심스럽기는 합니다. 아무튼, 일단 포부라도 그렇게 크게 가지고, 시작해보겠습니다. 하기야 쿠로사와의 영화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세월의 흐름을 견디고 계속해서 언급이 될 테니 너무 조급해 할 필요는 없겠죠. (내년으로 넘어가면 “AK 100”이라는 표현 앞에 민망해질 뿐.)

* * *

 〈멋진 일요일〉은 쿠로사와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라쇼몽〉(羅生門, 1950) 이전의 작품들 중에서도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 편입니다. 이유야 많습니다. 일단 〈라쇼몽〉 이전의 작품들은 그 이후의 작품들에 비해 DVD로든 예술영화전용극장의 회고전 프로그램으로든 접할 기회가 적었지요. 또 이 영화는 쿠로사와 하면 일단 떠오르는 시대극이나 현대 범죄물도 아니고, 미후네 토시로나 시무라 타카시, 나카다이 타츠야를 비롯한 쿠로사와 세계의 주축이 되었던 배우들도 출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쿠로사와의 영화 경력에서 어떤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도 아니며, 비평적으로도 관심의 초점에서 다소 벗어난 경우로 취급되곤 합니다. 쿠로사와의 대표작을 몇 편 보신 분들이라면 간략한 소개글을 찾아 읽어보고는 거리감을 느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후 일본의 어느 일요일에 돈 없는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는 이야기라니요. 일개 공무원이 정책 수행하는 일조차 의지와 용기와 신념을 바탕으로 한 영웅적인 행위로 그려낸 쿠로사와 감독의 강맹한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듯합니다. 젊은 시절에 쉬어가는 마음으로 만든 소품일까요?

 하지만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멋진 일요일〉은 〈내 청춘에 후회는 없다〉(わが青春に悔なし, 1946)에서 시작된 전후 영화의 주제 의식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습니다. 한 개인인 주인공이 자신의 세계관을 두고 세상과 투쟁하고 좌절하다가 결단의 순간에 이르러 작은 승리 혹은 궁극적인 패배를 거두는 이야기이지요. 110분 동안 귀여운 커플의 달콤한 애정행각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쿠로사와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멋진 일요일〉은 남녀 관계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여러 요소들(예컨대 섹스를 둘러싼 긴장)은 주인공들이 연인이 아니었다면 나오기 힘들었겠지만 결국 그것들은 모두 ‘이렇게 엄혹한 세상에서 개인이 희망과 선의지만 가지고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한탄 섞인 물음이자 대답을 끌어내기 위한 매개물일 뿐입니다.

 주인공 유조(누마사키 이사오)와 마사코(나카키타 치에코)는 아마도 주6일 근무에 시달리는 회사 노동자인 듯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난 다음 과연 두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관객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1954)을 보면 일곱 사무라이에다가 농부들의 이름까지도 기억하게 되지만 이 작품에서 유조와 마사코는 유조와 마사코라기보다는 “남자”와 “여자”로 남습니다. F. W. 무르나우 감독의 〈일출〉(Sunrise: A Song of Two Humans, 1927)처럼, 둘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대표하는 표본 같습니다. 물론 이 점이 둘의 캐릭터를 얄팍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어느 일요일, 둘은 데이트를 위해 만나지만 수중에 남은 돈이라고는 35엔 뿐으로, 이거 가지고는 갈만한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을 앞에 둔 둘의 반응은 다릅니다. 남자는 만나자마자 우울을 써 붙인 듯한 얼굴로 일관하며 데이트를 파토 낼 기세이고, 여자는 참 성격도 좋지, 남자를 찌질하다고 차기는커녕 끊임없이 활짝 웃으면서 그의 용기를 북돋으려 애씁니다. “멋진 일요일이잖아요!”


