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봄이었어. 보릿고개를 갓 넘긴 봄. 간사스럽게 보리밥이 입안에 껄끄럽게 겉도는 봄. 채 다 익지도 않은 보리 베서 먹을 땐 주려서 그리 맛있더니만. 그즈음 되면 그제서야 꽃이 눈에 들어오지. 핀 건 기껏해야 늦은 패랭이꽃에, 문둘레꽃이지마는.

 또 눈에 들어오는 건 아래께 보름이였어. 이름도 예쁘지, 보름이. 이것이 물동이 머리에 얹고, 치맛자락 말아 한 손에 잡고 걸어야. 그러면 하얀 발목이 앙큼 보여. 복숭아뼈를 어이해 복숭아뼈라 하는지 알겠어. 툭 불거져 나온 게 하얀데 붉어. 딱 복숭아지.

 보름이 보는 낙에 호드기 불며 종일 우물가 버드나무 그늘 아래 기대있지. 얘는 종일 물을 길어. 집에 사람이 좀 많아야지. 하기사 놋그릇 부시고, 적삼 저고리 삶고 하려면 종일 길어도 모자라겠어. 보름이 일가는 다른 이들처럼 빨래를 우물가에서 빨지를 않아. 속곳이며 밖엔 내보이질 않겠다는 거지. 그리하야 보름이만 고생이지. 하루에도 족히 열댓 번은 물동이 이고는 종종걸음이야.

 멀찍이 보일 땐 얼굴이 밝아. 빈 동이 머리에 얹고는 날아가는 배추나비라도 보이면 방긋거려. 또래 동무들과 다를 게 없어. 그러다 가까워져 오는 우물이 큰 사발만 하게 보이면 한숨이야. 무겁지, 하나 가득 물이란 게.

 "무슨 물을 그리 많이 길어?"

 짐짓 모르는 체 농을 걸었어.

 "조약돌만 한 게 누이한테 반말이야."

 이게 그러고는 꿀밤을 치는 거야. 내도 이제 열두 살인데. 그래도 싫지는 않았어.

 "맞고도 그리 좋나. 그리 좋으면 보름이한테 장가가면 되겠네."

 깔깔거리며 잿물에 담근 빨랠 방망이로 두들기던 아낙이 웃으며 말했어. 보름이는 물을 옮겨 담느라 바빠. 나는 번쩍 우리 할배 부싯돌 치듯 떠오르는 게 있었어.

 

 "시끄러워, 고추에 터럭도 안 난 게 장가는 무슨 장가야."

 딱, 주먹이 날아왔어. 날이 날인가, 머리통이 고생이야.

 "널 낳고 미역국을 못 먹어 그런가. 조약돌만 한 게 영악스럽기가 어디 갖다 댈 데가 없어."

 "자꾸 이럴 테야? 할배! 할배! 어매가, 어매가……."

 나는 울어 젖히기 시작했어. 실상은 어매한테 말을 꺼낼 때부터 할배가 어데 앉아 있나 살펴놓고 있었지. 할배는 툇마루에 앉아 빈 담뱃대를 물고 있었어.

 "아니 우리 종손 와 이리 우노?"

 "아버님예, 이번에 모른 척하이소. 이놈하가 ……."

 "할배, 나 장가 갈기다."

 "우리 종손 장가 갈기라 하면 보내야제."

 "아버님예, 열네 살은 먹고……."

 "열두 살이나 열네 살이나."

 할배는 쌈지를 열고 담배를 담고는 부싯돌을 치기 시작했어, 딱. 어매는 조용해. 할배가 빈 담뱃대만 물다 불붙이는 때는 사흘에 한 번이나 될까? 맘이 헛헛하고 여울진 게 또 여울지면 정히 딱 한 대 만 하고는 피는 때야. 딱. 아직 불이 아니 붙었어. 그러니 어매는 뭐라 말도 못하고 담배쌈지만 넋 놓고 보고 있어.

 "아범 제사가 그모레가?"

 "예."

 "집이 너무 조용해. 절간 해우소마냥 고즈넉하기가 하량 없어."

 "예."

 "봐둔 처자가 있어."

 딱, 그제야 불이 붙어 연기가 지붕으로 올라가네. 나는 머리가 아득해졌어. 이게 아닌데 말야.

