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보헤미안 랩소디

2013.01.10 04:44

뉴우지 조회 수:1685

보헤미안 랩소디

 내가 그 파출부를 죽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데저트 이글이었습니다. 12.7mm 매그넘 총탄을 사용하는 무식한 놈이죠. 하지만 이름에 걸맞게 잘 빠진 은색입니다. 사막의 황량함과 냉정함도 충분히 있는 놈이었죠.
 
 
 탕, 탕, 탕
 
 

 복부에 한방 심장, 오른쪽 어깨를 쐈습니다. 두 번째 사격에 그녀는 죽었지만 나는 어쩐지 마지막 총알을 쏴야만 했어요. 한발 남은 총은 한 가지 용도 외에는 사용하지 않거든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현실과 꿈의 괴리로 자살을 택한 닐처럼. 하지만 총으로 자살하지는 않을 계획입니다.
 
 

 글라스에 보드카를 따라 마셨어요. 뜨듯 미지근한 게 카펫에 스며든 피처럼 역겨웠죠. 나는 서서히 피가 굳어가는 그녀의 구멍을 향해 물었어요. 왜 시계를 건드렸나요. 나는 그녀에게 단 한 가지만 당부했죠. 절대로 시계를 건드리지 말라고.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에요.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시침 분침 혹은 숫자들이 껌벅껌벅 죽어나가는 시계를 말한 거에요.
 
 

 그녀는 십 오 분전 시계를 닦았습니다. 과거의 흔적을 말소하려는 듯 꼼꼼하게요. 그러나 흘러가는 것에는 동정이 필요 없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그만 두라고 했습니다만 그녀는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했어요. 끝나간다고 말하더군요. 그녀를 서재로 불렀습니다. 사면가득 책이 가득한 방이었죠. 나는 스물 네 권짜리 ‘알쏭달쏭 대 백과사전’ 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완성되어 있는 것이니까요.
 
 

 만약 거기서 오 분이라도 지체했다면 그녀는 백과사전마저 닦았을지 모릅니다. 요즘 사람들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성심 성의껏 하는 게 문제에요. 그녀는 사십대 후반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원했지만 자기 일에 열심이었고, 새치처럼 미약하긴 하지만 창의적인 능력 또한 있었습니다.
 
 

 그녀가 먼지 쌓인 책장으로 다가가는 동안 나는 총신을 보고 탄환을 점검했습니다. 세 발. 끝까지 믿을 수 없단 표정이었어요. 슬픈 표정입니다. 눈은 감겨주었지만 일그러진 미소만은 끝내 없앨 수 없었어요. 그 미소 또한 어떤 의미로는 완결되었어요.
 
 

 의자에 앉아 다리를 포개고 계속 술을 마셨습니다. 꿈이라도 꿀까. 적당히 취기가 돌아 기분이 좋았어요. 시간이 지나도 오른팔은 열시, 가랑이는 삼십 오 분 삼십초로 벌린 채 그대로 굳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아릅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죽음으로써 시간을 멈출 수 있었던 겁니다.
 
 

 여전히 돌고 있는 시계를 총의 묵직한 손잡이로 깨버렸습니다. 초침이 구부러지고 대가리를 저격당한 시계는 쿵하고 쓰러졌어요. 묵직한 소리입니다. 집안의 모든 시계를 깨버리고 나서 손에 유리조각이 박힌 걸 봤어요. 피가 납니다. 아파요. 조금 남은 보드카를 붓고 조각들을 뽑았습니다. 아픕니다.
 
 

 서재로 돌아가 탁자에 누웠습니다. 인도에서 들어온 나왕으로 만든 탁자였어요. 카레 냄새가 났습니다. 하지만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고 백과사전은 알려줬어요. ‘카레’ 는 백과서전의 23권 [ㅍ, ㅋ, ㅌ]의 가운데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나의 꿈만큼이나 불투명하고 허무했죠. 나는 허무, 라고 소리 내어 말했습니다. 눈물샘이 말라버린 느낌이에요. 겉은 피로 젖어 축축하고 아픈데 속은 김처럼 말라버렸어요. 사람 모양을 한 김.
 
 

 누가 나를 먹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밥에 싸서 양념장을 푹 찍어 삼켜줬으면. 식도로 넘어간 김의 잔해는 쓸쓸히 소화되겠죠. 모든 것이 뼈로, 살로 사라지는 동안 이빨 사이에 낀 한 조각 영혼만 까맣게 빛납니다.
 
 

 이불을 깔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3권 째의 백과사전에 불을 붙이고 제자리에 꽂아 넣었어요. 차례차례 스물 네 개의 불길이 완벽하게 타오를 겁니다. 탁자에 다시 누우니 천장에 불꽃의 그림자가 일렁입니다. 그녀의 몸뚱이에 핀 신선한 구멍으로 불길이 드나듭니다.
 
 

 사실 시계 같은 건 핑계에요, 엄마.
 
 

 천장에 묻은 검은 티끌이 보입니다. 꿈꾸기 전에 저걸 떼어낼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녀가 들고 있던 걸레는 이미 피로 물들어버렸네요.
 
 

 마마 저스트 킬드 어 맨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소절을 부릅니다. 타닥타닥 불꽃들의 비트가 공기를 나눕니다.
 
 

 풋 어 건 어겐스트 히즈 헤드…
 
 

 철컥, 철컥. 눈물샘을 잠근 자물쇠는 아무리 당겨도 열리지 않네요. 열쇠는 어디에 있나요. 당신의 이마에? 당신의 이마를 날려버리고 가져가겠습니다. 연락만 주세요. 다시 시간이 흐르기 전에. 저 달이 사라지기 전에. 그 후에 혹시 내가 없을 지라도 간절히 원한다면 찾아가겠습니다. 꿈속에서요.
 
 

 철컥, 철컥. 눈이 오네요.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
 
 
 


 불꽃이 꺼지고 저택에는 하얀 재가 한 쌍 남았다. 하얀 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실려 갔다가 어느 강물에 뿌려졌다. 강물 위를 둥둥 떠간 재는 끝내 젖지 않았다. 눈은 진눈깨비가 되어 흐느끼고, 아홉시 뉴스에는 엄마를 죽인 미치광이가 나왔다. 반쯤 온전한 백과사전이 새카만 탁자 사이를 굴러다녔지만 신경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nd-



칠년전의 글이네요. 칠년전의 저는 급진적인 것을 모토로 삼았던 모양입니다.
너무도 뻔한 글인데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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