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겟 아웃 Get Out

2017.05.14 20:16

Q 조회 수:8214

 

아웃 Get Out 


미국, 2017       


A QC Entertainment/Blumhouse Productions Film, distributed by Universal Studios. 화면비 2.35:1, Arri Alexa Mini. 1시간 44분.


Written and directed by: Jordan Peele.

Cinematography: Toby Oliver.

Production Design: Rusty Smith

Costume Design: Nadine Haders

Music: Michael Abels

Special Makeup Effects: Carlos Savant, Joe Savva, Remi Savva, Scott Wheeler

Visual Effects: Mattew Brady Harris, Ryan Cox, Paul Baran, Ingenuity Studios, Café Noir

Stunt Coordinator: Mark Vanselow


CAST: Daniel Kaluuya (크리스 워싱턴), Allison Williams (로즈 아미티지), Catherine Keener (미시 아미티지), Bradley Whitford (딘 아미티지), Caleb Laundry Jones (제레미 아미티지), Lil Rel Howery (로드 윌리엄스), Lakeith Stanfield (앤드류 로건 킹), Stephen Root (짐 허드슨), Betty Gabriel (조지나), Marcus Henderson (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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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7년도 거지 반이 지나려고 하고 있는데, 2016년 후반부터 지금까지 극장에서 본 영화의 개수가 결코 많지는 않지만 (이제 부천영화제와 여름 시즌이 되면 좀 더 숫자가 늘어나겠지만), 대충 일정한 트렌드가 눈에 들어오고 있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고 그렇다. 한국영화의 경우 "천만 영화"식의 대박을 노리는 기획영화가 전반적으로 영화계에 아주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한 반면, 여성 영화인들의 점진적인 진출이 눈에 띄고, 그 여성들이 만드는 작품들이 중년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는 "(지네들한테만) 진보적" 의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보여준 다는 점은 평가할 만한 사항이다. 극장용 미국 영화의 경우, 가장 눈에 띄게 들어온 것이 "포스트 오바마" 미국 사회의 흑인/인종문제에 관한 일련의 역작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은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 를 비롯해서, 대놓고 오바마의 전기영화인 넷플릭스 제작 [배리], 부산 영화제로부터도 펀딩을 받은, 정말 눈 속에 묻혀서 반짝이는 자그마한 다이아몬드 같은 독립영화 [더 핏츠], 더 통속적이고 헐리웃 주류적 시각을 반영하는 [히든 피겨스], 역시 주류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졌지만, 민권 운동보다 이전의 분리정책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회로부터 연연히 내려오는, 흑인 가족과 그 안의 세대간의 교류라는 문제를 오랜 세월 동안 천착해온 문학과 연극의 전통을 잇고 있는 덴젤 워싱턴 감독작 [펜스], 새로운 미국 남부 영화의 의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 제프 니콜스가 흑백 인종 관계라는 주제를 정식으로 다룬 [러빙], 누가 보더라도 오바마 시대 이후에 성장한 젊은 세대 흑인을 주인공으로 만들면서 "백인 노동계급의 입지전 서사" 였던 [록키] 시리즈를 누긋하게 환골탈태시킨, 영리한 [크리드]. 이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단순한 "백인에게 배척 받고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 흑인들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이라는 민권운동기의 "진보적" 서사에서 조금씩, 얼마간 또는 대폭으로 벗어나 있다는 점이겠다 (이 서사는 그런데 트럼프와 같은 말도 할 수 없는 인종차별주의자들도 공유한다. 백인의 차별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고 너희가 원래 "모자라는 인종" 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다를 뿐). [문라이트] 와 [더 핏츠] 같은 작품에서는 백인들의 존재는 그림 밖에 놓여있어서 아예 보이지도 않고, [배리] 의 주인공 오바마는 흑인과 백인의 삶에 동시에 발을 들여놓고 있으며 (심지어 감독은 인도인이다!), [펜스] 와 [크리드] 의 젊은 흑인들은 그들의 부모들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감추지도 않고 변명하지도 않으며, [히든 피겨스] 의 주인공들은 흑인이기도 하지만 여성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중의 차별에 시달린다.