 두 사람의 데이트는 사실 대결에 가깝습니다. 남자와 여자, 비관과 낙관은 여러 사건을 통해 끊임없이 서로를 압도하려 듭니다. ‘아이고, 남자가 한없이 찌질거리고 여자가 한없이 받아주는 이야기란 말인가.’라고 걱정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남자의 우울함이 여자를 전염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여자의 명랑함이 남자를 격려하기도 합니다. 둘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기도 합니다. 〈주정뱅이 천사〉(酔いどれ天使, 1948) 같은 작품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점이지만 전후 쿠로사와의 영화는 사회의 무게와 개인의 의지간의 격돌을 다루면서 두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고, 타협하고, 미봉책을 내놓거나, 문제를 아예 포기하는 태도를 보이곤 하는데요, 〈멋진 일요일〉은 같은 긴장을 두 연인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영화는 둘의 긴장을 대사와 연기를 통해서도 다루지만 무엇보다도 영화적 공간을 통해서 다룹니다. 〈멋진 일요일〉은 다른 쿠로사와의 대표작에 비해서 형식이 얌전하다, 다시 말해 고전기 할리우드식의 매끄러운 외양을 취하고 있다는 이유로도 평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곤 하는 작품인데요, 물론 그런 주장에도 일리는 있지만 그렇다고 쿠로사와가 여기서 넋 놓고 이야기만 따라가는 게으른 연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까게 돼서 미안하지만, 저는 쿠로사와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을 영화화한 〈백치〉(白痴, 1951)를 그런 “게으른” 영화의 예로 들고 싶습니다. 무참히 삭제되어 원래 모습을 알 수 없는 작품이니 만큼 단정적인 평가는 힘들겠지만 온전히 남아 있는 몇몇 장면들을 보면 나름 재미는 있어도 역시 배우의 대사와 연기에만 너무 의존한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쿠로사와는 두 사람의 갈등이 화면 안에 담기는 공간을 통해서, 또 서사의 전개를 따라 변화하는 공간을 통해서 드러나게 합니다. 남자의 패배주의는 닫히거나 좁은 공간으로, 여자의 낙관주의는 열린 공간으로 표현되지요.

 예를 들어 둘의 첫 데이트 장소인 모델하우스에서, 여자의 명랑함은 남자의 음울함에 눌려 갑니다. 처음에 여자는 훤히 트여 밖이 내다보이는 대청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건네지만, 남자의 무뚝뚝한 대꾸에 여자는 이내 안쪽 방으로 들어갑니다. 여자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창문을 열어 다시 공간을 열어젖히려 하지만 허물어진 담벼락이 창문 밖의 풍경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남자의 말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여자는 이제 쪽방으로 들어갑니다. 남자는 쪽방으로 함께 들어가면서 방의 문까지 닫아버리면서 여자를 시각적으로 위협합니다. 이 모델하우스 장면은 여자가 그 쪽방의 문을 열고 나와서 다시 대청마루가 보이는 쪽으로 움직이고, 그 마루 쪽에서 다른 구경꾼들이 등장해서 주인공 커플에게 다음에 가 볼만한 데이트 코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줌으로써 끝납니다. 이 장면은 할리우드식 연속 편집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단순히 두 배우가 마주 보고 서서 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카메라의 시선을 바꾸고, 전에는 관객에게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공간을 드러내면서 영상을 통해 두 연인의 심리 변화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지극히 영화적입니다. 그리고 〈멋진 일요일〉의 거의 모든 장면은 이처럼 두 사람이 몸담고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이라는 대비는 장면 단위 연출뿐만 아니라 서사적 차원에서도 의미를 지닙니다. 남자는 데이트 중간 중간 우울함이 찾아올 때마다 이제 더 갈 곳도 없으니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말합니다. 여자는 그때마다 대단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또 다른 데이트 코스를 떠올리거나 발견하여 남자를 새로운 장소로 이끕니다. 여기에는 물론 성적인 암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와 함께 닫힌 공간에 틀어박혀 섹스를 하고 싶어 한다는 점은 앞서 언급한 모델하우스 장면에서부터 명백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쿠로사와는 이런 소재를 다룰 때에조차 남성성과 여성성, 둘 사이의 사회적 권력 관계나 성적 긴장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게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그건 소재 자체가 어쩔 수 없이 내포하고 있는 함의 때문일 겁니다. 이를테면 〈란〉(乱, 1985)에서 남자를 쥐락펴락 하는 카에데를 보면서 봉건 일본 사회 내에서 여성이 취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해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영화 전체의 주제와 비교해 보면 지엽적인 요소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멋진 일요일〉에서 섹스의 문제는 거의 데이트 강간의 위협이 넘실거리는 수준으로까지 묘사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마초적인 남성의 강압과 물리적/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고난처럼 보이는 대신 세상이 힘들다고 이대로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섹스나 하면서 썩어갈 거냐 아니면 그래도 어떻게든 바깥으로 나갈 거냐, 라는 대등한 두 가치관의 충돌로 느껴집니다.

