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안녕, 좀비 1

2011.03.19 19:19

DnDD 조회 수:3189

1. 창 밖

 

 

"아침에는......"

 창 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솔직히 노래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음정도 안 맞고, 목소리도 발악을 하 듯 높기만 하다. 그 것도 하나가 아니라 열 댓명은 될 법한 사람들이 서로서로 열을 올려 그런 식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나는 잠시 하던 말을 중단하고 담당의를 쳐다보았다.

"왜요?"

"시끄럽지 않아요?"

"뭐가요?"

"소리. 안 들려요?"

 나나가 고개를 까딱, 창 쪽을 가르킨다. 담당의가 잠시 나나를 바라본다.

 29세의 여성, 망상증세가 있는.

"글쎄요. 난 안 들리는 데. 많이 신경 쓰여요?"

"네, 많이 신경 쓰여요."

"그냥,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 보세요."

 담당의가 턱을 괴고 나나를 바라본다. 나나는 담당의를 보고 있지 않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저런 소음도 못 듣는 귀머거리에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고 들리기나 하겠어? 반발심이 인다. 나나가 말없이 창만 바라본다. 담당의는 그런 나나만 바라본다.

"그러니까....."

"......"

"아침에는, 어떻다는 거죠?"

 대답하지 않는다. 고집스레 창만 바라보고 있다. 담당의가 피곤한 듯, 미간을 주무르며 의자에 몸을 기댄다. 삐걱, 의자 연결 부위에서 마르고 성긴 소리가 난다. 담당의가 인상을 찌푸린다. 그는 그런 종류의 소리에 민감했다. 칠판에 분필이 닿을 때 나는 소리, 낡은 철제 미닫이문을 열 때 나는 소리, 브레이크를 밟을 때 타이어가 마찰하는 소리,

"아침에 일어나면, 또 안 죽었네. 라고 생각해요."

 유리를 창틀에 끼울 때 나는 소리, 동전으로 차 본네트를 긁을 때 나는 소리,

"그러다 점심에는, 아 아직도 안 죽었네. 이러고요."

 녹슨 너트에 볼트를 감을 때 나는 소리, 또 풀 때 나는 소리, 김이 서린 거울을 마른 걸레로 닦아낼 때 나는 소리, CD케이스 안에 CD를 끼어넣을 때 나는 소리, 잘못 하다 CD에 흠집이 날 때 나는 소리.

"저녁에는, 아 오늘도 못 죽었네. 그러죠."

 말을 마친 나나가 담당의를 바라본다. 뭘 생각하는 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창 밖의 소음은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도대체가, 이 병원에 정상인 건 하나도 없구나 하고 나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다시 창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파란 하늘이 보인다. 구름도 떠 있다. 구름은 총 모양이다. 조금 기울어져 있는 게 땅을 쏘려는 것처럼 보인다.

 저 구름 아래 내가 있어야 되는 데, 라고 나나는 생각한다.

"왜 죽으려고 하죠? 뭔가가 자신을 괴롭히나요? 환청이라거나, 헛것이 보인다거나."

 나나가 다시 담당의를 본다. 하지만 담당의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인상을 찌푸린 채 책상 위의 무언가를 쏘아보고 있다.

"저한테 물어보신 거에요?"

"네."

 빠르게 대답한다. 하지만 담당의는 나나를 보고 있지 않다. 나나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쪽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몸을 기울여 담당의가 보고 있는 것을 보려고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 볼펜 한 자루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자리에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일어난다. 창으로 간다. 창문을 열고 병동 중앙 공원의 잔디에 서서 합창을 하고 있는 환자들을 바라본다. 간호사가 팔이 빠져라 지휘를 하고 있고 환자들은 목청이 나가라 빽뺵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소음이다. 각각이 소음이다. 전부가 다 시끄럽기만 하니 누가 어떤 소음을 내는 지 구분도 잘 되지 않는다.

 어차피 들어줄 사람은 없는 데, 소용 없는 짓이야.

 그리고, 설거지를 할 때 그릇과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담당의가 고개를 든다. 나나가 앉아 있던 의자는 비어 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찰나에 딸칵하고 문이 닫힌다. 담당의가 킁 코를 들이마신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으로 간다. 날씨가 좋다. 환자 몇이 벤치에 앉아 혹은 누워 있고 수간호사 몇이 돌아다니는 게 보인다. 여느 때와 같은 하루다.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한 그런 날이다.

"이렇게 조용한 걸."

 담당의는 중얼거리며 창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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