누군가가 비록 인종차별주의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미국 문화의 큰 흐름은 여전히 오바마를 선출했던 그 "미국" 의 변화를 따라간다 라고 분석했었는데, 나도 그 주장에 찬성이다. 이 모든 영화들은-- 심지어는 민권운동기의 "우리도 사람이고, 사람 대접 받고 싶어요" 류 서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히든 피겨스] 의 경우까지도-- 그 서사나 역사상의 캐릭터의 행태의 묘사와 관계없이, 은연중에 "흑인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살아본 작가들이 만들어낸 물건들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흑인이라는 존재가 대중문화상에서 항상 그들의 "사람됨의 자격" 을 증명해 보여야 하거나 (시드니 프와티에 연기자가 거의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언제나 일반적인 백인남성보다 더 멋지고, 더 정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뭇 백인 여성들에게 절대로 "성적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는 "신사" 를 연기해야 했던 것처럼), 아니면 게토에서 자이브를 읊으면서 (실제로는 같은 흑인들이 아니고 교외에 거주하는 백인 애들이 압도적으로 소비하는 음악인) 힙합을 틀어놓고 사는 "후드" 의 주민으로 밖에는 인식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을 때, 미국 주류 영화가 "안전하게" 인종 차별을 다루는 방식-- 생긴 것부터 인종 차별을 체화한 "나쁜" 백인들을 악당으로 가져다 놓고 그들에게 모든 화살을 퍼붓고 끝낸다거나, 아니면 [자유의 절규] 같은 작품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듯이, "훌륭한 흑인 캐릭터" 를 가져다 박아놓고, 막상 서사의 주인공 자리는 꿰어찬 백인 캐릭터들의 "진보성" 을 자기네들끼리 확인하고 끝낸다거나-- 에는 피치 못하게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균열된 틈바구니에 고개를 디밀고 "우옷… 여기 무섭고 추잡하고 위선적인 것들이 득시글하네엽!" 하고 좌중에게 큰 소리를 지르는 한편이 바로 이 [겟 아웃] 이다.


[겟 아웃] 은 압도적으로 평론가들의 지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제작비의 40배가 넘는 (추정 제작비 4백5십만달러, 2017년 5월까지 국내 극장수입이 1억7천4백만 달러 이상) 수익을 벌어들인다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운, 아마도 2017년 최고의 저예산 영화 히트작 케이스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런데, 상당수 (많지는 않지만) 의 평론가들이 [겟 아웃]을 칭찬하면서도 "리버럴 백인들의 위선을 비꼬는 영화" 내지는 "흑인들이 속내에 지니고 있으면서 보통 보여주지 않는 백인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한편" (후자의 경우, 아먼드 화이트라는 아이러니칼하게도 자신도 흑인이면서 우파보수 [내셔널 리뷰] 에 평론을 기고하고 있는 상당히 유명한 평론가가 강력하게 이 의견을 주장했다. 물론 이분의 글은 [겟 아웃]을 아주 저열한 영화로 낮게 평가한다) 이라는 식의 해석을 하고 있는 데에는 일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한국 정치상에서의 "보수" 냐 "진보" 냐 하는 렛떼루처럼, 미국 안에서도 "리버럴" 과 "콘서버티브" 라는 렛떼루가, 다차원적이고 정교한 캐릭터나 서사의 구축을 인정하지 않고, 글 쓰는 놈들 마음대로 여기 붙이고 저기 붙이는 식으로 써먹히고 있다는 것이 답답하기 그지없고, 이 한편을 도대체 어떤 색의 색안경을 끼고 보면 화이트가 말하듯이 "백인들 때려잡자" 영화로 보이는 것인지, 나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바이다. 이런 식의 "이념적" 해석에 기대자면,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는 아마도 "종북 빨갱이영화" 와 "친일파-신자유주의 수구꼴통영화" 의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할 것이다. 하이구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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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 아웃] 을 최근의 저예산 독립 호러영화 중 출중한 성취도와 독특한 시점을 과시했던 [팔로우스] 와 비교해보자면, 디트로이트발의 후자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를 연상시키는 드라이하고 "건축가적인" 시점에서 시종일관 초자연적인 괴기를 묘사하고 있다면, 전자는 오히려 [로즈마리의 아기] 의 로만 폴란스키와 [세컨즈] 의 존 프랑켄하이머를 연상시키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와 편집증적인 공포에 바싹 가까이 다가서는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던 필의 감독의 스타일 보다도, 그가 구상해낸 각본의 설정, 반전의 비밀 및 캐릭터 구상을 들여다보면, 상기한 [로즈마리의 아기]부터 시작해서, [메피스토 월츠], [악마와 함께 질주하라] 그리고 [스텝포드의 아내들] 등에서 나타난 70년대 미국 호러의 하나의 뚜렷한 경향성의 흐름에 딱 맞아떨어지게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쉽사리 인지할 수 있다. [겟 아웃] 은 무슨 "힙합 보이스 & 후드 호러," 이딴 게 전혀 아니고, 고대로 폴란스키의 [로즈마리] 와 [스텝포드] 의 계보에 가져다 넣어도 아무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고전적인 호러 영화라는 것이다.