 

 보름이는 파리한 달을 보네. 물푸레나무 곁에 앉아 파리한 달을 보다 중얼거리네.

 "이게 무어야. 내 신세야."

 당연히도 아무도 대꾸하는 이 없지.

 "불쌍타. 보름이 신세. 가엽타, 열일곱 보름이 팔자."

 보름이는 하매 시집을 가기가 싫여. 그것도 지보다 열다섯 살 많은 신랑이라니. 어매는 그래도 식솔 작은 집에 가는 게 몸도 편하고 낫다고 닦달을 하네. 그리도 멀리, 저 뫼 다섯 굽이 길 떠나, 언니들이랑 할매랑 두고 가기도 싫여. 시어미 될 사람이 보내준 비단 적삼도 싫고, 다홍 빛깔 산호 노리개도 다 뭐야. 예쁘기는 예쁘고 곱기는 곱더라 만은, 그게 다 무어야.

 보름이 뺨에 눈물이 흘러. 꺼이꺼이 울고 싶은데 조그만 주먹을 쥐고 꾸욱 참아야. 사람은 참 착하단다, 돈이 없어 나이만 먹다가 돌밭 다 갈아 인삼 심은 게 스물일곱 이였데. 여섯 해 만에 그 뭐냐? 그래 육년근을 수확했는데, 올해 인삼이 다 흉년이라. 근데 이 사람 밭만 풍작인기라. 어매는 계속 떠들어 싸. 들리지도 않는 말이 귓등을 때려.

 부스럭. 뭔 소리야. 보름이는 눈물을 훔치며 돌아봐. 뻘건 얼굴, 문드러져 문둥이 얼굴이야. 그 얼굴이 보름이 얼굴 바로 옆에 있어. 어매야! 냉큼 일어서 달려야. 뒤도 돌아 못 보고 댕기가 빠져도 모르게 뛰어야. 물푸레나무 너머 문둥이는 빨간 얼굴을 하고 보름이한테 뭐라 뭐라 소리를 질러. 꼭 흐느끼듯, 슬피 울듯 뭐라 뭐라 소리를 뱉어.

 

 "가뭇없어."

 "거기 어디 있다. 잘 찾아봐."

 "없다, 없어."

 "왼편으로 가락을 길게 뻗어 본나."

 할배는 날 잡은 팔을 더 길게 뻗고는 말해. 그제야 더듬거리는 손에 잡히는 게 있다. 꼬옥 잡고는 당겨보아.

 "있다. 있어."

 두꺼비다. 등판에 올록볼록 튀어나온 종기 같은 요철이며, 몸통만큼 큰 대가리가 시원하게 잘생긴 금두꺼비다.

 "이런 게 울 집에 있었나?"

 "울 집엔 뭐들 없나?"

 어둑한 다락방, 한 귀퉁이에 할배는 빈 담뱃대를 물고, 나는 입을 뾰족이고 두꺼비를 본다. 손으로 잡을 때보다 작다.

 "이건 왜?"

 "네 장개 가야지."

 "어디서 났노?"

 할배는 헛담배만 피워.

 "어디서 났노?"

 "알아 무엇하게?"

 헛담배로 한 대는 족히 빨았을 즈음이 됐어.

 "할배야, 내 장개가고 싶은 처자가 따로 있다."

 "그기 네 맘이가? 내 다 생각이 있다."

 "할배야! 살려 주라. 내는 걔 아님 안 된다."

 딱, 날이 날인가. 머리통이 고생이야.

 

 마주 자라는 물푸레나무 마냥, 마주걸이 하는 씨름 선수마냥, 문둥이는 바래 담 앞에 마냥 서있어. 어디 물바래라도 담 넘어 넘쳐오나? 문둥이는 보름이 집 앞을 보름달 아래 마냥 서있어. 딱, 딱, 딱, 야경꾼 나무치는 소리가 멀찍이 들리고, 문둥이는 울어. 뭐가 그리 슬퍼? 누가 그리 보고파? 어이 그리 구슬퍼.

