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The Viking.

2012.04.27 20:37

렌덮밥 조회 수:3918


 

  어느 작은 나라에서, 스스로 위대한 혁명가라 칭하는 장군이 자신의 궁궐 3층 집무실 발코니에서 국민들에게 힘껏 소리쳤다. 이전의 썩어빠지고 나약했던 지도자는 자멸할 운명이었으며, 자신과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과업을 이루었으며 더 나아가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그의 자신감은 그가 말하는 것 처럼 신이 주신 능력인지, 아니면 궁궐 전체를 둘러싼 친위대와 장갑차로부터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그의 연설은 이 나라의 전파를 독점하여 지역 곳곳의 TV와 라디오를 통해 울려퍼졌다.

 

 

환호성, 장군을 칭송하는 이들의 목소리. 무더운 어느 날. 사탕수수밭 사이로 장군의 연설이 울려퍼진다. 곳곳에서 터지는 기관총 소리. 하늘로 흩어지는 검은 연기들. 옛날, 어느 유럽인 이주자가 세운 대농장의 저택은 분주히 움직이는 군인들과 부상병들로 가득찼다.

피투성이 지프가 저택 앞마당으로 가로질러 온다. 지프가 멈추자마자 적십자 완장을 찬 군인들이 충격에 빠진 병사들을 부축하며 부상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지프에 탄 사람들 중 멀쩡하던 이는 운전병과 허리에 권총을 찬 젊은 장교 둘 뿐이었다. 베레모를 쓴 그 장교는 덩치가 큰 아프리카인으로 잘생겼지만 치열한 교전으로 인해 제복 이곳 저곳이 찢어져있었고 부하들이 흘린 피 때문에 옷이 얼룩졌다. 그가 병사들에게 물었다.

“찰스 우룬바 중위다. 대대장님은 어디계신가?”

“2층 지휘소에 계십니다. 따라 오시죠.”

키가 작은 병사가 우룬바 중위를 안내했다. 그는 저택 안으로 들어가 거실 한가운데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우룬바가 그를 따라갔다. 저택은 야전 지휘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저택 안에도 역시 많은 장교들과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우룬바를 안내하는 병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일은 우룬바를 안내하는것 뿐이라는 것 마냥.

복도가 꺾어지는 부분에 도달하자 병사는 멈춰섰다. 여기입니다, 중위님. 행운을 빕니다. 그렇게 말하고 상병은 다시 밖으로 나갔다. 우룬바는 계속 복도로 나아갔다. 복도 끝에는 큰 문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는 무장한 병사 둘이 지키고 있었다.

우룬바가 그의 신분을 말하자. 병사들은 아무말없이 우룬바의 길을 비켜줬다. 우룬바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은 한 때 넓은 접견실로 쓰던 곳이었는데, 지금 그 곳에는 수많은 통신기기와 상황판들이 설치되어있었다.

수사자 트로피, 티크목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테이블. 보랏빛 벨벳커튼. 카페트. 이 저택의 옛 주인은 얼마나 호화롭게 살았을까.

“찰스 우룬바 중위. 도착했습니다.”

중위는 수화기에 소리치는, 아주 깔끔하게 차려입은 장교 뒤로 가서 꼿꼿한 자세로 차렷 한 후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 장교는, 겨우겨우 수화기를 내려놓고 뒤돌아서 우룬바의 경례를 받았다.

앨버트 데쿰베 소령. 발메데르 공화국 충성파 군대의 최고 지휘관. 강직한 그의 성품은 잇따른 쿠데타와 전향과 그리고 불리해져가고 있는 전황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무공훈장이 달린 그의 제복은 여전히 휘황찬란했다.

“그래, 우룬바 중위. 수고했네.”

“감사합니다.”

우룬바 중위는 데쿰베를 대신하여 전선시찰을 하는 임무를 띄고 나갔다 왔었다. 그러나, 데쿰베는 우룬바가 나가있는 동안에 전선의 상황을 이미 모두 보고 받았으므로, 그저 그에게 잠시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몇가지 아직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우룬바에게 물어보았다.

“3대대와 4대대의 상황은?” “전멸했습니다.”

