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저씨](감독 이정범)는 사실 익숙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는 작품이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악당들을 쓰러뜨리는 액션 영웅 이야기. 그것이 설혹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소녀를 구하기 위한 ‘옆집 아저씨’더라도, 별다를 건 없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영화 중반까지 심심하게 이어진다. 태식(원빈)은 고독해 보이지만 지나치게 ‘겉멋’을 부린다.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겠다는 식이다. 그 사이 소미(김새론)와 감정적 유대를 만들 기회는 지나가버리고 영화는 곧바로 구출작전으로 돌입한다.

 

태식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그의 전직은 어쨌든 무시무시한 액션을 보여줄 수 있는 직업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구사하는 액션 신들은 기존 한국 액션영화와 차별화 되는 지점이 있다. 동남아 계통의 무술을 활용했다는 감독의 선택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액션은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느껴진다. 클로즈업으로 찍은 쇼트들을 잘게 잘라 놓아, 짧고 굵은 동작들이 극대화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액션의 클라이막스인 태국배우 타나용(람로완 역)과 원빈의 대결에서 시점 쇼트를 활용한 점도 눈에 띈다. 태식이 창문에서 뛰어 내리는 장면에서는, ‘본 얼티메이텀’에서 가져온듯한 카메라맨의 ‘스턴트촬영’(?)도 덤으로 구경할 수 있다.

 

작품의 중후반을 책임지는 태식-범죄조직-경찰의 삼각관계도 흥미롭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인 이들의 관계가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또, 경찰과 범죄조직을 연기한 낯선 배우들과 그들의 캐릭터는 장르영화의 ‘이상야릇한’ 매력을 극대화 시킨다. 특히 태식과 끝까지 대립각을 이루는 만석역의 배우 김희원은 지독하게 악질이면서도 유머가 살아있어 인상적이다.

 

과거 회상 장면들을 넘어서면, 이 영화가 결국 태식이라는 상처받은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 배경에는 ‘국가’와 ‘가족’의 이데올리기가 어렴풋이 읽힌다. ‘국가’를 위해 일하다 ‘가족’을 희생당한 이 남자의 파괴된 정서는, 소미에 대한 태식의 비정상적 집착에 어느 정도의 동기를 제공해 준다.

 

태식의 얼마 안되는 대사들은 굉장히 딱딱하고 직설적으로 느껴지지만 그가 어떤 인물인지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준다. 예를 들어 “틀렸어. 넌 지금 그 아이들에게 사과를 해야했어” 같은 대사들이 그렇다.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그것이 바로 태식이다.

 

시종일관 작정하고 눈을 부라리던 태식도 두 번에 걸쳐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한번만 안아보자”라고 이야기 할 때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모든 일이 끝나면 스스로 죽어 버리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 남자를 구한 건, 어쩌면 정말 ‘소미’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태식과 소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태식이라는 남자의 울부짖음에 가깝다.

 

원빈은 멋있고, 멋있게 찍었고, 멋있게 찍혔다. 마지막까지 일관성 있게 ‘자기방어적 겉멋’에 찌든 태식이란 인물을 우직하게 보여준다. 중반 이후의 효과는 기대이상이다. 파괴적이고 마초적인 면과 유약하고 애처러운 면이 잘 섞여, 엔딩의 ‘작심하고 들어가는 클로즈업’을 결국 견뎌낸다. 반면, 김새론은 매체에 홍보된 것보다 분량도 많지 않고, 도구적 역할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겼다.

 

영화 [아저씨]는 장르적 쾌감을 주는 잘 만든 액션영화다. 군데 군데 유머도 잘 살아있고, 2시간의 런닝타임을 낭비하지 않게끔 꼼꼼하게 꽉 채운 시나리오가 돋보인다. 낯선 조연들의 앙상블도 인상적이고 장르적 관습 안에서 조그만 아이디어들을 결합하는 솜씨도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원빈의, 원빈에 의한, 원빈(팬들)을 위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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