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꿈으로 산다

2011.01.29 00:47

비밀의 청춘 조회 수:2426

 

나는 공상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산다.

 

추운 날, 복도를 나섰다. 아이팟을 켰고, 동영상 목록 중에는 한 가수가 피아노를 치며 열정적으로 노래 부르는 영상이 있다. 나는 습관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엄지를 움직여 영상을 클릭했다. 자신 안의 감정을 표현해내는 그 가수는 아마 평소에는 항상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 것이다. 폭발하면 그것은 주위 사람들을 번거롭게 만들고, 억누르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의 진실에 가깝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생존을 힘들게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가수뿐만이 아니라, 나 역시 무당이 춤을 추는 것처럼 날뛰어야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평소에 나를 가두고 있는 '일상생활'은 나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남자고, 나는 젊다. 그렇지만 그 두 조건이 나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게 슬프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나랑은 다르게, 태어날 때 랜덤으로 걸린 운에 의해, 훨씬 행복하게 사는, 나와 동갑의 사람들을 위해 차를 주차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가수가 되고 싶다.

그런데 나는 가수가 되고 싶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내 꿈을 지지해준다. 나는 노력하며 나의 실력은 꽤 좋은 편이다. 그들은 나보고 될 거라고 이야기해준다. 사실 내 주위의 모두가 넌 뛰어나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건, 그런 말을 듣기만 할 뿐, 나는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걷는 것이 편하다. 예전에는 이상하게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그들이 나를 보는 것이 싫었다. 그들이 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사소한 단어가 그들의 눈에 비친 단편적인 나를 형용한다는 느낌이 꺼림칙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못생겼고 우둔하고 키도 작고 볼품없는 거리에 가끔 볼 수 있는 그런 형편없는 남자이다. 그들이 나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장점은 젊다는 것과 남자라는 것, 두 가지 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너무 흔하기 때문에 장점이라기엔 미약하다.

고로, 나는 실패한 인생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의 한국 사회, 혹은 인류 사회는 실패한 인생을 어떻게 보냐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본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가치인데, 나는 그것이 두렵다.

 

 

내 주위에 1년 새에 열심히 노력해서 사업을 대박친 사람이 있다. 친구의 친구, 건너로 아는 사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1년 전에 분명 나와 같은 처지였다. 그러나 그는 이제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세간의 기준이다.

 

 

나는 나 자신이 무대 위에서 멋지게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한다. 춤을 추면서 동시에 폭발적으로 목소리를 토해내는 모습을 상상한다. 조명은 나만을 비출 것이고 관객들은 나만 보고 있다. 나 자신의 존재가 발산하는 생명력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나를 그 순간만큼은 사랑한다. 돈이나 다른 것은 상상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플레이보이 모델처럼 나의 욕구를 자극하지 못한다. 무대 위에서의 나는 분명 살아있는 존재일 것이다.

 

 

너무 추워서 피부가 아플 정도이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하고, 서있기도 하고, 차문을 여러 번 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건물관리인이 와서 나에게 지하 일층의 재즈 바 주인에게 물건을 전달하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나는 포장된 물건을 꼭 가슴에 품었다.

 

 

내가 보기에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의미라면 나의 입장에서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자신의 마음속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깨닫고 절망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쓰러져 굴복하기가 싫다. 나는 맞서 싸우고 싶다. 무기력하게 엎어져 우는 어린아이가 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큰소리로 외치지 않지만, 현실에 수긍한 사람들을 철이 없는 어린아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어른은 절망을 알아갈지만 동시에 원하는 그림을 얻기 위해 날개가 꺾이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날기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인이 없어서 아르바이트생에게 물건을 건네주고 나오려 하는데 중앙에 피아노가 있었다. 가끔 사람은 미친 짓을 하는데, 나는 미친 짓을 하고 싶었다. 아니 그것은 욕구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의 문제였다. 서서히 다가가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흑과 백의 건반들을 보며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 그 누구도 내게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여자들이 좋다. 그러나 수없이 지나가는 그녀들은 나에게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녀들은 아마 나에게서 사회의 실패자라는 낙인을 느끼고 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내가 못생기고 날씬하지 못하고 옷빨도 없고 키도 작아서 그런 것일 수도. 나는 누구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어떤 여자도 나를 사랑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여자들이 좋다.

 

 

feeling good이라는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노래가 절절하기 때문이다. muse 버전으로 불러야 할지, michael buble 버전으로 불러야 할지 고민했는데, 둘을 절충해서 내 목소리 톤에 맞게 더 느끼하고 더 고전적으로 부르기로 했다.

피아노 의자에 앉은 나는 목을 한 번 크게 푼 다음, 가사를 노래했다. 피아노 소리는 깔지 않았다. 시선들이 느껴졌다. 나를 판단하는 그들의 시선은 단순한 호기심에 가득 차있었지만 그것은 곧 나에게 적개심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킬만한 사람이 아니기에.

한 구절을 부른 후, 부드럽게 피아노 소리를 깔면서 나는 노래를 시작했다.

 

 

방황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고, 미친 듯이 괴롭다. 나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는 것은 괴롭다. 시간은 흘러가고, 그 흘러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분명히 흘러는 간다. 만약, 이렇게 내가 영원히 이 상태를 지속한다면? 그리고 더 상황이 나빠진다면?

내가 더 이상 남자 구실도 못하고 젊지도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you know how I feel river running free you know how I feel blossom on the tree you know how I feel it's a new dawn it's a new life for me and i'm feeling good

이성은 기능하지 않고 있었고 오로지 음악과 나 자신만이 존재했다. 어느새 시선들도 사라져 있었고 나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for me oh for me

피아노 연주로 채웠다. 피아노 연주를 실패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모든 게 흔들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갑자기 나 짤리겠다는 생각이 났다. 그런데 그 생각이 심하게 바람 부는 날의 우산처럼 날라갔다. 나는 세상의 사람들이 비웃는 남자이지만 꿈으로 산다. 그리고 그 꿈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단호히 죽어버릴 것이다. 세상을 사는 것에 의미가 없기 때문에. 나는 가장 어리석게도, 꿈으로 산다.

you know how I feel oh freedom is mine and I know how I feel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it's a new life for me and i'm feeling good

가장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소절이었다. 나는 혼신을 다해 목구멍을 열어 불렀다. 그 부분이 지나고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구절은, 내가 여자가 생긴다면 그녀를 깨우기 위해 쓸 거야 라고 생각해왔던 목소리로 부드럽게 불렀다.

아, 그래 나는 꿈으로 산다.

새끼손가락이 생명력으로 가볍게 흔들렸다. 

아, 그래 나는 꿈으로 산다 이 병신 같은 세상아.

 

 

그리고 피아노 반주를 끝냈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