“11연대와 3연대는?”

“11연대는 전향, 3연대는 쿠데타군에 투항했습니다.”

그렇군... 데쿰베는 잠시 무언가를 밖으로 표출하려고 하다가, 다시 숨을 고르고서는 우룬바에게 계속 물었다.

“그럼, 제 4기갑대대는? 잠브로 소령이 반역자 놈들에게 굽실거릴 사람은 아닌데...”

“그게...”

우룬바 중위가 겨우 입을 연다.

“그게... 제가 갔을 때까지만 해도 잠브로 소령이 이쪽으로 지원을 오고 있었는데, 내부에서 반란이 있었습니다. 잠브로 소령은 살해당하고, 그의 부관 말레바 중위가 기갑대대의 통솔권을 장악했습니다.”

“이런 개새끼들!”

데쿰베가 겨우 겨우 억눌렀던 화를 표출하며 테이블을 엎어버린다.

“이 개새끼들. 백인 앞잡이만도 못한 버러지 같은 놈들! 초원에서 시체 찌꺼기나 파먹는 하이에나 같은 자식들! 끝까지 충성을 다할 망정, 넬린 같은 놈에게 굽실거리려고!? 망할 반역자 놈들! 내 가만 두지 않을테야!”

순간 방안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데쿰베는 한참을 소리 지르다가 겨우겨우 마음을 추스르고는, 재킷의 단추와 셔츠의 단추도 느슨하게 풀렀다. 그 어느 전선에서도 본 적 없었던 행동이었다.

“좋아... 그래. 알았어. 우룬바. 자네는 밖으로 나가서 경비병력을 통솔해. 지휘통제실은 잠시동안 코스트 상사가 내 권한을 위임받는다.”

그러고서는 데쿰베는 접견실 안에 있는 침실로 들어간다. 침실의 문은 굳게 잠기고, 지휘통제실은 다시 분주해졌다. 데쿰베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선 창밖을 쳐다봤다. 저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는 총성과 폭염. 그는, 잠시동안, 한 동안 잊고 있었던 그 대저택에 얽힌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겼다.

 

 

 

총성. 포성. 장교들의 고함소리. 트럭의 디젤엔진 소음과 전차의 궤도가 굴러가는 소리. 심리전용으로 틀어뒀던 거대한 스피커는 충성파 군대의 어느 용감한 저격병이 쏘아버린 관계로 못쓰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뭐 어쩌랴. 그런게 없어도 충성파 군대는 와해되기 시작됐다.

소련제 T-55 전차와 BMP 장갑차가 키가 큰 사탕수수밭을 밀어버리면서 전진하고 있었다. 그 뒤로 카키색 전투복을 입은 보병들이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전차와 장갑차 위에는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 군인들은 백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용병대원들이었다.

“그래, 너무 순조롭소. 내 전장생활 35년 동안 이렇게 쉬운 전투는 처음이야! 진격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오!”

 

사탕 수수밭 사이에 난 오솔길 가에도 역시 보병들이 줄지어 행군하고 있었다. 지프의 바퀴와 보병들의 검은군화는 마른 모래에 뒤덮혀 갈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를 지프 한 대가 먼지를 흩뿌리며 달리고 있었고, 그 위에는 머리가 하얀 백인 한명이 통신기기의 수화기에 대고 떠들고 있었다. 그의 강한 텍사스 억양은 경마와 포커를 즐기는 도박사 마냥 신나게 들떴다.

“4기갑대대가!? 그거 다행이군. 그런데 고작 중위 찌끄러기가 대대장이라니, 이보쇼. 당신들 장난쳐? 중위밖에 안되는 놈이 대대를 지휘할 능력이 된다고 생각해? 어이어이, 그냥 우리는 알아서 진격하겠소, 대령. 보수? 추가비용은 안받겠소. 음... 그나저나... 교신좀 끊겠소. 부대를 지휘해야 해서. 이따 다시 이야기하지.”

지프가 부대의 선봉에 도착했다.

“뭐야? 왜 여기서 멈춰있어? 놈들 지휘소가 코 앞에 있는데!?”

