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 Infinity Pool 


캐나다-크로아시아-헝가리, 2023.      ☆☆☆★★


A Film Forge/Elevation Pictures/4Films/The Croatian Audiovisual Centre/Eurimages/Celluloid Dreams Co-Production, distributed by Elevation Pictures. 화면비1.85:1, 1시간 57분. 


Director and Screenplay: Brandon Cronenberg. 

Cinematography: Karim Hussain. 

Music: Tim Hecker. 

Production Design: Zosia McKenzie. 

Costume Design: Maria Popovitz-Fatér. 

Special Effects Makeup: Gergö Lengyel. 

Sound Designers/Editors: Rob Bertola, Alex Bullick. 

Concept Artist: Richard Raaphorst. 


CAST: Alexander Skarsgård (제임스 포스터), Mia Goth (가비 바우어), Jalil Lespert (알반 바우어), Cleopatra Coleman (엠), John Ralston (닥터 모단), Caroline Boulton (벡스), Amanda Brugel (제니퍼), Thomas Krestchmann (트레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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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에서 금년에 상영된 (비교적) 신작중에서 아마도 가장 주류 평론가들의 평점을 높게 받은 작품이 아닐지 추측되는 브랜던 크로넨버그 감독의 최근작이다. 크로넨버그 감독은 아버지와는 달리 과작 (寡作) 의 영화인이다. 딱히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다른 할 것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영화를 천천히 만드는 스타일인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전작 [포제서] 로부터는 그나마 3년만에 신작을 내놓았으니, 앞으로는 좀 더 빠른 페이스로 감독작들을 내놓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아버지 크선생님만큼 광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내놓을 때마다 일정량의 기대감을 가지고 찾아보게 되는 영화인이니까. 


[인피니티 풀] 은 기괴하고 쇼킹하고 정서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못된” 영화인 반면에, 어딘지 모르게 고급지고 문학적인 향취를 지닌 한편이기도 하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나 루이지 바쪼니 (The Fifth Cord), 앙리 조르주 끌루조 같은 한 시대 전의 유럽 예술영화작가나 장르영화 전문가들의 60-70년대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는데, 이것은 겉으로는 화보 잡지처럼 멋지고 글래머러스한 영상을 펼치는 이면에, 뭔가 우리가 익숙한 세상과 비슷하긴 한데, 한마디로 찍어서 말할 수 없는 형태로 비틀리고 변이된 세계에 캐릭터들을 담가놓고 스토리를 풀어나간다는 공통항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여간에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한편이라는 점, 그리고 일반적인 장르적인 카테고리로 수렴되기 어려운 한편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토를 달기가 어렵다. 


그러면 “난해한 영화” 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영화의 내용과 SF적인 설정이라던가 하는 부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리얼리티나 과학적 정합성에서 확연히 벗어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구태여 장르적 분류를 하자면 “다크 판타지” 정도가 적합하겠다. 그러나 “난해” 한 점은 별로 없다. 관객들에게 무엇이 되었건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는 불친절하고 자폐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과 (또는 실력은 없고 겉멋만 잔뜩 들어서 이런 방식으로밖에는 영화를 못 만드는 것과), 해석이 여러가지를 갈릴 수 있고 확답이 주어지지 않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엄연히 다르고, 브랜던은 전자에 해당되는 작품은 만든적이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는 처음에 이 한편이 제시카 노리에가 쓴 [Infinity Pool] 이라는 소설에서 각색된 줄 알았다. 이 소설은 리조트 커뮤니티와 신비주의적 컬트집단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세렌디피티” 의 카리스마적 지도자 에이드리언 하트만이 갑자기 실종되면서, 세렌디피티의 멤버들이 멘붕을 일으키고, 멋들어지게 꾸며진 커뮤니티가 실상은 식민주의적으로 지역 주민들을 착취해왔다는 진상이 불거지는 등, 이것도 서구문학에서 꽤 오랜 전통을 지닌 “겉으로 번지르르한 (백인중심 제국주의적) 이상형 공동체가 추악하게 내파하는 모습” 을 극명하게 묘사하는 서브장르에 속한다. 겉으로 보기에 이 소설과 브랜던 크로넨버그의 각본과는 한 제 3세계 관광지에 매년 순례하듯이 돌아오는 제1세계 백인들을 다룬다는 기본 설정이 닮았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는 지향점이 아주 다르다. 무엇보다 영화에는 에이드리언 캐릭터에 해당되는 인물이 아예 없고, 그 자리를 메꾼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고참” 내방객인 가비 바우어인데, 크로넨버그는 이 관광객들 그룹 내의 인간관계라던지 이러한 커뮤니티의 식민주의적 성격에 대한 고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가비 자신도 별다른 사상적인 아젠다가 없는 극단적인 나르시시스트 내지는 헤도니스트로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겉으로 보자면). 


