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악의 교전 (키시 유우스케 작가)

2012.09.28 13:00

Q 조회 수:4808

악의 교전 悪の教典 


페이퍼백. 일본어.   ☆☆☆★★


文藝春秋、2011. 


작자: 키시 유우스케 貴志祐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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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님의 리퀘스트 [악의 교전] 갑니다. [신세계에서] 도 쓰면 좋겠습니다만 벌써 가을학기가 시작해서 지금은 굉장히 바쁘게 되었습니다. 8월중에 끝내지 못한 것은 어쨌건 제 불찰입니다. 엄청나게 늦장 부리는 리뷰가 된 점 사죄드립니당. 데드라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 뜰 때 제대로 뜨지 못한 작가들의 수도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보다는 더 많을 터인데 그들의 절박하면서도 후회스러운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 말하면 망발일까요? 


이제는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명성이 높은 키시 유우스케 작가의 회심의 일편입니다. 미국적인 풍미의 미스테리 소설, 그와는 반대로 지극히 일본적으로 집요하고 음습한 심리 스릴러, 70년대 나가이 고오나 그런 작가가 그리던 만화를 연상시키는 약간 변태적인 막장 학원 드라마, 그리고 싸이코틱한 살인마가 도주가 불가능한 공간에 갇힌 캐릭터들을 하나씩 죽여나가는 슬래셔 무비를 방불케하는 호러소설, 이렇게 웬만한 작가 같으면 한가지도 제대로 다루기 힘들 것 같은 여러 문학 장르가 중층적이고 유기적인 구조물처럼 연결되어서 거의 대서사시적인 중후함을 지니고 독자들을 압박합니다. 


[악의 교전] 에 대한 대체적인 감상을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이 소설은 전체적인 오감도와 더불어서 특정한 부분을 접사한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 웅대함과 정밀함과 디자인의 박력에 압도되어 넋이 쏙 나가게 되는 그러한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과도 같습니다. 덩치만 쓸데없이 크고 읽어감에 따라 언제 끝나자는 것인지 짜증이 밀려오는“대하”소설들과는 현저하게 차별됩니다.  [검은 집] 에서 어디까지나“정상인”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통상인과는 달리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는“싸이코패스”를 강렬한 필력으로 묘사해서 이 단어를 괜시리 유행어로 만들기도 했던 키시 작가가, 이번에는 평상시에 보통사람과 다름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이 속한 조직안에서 인기를 구가하면서 마치 약자와 소수자에 위치에 선 학생들을 더 잘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존재인 것 처럼 행세하는“싸이코패스”를 중심에 놓고 그 내면적 묘사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더한층 야심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악의 교전] 은 엄청 재미있고, 서스펜스가 넘치며, 독자들의 심장을 틀어쥐었다가 놓았다가 자유 자재로 요리합니다. 이 대작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의미에서“영화적”인 한편이기도 합니다. 단, 강풀의 만화와 스티븐 킹의 소설이 그러했듯이 키시 유우스케의 장편들은 영화화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소스에 속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악의 교전] 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칫 잘못 만들면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적확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언어의 교집합이 아닌 구태의연한 플롯과 캐릭터의 전형성만 남게 될 확률이 높지요. 그나마 영화로 옮길 수 있는 어찌 보자면 은밀하고도 기묘하며, 한마디로 집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나 캐릭터 반응의 매력 같은 것은 웬만큼 신경을 써서 각색하지 않으면 다 들려내져버립니다. 


