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닌자 忍びの者 1962

2012.02.18 02:09

Le Rhig 조회 수:1860

영화의 알파와 오메가, 산다유


고에몬은 산다유가 지배하는 닌자 요새의 하급 닌자입니다. 능력도 야심도 있는 닌자이지만, 여자를 밝힌다는 소문이 나돕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고에몬은 산다유의 부인과 바람이 나고 그 사실을 들켜 죽을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고에몬은 마을을 떠나 도망치려합니다만, 산다유는 고에몬을 앞질러 이미 그의 도주로에 와있습니다. 산다유는 고에몬을 용서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숙적인 오다 노부나가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립니다.

이번 회고전 책자에 따르면 야마모토 사츠오는 방대한 장르를 오가며 작품을 만들어온 감독이랍니다.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장르물입니다. 이 영화에서 야마모토 사쓰오는 당연하게도(2) 닌자 영화라는 장르를 다루고 있는데, 장르의 이해, 혹은 소재의 이해에서 멋진 주제와 주제 의식을 끌어내었더군요. 원작을 읽지 않았기에 이것이 사쓰오에게 돌릴 공인지 원작자에게 돌릴 공인지 각색가에게 돌릴 공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주제 의식은 주제 의식이고, 영화는 그러는 와중에도 장르 본연의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영화는 장르와 주제 의식을 의식하여 쓰인 만큼 바쁘게 둘 사이를 오갑니다. 액션과 드라마가 병치되어 있는 것인데, 이는 적절한 페이스로 그려졌고 상호보완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화에는 닌자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장르 요소가 모두가 등장합니다. 축지법, 낙법, 변장술, 은둔, 잠입, 표창 액션, 사무라이 액션, 일대다수 액션, 독, 기타 등등. 이 장르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이 영화가 이 장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가늠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장르 소재를 경이로 다루는 영화의 문법은 이후 닌자 영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장르 영화로 영화를 보았을 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영화의 알파와 오메가, 산다유의 캐릭터입니다. 산다유는 교활한 노인네로 고에몬이 도망치기 전부터 고에몬과 부인의 간통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에몬을 죽이지 않고 도리어 이를 방관하고 조장합니다. 고에몬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고자하는 산다유의 방법론은 갖가지로, 고에몬을 함정에 몰아넣기 이전에도 자신의 정체를 위장, 두 닌자 요새의 성주로 있으면서 요새간의 경쟁을 유도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쓰일 닌자를 양성했습니다. 영화의 결말에도 나오듯이 이것은 상급 닌자의 간계로, 결국 산다유는 닌자에 대한 모든 것이라 하여도 다름이 아닌 거지요.

산다유의 이러한 모습은 영화의 주제 의식에 관해서도 그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만들게 합니다. 숭고한 정신의 상징으로 생각되는 닌자가 사실은 전쟁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현상과 순진하고 무지한 이들을 실존하지 않는 관념으로 미혹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교활한 미치광이의 모습은 모두 영화의 주제로, 이를 통해 우리는 영화의 주제 의식인 전쟁의 무의미함을 읽을 수 있는 거지요.

영화는 장르의 재미와 주제 의식에서 성공합니다만, 캐릭터와 드라마에서는 실패합니다. 영화 속 널브러진 시체들만큼이나 처참하게 살해되었어요. 영화 속 캐릭터는 모두가 캐리커처 이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알파와 오메가인 산다유는 그것이 도리어 매력으로 작용하는 캐릭터지만, 다른 캐릭터의 입장은 다르지요. 특히 고에몬의 경우는 심합니다. 고에몬에게 드라마가 없는 것은 아니나 고에몬의 똑똑한 건지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너무나 정석적이어서 도저히 상식에서는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은 그냥 ‘주인공’ 캐리커처로 보일 뿐입니다. 홍상수 영화의 캐릭터가 아닌가 싶었어요. 물론 산다유나 고에몬이나 그냥 그런 위악적인 위선적인 인물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남성판타지에서만 존재할 법한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그리할 수 없습니다. 영화가 이들을 그리는 방식은 도를 지나치게 얄팍해요.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애써 막으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집에서 기다리는 마키를 향해 달려가는 고에몬의 모습을 보면서 말 그대로 박장대소했습니다. 이러한 캐릭터와 드라마의 실패는 영화를 위선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전쟁의 무의미함이니 뭐니 말해봐야 영화 안에 진짜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그리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거나 그렇지 않거나, 영화는 여전히 좋은 장르물입니다. 아무리 형편없는 캐릭터와 드라마를 가졌어도, 위선적인 주제 의식을 가졌어도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영화의 장르 이해와 그 이해에서 오는 재미와 주제, 주제 의식, 산다유 라는 캐릭터만은 모두 가치 있는 것들입니다.


2012.2.17
르 뤼그


가지가지.
닌자2의 상영이 2월 23일에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 실망했습니다만, 보러 갈 계획입니다. 세트를 맞춰야겠다는 강박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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