다시금 말하자면, [겟 아웃] 의 정체성은 먼저 호러 영화고, 그 연후에 "흑백문제를 다룬" 영화라는 셈인데,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한편은, 적당히 리버럴하고 흑백문제를 주류적인 시선에서 제대로 다루었다고, 또는 반대로 흑백문제를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착취성 영화의 틀에 반영시킴으로써, 그 전형성을 전복시키고 인종차별의 민낯을 폭로했다고 주장하는 퀜틴 타란티노 같은 백인 작가들의 자기만족적인 시각보다, 훨씬 더 불편한 방식으로 흑백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호러영화의 장르적 역사에 대해 별로 감이 없는 아먼드 화이트 같은 "주류" 평론가들이 이 영화의 정치적인 함의를 그렇게 천박하게 밖에는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한편의 주인공 크리스는 굉장히 디슨트한 청년이지만 (흑인 주인공을 무슨 "액션 히어로" 이딴 게 아니라 함부로 다른 사람들의 정체를 넘겨짚지 않는 사려깊고 센시티브한 인물로 상정한 것 자체가 벌써 고전적인 민권운동기의 인물상의 계보를 계승한다는 성향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백인 경찰 등의 거의 무의식적인 인종 차별적 행태에 대해 보여주는 아이러니컬하면서도 별로 괘념치 않는 반응은 그가 21세기의 현대를 살고 있는 흑인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여기에서 백인 경찰에게 인종 차별이라고 비판을 퍼붓는 것은 크리스가 아니라 그의 백인 걸프렌드인 로즈고, 그녀의 부모님과 오빠 아미티지 가족은 "오바마가 대통령선거에 세 번 나올 수 있었더라면 세 번째 그에게 투표했을 것" 이라면서, 자신들의 리버럴한 성향을 새삼스럽게 강조한다. 나중에는 아미티지 가족 뿐 아니라, 그들의 상류층 친지들이 모여서 벌이는 정원 파티에 참석하게 된 크리스는 참 웃을 수도 없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미묘한 상황을 여러 번 겪게 되는데, 조던 필 감독은 이러한 부조리하면서도 리얼리티에 깊이 뿌리를 내린 상황들을 70년대식 "나만 모르는 공동체의 음모" 풍 호러 영화의 기본 골격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데에 있어서 아주 탄복할 만한 수완을 발휘한다.


