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눈앞에 당대(當代)의 맹장(猛將) 여포가 줄에 묶여 꿇어 앉아있다.

여포 옆에는 여포의 책사 진궁과 기병 장수 장료 역시 같은 꼴로 앉아있다. 꽉 묶인 오랏줄이 아픈 듯 여포가 연신 몸을 비튼다.

“승상, 너무 꽉 묶은 것이 아니오. 인정을 베푸시어 조금 느슨하게 해주면 아니 되겠소?”

조조는 잠시 입술을 꽉 깨물더니 여포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한다.

“범을 묶는데 어찌 꽉 조이지 않겠는가.”

줄에 묶인 여포를 내려다보는 조조의 손이 곽가의 밀서(密書)를 읽던 그날처럼 바르르 떨린다.

‘인정(人情)이라, 내 아비를 죽인 자가 어찌 내게 인정(人情)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대(大) 환관 조등의 양자 조숭은 아들 조조를 남달리 귀히 여겼다.

황실의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다는, 귀하디귀한 사슴(鹿) 고기를 구해 조조의 양기(陽氣)를 보(補)해주곤 하였다.

사슴의 피(鹿血)와 뿔(鹿角)은 조조의 몸에 좋은 약재가 되었다.

그 옛날 진나라의 환관 조고가 황실에서 귀히 키우고 있는 사슴을 일컬어 말(馬)이라 하여 황제를 농단했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 이야기에서 보듯 사슴은 황실에서나 키우고 황족들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짐승, 즉 영물(靈物)이었는데 조숭은 그 귀한 사슴 고기를 말(馬) 고기라 부르며 아들 조조에게 매 끼니마다 먹였다.

귀한 고기, 귀한 약재를 먹은 조조의 양물(陽物)은 또래의 그것보다 크고 실해졌다.

조조의 정실 정씨와 그 뒤를 잇는 유씨 부인은 조조의 큰 양물(陽物)을 받아들이기에는 옥문(玉門)이 좁았다.

기생 출신인 변씨(卞氏) 부인이 그나마 조조의 남다른 양물(陽物)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였다.

 

‘환관의 아들이라 세간의 눈총을 받던 이 조숭의 아들놈이 그토록 대단한 양물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아들 녀석인 조조의 호색(好色) 난봉질을 볼 때마다 그 아비 조숭은 꽉 막혀있던 가슴이 뚫리는 듯 했다.

조조가 어디선가 색시 도둑질을 하고 올 때면 호통을 치기보다는 흐뭇하게 바라보던 조숭이었다.

환관의 자식으로 한 평생 성욕(性慾)을 억누르고 자랐던 조숭으로서는 아들 조조의 행동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었다.

 

조조가, 그리고 조조의 친구들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면 조숭의 하인이 신부와 신랑 집에 다녀갔다.

먹고 살기 힘들어 나무껍질을 벗겨먹고 그것마저 없으면 아비가 자식을 잡아먹기도 하는 이 난세(亂世)에 부잣집 도련님의 하룻밤 장난질의 대가(代價)로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넉넉히 후사(厚謝)를 하니, 울던 색시도 눈물을 그치고 깨질 뻔했던 혼례도 성대히 다시 치러지곤 하였다.

 

환관인 할아비 조등도 조조의 못 말리는 색욕에 두 손을 들었다.

“허허 그놈 참 큰일을 낼 놈이로구나.”

조조의 난봉을 보다 못한 조조의 숙부 조길(曺吉)이 조숭에게 조조의 잘못을 고쳐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냥과 매 날리기, 계집질에 미쳐있는 아만(阿瞞) 녀석이 하고 다니는 난봉 짓거리가 공맹(孔孟)의 도(道)를 숭상하는 유학자 조길(曺吉)의 눈에 찰 리가 없는 것이다.

 허나 조조가 마비증상(風)이 왔다고 거짓말을 하여 숙부를 속인 일이 있은 후로는 그 엄격한 조길(曺吉)도 조조의 행악(行惡)에 대해서만큼은 손을 들고 말았더랬다.