  제 눈에는 이미 온갖 아이돌 가시나-머슴아들로 도배 캐스팅을 한 비참하게 느슨하고 시시껍절한 [레슨 ('레슨즈' 의 '즈' 는 당연히 빼먹어야죠) 오브 이블 (리처드 버튼은 '이에~ 빌!' 이라고 발음하시더만 ^ ^) ] 영화판의 포스터가 어른거립니다 (일본판보다 한국판이 최소한 캐릭터상으로는 더 흥미있는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크지만 반대로 한국판에서는 일본판의 음울하고 집요한 '악' 의 묘사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공산이 큽니다. 한국에서는 '악' 이란 그냥 양아치 아니면 찌질하기 이를 데 없는 쓰레기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뭐 실제 세상의 악의 존재감을 고려해본다면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만-- 예를 들자면 그런 면에서 김영진평론가의 [이웃사람] 옹호론은 납득이 가긴 합니다--, 실제의 악이 다 그런 거다, 이런 얘기를 할 거면 [악의 교전] 같은 작품은 아예 건드리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자꾸 남들이 딴 세계를 만들어놓고 하는 얘기를 자기 세계관으로 끌어들이려고 우격다짐을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미이케 타카시 감독이 이미 초스피드로 영화화를 한 모양이군요 과연 어떨런지... 미이케 감독이 다른 일본 영화인들보다는 제대로된 초이스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악의 교전] 에 대해 독자들이 가질 수 있는 반응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주인공인“싸이코패스”영어 교사 하루미 세이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루미 세이지는 주도면밀하게 구축된 캐릭터입니다. 저는 키시 작가가 거의 65페이지라는 분량을 소비해서 거의 중편소설 하나의 자체완결성에 근접하도록 써내려간 제 1장의 하루미 (학생들에게는“하스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의 묘사의 정밀함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카버를 장식하고 있는 까마귀와 하루미의 관계가 충격적으로 이 인물의 어디까지나 “명랑한” 카무플라쥐를 뒤집어 엎는데서 끝나는, 아직 본 스토리는 시작의 시작도 하지 않은 하나의 거대한 프롤로그라고 할 수 있는 이 장의 인상이 강렬하게 독자들을 틀어쥐고 페이지를 넘길 것을 거부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키시 작가가 장르 문학을 넘어서서 예술작품의 범위에 들어간 서구 문학과 일본 문학을 다 아우르는, 보통 전문 작가들의 사정범위를 까마득히 넘어서는 수준에서 “악”을 표상하는 캐릭터의 설계라는 작업에 대한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는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어려운 미션이지요. 다른 인간들에 대한 공감이 없다는 것이 포인트인 악인의 심리를 그냥 “그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라는 류의 맨탕한 표현을 무한반복하지 않고, 그러나 또 시적이고 로맨틱한 “악의 꽃” 류의 아니면 “사회비판” 을 표방한 작가의 비분강개성 찌질함 만개발산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결과적으로 시시껍절한) 악의 찬미라는 삼천포로 빠지지 않고 독자들에게 신빙성있게 전달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키시 작가의 접근 방식은 결코 첫눈에 보이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막 써내려간 것처럼 읽힌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키시 작가의 올가미에 얽혀들어가 있다는 증거죠. 


제가 받은 인상을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키시 작가의 장르장인적인 결연한 의지를 지극히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만,  하루미라는 초강대 “악” 캐릭터의 구축이라는 프로젝트가 전부 성공적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악의 교전] 에는 [신세계에서] 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공상속의) 위키피디어 항목을 연달아서 읽는 것 같은 일본 작가들 특유의 저널리스틱한 나열성 묘사도 거의 없고 테크니컬한 면에서는 흠잡을 데가 별로 보이지 않아요. 하루미의 자신의 과거 인생사의 플래쉬백을 어느 지점에서 소설에 삼입할 것인가, 고등학생들 캐릭터를 어떻게 안배하고 어떤 상황에서 하루미의 진의에 대한 의구심을 들게 만들 것인가, 바로 1분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을 누구의 시점들로 나누어서 복합적으로 전개할 것인가 등, 웬만한 장르 글쟁이라면 (소설가나 각본가나 할 것 없이) 머리를 싸매고 들어누워서 며칠 끙끙 앓아야 할 것 같은 문제들을 키시 작가는 가볍게 정면돌파 해버립니다. 그러나 캐릭터의 “내용” 에까지 얘기가 미치면 좀 다른 이슈가 되지요. 