크리스가 그렇게 스스로의 리버럴함을 강조했던 로즈의 집에서, 가정부 또는 마당쇠와 흡사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조지나와 월터라는 흑인 남녀의 존재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의 감정을 느끼는 시퀜스들을 예로 들자면, 그들은 그 자체로 지극히 고전적인 호러영화의 상황이면서 (마이클 에이블스의 60년대 [환상특급] 을 연상시키는 음악이 효율적으로 관객들의 진땀 흘리는 공포감과 불안을 유도한다), 또한 (블랙) 유모어가 넘쳐 흐르게 웃기는 장면들이기도 하고, 또한 흑백 관계의 미완의 역사를 인식하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이 장면들이 유도하는 불쌍함, 죄책감, 괴이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의 분출을 막기 힘들다. 조지나라는 저 흑인 여성은 확실히 뭔가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어거지로 웃음을 지으려고 하면서, 동시에 또 눈물을 마구 흘리는 거지? 베티 가브리엘과 마커스 헨더슨이 훌륭하게 연기한 이 두 흑인들의 "정체" 는 물론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 두 캐릭터들이 관객들에게서 끌어내는 다중적인 정서적 반응에는 단순히 관객들을 무섭게 몰아치게 하기 위한 말초적인 요소와 또한 그들을 사상적, 윤리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매섭게 비판적인 요소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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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아닌,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스스로의 입장을 [겟 아웃] 안의 "흑인" 과 "백인" 의 두 전혀 다른 포지션에 담가놓고 보실 수가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런 요소를 다 떠나서 보더라도 [겟 아웃] 은 그냥 그 자체로 엄청 잘 만든 호러 영화다. 특필할만큼 뛰어난 부분을 개인적으로 몇 가지만 집어본다. [노예로 12년] 같이 흑인의 노예로서의 경험을 리얼리즘의 기법을 살려서 적나라하게 묘사한 걸작들이 존재하지만, 자유의지가 빼앗긴 채 노예로 존재해야 된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장르영화의 어휘와 문법을 사용해서 표현한 은유 중에서, [겟 아웃] 에 나오는 "가라앉은 곳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상태" 를 능가할 만한 것을 나는 미국영화에서 본 기억이 없다. 노예가 되는 것은 단순히 뇌가 없는 로봇이 되거나, 쇠사슬에 묶여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것 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가라앉은 곳" 에서 아우성과 비명을 지르면서 떠오르지 못한 채, 자신의 육체에 대한 모든 주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노예" 가 되는 것이다. 맹인이지만 사진을 위시한 시각 예술작품을 거래하는 아트 딜러로 성공한 허드슨, 주인공 크리스와는 달리 백인들에 대한 파라노이아에 잡혀 살고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실행력이 있는) 로드, 모두에 납치당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분위기를 잡고, 나중에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되어서 등장한 것처럼 보이는 앤드류 등의 보조 캐릭터들의 우수함도 새삼스럽게 칭찬할 필요가 없다. 특히 크리스한테 "진상"을 설명하는 역할을 구식 RCA 티븨로 전송되는 허드슨의 영상 에게 맡긴 것은 그냥 머리가 좋다고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사실 스포일러를 각오하고 쓰자면 더 여러 측면에서 논의가 가능한 한편이지만, 이만 하고, 결론을 내리겠다. 어디까지나 호러영화의 광팬이고 미국에서 30년 넘게 거주하면서 10대 20대의 미국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사는 나라는 인간의 관점에 한정된 견해이긴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포스트 오바마 시대 흑인영화" 라는 새로운 트렌드의 하나의 정점을 찍는 문화사적으로 의미심장한 한편일 뿐 아니라, 2017년에 본 모든 호러 영화 중 단연 최고의 열 편 중 하나에는 들어가리라는 것을 거의 확신할 수 있는, 교활할 만치 잘 만든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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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마침내 극장 공개가 되는 모양인데, 강력 추천 드리고 싶지만, 또한 여러모로 걱정이 된다. 첫째는 소위 말하는 "시놉시스" 들이 이 한편의 내용을 다 까 발겨 놓을 공산이 아주 크다. 될 수 있으면 뉴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정보들은 피하시길 빈다. [콩 스컬 아일랜드] 같은 영화라면 그 안에서 킹콩이 뭘 하고, 무슨 괴물이 나오고 따위를 미리 알고 보러 간들 재미가 크게 덜해지지는 않겠지만, [겟 아웃] 에서는 중반 지날 때까지도 여러 캐릭터들의 "정체"를 확실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재미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자기 딴에는 반전을 밝히지 않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캐릭터들의 정체를 미주알 고주알 설명해놓는 바람에 모든 비밀을 다 밝혀놓는 짓을 저지르는 분들이 반드시 계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70년대 미국 호러 영화에 빠삭한 분들은 물론 큰 틀의 트릭은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모르고 갈수록 더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둘째는 [겟 아웃] 의 대사는 의외로 다의적이고 능란한 측면이 있어서, 함부로 [분노의 질주] 식의 번역을 하면 폭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월터, 중반부에 재등장하는 앤드류와 조지나가 구사하는 "전혀 흑인답지 않은" 어투의 번역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궁금하다. (20대의 여러분이 2017년에 홍대 앞에서 그 동안 소식이 끊겼던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났다고 하자. 반갑게 인사하면서, "야 왜 통 안보였냐, 그 동안 뭐하고 지냈어?" 그랬더니 그 친구가 떫은 감 씹은 얼굴을 하면서, "오. 음.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소이다. 임자같이 잘생긴 벗은 내게는 없구려. 허허…" 라고 대답을 한다면, 조금 감이 오시려나?)


사족: 도중에 모종의 음모단체가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선전하기 위해 제작한 "Behold the Coagula" 라는 비데오 테이프가 등장하는데, 이 coagula 라는 표현은 중세 연금술에서 사용되던 "Solve et coagula" 라는 관용구에서 나온 것이다. 이 관용구는 납에서 금을 만든다거나 그러한 "화학적" 변화를 이루기 위한 기본 원칙으로서의 "(우주의 원소의) 분해와 결합 (또는 응고)" 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 이후의 오컬트 사상이나 철학에서 인간 정신과 육체의 진화 과정에서 도태되어야 할 존재를 그 기본적인 원소로 분해하고, 다시 그 원소들을 새로운 형태로 합성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이 내용을 더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되는데, 아무튼 이 프로젝트는 알게 모르게 나찌 독일에서도 상당수가 가담했던 30년대의 우생학적 오컬티즘에 계보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힌트를 제공한다 (다른 힌트는 제시 오웬즈 선수가 언급되는1936년의 올림픽에 관한 극중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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