 쿠로사와는 대립하는 두 가치 사이를 오가면서 점점 진폭을 줄여나갑니다. 데이트 코스를 하나씩 밟아갈수록, 날이 어두워질수록, 그리고 비가 내리면서, 두 사람이 갈 곳은 점점 줄어듭니다. 비관주의가 점점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밝음과 어두움의 평행선을 오가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긴장의 밀도를 높여가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습니다. 첫 번째 클라이맥스가 결국 남자의 방 안에서 벌어지리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클라이맥스가 있습니다. 저는 영화가 남자의 방 장면에서 끝났어도 만족했을 것입니다만 이후에 이어지는 야외극장 장면은 더욱 대담합니다. 쿠로사와는 여기서 영화적 공간을 한 차원 더 넓힙니다. 적절한 번역어가 생각나질 않아서 좀 그렇습니다만, 디제시스/비 디제시스의 문제가 여기서 개입합니다. 이전 장면들에서 영화적 공간은 결국 두 인물의 시선과 동선을 따라가며 변화하는, 이야기 속의 공간들이었습니다. 반면 야외극장 장면은 야외극장이라는, 그 자체로 굉장히 자의식적인 무대를 활용하여 공간을 더 넓힙니다. 남자도 드디어 웃음을 머금고 집 밖으로 나왔지만, 세상은 그런 영화 속 주인공의 의지만으로는 살기 힘든 것이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 스스로가 의지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되기에, 쿠로사와는 이제 스크린 밖으로까지 공간을 열어젖힙니다.

 이 대목을 두고 꿈을 통해 각박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안온한 설정이라고 비판하는 평론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스티븐 프린스가 『전사의 카메라: 쿠로사와 아키라의 영화』(The Warrior's Camera: The Cinema of Akira Kurosawa)라는 저서를 통해 그랬지요. 400페이지에 이르는 책이건만, 〈멋진 일요일〉에 관한 논의는 단 한 문단으로 끝납니다. 쿠로사와 특유의 형식적 과격함도 없고 고전기 할리우드 스타일에 의지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도피적인 태도를 보이는 실망스러운 작품이라는 식입니다. 저는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현실도피적 환상을 제공한다는 건 보통 관객이 영화의 틀을 의식하지 않은 채 영화가 제공하는 환영 안에 함몰될 때 하는 말이죠. 반면 쿠로사와는 야외극장 장면에서 영화의 환영성을 드러냅니다. 무엇보다도 음향 효과의 사용에서 그렇습니다. 상상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상상하는 장면을 영화로 묘사하기란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냥 상상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배우를 찍고 그 위에 BGM을 입히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멋진 일요일〉은 그 손쉬운 도피를 위해서는 BGM의 도움, 즉 이야기 바깥, 비 디제시스의 층에 자리한 사람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남녀가 상상의 힘에 의지하여 듣지 못한 미완성 교향곡을 들으려고 할 때, 영화는 아름다운 미완성 교향곡의 선율 대신 도에 지나칠 정도로 거센 바람소리를 야속할 정도로 타이밍 정확하게 들려줍니다. 후시 녹음을 통해 입혀진 것이 분명한 이 바람소리는 단순히 남자와 여자가 처한 현실이 냉혹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 바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구경하고 있는 우리의 회의(懷疑)가 냉혹하다고 말합니다. 그 자리에 아무리 BGM을 입힌들 우리가 그 음악을 믿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섣불리 미완성 교향곡을 들려주는 대신 먼저 관객에게 이 어려움에 맞서 믿음을 가져주기를 호소합니다.

 주인공들이 아무리 세상을 헤쳐 나갈 의지를 갖는다고 해도 그것은 영화일 뿐이고 스크린 앞에 앉은 관객도 그 의지에 동참하지 않으면 도피가 될 뿐이라는 점을, 이 영화는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습니다. 쿠로사와는 1947년의 일본, 아마도 이야기 속 남녀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았을 세상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짧은 도피적 환상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극장을 나가서도 계속 믿음을 가지고 살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간곡함을 구경만 하고 지나치기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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