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필드 10 번지 10 Cloverfield Lane



미국, 2016.    

 

A Bad Robot/Spectrum Effects Production, distributed by Paramount Pictures. 화면비 2.35:1, Red Epic Dragon, Panavision, Dolby Digital 7.1. 1시간 43 분. 


Director: Dan Trachtenberg 

Screenplay: Josh Campbell, Mattew Stuecken, Damien Chazelle 

Cinematography: Jeff Cutter 

Producers: J. J. Abrams, Lindsay Weber, Bob Dohrmann, Ben Rosenblatt 

Production Design: Ramsey Avery 

Set Decoration: Michelle Marchand 

Music: Bear MacCreary 

Visual Effects Artists: Kelvin Optical 


CAST: John Goodman (하워드), Mary Elizabeth Winstead (미셸), John Gallagher Jr. (에메트), Suzanne Cryer (레슬리), Cindy Hogan (옆집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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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 10번지] 는 원래 [클로버필드] 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2012년에 집필된 [다락방] 이라는 제목의 각본이었다고 한다. [위플래쉬] 로 최근 출세한 데미언 차젤이 감독을 맡을 요량으로 수정고를 집필하였는데, 어찌 어찌하다가 떡밥의 제왕 쌍제이의 눈에 이 각본이 들어가게 되고, 쌍제이는 이 기획을 자신의 구작 [클로버필드] 와 연결시킨다는 기발하면서도 덕후스러운 아이디어를 낸다. 그 과정에서 데미언 차젤은 프로젝트와 결별하고, 쌍제이는 CF감독 출신으로, 장르영화 포드캐스트 등을 하고 있다가 악명높은 만화 [Y: 최후의 남자] 의 영화화에 연루되어 있던 댄 트라첸버그 (유럽에서는 '트라흐텐버그' 라고 읽을 것 같은데? 암튼) 를 감독으로 기용했다. 얄밉게도, 이 한편의 [클로버필드] 와의 연관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영화를 보게 만들기 위한 떡밥으로 기능하고 있다. "아니 동무, 기거시리 파운드 푸티지 괴수영화잖네? 10번진지 뭔지 이거시리 예고편이나 무엇으로 보더라도 등장인물이 딱 세 사람만 등장하고 시종일관 지하 벙커 안의 좁은 공간에서 전개되는 무대극적 심리 스릴러가 분명한데, 그게 어떻게 [클로버필드] 와 연결된다는 것입네?" 라는 식으로, 이게 어떻게 연결되는 지 궁금한 그 호기심 때문에 영화를 찾아 보셨다면, 여러분은 쌍제이의 떡밥을 문 붕어 신세가 된 것이다. 문제는, 이 질문 자체가 이 한편의 장르적 정체성과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확답을 얻으려면 영화를 끝까지 보고 총체적인 영화 속의 상황에 대한 이해에 도달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클로버필드] 와 이 한편의 연관성에 대해 몽조리 까발겨놓은 "작품 해설" 은 그대로 왕스포일러가 돼버리고 만다. 그냥 이 한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보러 가시는 것이 좋다. [클로버필드] 라는 작품을 안 보셨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어차피 나 자신도 [클로버필드]를 일면 영리한 아이디어에 꿰맞추기 위해 영화적인 퀄리티를 희생시킨 사기성이 농후한 범작으로 간주하는 관객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특별히 [클로버필드] 라는 이름에 끌려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고 말이지) 


[클로버필드 10번지] 는 그 단순하기 짝이 없는 줄거리와 설정, 거의 모든 액션이 지하의 벙커속에서 벌어지는 무대극적인 배경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와는 달리 최소한 세 가지의 장르가 혼재하는 복잡한 구조를 지닌 한편이다. 이 장르들을 호명하는 것 자체가 이미 스포일러로 귀결되는 행위이니, 말을 함부로 할 수도 없지만, 약도의 스포일러를 각오하고 굳이 언급해본다면, 영화의 도입부는 보이프렌드와 결별을 한 직후 남부 시골길을 달리다가 충격적인 교통사고를 당하고, 의식이 돌아오자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핵전쟁이나 생물병기에 대비해서 구축해놓은 지하 벙커에 감금된 상태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미셸 캐릭터의 시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돌아버린 중년남자한테 납치당해서 감금되어 있는 거니, 빨리 이 벙커를 탈출해서 바깥 세상에 나가야 된다" 라는 미셸의 (여혐형 범죄 스릴러의 정석적) 시점을 거스르면서, 존 굿먼이 연기하는 하워드의 종말론적인 언설-- "바깥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이 옳을 수도 있다는 "증거"들이 조금씩 드러나는데, 이것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각본과 감독 트라첸버그는 관객들의 주의를 유도하면서도, 능구렁이처럼 직설적인 설명은 피해 넘어간다. 


내가 이미 힌트를 주었듯이 미셸의 즉자적인 해석은 결국 "진실" 이 아니다. 그러나, 미셸의 상황이해가 충격적으로 뒤집어지는 순간, 우리에게 그때까지 주어졌던 단서들의 의미가 명료해졌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이다. 이 교활한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사실상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미셸은 과연 이 벙커에 갇혀있다/벙커 덕택에 살아있다라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존 굿먼이 연기하는 하워드는 세계의 멸망에 집착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인과 별 다를 것 없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외톨이 중년 남자일까? 존 갤라거 주니어가 연기하는 에메트는 하워드가 그냥 벙커에 넣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고 찌그러져 있는 맹꽁이인가? 제작진은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여러 종류의 단서를 던지면서, 편집증적인 공포와 이성적인 분석 사이를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정신 상태의 온도를 조금씩 비등점에 가깝게 높여간다. 


