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은, 집밖으로 나서는 순간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열세가지 이유가 떠올랐기 때문이였다. 그것들이 해결 되지 않는 한, 난 도저히 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집안은 안전하다. 내가 몇번이고, 몇번이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난 나의 안전한 집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따금 답답함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밖에 나가본 적이 언제였던가. 바깥 바람과 햇볕을 쬔 것이 언제였던가. 바깥 사람이 그립고 바깥 공기가 그리웠다. 내가 죽을 지도 모르는 여덟가지 이유를 무릅쓰고 창문을 열었다. 바깥 공기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조용한 집안을 뒤엎는 소음이 내 귀를 가득 매웠고, 방안에는 없었던 낯선 기운이 느껴지는 공기들이 내 콧속으로 들어왔다.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자동차, 건물들, 사람들, 세상은 나란 사람 없이도 너무나도 완벽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나의 집은 다시 익숙한 고요속에 잠겼다. TV를 켰다. 딱히 볼만한 내용은 없었지만, 그래도 뭐라도 귀에 들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찬장을 열고 먹을 것을 찾았다. 햄과 야채를 꺼내 기름에 볶아 저녁거리를 만들었다. 설거지를 하고, 쇼파에 누워 다시 TV를 봤다.

 

세수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무렵, 더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겨웠다. 이제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열세가지고 열네가지고 죽을 지도 모른다고 해도 할 수 없다. 당장에 이러다가는 내가 죽게 생겼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으려고 생각하다. 아무리 그래도 밤보다는 낮이 새로운 시작에 어울릴 것 같아서, 내일의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났을 때, 난 몸을 움직 일 수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서른 세가지 이유가 생각났기 때문이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그 서른 세가지 이유들 중 한가지 때문에 진짜 죽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몸을 엄습했다. 열두가지의 이유로 죽음해 근접함을 무릅쓰면서 전화를 하여 엄마를 불렀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가 되서야 비로소 위험 요소들을 제거 할 수 있었다. TV를 비롯하여 집안 살림의 절반 정도가 사라졌지만, 비로소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그러던 사이 어제의 맹세는 깨끗이 내 마음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어쩌면 어제의 생각때문에 내가 더 민감해졌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종의 방어적 생존본능 이라고해야될까. 그러나 이 말은 난 평생 이렇게 집안에 쳐박혀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용기를 내어 집 문을 열었을 때 내가 죽을 지도모르는 이유가 스물 두개로 늘어나 있었다.

 

 이렇게 몇달이 지났다. 집안 세간 살이는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전지구적인 이유에 의해 불안감에 떨어야했다. 언제 혜성이 내 머리위에 떨어질지 몰랐으며, 언제 북한이 미사일을 쏠지 모르는 일이었다. 생각같아서는 저 멀리 지방으로 내려가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구천삼백가지의 위험요소들을 감내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에, 단념해야 했고, 그로 인해 끊임없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에 비하면 비행기가 추락한다던가, 인공위성이 떨어지는 일은 사소한 고민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방사능 괴물이 쳐들어 온다는 생각, 바퀴벌레가 지구를 점령했다는 생각, 문을 열먼 살아있는 시체들이 내 살냄새를 맡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나의 정신은 점점 황폐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다.

난 모든 것에서 해방될수 있었다. 난 이미 죽어있는 시체이고, 걸어다니는 좀비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기적이었다.

일분 일초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흔 아홉가지 새로운 이유들이 내 머릿속을 떠돌아 다녔지만,

그 와중에서도 난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이것은 기적이였고, 내가 이렇게 밖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원천이 되어 주었다.

난 나의 기적을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 줄 생각이다.

그들이 하루라도 더 많은 생명의 시간을 영유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살아라. 나도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