 

 보름아 하고 불러도 답이 없어. 다시 불러도 아무 말이 없어. 모르겠다. 하얀 손에 우겨서 쥐어주고 왔어. 돌아오니 헛헛해. 나 같은 꼬마가 무얼 알까마는. 쪼그리고 앉아 호드기 불며 머릴 굴려 봐도 답이 없어. 꼬맹이인 게 억울해. 혼자 자는 내 방에 보름이가 각시로 오면 좋겠어. 그래 젖 만지다 잠이 들면 좋겠어.

 삐, 호드기는 내 입파람에 다 찢어졌네. 발로 밟고 성질 못 이겨 방방 뛰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랐어. 냅다 한걸음에 달려가.  

 "어매, 제가 짜장 잘할게요. 우리 집 식구도 없고, 홀어머니 잔잔하고 좋은 분인 거 아시잖아요. 어매."

 "야가 와 일 카노? 우리 보름이는 정혼한 남자가 있다. 갓난쟁이가 어디 와서 생떼고."

 정혼? 보름이가 딴 데 시집을 가?

 "어매요! 살려주이소. "

 나는 드러누웠어. 드러누우면서도 멀리 보름이 오는 건 보여. 으레 물동이를 이고 저만치 오네. 누워 있자니 콩콩 발자국소리가 땅에서부터 들려.

 "일어나라."

 "내는 어매가 지를 받아줄 때까지, ……“

 말을 마치지도 못했는데 물이 얼굴을 덮어. 그 큰 옹기를 나한테 들이부었어야. 구경 온 사람들이 키득키득 웃어. 나는 뜻대로 되어간다 싶어.

 

 박하하고 계피를 꿀에 잘 개운 것에 열흘을 절인 약과를 기름종이에 곱게 싸서 건네준 것을 그믐이는 울다시피 하며 먹는데 그것도 아까워서 이빨로 조금씩 갉아 먹다시피 하며 먹어.

 "달다, 오빠야. 달어."

 "그믐아, 그러니까 나한테 다시 얘기해봐, 보름이 언니는……. "

 "보름이 언니는 시집가기 싫대. 할매하고 나하고 그냥 여기 있고 싶데."

 주저리주저리 그믐이가 요것조것 말을 해대.

 "근데 어매는 걱정이래. 오빠가 울 집 마당 와서 생떼 쓴 게 너머 너머 소문나면 어찌하느냐고."

 그래, 내 생각이 그거야. 초승이는 약과 먹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쉴 새 없이 종알종알 떠들어.

 "그래, 그 산 너머 마을 이름이 뭐라 카드나? "

 

 금두꺼비가 들어온 게 내 손주 나이만 했을 때야. 아무리 어두워도 고놈의 두꺼비는 반짝여. 달빛이라고는 구름 너머에 있듯 말 듯 하고, 그나마도 창호지 너머 들어온 게 다인데도, 그래도 반짝여. 그걸 내 할아버지에게 건네준 건 문둥이였어. 붕대로 감은 얼굴엔 핏물이 뚝뚝 떨어져.

 "이걸 꼭 받아야 하나? "

 문디가 꽥하고 외마디 소리를 작게 질러. 할배는 작금의 내가 물고 있는 그 담뱃대를 손으로 쓰다듬어.

 참이나 조용하니 몰래 보고 있는 내가 잠이 올 지경이 되어서야,  ‘알았구먼. 그만 가보시게나.’ 해.

 문디가 일어나는 걸 보고 다급히 싸리나무 담 아래 숨었어. 걸어가는 문둥이 얼굴에 뚝뚝 피가 흘러 걸음걸음마다 자욱이 남아. 할배는 사랑채에서 한숨을 쉬고, 나는 너무 무서워 아니 만지던 어매 젖을 만지며 잠들면서도 왠지 슬퍼 눈물이 났어. 뭐가 그리 걱정인지 한숨 쉬는 할배가 안타까워 울던 내가 할배가 됐네. 밤잠 못 이루고 담뱃대 쓰다듬는 할배가 됐네.

 

 "다솜해."

 조약돌만한 고 꼬맹이가 말했어. 시방 잠도 아니 오는 밤에 문득 그 말이 떠올라. 울 아부지가 죽기 전에 내를 붙잡고 딱 한 번 그 말을 한 적이 있어. 그 후로 어매도, 어매보다 더 어매같은 할매도 내게 그런 말을 아니했어. 꼬맹이가 무얼 알아. 조약돌만한 게 지가 하는 말뜻도 모르지. 근데 짜장 떠올라.