물론 이러한, 세밀하게 플롯의 요철을 조절하는 감독과 각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뭐 이딴 영화가 다 있어?" 라는 허탈스러운 반응을 느끼는 관객분들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우주선이 몇 단계에 걸쳐 연료를 소비한 로켓을 떼어내면서 가속도 추진을 하듯이, 갈수록 이야기가 "커지고" "괴이해지면서" 장르적 정체성을 탈피-변신해가는 [클로버필드 10번지] 의 디자인은 가히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지만, 반대로 확장형 스토리가 아닌 방향으로 깔끔하게 매듭지어지는 작품이 되기는 방기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이것을 이 한편의 약점이라고 볼 것인가 아니면 혁신적인 태도로 높이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취향이나 장르영화에 대한 접근방식에 따라 평가도 나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내가 영화를 고른 이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어필한 요소는, 대배우 존 굿먼이 연기하는 하워드가 예고편에서 보여주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아닌게 아니라 [클로버필드10 번지] 의 세 메인 배우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존 굿먼 그리고 존 갤라거 주니어는 웬만큼 기준치가 높은 관객이라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박진감 넘치는 연기들을 선보인다. 인디 전문여배우 윈스테드는 [더 씽 (존 카펜터의 괴물)] 리메이크 등 별로 인상을 남길 여지가 없었던 영화 출연작 보다도 사극 [머시 스트리트] 같은 고퀄리티TV 시리즈에서 더 명성을 쌓은 케이스인데, 이 한편에서는 위약해 보이는 것 같으면서 실제로는 강렬하게 능동적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여주인공상을 공들여서 구축해내고 있다. 윈스테드가 연기하는 미셸이 초기의 공포에 질린 상황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곧장 어벙한 에메트와 편집증적인 하워드에 눈웃음을 치고 부드럽게 말을 걸면서, 심리적 "공작" 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이 여주인공이 결코 전통적인 "잠재적 성폭행의 대상이자 남성 광기의 관찰자" 역할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남성 관객들 중에서는 이러한 미셸 캐릭터의-- 남자들의 장르적 기대를 배신하고 불편함을 가져다 주는-- 능동적인 주체성 때문에 그녀를 굳이 "나쁜 년" 으로 과잉해석하려는 경향이 드러나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윈스테드와 서브와 카운터를 주고 받듯이 레이저광선으로 수술하는 듯한 예리한 연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존 굿먼 연기자에 대해서는 찬사가 모자란다는 것이 진실이다. "산타 클로스!" 신의 오금이 저리면서도 관객들의 해골을 거꾸로 처박는 유머감각이 보여주듯이, 그가 연기하는 하워드는 적도 (適度) 의 찌질함,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카리스마, 시치미를 뗀 위트, 심지어는 싸이 같은 엽기적 중년 남성이 배출하는 황당한 종류의 섹시한 매력까지도 겸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부로부터 가스가 새듯이 조금씩 배출되는 광기를 적시적소에서 불끈불끈 보여주는 그 스킬이란! 


대체적으로 미국관객들은 그 교활한 재미에 탄복하고 극장을 나서는 [클로버필드 10번지] 임에도, 막판15분정도의 "최후의 진실" 부분이 과연 정말 필요했던가, 아무리 그래도 너무나 무책임하게 다른 장르로 튀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이 들리는데, 확실히 한 영화를 매끄럽게 끝내지를 못하고 나중에 또 울거먹으려는 쌍제이를 위시한 제작진의 얄팍한 속셈을 드러낸 것으로 간주해서 비판할 수도 있겠다. 나의 해석은 이렇다: 차젤, 트라첸버그 그리고 쌍제이가 붙어서 수정한 각본은 원래 초고에 비해 미셸의 캐릭터에 압도적으로 중심이 이동되어 있다. 하워드의 벙커는 말하자면 미셸 같은 젊은 여성의 자유와 의지를 억압하는 시스템-- 가정이 되었건, 직장이 되었건, 국가가 되었건-- 의 은유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벙커를 유지하는 지배자가 미셸에게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레토릭은 "나가봤자 (네가 원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와 "너는 여기 안에서 괴롭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바깥에 나가면 더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로 수렴될 것이다. 막판 15분의 전개는 그러므로 미셸에게 "아무것도 없어진 세상" 에서 그녀를 대기하고 있는 "더 큰 위험"을 실체화하기 위해 필요했던 전개라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레토릭이 "사실"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미셸의 자유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진짜 주제의식이 아닐런지. 더 이상 자세하게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므로 여기서 멈추겠지만, [클로버필드 10번지]의 결말이, 스스로 세상 돌아가는 꼴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국의 남자 먹물들이 이러한 작품에서 내놓을 "리얼리즘" 적이거나 "사회비판" 적인 결말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클로버필드 10번지], 떡밥의 제왕이 만든 얄밉고 티꺼운 상업영화 맞다. 그런데 어떡하지, 난 이런 퍼즐 피스 같은 "그냥 엔터테인먼트" 가 "중후한" 사회 비판적인 장르영화보다 훨씬 더 사상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세련되었다고 여겨지는 걸? 


PS: 베어 맥크레리의 음악이 특히 전반부에 미셸의 불안과 공포를 표현하는 데에 굉장히 많이 원용되고 있는데, 70년대풍 오케스트럴 스코어라서 상당히 놀랐다. 내가 지극히 선호하는 "영화음악다운 영화음악" 인데, 최근에 미국영화에 컴백하는 트렌드가 아닌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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