읽으면서 기본적으로 하루미라는 캐릭터가 표상하는, 말도 못하게 뻔뻔스럽고, 전율스럽게 위선적이고, 거의 매혹적일 정도로 강한“악” 의 모습에 감탄을 하면서도 그가 퍼즐 피스의 퍼즐들이 강박적이리만치 정치한 밑그림을 통해 레고 블록처럼 조합되어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을 보는 것과, 엄청나게 멋진 포토 스프레드의 사진속의 여성을 보는 것과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궁극적으로는 하루미라는 캐릭터는 그림에 그려진 사람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역설적으로 키시 작가가 자신의 필치를 숨기고 더 “객관적인” 전지적 시점에서 하루미의 싸이코패솔로지를 대단한 솜씨로 그리면 그릴 수록, 읽는 저는 더욱 더 그의 기술적 성취에 감탄하게 되면서 막상 하루미 자신과는 거리를 두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악의 교전] 에서는 정말 훌륭한 문학작품을 읽었을 때 (대시얼 해머트나 렌 데이튼이나 이언 뱅크스, 그리고 스티븐 킹-- 제일 좋은 작품들은 주로 단편이지만-- , 심지어는 마츠모토 세이초오까지도 포함해서) 제가 느끼게 되는 “감동” 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본 소설은 (일본어 페이퍼백 기준으로 무려 438 페이지를 숨가쁘게 달려온) 제 8장의 끝에 이르러서 보통 작가들같으면 이미 원심력으로 명왕성까지 튕겨 날려가거나 아니면 운전석에 마른 오징어처럼 납작하게 찌그러져 붙어버렸을 수준의 급선회를 합니다. 각 단락마다 6:30 pm 이런 식으로 시간을 알려주면서, 실시간으로 각 캐릭터들을 쫓아가는 슬래셔 호러로 탈바꿈하는 거죠.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저는 완전히 키시 작가의 마수에 꽉 붙잡힌 채 숨도 못쉬고 단숨에 아직도 남은 220 페이지 (;;;;;) 를 읽어내려가는 데 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계속 보고는 딴 거 하고 다시 와서 읽고 그렇게 끝냈죠. 주인공격인 레이카와 유우지로오 등의 캐릭터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하루미가 과연 그 악마적이고 광적으로 무모한 계획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 무엇보다 키시 작가가 독자들과의 머리 싸움을 어떤 방식으로 벌일 것인지 상당히 궁금하긴 했지만 이러한 궁금증은 말도 못하게 파워풀한 작품에게 정서적으로 장악당하는 감동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맨 마지막에서 결국 독자들로 하여금 “헉 어떻게 그게 가능했지?” 라고 입을 벌리게 만드는, 사건을 완결짓고 진상을 밝히는 “반전의 반전” 이 퍼즐 미스테리 작가가 생각해 낼만한, 특정 물건의 (솔직히 말하자면 나같은 일본에 살지 않는“기계치” 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특성을 이용한 “메카니컬 트릭” 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도 어떻게 보자면 실망스럽고, 어떻게 보자면 키시 작가의 본령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작자의 실력을 폄하하는 것 같이 들릴 수도 있겠는데 그런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저같은 일반인이 산삼을 몇개를 찜쪄먹고 한 30억원 쯤 은행 구좌에 짱박아놓고 15년 쯤 글쓰기 연습을 한다 하더라도 키시 유우스케 작가의 플롯짜기, 트릭구상하기 공력의 수준을 결연코 넘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요. 단지 그의 공력이 이 한편에서는 그의 “선호영역”이랄까 Comfort Zone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범위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신세계에서] 와 비교해서 평가하자면 완성도는 [악의 교전] 에 비해서 크게 떨어지지만 전자는 숨이 턱턱 막힐정도로 답답하게 규정된 “초능력” 이라는 일본적인 로컬 SF 신화를 무모함을 무릅쓰고 [더 스탠드] 를 방불케하는 우주적 스케일로 발전시킨 웅대한 수준의 SF 라는 점에서 작자의 Comfort Zone 에서 벗어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하루미가 브레히트의 [세푼 오페라] 를 언급하는등의 이것도 지극히 일본장르작가식인 “서구예술작품 인용하기”는 사실 서구의 작가들도 맨날 하는 거기때문에 별반 거슬리지 않았습니다만, 그의 플래쉬백에서 나오는 하바드 대학이며 기타 “미국” 의 묘사는 전 약간 불쾌했습니다. 미국이 연속살인범의 천국이라는 식의 묘사를 읽으면 저한테서는 “허허 그러세요. 연속 살인범이 아주 없는 나라에 사시려면 북조선을 강력 추천드립니다” 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한국은 고사하고) 일본이 그렇게 연속살인범이나 기타 엽기적인 범죄와 동떨어진 나라인가?

 

그리고 미국은 인구의 0.5% 도 안되는 백인 (남성) 들이 맘대로 가지고 노는 나라라는 식의 (이것도 지극히 장르규범적인) 이해 방식도 제가 20대에 장르 문학을 들입다 읽던 시절에는 그렇게 문제가 안 되었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미국에서 30년 (내년이면 미국에서 산지 30주년이 됩니다 ;;;) 이나 살다 보니까 좀 신경질이 납니다. 일본식으로 이이카겐니(いい加減に)시나사이, 라고 싫은 소리 한마디 던져주고 싶은 심통이 나요. 이왕 미국에 대해서 쓸거면 좀 로컬한 시각을 가지고 “미국인” 이 읽어도 폐부를 찌르는 내용이 있는 걸 써주면 안되나? 일본어 (또는 한국어)로 쓰는 작가니까 이런 건 순전히 (좁디 좁은 의미의) 일본인 (한국인) 의 시각에서 쓰면 되지 뭐 라는 시각은 솔직히 요즘 세상에서는 좀 안일한 것 같습니다. 


키시 작가의 공력에 여러모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대작입니다만 두고 두고 다시 읽고 싶어지거나 세계관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키시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검은 집] 과 [유리의 햄머] 와 비슷한 수준이고 [푸른 불꽃] 과 [크림슨의 미궁] 보다는 좋지 않았습니다만, 거꾸로 앞의 두 작품을 뒤의 두 소설보다 압도적으로 선호하시는 독자시라면 적극 추천드립니다.  


사족: 훈장질 하고 먹고 사는 사람이라 괜히 쓸데없는 뱀다리를 붙이게 되는데, 이 작품을 읽고 있으니 미이케 감독의 영화화가 대 히트를 해서 일본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좀 사회적인 공론의 장소로 터져나왔으면 하는 바람은 생기는 군요. 그래봤자 또 교사의 자격결정조항에 더 웃기는 종류의 규제를 더하자는 식의 땜빵논리가 판을 치겠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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