 어매보다 어매같은 할매가 말했지.

 "본디 말이란 게 하기 전이 다르고 한 후가 다른 법이여. 항시 말을 들어야 돼. 이 사람은 이러니 내가 이러면 이럴 것이다 하면 안 되는 법이여. 항시 답을 들어야 돼. 사람은 모두 말을 뱉고 나면 그 말을 제가 한 것을 알아야. 말도 아니 한 것을 지킬 거라 생각하면 안 돼. 닦달을 해서라도 말을 들어야 하는 법이여."

 꼬맹이 네라도 그냥 거기 들어가 살까? 그럼 할매는 볼 수 있지 않겠어? 산 넘어, 넘어 가는 것보다는 낫잖아. 어매 말처럼 사람 적은 집이 몸이 편타던데. 생각이 많아 잠이 오질 않네. 꼬맹이는 너무 조끄매. 조금 더 지나면 나만 해질까?

 

 자근자근 씹어 먹어. 입술을 타고 흐르는 노루고기 핏물인지, 문드러진 얼굴에서 새나오는 핏물인지 몰라도, 뚝뚝 떨어지는 핏물은 아랑곳없이 자근자근 씹어 먹어. 간을 뺏긴 새끼 노루는 아즉도 어매를 찾아 파르르 떨며 울고, 문둥이는 그 소리가 지도 처량해 꽤액 고함을 질러. 그리고는 자근자근 씹어.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타령이 슬퍼. 먹다가 말고 타령을 해야.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벗고 놀자. 타령도 하다 말고 용대가리질을 해. 아니 하며 타령도 마저 하네. 타령인지 우는 건지 알 수 없어도 용두질을 멈추질 않아. 어쩌려고 밤은 짧고, 애기 노루 피는 식어 가는데.

 

 "어찌해야 쓰냐?"

 "그냥 보름이 우리 집에 보내라."

 "누가 시켰나?"

 "모른다. 어찌 해보자. 네도 살고 내도 살자."

 "…… 내는 싫다. 그래도 좀 있는 집에 보내야 보름이도 편치 않겠누?"

 "듣는 바람에 그 집 홀어매 독하다더라."

 "네는 홀어매 아니누?"

 "그라는 네는 홀어매 아니누?"

 "……. 하기사 밤에 누워 생각하면 열다섯이나 많은 노총각이 저 어린 것을 밤마다 붙잡고……."

 "마저 해라. …… 딴 날은 지 서방 것은 애기 팔뚝만 했네 하며 음담을 늘어놓더니 만은. "

 "이미 받을 거 다 받았는데, 어찌 또 다 팽개치누. 돌아뿐지겠네."

 "돌겠는 건 네만이 아이다."

 "너 네 밭이 한 마지기만 더 있어도, 아님 받은 거 다 뱉을 테니 네가 물래. …… 그려, 네도 그래는 못하겠재. 그거 말고도 너 네 집엔 못 보낼 사정이 있다."

 "웬 소리고? ……  꿀을 먹었나? 와 이리 덥누. 봄이 봄이 아닌 기라."

 

 뛴다. 발자국이 땅에 남지도 않을 만큼, 달리고 또 달린다. 조약돌이 굴러가듯 또르르 달린다. 이제 뫼 하나 넘었다. 이제 뫼 네 개 남았다. 아침 먹은 게 다 꺼지고 해는 중천이다. 다음 뫼는 더 높다. 가파르기는 못된 놈 족제비 턱 마냥 날 서 있고, 길은 외길.

 비루먹은 나귀라도 타고 올 걸. 아냐, 아냐. 느긋한 성질머리 그놈보다는 내가 더 빠르지. 내 잰 뜀박질이야 건넛집 열아홉 먹은 동이보다 갑절은 재고 그놈의 나귀는 동이보다 느리던걸. 이제 뫼 둘 넘었다. 이제 뫼 셋 남았다.

 박하하고 계피를 꿀에 잘 개운 것에 열흘을 절인 약과를 점심삼아 먹으며 뛰어. 다 녹아내려 물엿마냥 되어 버렸네. 다음 뫼는 야트막해도 길이 꼬불꼬불해. 구역질이 나고 하늘이 노래. 이제 반절 왔어. 뫼 꼭대기에서 고함을 한 번 지르고 내리막길을 내달려.

