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책] 셰임, 중독의 심리학

2015.09.21 13:45

underground 조회 수: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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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셰임>을 본 후 중독에 대해 알아보던 중 <중독의 심리학>(크레이그 네켄 저, 오혜경 역, 웅진지식하우스)을 읽으며 

알게 된 것들, 들었던 생각들을 적은 것이다. 


중독된 사람의 몸은, 중독된 대상과 관계를 맺는 데 사용되는 매개체이다. 알콜에, 마약에, 섹스에, 몸은 정직하게 반응한다. 

중독자의 몸과 그가 중독된 물질 혹은 행위와의 관계는 대체로 예측가능하며 신뢰할 만하다. 

알콜중독자는 어느 정도의 술을 마셔야 기분 좋게 취하는지 알고, 섹스중독자는 어떤 성적 행위를 해야 쾌감을 느끼는지 안다. 

그 물질 혹은 행위는 대부분 그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들인 정성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응답 받지 못하는 관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기대를 언제나 만족시켜주는 물질 혹은 행위와의 관계에 매혹된다. 

물질이나 행위와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타인에게 불안을 느낄 필요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필요도 없다. 

중독자는 자신이 원할 때 언제나 그와 함께 해주는 물질 혹은 행위와 평화롭고 안전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물질 혹은 행위와의 관계에서 그를 배신하는 것은 그 물질 혹은 행위가 아니라 바로 그의 몸이다. 

그의 몸은 그가 느낀 쾌감의 강도에 금방 익숙해져서 그보다 점점 더 강한 쾌감을 원한다. 

그 물질이나 행위가 건강을 해치거나 경제적 문제를 야기하거나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이어도 그는 멈추지 못하고 점점 그 쾌감의 강도를 높인다. 

그리고 쾌감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그는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게 되어 그 쾌감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그의 삶에서 하찮은 것으로 버려진다. 

결국 그가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는 그가 중독된 그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점점 더 많은 것을 욕망하는 존재로 변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변하고 쉽게 만족하지 못하며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다 떠나버리는 것에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물질 혹은 행위와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데 그것은 우리의 몸이 쉽게 변하고 쉽게 만족하지 못하며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브랜든은 섹스중독자이다. 그의 문제는 단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섹스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과 심리적으로 친밀한 여자와는 섹스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술집에서 만난 여자나 콜걸과는 쉽게 섹스를 하지만 그가 사귀고 싶은 직장동료와는 코카인을 흡입한 후에도 섹스하지 못한다. 

그가 심리적으로 친밀한 여자와 섹스하지 못하는 이유가 직접 드러나진 않지만 그와 여동생 씨씨와의 관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관객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브랜든이 퇴근 후 자신의 욕실에서 샤워하고 있는 씨씨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몸을 고스란히 노출한 채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하고, 

브랜든은 알몸인 그녀를 보고도 바로 욕실에서 나가지 않고 그녀의 모습을 그냥 보며 얘기한다. 

오누이간에도 이런 상황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씨씨는 브랜든의 집에 머물면서 그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를 원한다. 

그녀가 클럽에서 부르는 노래 <뉴욕뉴욕>의 가사, 그녀는 뉴욕의 일부가 되고 싶고 뉴욕에서 성공할 수 있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노랫말은 마치 씨씨가 브랜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브랜든에게는 씨씨를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는 중독된 사람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중독된 그 행위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켜왔다. 

그에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애인도 없다. 회사에서 불안이나 두려움을 야기하는 일이 생기면 

그는 화장실에 가서 자위를 함으로써 그 상황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려 한다. 

그는 섹스에 대한 충동을 견디느라 언제나 신경이 곤두서 있고, 그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언제나 화가 나 있으며,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과 수치심 때문에 언제나 외롭다. 

결국 그는 자신이 중독된 그 행위 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점점 더 그것에 빠져든다.


중독된 사람은 그가 중독된 그것을 갈망하는 동시에 혐오하는 모순에 놓여 있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우고 패배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에게 분열과 패배의 경험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심화된다. 

몸의 욕망이 자기파괴적 충동에까지 이를 때, 그것을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며 파괴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독된 사람은 그가 중독된 그것과 변함없이 행복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의 몸이, 그의 존재 자체가 더 많은 것을, 더 강한 것을 욕망하도록 변해가기 때문이다. 

그의 몸이 시간 속에서 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는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대상과도 결코 평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결국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는 그 자신이 시간 속에서 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그가 마주하는 타인 또한 시간 속에서 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하는 자신과 변화하는 타인들과의 관계에 불안과 두려움이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 변화 속에서 관계 맺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여동생 씨씨는 불안하고 연약한 존재이다. 브랜든에게 의지하려고 하고 그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브랜든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녀는 브랜든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런 그녀를 브랜든이 경멸하고 거부할 때 그녀는 자살을 기도한다. 

우리에게 타인은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변덕스럽고 의존적이며 귀찮고 통제불가능한 존재. 

우리는 타인과 힘들고 불안한 관계를 유지하기보다는 내 삶을 즐겁게 해주는 물질 혹은 행위와 편안하고 안전한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브랜든의 고통스러운 표정은, 우리의 몸이, 점점 더 많은 것을 욕망하도록 만들어진 우리의 몸이, 

그런 합리적인 계산을 배반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브랜든에게 고통스러운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그가 마음대로 다룰 수도 없으며 그의 삶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씨씨,

브랜든이 그녀로부터 벗어나 몸과 행위의 관계 속으로 숨으려고 할 때, 그는 점점 더 거대해지는 몸의 욕망에 짓눌려 결코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과 부딪쳐 깨어지고 부서지는 과정을 통해서만 적정한 강도를 유지할 수 있고, 그 긴장 속에서만 건강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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