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신의 대화

2012.08.09 17:18

SCV™ 조회 수:1650

- 어째서 그들에게 그것을 주신 것입니까.

- 무얼 말하는 것이냐?

- 이성(理性) 말입니다. 어째서 유한한 그들에게 그런 것을 주신 것입니까?

- 유한이라...

- 불완전한 존재에게 이성이란, 크나큰 혼돈과 혼란을 불러오는 것임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 네?

- 네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 제가 감히 어찌 무언가를 바라겠습니까 그저 당신께서 하시는 대로 지켜보고 따를 뿐입니다.

- 네가 그들이 어떠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나에게 그것을 묻는 것이 아니냐. 말해보거라.

- ...... 그들이 그저 스스로의 유한함을 알지 못하길 바랍니다. 이성을 가진 존재가 스스로의 유한함을 깨닫는 순간 그들 모두가 파멸로 치달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 자신이 소유한 기억 모든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하는 순간 그저 덧없이 사라져버림을 깨닫는 순간, 당신께서 이룩해 놓으신 모든 것이 역시 사라져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하더냐.

- 네.

- 그러는 너는 무한하느냐?

- 네?

- 너는, 무한한 존재냐고 물었다.

- 저는 죽음을 겪지 않는 존재입니다. 유한하지는 않습니다.

- 그러면 너의 시작은 어디이냐?

- 저는 당신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 그러면 나의 시작은 또 어디이냐?

- 당신은 태초부터 존재하셨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실 분입니다.

- 틀렸다.

- 네?

- 네 말이 틀렸다. 단 한마디도 옳은 말이 없다. 너는 유한하며, 나 역시 유한하다.

- 주재주께서 어찌하여 스스로를 유한하다 하십니까.

- 나의 시작은 무(無) 이고 끝 또한 무(無)일 것이다. 무한하다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을 말한다. 마치 수가 더 이상 클 수 있는 점이 없고 더 이상 작을 수 있는 점이 없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시작이 있는 존재로다. 존재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이미 무한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나는 진리의 파생이며 우주의 시초이기는 하나 나 또한 나의 시작을 모르며 나의 끝을 모른다.

- ......

- 내가 인간에게 그것을 준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나의 시작과 끝을 보려 함이다. 너와 나는 태어남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유한하다고 불리는 존재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유한한 것들이 과연 진실로 유한한가?

- 나고 죽는 것들은 모두 유한한 것이 아닙니까?

- 아니다. 저들은 아주 오래전 나의 일부였으며, 그리고 한참 후에는 밝게 타던 별과 구름이었고, 그 뒤에는 뜨거운 덩어리었으며, 억겁의 세월을 지나 겨우 작은 형상을 갖추게 된 것 뿐이다. 말해보라. 너와 나와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 중에 무엇인가 진실로 태어나고 진실로 없어지는게 있단 말인가?

- 우주는 언제나 우주 그대로입니다.

- 늘어나지도, 불어나지도 않고?

- 그러합니다.

- 틀렸다. 우주는 무한하다. 우주는 물질이나 힘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고 더 이상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무한하다. 이해하겠느냐?

- 우주의 총량이 있다는 말씀이시온데, 그 총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겠으나 생겨나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데 일정하지 않고 무한한지 잘 모르겠사옵니다.

- 무한하기에 변하지 않는 것이다. 무한하기에 무엇이 더 생겨나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무한하기에 무엇이 더 사라지더라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말해보라. 무한대에 1을 더하면 무한대보다 큰 수가 되느냐? 음의 무한대에서 1을 더 빼면 음의 무한대보다 더 작은 수가 되느냐?

- 아닙니다. 그저 여전히 무한대와 음의 무한대일 뿐입니다.

- 그러하다. 그러기에 우주 역시 무한하지만 총량이 변하지도, 변할 수도 없는 것이다.

- 하지만, 우주에도 시초가 있지 않습니까? 우주에게도 나이가 있지 않습니까?

- 그것은 우주의 작은 변화이고 다른 모습일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이 온 우주라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온 우주의 주재주임을 믿는것이더냐?

- 그러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진리 그 자체이시고 우주 그 자체이십니다.

- 틀렸다. 내가 주재하는 우주는 우주의 일부분이며 나 또한 진실된 우주의 작은 종일 뿐이다.

- 그렇다면 주재주께서도 알지 못하시는 것이 있으시단 말씀이십니까?

- 아니다. 내가 이 우주에서 알지 못하는 것은 없다.

- 그런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온지..

- 너는 허수의 크기를 잴 수 있느냐?

- 아닙니다. 허수는 허수끼리의 우열조차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저 선 두 개를 그어 그 위치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 그러하다. 허수는 크기가 없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수는 아니다. 그렇지 않느냐?

- 그러합니다.

- 나의 앎은 모든 수에 미친다. 자연수와 정수, 유리수와 무리수, 그리고 허수에 이르기 까지. 하지만 나 역시 허수의 크기는 잴 수 없다. 이해하겠느냐?