 이제 뫼 셋 넘었다. 이제 뫼 두개 남았다. 높기는 태산 다음으로 높나? 어찌 이리 높나? 앞 뫼 셋 다 더해도 이보다 모자라겠다. 해는 벌써 뫼를 다 넘었는데 내 몸은 아직 여기네. 헉헉, 숨은 가쁘고 몸은 바쁘네. 낮달이 어느새 해를 잡아먹고, 하늘을 다 차지했네. 이제 뫼 넷 넘었다. 이제 뫼 하나 남았다. 엉엉 울음이 나. 밤은 칠흑 같네. 더는 기지도 못하겠네. 뫼 하나 남기고 억울해 미치겠어.

 보름이를 다솜하게 된 건 너 해 전 내가 여덟 먹은 꼬맹이였을 때야. 지금이야 다 컸지만 그땐 정말 꼬맹이였지. 뻘건 해가 잡아먹을 거 같던 여름에, 시근나물 밭에 잡초를 뽑는다고 얼굴이 문둥이처럼 벌개져서는 캑캑 거리다가 쓰러졌어. 뙤약볕에 너부러진 거지. 눈을 뜨니 보름이 품이었어. 연신 동이의 물을 내 얼굴에 뿌리고 있었지, 어쩔꼬, 어쩔꼬, 혼잣말을 하며. 내 머리가 놓인 치마저고리가 물에 젖는 건 여념도 없이, 어쩔꼬, 어쩔꼬, 어쩔꼬. 포근해. 나는 혼자 씩 웃고는 벌건 얼굴로 새근새근 잠이 들었대.

 

 " 우리 조약돌 어데 갔노? "

 제 올릴 날 아침, 장손이 뵈질 않아 늙은이는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네.

 " 우리 손주 어데 갔노? "

 사방팔방 돌아봐도 꺼졌나 솟았나 당최 가뭇없네. 뒤보다가 쪼그마하니 빠졌나 싶어, 뒷간에 긴 작대를 쿡쿡 찔러봐도 없네, 없어.

 " 아버님예. "

 며늘이 불러 돌아보니, 편지를 하나 들고 있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어보자.

 " 뭐라 써있어예? 아배요? "

 침묵을 깨고 며늘이 물어.

 " 보름이 정혼자하고 담판을 지러 산 너머 마을 간다네. 허허, 그것참. 고놈 뉘 집 자식인지 딱 부러지네. 고놈이 장개가겠다던 처자가 보름이였단 말이지. …… 딴은 제상이나 봐라. 문은 닫지 말고 지치기만 하구. "

 딱. 한 번에 부싯돌에 불이 올라 시나브로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 늙은이는 낯에 오늘 주름이 하나 더 잡히네. 생각이 많아. 늙은이의 할배 왈,

 " 지청구가 왜 늘고 오지랖이 왜 늘어? 늙어도 마음먹은 대로 다 되는 게 아니니 이것저것 가타부타 말이 많아지는 겨. 근데 그래 봤자 바뀔 게 없다. 하고픈 대로하려면 대강이를 굴려야 하는 겨. 지청구로 되는 건 없는 겨."

라 했으니 보자, 어디 보자. 이 일을 어찌할꼬. 손주 놈이 금두꺼비 들고 나가 버렸으니 어이 타래를 풀어야 하나?

 

 싸한 박하가 숨을 쉬면 입 안에 코로 내뿜어지고는, 꿀꺽 삼키면 계피가 살짝 매워. 씹으면 생강 곱게 다진 게 어금니에 잡혀 침이 살짝 고이고, 그 아래 멀찍이 사향이 있어. 달디 단 꿀은 모든 맛을 잡아주네. 마름네 담 너머 뒤안길처럼 제법 맛이 길어.

 꼬맹이가 쥐여준 종이엔 몇 자 적혀 있네. 젯날이면 빚는 약과가 있는데 딱 하나만 사향을 조금 넣어 만든다네. 꼬맹이도 고작 한 번 먹어봤는데 꼬옥 한번 먹여주고 싶었다네. 지한테 시집을 오면 요 약과처럼 달디 달게 해주겠다네. 어린 게 잔망을 떨어. 딱히 싫지는 않은데. 암 것도 모르는 게 가엾네. 어찌해야 쓰나.