이 한편의 주인공은 소설을 출판하긴 했지만 아무런 인기를 못 얻고 있는 제임스 포스터라는 이류 작가인데 (대 출판사 회장의 따님과 어떻게 눈이 맞아서 결혼한 것 까지는 좋은데, 그 때문에 자격지심을 목에 걸고 돌아다니는 약간, 아니 상당히, 한심한 친구다), 리 톨카라는 누가봐도 만들어낸 나라인 가상국가 (로케이션은 아드리아해 건너서 바로 이탈리아 옆인 크로아시아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듯. 풍광은 완전히 지중해적이고 존나 우아하고 멋있는 이면에 은연중 척박함과 불온함을 내비치는 그런 스타일이다) 에 와이프와 함께 관광여행을 왔다가, 자기 소설의 열성적 팬이라고 주장하는 가비 바우어를 비롯한 유럽인들 여행자 그룹들과 친해진다. 어찌어찌 술에 취해서 운전하다가 리 톨카의 민간인을 뺑소니운전으로 살해하게 된 제임스는 경찰들에게 잡힌다. 약식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는데, 제임스는 이 나라에는 괴상하게도 클로닝의 기술이 완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돈을 내면 자신의 클론이 대신 자신의 범죄에 대한 처벌을 받게 해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의 모두부터 바다와 육지의 구도를 뒤집는 혼란스러운 카메라 워크로 시작되는 [인피니티 풀] 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세계에서 슬그머니슬쩍 벗어나기를 반복하다가, 강렬하게 사이케델릭하고 육질적인 (肉質的) 인 몽타주로 구성된 클로닝 시퀜스로 관객들을 강타한다. 이 장면은 제임스의 주관적인 시점에서 정신적인 혼란과 공포, 불안을 표현주의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 질감은 단순히 영화에서 보는 “뭔가 이상한 인체실험을 벌이는 걸 보고 있다” 라는 수준의 감흥을 압도적으로 넘어서는, 거의 코스믹 호러적인 레벨의 섬찟함을 가져다 준다. 


또한, 크로넨버그는 웬만한 감독들과는 달리 이 이야기를 “주인공인 나는 원래 나인가 아니면 클론인가? 아까 사형당한 내가 혹시 진짜 나고 나는 클론 아닐까?” 라는 식의 정체성에 관한 심리미스터리로 풀어낼 생각이 없다. 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클론이었다라는 반전이 담긴 시퀜스가 하나 나오고, 이 부위의 편집과 연출은 무척 잘 되어있긴 하다. 그러나 이것이 이 한편의 주제가 아니라는 것은 상당히 명백하다. 


[인피니티 풀]의 대부분은 제임스가 마치 마약에 탐닉하여 중독되듯이, 아무런 도덕적, 법적 책임이 없이 폭행을 가하고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가담하는 모습, 그리고 가비를 포함한 백인 관광객들이 점차 마음대로 아무말 아무짓이나 막 하고 저지르는 와중에 제임스를 마치 애완동물이나 성노예처럼 지지밟고 못살게 구는 과정에 할애된다. 크로넨버그는 이 양상을 알렉산더 스카스가르드의 정교한 표정연기의 빈번한 클로스업을 비롯한 집요하리만치 집중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제임스나 가비나 다 공감도 하기 힘들고, 기본적으로는 2차원적인 캐릭터이긴 하지만, 감독이 카림 후세인 촬영감독 (브랜던과는 [안티바이럴] 부터 함께 했고, TV 시리즈 [한니발] 등을 담당) 과 작곡가 팀 헥커 (역시 TV 시리즈 [North Water]) 등의 스탭들과 함께 구축하는 세계가 정치하고 신빙성이 있을 뿐 아니라, 효율적인 방식으로 쇼킹하게 관객들에게 시전되는 사이케델릭한 “환상/주관적 비전” 의 묘사가 너무나 독특하고, 일면 매력적이기 때문에 화면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이러한 환상적인 영상들의 질감과 수위도 위에서 언급했듯이 범상하지 않지만 이것은 브랜던 크로넨버그 감독의 팬인 관객이시라면 당연히 기대하는 부분일 것이겠다. “발기” 하면서 정액을 흘리는 여성의 유두 등, 아버지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은유적으로 보여주었던 종류의 과격하고 초현실적인 사상 [事像] 들을 여과없이 고대로 보여준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나는 크선생님의 유물론적 (정확하게는 유육론 [唯肉論] 적), 과학자적 접근법과 브랜던의 좀 더 감각적이고 변태적인 그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가비 캐릭터로 다시 회귀하여, 이 한편의 정치-사회 사상적 함의에 대해 잠깐 언급하겠다. 이 가비가 궁극적으로는 비데오게임의 게임마스터에 해당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무차별적인 무책임함의 궁극의 상태에서 제임스와 함께 어이없는 형태의 일종의 “열반” 에 도달했다는 것인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클라이맥스도 포함해서, [인피니티 풀] 은 식민주의적인 제 1세계 백인들의 오만함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까발기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뭔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제임스가 이러한 극한적인 체험을 통해서 무엇인가 자신에 대한 성찰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도, 멜랑콜리한 소외감과 고독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러나 의외로 시적이고 아름다운 엔딩에 이르러서도 간단한 결론이 얻어지지 않는다. 결국 [인피니티 풀] 의 경우, 이 한편을 분석-고찰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육감적이고 즉물적으로 이미지와 사운드에 반응하는 “몸으로 보는 영화” 로 간주하는 것이 더 충실한 관람체험이 되지 않을까? 


스카스가르드와 고스 이하 연기진의 위험수위 높은 연기를 통해서 감정적-육체적 반응을 끌어내는 독창적으로 잘 빚어진 일류 예술작품이라는 평가에는 대폭 찬성하지만, 어떤 분들이 이 한편을 “재미있게” 감상하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단, 하드 SF 적인 논리성이나 통상의 호러영화적인 스릴과 쇼크 ([이블 데드 라이즈]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를 기대하시면 대실망하실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니, 그 점을 지적하고 넘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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