- 그 말씀은...                                          

- 그러하다. 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알고 있으나, 알고 있는 것의 어떤 것은 나의 앎 안에 있다 하더라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보다 큰 우주에 대한 것이다. 나는 나의 시작의 이전에 대해서 알고 있으나 그것에 대해서 진실로 알지는 못한다. 나는 모든 것을 깨우쳤으나 언제나 존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들도 그러할 것이다.

- 무슨 말씀이신지? 저의 짧은 식견으로서는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 인간들은 곧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너와 나의 시간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지만. 하지만 그들이 모든걸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게 진실로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일까? 그들이 존재하기 이전의 시간에 대해서 깨우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미루어 안 것일 뿐이다.

- 그것이 인간들에게 이성을 주신 것과는 무슨 상관이란 말씀이십니까?

- 작은 시험이다.

- 네?

- 저 작고 미욱한 원자들과 분자들이 결국 나의 힘을 빌지 않고 스스로 저러한 유기체가 되었다. 나는 그들을 만들었으되 진실로 만들지는 않았다. 사고하는 힘 역시 내가 준 것이되 내가 준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사고하기 시작했으며 사고하게 될 것이고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다.

-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 것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 잔혹하고 잔인한 일이 될 것입니다.

- 그러하다.

- 어찌하여 피조물들에게 시련을 주시나이까.

- 나는 시련을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은 진리의 법도대로, 인과율대로 흘러갈 것이다. 나아감도 혹은 물러섬도, 삶도 죽음도 그들 스스로가 결정할 것이고 그들 스스로가 얽혀갈 것이다. 나는 애초부터 관여한 바가 없으며 관여할 생각도 없도다.

- 어찌하여 피조물들을 그저 관찰하겠다 하시나이까.

- 말해보라. 더 큰 우주의 존재들이 존재하는가.

- 본적도, 만나적도 없으나 존재함을 알 수는 있사옵니다.

- 말해보라. 저들이 나와 너의 존재를 알겠느냐.

- 존재함을 곧 깨우치겠으나 볼수도, 만날 수도 없을 것입니다.

- 그러하다. 실수와 허수는 스스로가 존재를 알 수는 있으나 맞닿을 수는 없다. 우리와 저들도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이 저들도 언젠가 작은 우주의 주재주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 본래 인간이셨단 말씀이십니까?

- 아니다.

- 그런데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온지....

- 나는 본래부터 모든 것이었고 지금도 또한 그러하다. 저들도 나의 일부다. 네가 나의 일부이듯이. 말해보라. 인간들의 세포가 스스로를 하나라고 인식하느냐?

- 존재의 단위일 뿐 하나의 개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 틀렸다. 인간은 군체다. 많은 식물들과 동물들이 그러하듯 수많은 세포로 구성되어있고 그들 각각이 나고 죽는다. 의식이 하나라고 해서 하나의 개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각각의 세포들이 더부살이 하고 있지만, 보라. 살아있는 인간 안에서도 나고 죽음이 있지 않느냐. 우주도, 나도 그러하다. 우주에게도 삶이란 것이 있으되 그 안에 나고 죽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해보라. 세포가 세포의 죽음을 슬퍼하느냐?

- 아닙니다. 죽음을 인식할 수 있는 것들만이 죽음에 대해 감정을 갖습니다.  

- 그러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의식과 기억을 잃느냐 잃지 않느냐라는 협소한 경계를 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말해보라. 별이 스스로의 죽음을 아는가?

- 아닙니다.

- 인간보다 별이 더 크고 우월한 존재이거늘 어째서 죽음을 모르는가?

- 죽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형상을 바꿀 뿐입니다.

- 그러하다. 죽는 것들은 죽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오래되어 보이는, 잠시동안 모습을 바꾸고 또 바꿀 뿐이다. 그리하여 그들 역시 우주이고 나이고, 우주의 일부이고 나라는 뜻이다. 알겠느냐?

-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들이 이성을 갖게 된 것입니까?

- 그것이 진리의 뜻이 아니겠느냐. 내가 준 것은 뼈와 피와 살 뿐이다. 그들이 그들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그들이 정할 일이다. 나는 저 좁은 지구라는 터전을 주었으되 그들에게 그 지구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유한함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를 깨우쳐 나아갈지 아니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하는 힘을 어리석음의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다가 절멸할지는 나 역시 모를 일이다.

- 그래서 작은 시험이라고 하신 것입니까.

- 그러하다.

- 그러면 저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 글쎄. 그건 두고보면 알겠지. 나의 일부가 나의 안에서 어떻게 현재를 이끌어 미래로 다다를지 나 역시도 궁금하구나. 그리하여 저들이 마침내 나와 너를 찾아오게 되면, 작은 시험이 끝났다고 할 것이로다. 그때까지는 지켜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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