 

 자아, 잔치를 펼쳐 보자. 밤이다. 달이 다 뭐여, 그런 게 하늘에 있긴 있었나 싶게 어둡고, 꼬맹이네 제상은 다 차려 가는데, 누가 문을 두드려. 딱. 딱. 문을 여니 어이쿠, 문둥일세.

 "앉으시게. "

 문둥이는 손사래 한 번 치지 않고 덥석 뒤편 평상에 앉는다.

 "받으시게. "

 흰 보에 곱게 싸진 걸 문디가 만져보니 요철이 볼록볼록하니 두꺼비다. 즈려보는 눈빛에 등허리가 차도 할배는 눈 한 번 끔뻑이지 않고 말을 잇는다.

 "이젠 악연을 끊음세. 내 할배의 할배가 이걸 받고 약조한 것은 이미 옛일이고. ... "

 문디가 종기 난 혀로 뭐라 뭐라 말할세. 거개는 알아먹지 못할 새는 소리라.

 "알어, 약조는 약조이지. 내가 어릴 적에 종으로 팔려갈 것을 막아주고 시근나물 밭 마지기라도 준 게 누구야. 것도 미덥잖아 이 놈을 던져놓고 갔겠지. "

 뭔 일이지 모르는 며늘은 급작스레 상을 봐오고 할배는 술로 문둥이 입을 막아. 댓 잔 거푸 마시고 피식 피식 새는 소리를 질러.

 "알어. 알어. 형님이 내보다 일곱이 많지. 내도 환갑인데. 열여섯에 딸내미 낳고, 문디가 돼 여즉 떠돌아다니다 이제 쇠할 대로 쇠한 것도 알아. 그래도 독자를 내줄 수는 없잖여. "

 버럭, 문둥이는 상을 엎어. 백자 호리병은 깨지고 잔의 술은 튀어 할배 얼굴에 다 적셨네. 닦지도 아니하고 할배는 말을 이어.

 "안다구, 알어, 알어. 어찌된 게 하나 낳으면 그 애비는 뒤지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넷을 낳아야 되는데, 하나가 여즉 하나인 걸 난들 어찌해. "

 말이 길어. 할배는 시간을 끌어. 문디 노한 성질이 죽기를 기다려.

 “요번에 우리 조약돌, 장가보내.”

 문둥이는 씨익 웃어.

 "근데, 내 손주가 아를 나도 내는 주질 못하겠어. “

 하얀 술병 사금파리가 성큼 할배 목 앞에 들어와.

 “애를 하나를 낳듯 둘을 낳든, 첫째든 둘째든 나는 그리 못하겠어.”

 문둥이는 뭐라 뭐라 소리를 내지르듯 뱉어. 풀자면 이런 소리야.

 “나는 살아야 해. 딱 하루라도 아니, 새벽 닭 울고 해드는 짧은 식경이라도 멀쩡한 낯으로 살아야겠어. 딱 태어난 지 석 달 열흘 된 백일쟁이 생간 하나면 돼. 어이해 너 네 집은 계속 외동인 겨?”

 할배는 훌러덩 바지춤을 내린다. 거기엔 자지가 없다.

 “내가 왜 이런 줄 알아? 내 죽어도 네놈 먹으라고 백일쟁이 간은 못 빼준다고 문디 좆 베어 먹듯 울 아범 낳고는 베어 버렸다. 차라리 나를 찔러.”

 둘 다 씩씩거리며 짐승의 눈으로 씨름하듯 서로 마주 본다. 찰라 사금파리는 내치고 문디는 할배 발목을 걸어 자빠뜨리네. 어이쿠, 소리 한번 지르고는 늙은이는 아예 바지를 벗어 던져버려. 이내 손에 흙 한 움큼을 쥐고는 냅다 뿌리네. 분명 문둥이 눈에는 들어갔는데 꿈적도 않아. 힘도 좋아 한 손으로 그 큰 평상을 쥐고는 한 갑자 산 노인을 패네.