펑-! 가까운 곳에서 포탄이 작렬했다. 모두들 깜짝 놀라 몸을 웅크렸다. 그렇지만 용병 지휘관, 그러니까 텍사스 출신의 이 로페즈란 자는, 거기에 꿈쩍도 않고 되려 지프에서 내려 꼿꼿하게 걸었다. 그의 통신병이 무전기 상자를 메고 같이 내렸다.

용병들과 쿠데타 군 병사들이 전차 뒤쪽이나 탄흔 구덩이 등에 몸을 숨겼다. 총알이 날아온다. 조그만한 탄들이 전차의 표면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튕긴다. 로페즈는 통신병이 메고 있는 무전기의 수화기를 들어 주파수를 조절한 다음 소리쳤다.

“여기는 찰리 커맨더! 터틀 알파 응답 바람!”

“터틀 알파 응답했습니다.”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로페즈의 고막을 울렸다. 터틀 알파는 전차중대 지휘관의 통신상 호칭이었다.

“이봐? 왜 멈춰있어!? 전차들이 가만히 있으니까 다들 겁먹고 있잖아!!”

“그게...”

살짝 떨리는 무전기 속 목소리는 상당히 당황한 것 같았다.

“의외로, 충성파 녀석들 공격이 거셉니다. 대전차포라던가 바주카 같은것도 있던데요... 지금 그 것 때문에 잠시...잠시...”

“잠시 뭐?!”

“병사들을 보내 수색을 실시하려고 합니다”

“피격된 전차는 있어?”

“없습니다.”

로페즈는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이 병신 새끼야! 그냥 전진해! 놈들 실력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거 무섭다는 놈이 보병들 앞세워서 뭐 어쩌겠다는거야!? 전차병으로서 밸도 없냐? 관측이 힘들어? 그냥 쏴! 주포는 폼이냐? 동축기관총에 큐폴라에 달린 기관총, 그건 영화촬영용 소품이야!? 당장 뚜껑열고 기관총 잡아! 앞으로 전진해! 이 나라에서 전차와 제대로 붙을 줄 아는 놈은 우리 로페즈 레인저 밖에 없어! 그냥 가! 어서!”

알겠습니다! 그제서야 전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차의 수많은 화력이 전방을 향해 쏟아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대략 15분 후, 사탕수수밭은 고요해졌다.

로페즈 레인저는 다시 진격했다.

 

 

대저택에 위치한 충성파 군대는 더욱 바빠졌다.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4기갑대대는 내부 반란으로 인해 변절하고, 용병들을 앞세운 쿠데타군이 3차방어선까지 뚫어버렸다. 다시 이성을 찾은 데쿰베 소령이 필사적으로 지휘했지만 결과는 무전기로 통해 들리는 비명소리, 전투불능이라는 모스부호가 찍힌 전보 뿐이었다. 쿠데타군은, 사탕수수밭 방어선을 붕괴시키고 한 시간만에 대저택 바로 앞 까지 도달했다. 병사들의 키큰 사탕수수밭 사이를 헤쳐 나왔다. 그리고 전차부대를 방패삼아 진격했다.

찰스 아룬바 중위는 저택 마당에서 병사들을 필사적으로 지휘했다. 병사들 역시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그들 모두 머릿속에서 패배라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들이 차고 있던 탄약통은 가벼워졌지만, 몸은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아룬바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자신을 지배하는 본능과 자신이 배워온 교육과 경험이 서로 부딪히고 있었다. 그의 정신적 내분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대체 어쩌자는 말이야!? 그러던 중에, 그는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적의 포탄이 저택의 마당에 작렬하고, 그 충격에 내동댕이 쳐진 것이었다.

 

  

아룬바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앞에 펼쳐졌던 광경은, 짙은 포연과 그 안을 뚫고 들어오는 장갑차와 그를 뒤따라 들어오는 용병들. 그리고 무표정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쿠데타군의 병사의 얼굴이었다.

 

 

 



 원래 군 시절에 장편으로 기획하고 있었던건데 이래저래 틀어져버려서 이정도만 나왔지요.

 쯥. 제대도 했다, 시험도 끝났겠다 어서 글 써야 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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