 

인물평으로 유명한 허소가 조조를 가리켜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 평한 일이 있었다.

혹자는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 아니라 '치세의 간웅, 난세의 능신'이 아니냐?’며 허소의 말뜻을 따져 묻기도 하였으나 정작 당사자인 조조는, "간음할 간(奸)인가 간사할 간(姦) 간인가?" 그것을 따져 물으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능신이든 간웅이든 허소가 예견했던 난세(亂世)가 시작되었다. 황건적의 난이 끝나자 천하는 군벌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히 살기 위해 진류로 향하던 조숭이 죽었다. 조숭 일행은, 늙은 조숭에서 어린 하녀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살해당했다.

조숭 일행을 호위해주겠다던 도겸의 군사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값비싼 보석부터 쌀 한 톨까지 재물이란 재물은 모조리 약탈당했다.

현장에 남은 것은, 몸에 걸쳤던 옷가지까지 빼앗긴 채 발가벗겨 나뒹구는 시체들뿐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조숭의 시체는 하초의 양물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는 것이 조조의 심복 곽가가 세작을 통해 남몰래 알아온 사실이다.

- 그곳엔 조그만 살점 하나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

곽가가 보낸 밀서(密書)를 쥐고 있는 조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필시 아비 조숭이 환관(宦官)의 자식임을 욕보이려한 것이리라. 조조는 시체 훼손으로 악명 높은 장수들을 하나씩 손꼽아본다.

 

화웅(華雄), 동탁의 부장(副將) 화웅이란 자가 동탁의 전횡에 맞선 연합군 장수의 사체(死體)를 심하게 훼손한 뒤 성벽에 내걸어 끔찍한 본보기로 삼았던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화웅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지 않은가. 동탁의 오른팔이었으며 화웅의 상관이었던 여포? 그 여포가 한 짓일까? 화웅도 여포도 동탁이 아끼던 장수였다.

서량(西涼)의 동탁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로 자신에게 불복(不服)하는 관리를 죽여 그 시체를 조정(朝廷) 대신(大臣)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던 인물이 아니었던가. 시체를 훼손하여 적(敵)을 겁박하는 것은 서량(西涼)의 풍습이었고 그 풍습은 서량군을 주축으로 한 동탁이 이끌던 군대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조의 아비 조숭을 제외한 나머지 시체들은 신체의 급소 한 두 군데를 제외하곤 깨끗한 상태였다.

조숭 일행이 따로 고용한 용병 무사들마저도 별다른 저항을 못하고 일격(一擊)에 제압을 당했을 정도이니 필시 대단한 실력을 갖춘 무사(武士)였음이 틀림없다.

 

누가 한 짓이든 간에 사체(死體)에 대한 이토록 심한 모독, 가문(家門)에 대한 이토록 심한 능욕이 어찌 천지(天地)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자존심이 강한 조조, 아비에 대한 사랑이 깊은 조조로서는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놈들의 씨를 말려라!” 격분한 조조는 도겸 정벌에 나섰다. 평소의 모습과 다른, 살육(殺戮)의 피를 탐하는 인면귀(人面鬼)라도 된 듯한 모습이었다.

온 천하가 자신을 비난할지라도 훗날의 역사가가 어떠한 말로 자신을 욕할지라도 아비 조숭의 하초(下焦)가 끔찍하게 훼손당한 것을 알게 된 조조로서는 그 분노(忿怒)를 참을 수 없었다. 군민(軍民)을 합쳐 서주의 수십만이 죽었다. 개와 닭 같은 가축도 가차 없이 도살하였다. 말 그대로 씨(氏)를 말렸던 것이다.

 

조조의 분노를 샀던 태수 도겸은 병으로 죽었다. 도겸은 죽기 직전 자신의 서주 태수 자리를 유비에게 물려주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조조가 그 아비의 살해자로 의심했던 여포가 지금 조조의 눈앞에 밧줄에 묶여 꿇어 앉아있다.