 잔치에는 구경꾼이 필요한 법. 와장창하니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 드네. 뭔 일이래 하고 모여든 사람들이 감때사나운 문둥이를 보고는 다들 싸해. 물푸레나무 평상이 아작이 나네. 사람은 오죽해. 할배는 온몸이 피투성이라. 흰 저고리 하나말고는 발가벗은 꼴이 사나워. 한데 다들 말이 없어, 낫살 쳐 먹은 이 중에 저 문디 모르는 이 없거든. 좆 없는 할배 모르는 이 없거든. 다 쉬쉬 했을 뿐. 마름하는 집 막내둥이로 태어나 본디 버릇대기 없는 놈 문둥이 되더니 괴물이 되어 버렸어.

 “어매, 말 좀 하소.”

 보름이 말소리야. 분을 삭이던 문둥이도, 등신마냥 멍한 동네 사람들도 모두 열일곱 먹은 댕기머리 처자를 봐.

 “뭔 말을 하누. 아서라.”

 “할배, 내가 누군지 알지라?”

 “야가 왜 일카누?”

 홀어매 팔을 뿌리치는 보름이 손이 거침없다.

 “나 보름이요. 다들 박보름이라 카는 데, 내 최보름이요, 최보름.”

 웬 말인가 싶어 수군거리는 데 빨간 댕기는 눈 하나 깜짝 안 해.

 “내가 할배 손녀요. 알지라?”

 수군거리는 게 점점 커져 웅성거려.

 “그럼 앞뒤가 어떻다는 겨?”

 “들음 모르누. 보름이 할매가 바람나 눈 맞아서…….”

버럭 문둥이가 소리를 질러. 여태 들고 서 있던 평상을 휙 던지니 거기에 댓 놈이 맞아 떨어져. 곧 재차 싸해지네.

 “내 배 보이지라. 이게 조약돌 애 밴 배요.”

 흙 들어가 뻘건 눈이 더 뻘게져 보름이를 보네.

 “어이할 테요? 지 새끼 간을 먹겠소?”

 아무 말도 못해. 그르렁 숨만 쉬며 보름이 눈을 피해. 한 식경이나 지나고 저는 금두꺼비라고 흰 보자기에 싸인 것을 휙 하니 손녀한테 던져. 보름이 펴 보니 죽어 딱딱한 두꺼비라. 문둥이는 어처구니가 없어 나자빠진 할배를 째려봐. 간신히 숨을 쉬는 늙은이를 보면 어찌 할겨? 어청어청 묵묵히 문 밖을 나서네.

 “아이고, 이제 어찌 여기서 사누?”

 보름이 어매만 들릴 듯 말 듯 탄식을 할 때, 보름이가 안타까워 지 할배에게 소리를 지르네.

 “글고 백일쟁이 간 빼 먹는다고 낫지 않는 데요. 할배! 다 미신이래!”

 

 “각시야.”

 “누가 뉘 각시가? 저리 가라.”

 물동이 이고는 여름 볕에 얼굴이 벌개도 보름이도 싫지는 않은 낯이야.

 “뭐가 그리 좋누. 나는 너 네 집 살린다고 남사스러워 이 마을에서 못살겠는데.”

 버드나무 여름 바람타고 어화둥둥 춤을 추고, 문둘레꽃 이른 놈은 벌써 흰 씨앗 날려 보낸다.

 “저리 가라니까.”

 “내가 저 산 넘어가 바다 본 얘기 했나?”

 보름이도 궁금한 지 부러 대답을 아니 하고.

 “내가 그 인삼쟁이 만나 금두꺼비 주고 너 뺏어 올려 산을 넘다가…….”

 “그건 다 들었다. 그래 맘 좋은 사람 만나 그 집까지 업혀 갔다매.”

 “근데 그 마을이 바다야. 그러니까 저 뫼 너머, 저 뫼 다섯 개 넘으면 거기가 바다라니까.”

 둘 다 시퍼렇게 푸나무 우거진 뫼를 왠지 그리운 눈으로 보네. 그러다 눈 마주치고는 부끄러워 고개를 돌려.

 “각시야.”

 “왜?”

 “와, 이제 내 각시인 거 맞나 보네. 그 물동이 나 주라. 내 이고 갈게.”

 보름이는 냉큼 동이를 얹어 주고는 무거워 뒤보듯 무릎 굽히고 걷는 꼬맹이를 보고 까르르 웃어.

 “딱 내 어깨까지만 커라. 그럼 내 네 각시 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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