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온이 망한 것은 '샤아 아즈너블' 때문인 것을 아시오?"

"붉은혜성이라 불리던 그 남자 말이요?"

"스페이스노이드의 희망인 우리의 위대한 지온공국이 1년전쟁에서 패한 이유는, 지나치게 확장된 전선, 지휘체계의 분열, 연방의 '하얀 악마' 때문이 아니라
조직을 배신하고 지도자를 시해한 뒤 전선에서 내뺀 샤아 아즈너블, 그 빌어먹을 배신자 때문이란 말이오."

"자, 여기 술 한 잔 받으시오."
 
"일년전쟁 종전 후 그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 자가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크와트로 파치나'라는 이름으로 연방군 군관으로 연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지온군의 기밀, 지온의 마지막 희망을 연방군 정보장교에서 넘겼기 때문이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내막을 모르고 그 녀석을 '각하'라 부르며 찬양하기에 바쁘다오. 요즘 젊은 것들은.... (쿨럭쿨럭)"

"우리 며느리도 샤아 아즈너블의 추종자가 되었답니다. 허허허. 오늘은 아예 손주 녀석을 등에 업고 샤아 총수 귀국 환영식에 나간다더군요.

"도대체가... 그런 변절자를...."

"항간에는, 연방군에 체포되어 갖가지 고문 끝에 기밀을 불었다고도 하긴 합디다. 
전기고문, 물고문 속에 제 한 몸 죽지 못해 불었겠지요. '칠성판' 위에선 누군들 안그랬겠습니까."

"그놈은 변절을 선택할 기회라도 있었지만 다른이들에게는 '죽음' 밖엔 선택할 것이 없었다오.
그때 샤아가 지구 곳곳에 잠입해있던 지온 비밀 조직의 정보를 연방군에게 넘겨주었고 
그 때문에 연방군 내의 지온 조직은 섬멸되었다고 봐도 (쿨럭 쿨럭) 죄다 죽어버렸지요. 죄다...
내 처조카 녀석도 그때 쟈브로에서 처형되었다오. 똘똘한 놈이었는데..."

"어이쿠... 그런 일이 있었구려. 술 한 잔 받으시오."

"그랬던 샤아 녀석이 지금은 지온의 총수가 되어 '각하' 소리를 듣고 있으니 세상 참 모를 일이오." 

"액시즈가 과거의 그 '지온'을 잇는 세력이라 하니 세상 일이란 참으로 기이한 것이지요."

"샤아 그 녀석은 액시즈 이전에 연방군 내 정풍(淨風) 운동도 했었다오. 
연방군 내 부패한 고급장교들을 정화하는 군사 쿠데타였지. '에우고'라고 그랬었던가... 젠장."

"허허, 어찌보면 '샤아'란 인간은 남들보다 세상을 잘 아는 인간이랄수도 있을 겁니다. 
범인(凡人)들보다 '세 배는 빠르게' 세상의 흐름을 타고 넘어 새로운 물결을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청류와 탁류, 우주와 지구, 선과 악을 가리지 않고 한 몸에 집어 넣고 삼킨 인간이 아닌가 싶어요.
괴물인지 거인인지, 영웅인지 악당인지는 앞으로 백 년은 지나봐야 명확히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백 년이라 (쿨럭) 과거를 많이 아는 나 같은 늙은이는 빨리 죽어야 맘이 편한 세상이오.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것이 인간의 과거이니... 이놈의 세상 빨리 죽어야... (쿨럭)"

"술잔이 비었구려. 죽은 자는 억울하고 산 자는 원통한 것이 세상 이치니 한 잔 쭈욱 드시오."

"그때 그 아바오아쿠 전투에서 동료들과 함께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쿨럭 쿨럭) '나'라는 인간은 너무 오래 살았소."

옆자리 동년배 노신사가 건네준 술에 얼큰하게 취해버린 불평쟁이 노인네는... 
비틀거리며 술집을 나오다가 검은 양복을 입은 청년들에게 끌려갔고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한다.
혼란의 시기,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이 어디 그 노인네 한 명 뿐이겠느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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