 

“유공(劉公), 이 자를 어찌했으면 좋겠소?”

조조는 옆에 앉은 유비를 힐끗 쳐다본다.

유비(劉備)는 한쪽 손을 들어 두 손가락으로 길고 탐스러운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한다.

“대인(大人)께서는, 여포(呂布)가 그 아비 정원과 동탁을 죽인 일을 잊고 계십니까?”

 

유난히 긴 귓불을 위아래로 만지작거리는 것은 두려울 때 유비의 습관이었다.

귓불이 긴 사람은 명(命)이 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지금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을 것이리라.

유비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내 명(命)은 길다. 여기서 이렇게 짧게 살다 죽지는 않을 것이리라.’

 

조조의 질문에 태연스럽게 대답하긴 했지만 유비는 내심 두려움에 떨었다.

아우 장비(張飛)를 도겸의 부하장수 장개(張闓)로 위장하게 하여 진류 땅으로 향하는 조숭 일행을 살해하도록 명령한 것은 유비였다.

언제까지 떠돌이 장군으로 천하를 떠돌 순 없었다.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했다.

 

황건의 난이 끝난 직후 안희현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독우를 두들겨 패고 나올 때 지난날 유비 형제의 큰 뜻을 생각하여 말과 식량을 대줬던 소쌍과 장세평이 고개를 돌리고 떠나갔다. 지금 자신을 후원해주고 있던 미축도 언제까지 자신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쌍과 장세평이 떠나가듯 미축과 미방 형제 역시 미련 없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

 

도겸의 신세를 지며 객장(客將) 역할을 했던 유비로서는 도겸 군대의 군기(軍箕)니 복장(服裝)을 준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유비의 동생 장비는 휘하의 군사를 재촉하여 길을 가로질렀다.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채찍과 몽둥이를 앞세워 군사를 재촉하는 것은 장비의 특기였다.

장비의 군사는 도겸이 보낸 호위군사로 위장해서 조숭을 맞이했다.

도겸의 부장인 장개(張闓)란 장수가 장비와 같은 성씨(姓氏)에 장비와 비슷한 외모의 텁석부리란 것이 주효하여, 조숭 일행은 장(張)이란 글자가 크게 새겨진 깃발을 앞세우고 다가오는 텁석부리 장수가 마중 나오기로 한 도겸의 장수 장개(張闓)인줄로만 알았다.

장개로 위장한 장비, 도겸군으로 분장한 장비의 군사는 조숭 일가를 무참히 살해했다.

 

“이 귀 큰 놈이!”

묶여 있던 여포 녀석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친다.

혹시? 하는 생각에 곁눈질로 유비의 반응을 살피던 조조가 고개를 돌려 여포를 바라본다.

“여포는 아비를 죽인 자입니다.”

“아비, 아비를 죽인 자라...”

“아비를 죽인 자를 어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줄에 묶인 여포가 짐승이 울부짖듯 크게 외친다.

“승상에겐 청주(淸州)의 정예 보병(步兵)이 있고 나에게는 서량(西涼)의 정예 기병(騎兵)이 있소이다. 나와 함께 하면 천하(天下)를 도모할 수 있소! 부디 나 여포를 죽이지 마시오!”

유비가 조조에게 또 한 번 속삭인다. “아비를 죽인 여포의 말을 믿지 마시옵소서.”

그날 여포는 백문루(白門樓)에서 목이 졸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죽었다.

이날 조조 곁에 앉아 ‘아비를 죽인’ 여포를 죽이라고 조조를 재촉했던 유비는 그 몇 년 후 조조를 살해하려는 동승의 음모에 가담하였다고 전해진다.

 

백문루(白門樓)에서 굵은 동아줄에 목이 졸리기 직전 여포는 조조에게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승상, 승상! 저 귀 큰 놈이 가장 믿지 못할 놈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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